학문의 역할과 한계
학문을 연구함에 있어서 사람의 주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학문 연구를 하는 사람이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치관을 제거한 순수 객관적인 학문 연구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학문 연구의 한계와 문제점
모든 사람은 색안경을 끼고 자신의 주위 세계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대로의 관점을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이 세계관이라는 것은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신앙고백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 연구의 장에서도 신앙고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욱 큰 문제는 사람이 죄로 인해 사단에게 장악되어 존재의 본질을 놓치고 세상에 대해서 왜곡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창조주보다 피조물들을 더 높은 자리에까지 올려다 놓는 세계관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학문을 연구하는 모든 곳에서 바로 이러한 우상 숭배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음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학문 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먼저 학문의 현장에서 사람을 포함한 세상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세계관을 분별해 내고 올바른 세계관을 회복해야 합니다.
학문의 역할
학문은 궁극적으로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들의 구조를 발견해 내고 그 의미를 밝혀서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입니다. 이러한 학문은 세상의 현상들을 생생하게 모두 보여주기보다는 그 현상들을 추상화한 지도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푸른 숲이나 굽이굽이 흐르는 강 혹은 절묘한 산악의 경관과 꼬불꼬불한 산길 등을 몇 가지의 색깔과 선으로 지도 위에 그리는 것처럼 학문은 복잡 다양한 현실을 간단히 구조화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학문은 지도와 마찬가지로 현실을 일대 일의 대응 관계로 모두 나타낼 수 없습니다. 각 개별 학문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것만을 구조화할 뿐입니다. 각 개별 학문에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덜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대한 판단은 그 개별 학문의 목적과 관계가 있습니다. 관광용으로 만든 지도는 관광 명소, 버스나 지하철의 노선, 음식점 등의 위치를 표시해 주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도시 재개발 계획을 위해 만든 지도는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것들보다는 변경 부분의 표시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학문은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
학문과 현실의 관계를 지도와 견주어 생각해 볼 때, 학문을 대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어떤 하나의 지도가 모든 지역의 여러 가지 측면을 한꺼번에 표시해 주지 못하는 것처럼 어떤 한 학문도 현실의 모든 측면을 총망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학문보다는 현실이 더 중요하고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학문하는 사람은 이론적 생각의 틀 속에 갇히지 아니하고 보다 생생하고 때로는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야 합니다.
둘째로, 언어를 통해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학문이 어느 정도 정확한가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이론은 이미 이루어진 다른 이론이나 판단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는데, 이전의 이론이나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론을 체계화하는 것은 오류가 있는 신앙고백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문 연구에 임하는 사람의 진실성과 성실성에 의해서도 학문의 정확성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학문은 현실을 간단히 구조화시킨다는 점에 있어서는 가치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한계점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