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내게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소서(대상4:9-10)
새 천년의 해가 밝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 천년이 첫 태양을 보기 위해 해돋이 장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유능한 미래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21세기의 미래는 쉽게 낙관만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20세기에 저질러 놓은 인류의 잘못들로 인하여 많은 재앙이 뒤따를 것이며, 식량
고갈, 수자원 부족, 핵 위험, 정보화 시대의 인간성 상실은 계속해서 인류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새로운 기초 위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의 첫 번째 맞이하는 주일 아침,
하나님께서 우리 송악교회에 큰 꿈과 비전을 허락하여 주셔서 가슴 벅찬 감격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믿습니다. 우리는
매년 1년간 기도하면서 활동할 커다란 주제를 정하고 그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였습니다. 지난 1999년에는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성회를 선고하라"는 요엘 선지자의 메시지를 주제로 정하여 나라와 민족, 그리고 지역 사회와 다음 세대를 깨우는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저의 마음에 더 넓고 풍성한 축복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주시고 "주께서 내게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소서"라는 말씀으로 2000년의 주제를 정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한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시는 2000년의 비전을
다 함께 힘차게 외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소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유다 족속의
족보에 나타난 [야베스]라고 하는 인물에 대한 소개입니다. 성경은 그가 누구의 아들인지, 몇 해를 살았는지, 심지어는 그의 자손이 누구인지조차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베스]는 유다의 자손의 족보에서 가장 존귀한 자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른 많은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로 기록된 [야베스]의 신앙, 도대체 그가 존귀한 자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에 우리의 2000년의 비전이 숨어
있습니다.
1. [야베스]는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9절을
읽어봅시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라는 이름은 고통, 슬픔, 불행한 사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그의 어머니가 지어주었다고 한 것을
보아 편모슬하에서 자랐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판단하기는 그에게 질병이 있던지, 아니면 가난한 환경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다른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100%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야베스]에게는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10절을 이어서 보면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은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분, 광야 40년간 이스라엘을 먹이시고 입히신 분,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그 하나님을 진실로 의뢰하고 신뢰하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그를 존귀한 자가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야베스는 어떤 환경가운데서도 자신의 영적 자존심을 지키고 살았던 것입니다. 야베스의 영적
자존심이 그를 존귀한 자로 만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읽다가 발견한 한 토막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농부가 어린 독수리
새끼를 잡아서 집에서 키우게 되었습니다. 뒷마당에 있는 닭장 안에 가두어 두고 날마다 먹이를 주면서 돌보고 있었는데 그 독수리 새끼는 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거지가 닭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땅만 쳐다보며 돌아다니는가 하면 무엇인가를 쪼아먹는 시늉을
하면서 닭들 사이에서 노는 것입니다. 어느 날, 지방에서 목장을 경영하는 친구가 그 집을 방문하여 닭들 틈에서 자라고 있는 독수리를 발견하고는
진짜 독수리라면 저럴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주인과 의논한 후에 한번 시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은 독수리를 가지고 뒷산으로 올라가 큰
바위에 내려놓았습니다. 푸른 하늘과 확 트인 광활한 들판을 얼마 동안 쳐다보던 독수리는 거침없이 날개짓을 하면서 날아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새는 독수리이지 닭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문화와
상대적인 가치관이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자존심이 남아 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자존심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는가? 행여나 닭의 행세를 하며
사는 독수리는 아닌가? 아주 조심스럽게, 아니 아주 정직하게 대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에서]는 잠깐 동안의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고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이후에도 언제나 상처받은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장자의 명분을
생명처럼 여기고 그것을 얻기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가 취한 방법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구별된 이름에 대하여 얼마만큼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존심의 상처를 받으면
큰 병에 들게 됩니다. 자존심이란 자기 수용, 자기 인정, 자기 존중의 태도인데 자존심이 상처를 입으면 커다란 분노가 일어나는데, 그 분노가
밖으로 터지면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자기 내부로 향하면 불면증, 우울증, 의욕상실, 죄책감 등의 증세를 유발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자존심은 아주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 자존심을 지키는데 많은 손해가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작정한 성도는 자기 자신을 세상 사람과 차별화 시키는 엄숙한 결단을 하기를 주님은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계십니다. 나아가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세상 가운데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야베스]가 모질고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적 자존심을 굳게
붙잡고 삶으로 존귀한 자가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거룩한 자존심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값비싼 희생을 통해 구원받은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고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는 거룩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그것을 온전히 붙잡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들을 주어먹기 위해 우리가 가진 이 엄청난 영적 자존심을 구기지 않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반드시 밝게 될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도 존귀한 자로 부름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야베스]는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10절 상 반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데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한
제목은 "나에게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소서,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라는 이 두 가지로 아주 평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기도 속에 자신의 꿈을 담고 있었습니다. 야베스는 슬픔의 사람, 불행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그의 꿈은 누구보다도 크고
그의 시야는 누구보다도 넓었습니다. 비록 삶이 환경은 어려웠지만 그는 구체적인 꿈과 비전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세계는 절대로 시시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현재의 삶에 얽매여 아옹다옹하며 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눈앞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담이 막혀 더 높고 넓은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기쁨이 없을 뿐만 아니라 평화도 희망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구체적인 꿈을 품을 수 있기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꿈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붙잡은 사람들은 아무리 현실의 달콤한 유혹이 있어도, 또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 닥쳐와도 그것을 넉넉히 견디고 이깁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미래를 꿈꾸었기에 자신의 사랑하던 고향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광야에서 잠자다가 꾼 꿈에 붙잡혀서 외삼촌
밑에서의 20년간 종살이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이 너무 강렬하였기에 핍박과 유혹과 모함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대한 민족의 비전을 붙잡은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불평하는 백성들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새벽 기도시간에 우리는
사무엘상을 묵상하고 있는데,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자신을 따르는 600명의 사람들과 함께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며 민족의
새벽을 깨우는 자가 되리라는 꿈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세 번의 기회를 모두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인내하며 기다린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처럼 꿈이 있는 사람의 삶은 힘과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등장하는 갈매기 조나단은 지저분한 부두의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삶을 떠나 더 높고 넓은 세계로의 비상을 위해 높이
나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도 함께 높이 비상하자고 꿈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많은 동료들은 떠나갔지만 결국
조나단은 높이 날아 원대한 희망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사실을 그는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꿈을 크게 같고
시야를 먼 곳에 두어야 큰 일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만을 탓하는 사람은
인생의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꿈을 이루는 축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꿈을 가진 백성들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미래가 넓고 풍성하게 열리리라는 희망을 갖고 인내할 수 있다면 우리의
2000년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야베스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품고 기도하는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10절 하 반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랫더니 하나님은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체적인 꿈을 품으시기를 사모하십시오. 나아가서 그 꿈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도록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꿈을
품고만 있다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공부해야 할 일이라면 머리 싸매고 공부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밤새워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은 줄로 믿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시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들을
만나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들의 요구와 간구를 들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꿈을 품는 만큼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역사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만큼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만큼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된 만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0년이 시작되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어려워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로 실망하지 않는 한가지 비밀, 2000년의 희망을
다질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 앞에서 아주 존귀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값비싼 희생을 통해 구원받은 백성들로서 세상의 부스러기들을 주어먹기 위해 우리가 가진 이 엄청난 영적 자존심을
구기지 않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반드시 밝게 될 것입니다. 2000년의 또 하나의 비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꿈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미래가 넓고 풍성하게 열리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산다면 우리의 2000년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하는 것을 들으신다는 확신이 있기에 이제 우리가 2000년의 첫 주일에 가진 꿈들이 구체화되고 현실화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우리의 2000년은 행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