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괴롭고 외로울 때(사무엘상 1:9-20)
오래 전 미국의 '해리 로더'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공연 도중 군대에 가 있는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슬픔을 억누르며 약속된 모든 공연을 마치고 아들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전선의 야전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아들은 죽었지만 살아 있는 조국의 아들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공연을 자청 전선의 무대에서 군인들에게 노래를 선사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이겨나갔던 것입니다. 얼마 후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고난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고난을 맞는 인간의 태도는 세 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비관함으로써 좌절하든지, 술을 계속 마시면서 파멸을 당하든지, 하나님께 슬픔을 가져가든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슬픔을 하나님께 가져가 맡김으로써 위로와 힘을 얻었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아픔이 없고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닥치는 염려와 고민들, 쌓여 가는 사소한 문제들, 속에 근심
밖에 걱정들이 우리의 삶을 지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나라고 하는 여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에브라임의 부유하고 경건한 집안의 아내로서
남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유복한 여인이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하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여자로서
그 어떤 문제보다도 큰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인생들은 한나와 똑같은 문제는 아닐지라도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이렇게 많은 문제들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어떤 자세를 취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괴로우면 기도하라 먼저, 10절을 읽겠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한나는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남편과 그를 괴롭히는 브닌나를 뒤에 두고 하나님의
성소에 올라가 울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외롭고 슬플 때, 우리는 한나처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0:1-2)"라고 고백했던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인생의 모든 아픔과 슬픔과 고통과 시험을 이기기 위해 우리는 모든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대부분이 우리와 똑같이 인생의 문제와 약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본래부터 특별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약점과 문제들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기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 중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약점과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성품이 남자답지 못했습니다. 그의 형인 에서가 들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동안 야곱은 리브가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마마보이'였습니다. 야곱은 야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머리가 빨랐습니다. 계산에 빨랐습니다. 필요하면
사기도 쳤고, 도둑질도 했고, 거짓말도 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야곱은 사기꾼의 기질이 있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이스라엘의 역사의 핵심인물이 된 배경에는 바로 자신의 약점과 문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항상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던 습관을 가졌습니다. 에서와 달리 야곱은 항상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20년간 산전수전을 겪었던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가던 중 얍복강
나루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는 그를 죽이려고 복수의 칼을 갈며 에서가 기다린다고 하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진퇴양난의 위기의 상황에서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창32:9-). 천사와 격렬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야곱은 천사에 의해서 환도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를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얍복이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자신을 비운다' '털어놓는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약점과 실수와 문제의 찌꺼기들을 다 쏟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으로 가게하지 않겠나이다"라고 간절히 매어 달리면서 자기 중심의 인생에서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맡김으로 그의 인생은 축복의 인생이 된 것입니다. 에스더는 민족적인 위기를 당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3일간 금식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김으로 하나님께서 위기를 역전시켜 축복으로 바꾸어주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에게 닥친 문제가
무엇입니까? 어떤 고민이 있습니까? 어떤 아픔이 있습니까? 한나처럼 야곱처럼, 에스더처럼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평안과 위로와
해결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서원을 드려라 11절입니다.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 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를 낳게 되면 그로 하여금 일생토록 나실인으로 드려 하나님을 섬기며
살도록 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본래 서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 자신의 모든 의지를 드려
헌신할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원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서원기도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서원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는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삶과 의지를
순종하겠다는 헌신의 다짐입니다. 우리가 질병에 걸려서 기도할 때나, 혹은 경제적인 문제를 위해서 기도할 때나,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때 등,
어떤 모양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던지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고 기도하는 것이
진실한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서원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에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한나는 하나님께 "나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나의 여종을 잊지 말아주소서"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여러 기도가 나오는데, 그중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얼굴빛을
내게 비추사' 즉, 하나님이 다른 것을 보고 있다가 이쪽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그 얼굴을 돌려서 나를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아보지 아니하시면 세상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위로 받을 수 없는 이 절박하고 답답한 상황을 간절히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한나가 무엇이라고
서원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쳐서 거룩히 구별하여 일생동안 하나님만을 위해 살도록 하겠다고 기도합니다.
기껏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해 놓고서 그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바치겠다니 잘못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한나의 마음 가운데에는
아들을 낳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얼마나 사무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한이 있어도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러한 간절함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한나는 이렇게 서원의 방법을 통해서 자신이 처한 고통과 아픔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된 것입니다.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반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끈 주전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렸던 오석재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이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할 당시 최다득점을 기록했으며, 차범근, 김재한, 허정무
등에 이은 한국 축구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를 마치고 귀국한 어느 날, 그는 갑자기 허리가 삐끗한 느낌을 받았고,
이후 수술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디스크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축구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던 오석재는 한순간에 인생의
어두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깊은 절망감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제 허리를 고쳐 주시면 당신을 위한 삶을
살겠습니다." 그는 기도원에 들어가 16일 동안 일사각오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는 치유함을 받았고 그 이후
허리 디스크는 전혀 재발하지 않았다. 응답을 받은 오석재는 자신의 서원을 지키기 위해 1983년 할렐루야 축구단에 입단했고, 골을 넣을 때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전했으며 전국 교회를 돌면서 간증했습니다. 1989년 은퇴한 그는 인도네시아의 임마누엘 대학에서 축구 클리닉을
열면서 선교활동을 펼쳤으며, 1993년 귀국, 할렐루야 팀의 코치로 3년 간 사역한 오 선교사는 98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유수한 미국의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 스포츠 클리닉과 캠프를 열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많은 문제들과 실패가운데서도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나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절함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심정을
통하라 15절을 보겠습니다.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아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한나가 처음에는 통곡하면서 기도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운이 빠져 이제는 울 여력도 없어 입술만 달싹거리면서
묵상으로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저쪽 문간에서 보니 한 여자가 기도하는데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에게 다가와서 당신
술 취한 것 같은데 나중에 술이 깬 다음에 다시 와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한나를 술 취한 여인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의 한을 못 알아줄망정 간절히 기도하는 그 모습을 보고 술 주정꾼으로 모니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이처럼 사람은 인간 깊은 내면의 아픔을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절망을 더해줄 뿐입니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으로 매일같이 구걸하며 삶을 연명하던 바디메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경험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이나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답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디메오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온갖 기적과 이적을 행하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가슴 설레는 것은 그 예수가 자신이 구걸하며 살고 있는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소식이 왔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바디메오는 있는 힘껏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쳐대며 자신의 위치를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며 그를 꾸짖었습니다. 그들은 바디메오의 아픔이나 고통에는 무관심했습니다. 바디메오 같은 사람들에게 먼저
예수님을 만나도록 배려하는 인간성은 하나도 찾을 수 없습니다. 남의 아픔 따위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셨습니다(막10:46-). 불의한 재판관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던 여인을 기억하십니까? 불의한 재판관에게 그 여인의
아픔 따위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슬픔을 이해 할 리도 만무합니다. 그러나 그의 반복되는 간절한 간구는 재판관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만일 바디메오가 사람들의 꾸짖음을 듣고 실망하고 잠잠했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억울한 일을 당한 여인이 재판관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절망했다면 해결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많은 방해 자들이 있습니다. 기도만 하려고
하면 잘 자던 애도 깨서 보채고, 기도 좀 하려고 하면 일이 터집니다. 또 기도를 못하도록 핍박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데, 남편이 기도를 못하게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럴 때, 얼마나 답답합니까? 속이 얼마나 상합니까? 그러나 그런 것 때문에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무리 바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더욱 간절히 그리고 뜨겁게 마음을 다하여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끝장을 볼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여호와께 자신의 심정을 다 내어놓았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다 쏟아놓았습니다. 하나도 숨기는 것이 없이,
하나도 남겨 놓은 것이 없이 몽땅 다 하나님께 내어놓았습니다. 완전히 빈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응답 받는 기도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다 쏟아 놓는 것입니다. 하나도 숨김없이 남김없이 다 털어놓는 것입니다. 적당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다 쏟아 놓고 빈 마음이 되면 우리의 영혼이 순수해지고 맑아지게 됩니다. 영혼이 순수하고 맑아지면 영이신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면 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면 미사려구를 써서 화려하게 수놓은 기도를 드리지 않아도
금방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들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척척
해결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와 심정이 통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 마음을 잘 알지 못하고 나를 오해하고, 내 기도를 핍박하고,
조롱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고통도 해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진실한 기도를 하길 원하십니까? 마음을 쏟아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많은 걸림돌과 핍박과 유혹이 있을지라도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말고, 마음을 완전히 비워서 쏟아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순수하여 져서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면 다른 모든 것은 만사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한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 17절과 18절을 읽습니다.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한나의 말을 듣고 오해를 푼 엘리는 한나를 축복하며 보냅니다. 엘리의 축복을 받은 한나는 자신이 기도한
문제를 가지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습니다. 엘리의 말을 들은 한나는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어떠한 실제적인 증거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자신의 아픔과 절망과 슬픔이 이제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졌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집으로 돌아간 한나는 슬픈 기색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마음상하고 싸우는 일들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한나가
가르쳐준 기도의 대 명제는 '기도한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도란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주께서 너희를 권고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맡겨 버리라는 말은 던져버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나는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분명히 응답하실 것이며 그 응답이 무엇이든지 가장 선하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한나는
기도한 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을 기억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쏟아 놓고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에, 19절
하반 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한나를 생각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절에서 간절히 자신의 아픔과 슬픔의 처지를 생각해달라고 간구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드디어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한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 해에 임신을 하게 되고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한나는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 앞에 구했더니,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한나의 간증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은 간증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얻은 아들,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 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사사로서 일하는 동안에 놀라운 영적인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여인이 마음을 쏟아 놓고 기도했을 때에, 그 여인의 기도를 응답했을 뿐 아니라, 그
여인의 기도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약점과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근심거리, 슬픔거리, 절망거리를 하나님께 맡기면 축복이 되고, 기쁨이 되며,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나와 같이 마음이 괴롭고 아픈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호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