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사랑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은 미국에서 발생한 천인공노할 자살 테러사건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이럴 수가”를 연발하며 차라리 악몽이길 바랬지만 바로 현실이었습니다. 선량한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부상자들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9월 설교 주제는 사랑입니다. 오늘은 자기를 사랑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면 언제나 하나님 사랑 또는 이웃사랑 그리고 자연 사랑을 생각합니다. 만약 자기를 사랑하라고 하면 좀 어색할 뿐 아니라 죄를 짓는 것 같이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자기를 사랑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큰 죄로 생각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신령하고 거룩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대중기도를 할 때 많이 사용한 언어가 “벌레만도 못하고 티끌만도 못한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벌레만도 못하고 티끌만도 못한 인간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최고의 존재 피조물의 왕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극도의 이기주의(利己主義)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도 이웃도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기독교인이 철저히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자기를 소중히 여겨야 하고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압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데서 오는 폐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오늘날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고 자기를 경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직폭력배나 테러집단들은 자기의 정체성이 없고 자기를 함부로 합니다. 하나의 조직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얼마나 무서운 비극이 발생합니까? 그래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자해 행위를 하고 더 나아가 남을 해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과 인격을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각종 죄짓는 일에 앞장서고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때문에 자기를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자존심을 갖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합니다. 그러면 왜 자기를 사랑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창조적인 면에서 우리는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즉 하나님의 걸작품 중에도 걸작품입니다. 그렇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창세기 1:27에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창 1:26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만들어진 가장 존귀한 피조물의 왕관입니다. 서로 인사합시다. 성도님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내가 얼마나 고귀하고 개성있는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제부터 거울을 보실 때 참으로 잘생겼다. 최고의 걸작품이다라고 생각하고 고백하세요. 절대로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어? 내 코는 왜 이래, 내 피부는 왜 이래, 내 머리는 왜 이렇게 숫이 없어 하면서 짜증 부리고 열등감 갖지 마시고 이래봐도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하나님의 작품이다라고 믿고 감사하고 개성있는 생활을 하십시오,
예화: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하와이 섬에 가면 수도 호놀루루에 세계적인 동물원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각양 각색의 동물들이 있는데 하루종일 구경하고 마지막 코스에 다녀오는 데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러한 영문으로된 문구가 써있습니다. “The greatest animal in the world" 즉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호기심을 가지고 그 코스를 다녀오는데 다녀오는 사람마다 빙그레 웃으며 나옵니다. 과연 거기에 어떤 동물이 들어있을까? 호기심에서 들어가보면 동물은 없고 크고 잘 보이는 거울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는 자기 얼굴만 비칩니다. 즉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걸작품이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여러분은 예수님이 피 값으로 사신 예수님의 지체요 신부입니다.
요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했고 롬 5:8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실 만큼 고귀하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이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장차 예수님의 신부가 될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마 25장의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과 고후 11:2 말씀에 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실 신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삼가 조심하고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지체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된 지체라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함부로 몸을 해쳐도 안되고 무시해도 안됩니다.
셋째 여러분은 거룩한 성령의 전(殿)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고전 3:16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니 못하느뇨...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전입니다. 전이란 말은 집이라는 뜻입니다. 집도 누가 사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벧전 2:9에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체와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시시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이전의 내가 아닙니다. 가장 존귀하고 거룩한 존재입니다. 자신을 비하하거나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스스로 무시하지 마세요 이제부터 자기를 사랑하세요.
가끔 사극을 보면 임금이 거하는 궁전에서 일하는 지체로 보면 보잘 것 없는 여인들 중에 상감의 마음에 들어 임신을 하게 되면 임금의 애를 가졌다 하여 금방 지체와 신분이 달라지고 존귀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신을 사랑할까요? 사랑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자기인정(Self-recognition)입니다. 즉 자기 정체성(identity)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바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바로 인식하고 사는 것은 모든 면에서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동물 식물 곤충 심지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Virus를 연구하여 박사가 되고 세계적인 인물이 되면서도 자기에 대하여는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학 과학 철학 물질에 대하여는 일생을 바쳐 연구하고 노력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하여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고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입니다. 때문에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둘째, 자기용서(Self-forgiveness)입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용서와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우리 자신도 자기를 용서해야 합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 나의 실수, 나의 약점을 하나님은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얼룩진 과거의 나, 실수 투성이인 나를 하나님은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불쾌한 과거를 용서해야 합니다.
때문에 사 43:18에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으며, 고후 5:17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시 103:12에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셋째, 자기용납(Self -acceptence)입니다.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교만한 것도 잘 못이고, 반대로 자기를 미워하고 무시하는 열등감도 금물입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찬송가 349장의 가사에 보면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Take me as I am)라고 찬송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도 자기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작구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탈렌트나 영화배우 흉내내려고 하지말고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남을 부러워하거나 흉내낼 필요가 없습니다. 흑인은 흑인대로 백인은 백인대로 황인은 황인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넷째, 자기존중(Self-esteem)입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자아존중은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필수적입니다. 자기존중의 반대는 자기학대 또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자존감을 갖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이 남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자기 자화상(Self-portrait, Self-imagination)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의 자기의 자화상대로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신경쓰지 말고 먼저 자기 자신의 분명한 자화상을 그려야 합니다. 확립해야 합니다. 성경에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한 말씀과 같이 “네 자화상대로 될지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은 자기의 자화상을 가지고 성공했습니다. 요샙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이나 운명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자기 자신의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야 성공합니다. 괜히 남의 인생 살아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남의 장단에 춤추면 무엇합니까?
첫째, 축복의 자화상을 가지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이 보장 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같고 그렇게 고백하고 믿고 행동하십시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나는 지질이도 복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운명적으로 복을 받지 못할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그런 자화상을 가지고 살면 그는 일생을 그렇게 살고 맙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고향집을 떠날 때 75세였는데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알”과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축복의 자화상을 가지고 산 결과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손자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성공의 자화상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실패르 ■보장 한 것이 아니고 성공을 보장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라 당을 다스리라”고 이미 성공과 번영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성공과 번영의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 North Western 대학의 W.D. Scott박사는 말하길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언제나 성공의 자화상을 그린 사람들이 세계를 움직였습니다.
세계의 명물이 된 San Francisco의 금문교나 1914년에 완공된 바다속을 관통하는 93km의 파나마 운하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나 성공의 자화상을 가진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덴막크는 달가스라는 애국자의 성공과 번영의 자화상을 통하여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총의 자화상을 가지십이오. 여러분이나 저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은혜와 복을 보장받은 사람들입니다. 시시하게 믿지 마십시오 시시하게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과연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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