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시편 90장
10-12)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 누가 주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 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옵소서"
세계에서 제일 경제적인 부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민족인 미국
사람들이 두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원하고 있는 것은 생명, 건강, 장수에 관한 내용으로써 "나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미국 사람들만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휘지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현대 미국
삶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옛날 미국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고, 한국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기를 바라고 소원하며, 또 그렇게 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들도 봅니다. 진나라의 시 황제는 먹고
죽지 않는 불사약을 구하도록 선남 선녀 3000명을 뽑아 동방으로 보내어 약을 구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그가 얼마나 죽지
않고 오래 살기를 갈망했으면 그러한 생각을 해냈을까 무엇인가 느낌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한나라의 무제는 무병장수하기 위하여 새벽마다 아침
이슬을 받아먹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무병장수하기 위하여 아침 운동을 한다거나, 등산을 한다거나, 아침마다
약수터에 올라가 약수 물을 마신다거나, 많은 돈을 주고 생수를 마신다거나 녹용, 인산, 보약을 해마다, 철마다 다려 마신다거나, 몸에 좋다고
하면 무슨 음식, 무슨 생물이건 가리지 않고 보신이라는 이름 하에 돈에 관계없이 구해서 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도에 지나치지 않는다면
건강을 위해서, 오래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그릇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과연 "나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시편 90편 10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밝히셨습니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이 말씀은 모태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후 세상사는 동안 도중에 큰
사고 없이, 재난 없이, 큰 병 없이 살 수만 있다면 보통 자연적인 인생 수명이 70살이요, 맘보다 유전을 받고 태어난 건강 체질이 남보다
특출하고 건강 관리를 잘 했다면 인생수명 80이 천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80넘어 90을 사는 분도 계시고 100세가
훨씬 넘어 까지 사는 사람도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80넘어 그 이상을 산다 할지라도 어디 그런 육신으로 사는 게 사는 것입니까? 시력, 청력이
안 좋은 것은 물론 혀도 굳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손과 다리는 떨려 내 몸 하나 내가 간수하지 못하여, 자손이나 돌봐주는 사람 없이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육신, 여행도 할 수 없어서 온종일 집안에만 갇혀서 살아야 하고, 음식 맛도 제대로 알 수 없어 밥을 씹는 것인지, 흙을
씹는 것인지 모른다면 어찌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글을 쓸 수도 없고 누가 말해도 잘 알아들을 수
없으니 점점 대화하는 사람도 없어지고, 재롱떨던 손자들도 점점 멀리하고, 몸에선 냄새가 나고, 외모도 주름살 투성이, 윤기 없는 피부로
볼품없어지니 이런 보습으로 어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성경 말씀대로 인생이 그나마도 사람 노릇하며, 자기 몸 자기가 추수리며
사는 나이가 70, 80세 천수를 누리고 살았다 할지라도, 그 살아온 인생의 내용이 기쁘고 즐거운 일보다는 고생, 고난, 슬픈 일이 더 많다는
말씀이니 인생, 70. 80. 새를 살았어도 오래 장수했다고 자랑할 그럴듯한 내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70. 80세를 산 인생도 그 인생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인생은 빨리 빨리 속절없이 지나갑니다. 제 자신만 하더라도
지독한 냄새 나고, 파리 많은 피난민 촌에서 살던 어린 때, 5살, 6살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그런데 벌써 사십 중반을 넘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정말 꿈만 같습니다. 저만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아내와 함께 말하다보면, "그
일이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이야"하며 세월의 빠름에 놀라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시간은 빨리 지납니다. 성경 말씀대로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인생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에 대해 우리가 해야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남은 날들을 계수하는 일입니다. 왜 이 날들을 계수해야 합니까? 성경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의 남은 생애를 계산해 보기를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 그
일이 방정맞은 일 같고 부정타는(?)일 같고, 금방 무슨 일이 그 후에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계수 해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인생의 남은 날들을 계수 해 봐야
합니다. 인생의 날들은 한정 없이 샘솟듯이 계속 새로운 날들이 나와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산해 보겠습니다.
말씀대로 인생 년 수 칠십을 산다면, 햇수로 는 70년입니다. 월수로는 840개월입니다. 일수로는 25,550일입니다. 시간으로는 61만 3천
200시간입니다. 분으로는 3천 679만 2천 분입니다. 초로는 22억 752만 초입니다. 강건하여 인생 팔십을 산다면, 햇수로는 80년입니다.
월수로는 960개월입니다. 일수로는 29,200일입니다. 시간으로는 70만 800시간입니다. 분으로는 4천 2백 4만 8천 분입니다. 초로는
25억 2천 88만 초입니다. 만약 인생 30년을 이미 살았다면, 그리고 인생, 70까지 산다는 보장이주어졌다면 남은 햇수는 40년이요,
480개월이요, 14,600일입니다. 강건하여 80까지 산다는 보장이 주어졌다면 남은 햇수는 50년이요, 600개월이요, 18,250일입니다.
물론 70까지 산다는 보장, 80까지 산다는 보장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60년의 인생을 살아 오셨다면, 보통은 햇수 10년, 월수
120개월, 일수 3,650일, 시간 87,600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고, 강건하시다면 햇수 20년, 월수 240개월, 일수 7,300일, 시간
17만 5천 200시간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한참 일 할 인생의 황금기의 정점을 45세로 잡는 다면, 보통은 햇수 25년, 월수 300개월,
일수 9,125일, 시간 21만 9천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가 강건하다면 햇수 35년, 월수 420개월, 일수 12,775일, 시간 30만
6천 600시간, 남은 꼴이 됩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은 만 46세가 지난 지 3개월이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저의 인생 남은
날들을 계수 해보니, 년 수로는 좀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월수로 계산하고, 일수로 계산하니 실로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날수들은 신속히 지나갑니다. 인생 70을 산다면 그 꺾어지는 나이는 35세가 되고, 인생 80을 산다면
꺾어지는 나이는 40세입니다. 만약 이 글을 읽으시는 분 가운데 35세, 40세가 되셨거나 이미 넘으신 분이 계시다면 내 남은 날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절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자동차가 올라갈 때는 좀 힘이 들어 올라가는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그런데 정점에 다 올라와서 이제
내려가는 길어 들어서면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재빠르게 내려갑니다. 인생도 꼭 이렇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계속 어린이로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중, 고교시절에도 그랬습니다. 청년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35세 40세가 지나니까 시간이 이렇게 빠를 수가 없습니다. 금방 금방 한해가 지나갑니다. 봄인가 했더니 여름이고 여름인가 했더니 가을이 되고,
가을인가 하면 벌써 겨울이 되어 겨울옷을 꺼내어 입게 됩니다. 인생이 35세, 40세 꺾어지는 나이부터는 내리막길 인생입니다. 그 전보다
2-3배는 빨리 지나갑니다. 자동차는 너무 빠르게 내려가는가 싶으면 제동을 걸어 속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에는 시간의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제동장치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 날을 계수하면 지혜의 마음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를 얻습니다. 인생에
대한 지혜를 얻고, 삶에 대한 지혜를 얻습니다.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계수하면 어떤
깨달음을 갖게 됩니까?
인생을 계수하면 첫째, 인생은 심히 짧고 허무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의 남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 세상에서 살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70세, 80세까지 반드시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둘째, 인생은 끝이 있다는 사실을 피부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인생은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감있게 사실적으로 느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날수를 계산하면 인생의 최후의 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셋째, 지나간 세월동안 한일이 없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살아온 날들을 냉정하게
생각해 보게 하며, 평가하게 되고 그 속에서 앞으로 무엇인가 지난날들보다는 뜻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과 결심을 가지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잘못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넷째, 남은 인생을 지혜롭게 계획하여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인생을 계수한 후 남은 날수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곧 남은 인생의
시간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지금까지 미련하여 제대로 하지 못한 일들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입니다. 곧 인생의 시간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보람되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입니다. 다섯째, 죽음을 준비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인생의 남은 날들을 계수하니 당연히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됩니다. 죽음이라는 인생의 최후의 필연적 사건 앞에서 과연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죽음 준비입니다. 죽음 이후의
영혼에 관한 문제입니다. 영혼을 바로 준비해야겠다는 결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영혼의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가? 게으르고 악한 종의
모습인가? 아니면 충성된 종의 모습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섯째, 하나님 앞에서 더욱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정직하고 거짓없이 살다 하나님 만나야지" "욕심 없이 살다 하나님 만나야지" "죄 짓지 않고 살다 하나님 만나야지" "겸손하게 살다 하나님
만나야지" "선을 행하여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며 살다가 우리 하나님 만나야지" "자녀들에게 좋은 기억을 마음에 주고 하나님 만나야지 주님 일
충성스럽게 하다 주님 만나야지" 하는 결심을 부족한 인생이지만 가지게 됩니다.
일곱째, 오직 우리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나 자신을 의지 할 수 없지요, 70. 80밖에 살지 못하는 이 한없이 약한 인생을 어떻게 의지하여 살 수
있겠습니까? 나 자신을 의지 할 수 없는데, 그 누구를 의지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입니까? 친구입니까? 스승입니까? 자식입니까? 그들 모두
동일한 인생들인데요. 남는 분은 우리 하나님밖에는 의지할 분이 없습니다.
마지막을 최후의 순간까지 하나님의 영광 위해 일하다
하나님께로 가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짧은 인생, 허무한 인생, 이 세상 인생 나 자신의 모든 가치, 의미는 아니므로 하나님께 모든
가치와 두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하나님 일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때가 되어 육신의 생명이 진하게 되면 하나님께로 가겠다는
결심입니다.
한 예화집에서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16세기에 살았던 하 저명한 학자였고, 그리스도인이었던 필립 디
네리(Phillip de Neri)씨가 당시 구라파 최고의 명문 대학이었던 컨티넨탈 대학 교정을 걷던 중 한 젊은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 청년은
그 대학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법률을 전공하던 법학도였습니다. 네리 씨는 그 학생에게 질문하였습니다. "대학공부를 다 마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더 공부해서 다 박사 학위를 얻겠습니다." "그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변호사가 되어 어려운 문제를 수임 받아 멋지게
처리하여 뭇 사람의 관심과 명성을 얻겠습니다." "그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돈을 많이 벌어 드디어 부자가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명성과 재물을 얻었으니 이제는 결혼해서 평안히 장식들을 가르치며 행복하게 살게 되겠지요"
"그 다음엔?" "아마 늙어 죽게 되겠지요" "그 다음엔" 청년은 이 질문에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그만 고개를 떨구고 당황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년 수는 실로 짧고 신속히 날아가 버립니다. 우리 인생의 남은 년 수는 더욱 짧습니다. 짧은
남은 인생 정신없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맥놓고 살아서도 안됩니다. 흥청망청 되는대로 살아서도 안됩니다. 세상 쾌락과 죄악 속에서 흐느적거리며
살아서도 안됩니다. 천년 만년 내 인생이 오래오래 남은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서도 안됩니다. 우리 인생은 하늘 끝까지, 저 바다 건너 이 땅
끝까지 길게 남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날 계수하며 조심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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