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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단3:13∼18)



크리스챤 가운데에는 두 종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자, 둘째는「그리 하시오면」의 신자입니다. 다시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그리 아니하여 주실 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섬기겠나이다 하는 신앙의 가치관을 가진 성도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실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건강을 주시고 모든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여주시고 복을 주시면 그 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나는 하나님을 잘 섬기겠나이다하는 조건부 신앙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에는 대표적인 유형의 두 사람이 있는데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대표적인 사람은 성경의 '욥'을 들 수 있습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고 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자녀 열 명이 모두 죽고 재산과 건강마저도 다 잃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욥'의 아내는「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뇨?.. 그래도 순전을 지키겠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한 '욥'의 대답은「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며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이다" 하는 성숙한 신앙입니다.

또 다른 조건부적인 신앙의 대표적인 사람은 '야곱'이라 하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지능이 뛰어나고 어떤 면에서는 간교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많아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맏아들 '에서'에게 "들에 나가 사냥을 하여 좋은 음식을 가져 오라! 그것을 내가 먹고 너에게 축복을 하겠다."하는 말을 야곱이 듣게 되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의 요청대로 사냥을 나갔지만 '야곱'과 어머니 '리브가'는 계략을 내어 양을 잡아 '에서'를 흉내내어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이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대신 받았습니다.
돌아온 '에서'는 심히 분노하였고 '야곱'은 살의에 가득 찬 형 '에서'를 떠나 멀리 도피하게 되었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해가 지자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고자하여 돌 베게를 베고 누워 잠을 자던 중 꿈속에서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았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과 또 본즉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야곱이 깨어나 하나님께 서원하여 말하기를 창(28:20)「..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그리 하시오면」의 신앙은 저급한 신앙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숙한 신앙 인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각종 애환과 질고 및 산업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 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한탄하고 원망하다가 종국에는 교회와 멀어지고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것을 다 거두어 가실지라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라고 송축하며, 오직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하나님만을 섬기겠나이다. 라고 한다면 이 얼마나 성숙한 성도의 신앙의 모습입니까?

오늘 본문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고 하는 소년들도 역시 "그리하지 아니하실 지라도"라고 하는 높은 신앙의 사람들이었던 점을 보게됩니다. 이 청년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청년들이었습니다.
어느 해에 느부갓네살왕이 아주 높은 금 신상을 만든 다음 모든 방백들과 백성들이 그 앞에 절을 하되 그러하지 않을 시에는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질 것이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절을 하지만 이 세 청년들은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왕의 귀에 들려 지게되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 앞에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전승국의 대 군주의 권위 앞에서 패전국의 연약한 소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 할 것이냐, 느부갓네살의 왕명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 청년은 보이는 권위 보다 보이지 않는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더 두려워하였던 믿음의 사람들이었기에 비록 소년일지라도 그들의 확고한 신앙에 따라 왕의 명을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이 세 청년들에게 다시 한번 위기모면의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본문 14절의「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하고 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세 청년의 의지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본문 16절 이하의 말씀에「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세 청년들은 느부갓네살의 권위 앞에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있어서도 오늘 본문의 세 청년과 같은 신앙의 관계가 정립되어 있어야합니다.
절대불변의 진리 앞에서는 어떠한 양보와 타협도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신앙의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세 청년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도저히 허용이 되지 않는 "그리하지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으십니까?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첫째 주안에서 절대적 가치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는 가치관이 흔들리는 시대입니다. 특별히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가치관이 흔들리는 세대입니다. 무언가 내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한 사상이나 진리, 그리고 가치관이 없다는 것이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세 청년들에게 있어서는 주안에서 절대적인 가치관이 있었습니다.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한 가치관, 일평생 지켜야할 절대적인 가치가 그들에게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세 청년은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서 1장에 보면 오늘 본문의 다니엘을 비롯한 세 청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의 식탁에서 왕과 함께 진미를 나누는 특별 대우의 지위를 얻게 됩니다.
왕의 식탁에서 진미를 맛보며 왕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그렇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창조적인 대화로서 왕을 설득하며 정중히 거절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의 율법에는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이 구별되어 있는데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인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양보하여야 할 것은 양보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아야 할 것은 쉽게 포기하는 잘못을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보게 됩니다.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성질과 기질을 누르지 못하고 우리 자신을 쏟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는가 하면 반대로 양보하지 않아야 할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인 신앙의 순결 문제에 대하여는 대단히 둔감한 성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세 청년들의 절대 적인 가치에 대한 불같은 신앙고백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이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둘째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단3:17)에는「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세 청년들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과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신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하는 신앙이 그들에게 분명히 있었습니다.
여러분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들과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가슴속에 있는지 깊이 생각하여 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그의 자녀 된 백성들을, 하나님은 반드시 건지신다고 믿는 견고한 신앙을 우리는 가져야한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나와 함께 하신다"라고 하는 확신과 신뢰를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후1:10)에「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 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며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며 우리의 생 가운데 복을 허락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질병으로 인하여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그 침상에서 아직도 나를 고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나의 삶 가운데 영원토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18절에 기록된바 세 청년의 믿음에서 더욱 위대한 신앙의 절정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말씀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 하리라하는 더욱 높은 차원의 신앙입니다.
신명기28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온갖 축복이나 약속들이 성도들의 삶 가운데 지금도 실현되는 것을 믿습니다.
(마6:33)에 보면「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빌4:19)의 말씀에도「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약속을 믿습니다.
여러분 그러나「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주를 믿고 순종하시겠습니까?
병을 고쳐주지 아니하실 지라도, 물질을 주지 아니하실 지라도, 나의 산업이 형통하지 아니할 지라도 "나는 하나님만을 섬기겠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성도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릴 자격이 있는 귀한 성도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합3:17∼18)「비록 무화가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소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백하였습니다.
요한 복음 6장에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슬픈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6:26)「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께서는 따르는 자들의 동기를 보시면서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영생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으로 따르는 저급한 동기를 보시고 예수님은 생명 떡에 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요6:50∼이하)「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 하시니라」이 설교를 예수님께서 하실 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다 흩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 침상에서 병으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이 병상 생활의 투병 중에서 내가 신앙을 잃지 아니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수 있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 나의 남편을 데려갔지만, 나의 자녀를 데려갔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제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마지막 음부의 권세를 이기시고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고통의 십자가를 져야만 하실 때 (마26:39)「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의 숭고한 정신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의 확고한 신앙, 결코 흔들릴 수 없는 신앙, 항상 평안을 누리고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신앙, 영원한 불사조와 같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권세와 복을 내려주십니다.
오늘 본문3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머리털 하나 타지 아니하도록 보호하여 주셨을 뿐 아니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여 주셨습니다.
(사43:2)「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세 청년에게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 속에서 보호하지 아니하셨더라도 아마 세 청년은 그 속에서 순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뻐 찬양하며 순교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봅니다.

여러분「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을 간직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를 믿었다고 하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나는 내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겠나이다하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귀한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