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imr.co.kr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룻기 3:14~18)

오늘 세상에는 상식을 뒤엎는 일이 너무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다 아시죠?
여름 내내 베짱이는 놀기만 하다가 겨울에 굶게 되고,
열심히 일한 개미는 추운 겨울에 따뜻한 방안에서 잘 지낸다...
그러므로 개미처럼 열심히 근면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솝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현대판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이렇게 바뀝니다.
개미는 여름 내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일을 해서 신경통, 관절염, 허리디스크에다 영양실조까지 걸려서
겨울 내내 병원 다니느라 추운 날씨에 고생만 많이 했습니다.
반면에 여름 내내 기타 치고, 노래만 부르며 놀던 베짱이는
가을에 어떻게 해서 음반하나 냈는데,
그만 그것이 히트를 쳐서 떵떵 거리며 살고, 유명 인사가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상식을 뒤엎는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그런 이야기가 오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 굉장히 쉬운 것 같고,
머리만 잘 쓰면 잘 사는 길이 널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정말 살아 본 분들은 산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계속해서 룻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 가를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룻의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룻은 오늘도 계속하여 성공적인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걸 배웁시다.
먼저 3장 10절을 보세요. 보아스가 룻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룻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몸가짐을 바로 했다는 얘기입니다.

룻은 대상을 확실하게 정했습니다. 나오미도 그랬습니다.
보아스라는 한 사람을 정하고, 그리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함부로 기대를 걸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 판단하고, 쉽게 부자가 되거나 성공할 수 있는 이 방법, 저 방법을
따라하지 않고,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매일 열심히 이삭을 줍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그것을 그 동안 보아스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인생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가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남들이 한 순간 일확천금을 터트리며 멋지게 성공하며 살더라도, 전혀 흔들림 없이
나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면서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은 인생의 새로운 기회를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라고 했습니다.
빚으로 넘어간 재산을 도로 찾아 줄 수 있는 친척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기업 무를 자이심을 믿습니까?
그 분이 내 인생을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나의 영적 가난함에서 부요케 하실 유력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참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음을 알고,
오직 예수님이라는 확실한 대상을 정하고, 거기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내 놓을 때, 새로운 인생은 시작될 것입니다.

9절에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즉, 룻 자신을) 덮으소서" 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인생을 책임져 주소서" 라는 뜻입니다.
사실 보아스에게는 거기까지는 책임질 일이 없습니다.
단순히 빚으로 넘어 간 재산을 찾아 주면 될 뿐이지,
그 사람 인생 자체까지 책임지고 돌보아야 할 의무가 없는 것입니다.
일회성 구제사업이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데,
그 사람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면 누가 선뜻 나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은 // "다 이루었다" 입니다.
"영수증에 사인했다. 빚을 다 갚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 놓으시면서
우리의 생명을 살려 주셨고, 우리를 책임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모두가 자기 살길만을 찾고 쓰러져 있는 나를 외면한다 할지라도
내 삶 전체를 맡아 주십시오 라고 나를 맡길 수 있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새벽이 되었습니다.
룻은 그 때까지 보아스가 제공한 옷자락을 덮고, 안전하게 보아스와 함께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밤중에 돌아가면 위험하다면서
계속 자기가 있는 곳에 머물도록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집에서는
며느리를 그렇게 보내 놓고 시어머니 나오미가 밤을 새우고 있었습니다.
그 긴 밤을 나오미는 분명 기도하며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새벽이 밝아 왔을 때,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 저예요..." 문을 두드리는 룻의 목소리는 밝고 쾌활했습니다.
문을 급히 열고 며느리를 맞이한 나오미는 다짜고짜 묻습니다.
"그래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런데 이 질문을 원어로 정확하게 풀어 쓰면
"Who are you?, 즉 너는 누구냐" 라는 질문입니다.

아니 며느리를 몰라보아서 "당신은 누구요" 라고 묻습니까?
이 말은 아주 직설적인 질문입니다. "너 여전히 과부로 돌아 온 거냐,
아니면 결혼할 신부의 자격을 얻은 여자로 온 거냐" 라는 질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예배를 마치고 나서 밖으로 나가실 때,
성령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너 누구냐?"

그 질문을 한 번도 들으신 적 없다구요?
있었을 거예요. 교회 밖에서 당장 화나게 만드는 일을 만났거나,
기분 나빠질 일을 만났거나 등등, 그 밖의 많은 일들, 사람들을 만나게 하셔서
너 정말 예배를 잘 드려서, 네가 누구인지 알았는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았는지 한 번 알아보아야겠구나 라고 성령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치고 피곤해 하고, 힘들어하고 외로워 할 때,
그 때도 "너는 누구냐" 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인생의 패배자의 모습으로서의 나입니까?
아니면 새로운 인생을 약속 받은 룻과 같은 소망의 사람으로서의 나입니까?

룻의 손에 보퉁이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 보퉁이에는 보아스가 싸준 보리가 들어 있습니다.
보아스가 시어머니에게 드리라면서 룻의 겉 옷 자락에 싸 주었던 보리입니다.
그 보리의 양이 정확히 얼마큼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보리는
보아스가 나오미에게 미래의 장모님댁에 보내는 일종의 예물이었다는데 있습니다.

17절에 "빈손" 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보리를 싸 주면서 기특하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빈손으로 당신의 시어머니께 돌아가지 마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룻의 손에 보리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빈손으로 룻이 돌아가서,
그 모습을 보면서 시어머니가 마음 아파서는 안되겠다는 의미입니다.

보리를 들고 가는 사람은 룻입니다. 룻의 손이 빈손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작 그 룻을 보면서 채워지고, 넘쳐난 사람은 바로 나오미였습니다.
일전에 나오미가 고향에 돌아 왔을 때, 동네 사람들 앞에서
"여호와께서 나를 치셔서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라고 울먹였던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나오미의 빈손에 희망과 소망을 가득 들려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 손에 직접 들려진 보리 보통이는 아니지만,
내 형제가, 내 자매가 들고 온 그 보리 보통이를 보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비워진 내 인생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느끼시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정말 복된 성도입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 편에 보내온 보리를 손에 건네 받고서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인생이 불공평한 것 같고, 산다는게 다 부질없는 일인 것 같더니
그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분명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나오미가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사람이 변하더니 계속 중요한 말만 합니다.

18절입니다.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않으리라..."

가만히 앉아 있으라를 두 글자로 줄이면요? ... 잠잠 입니다.
성급하게 자랑하러 다닐 일도 아니고, 또 자기 딴에는
더 잘되게 한다고 여기 저기 일 벌려 놓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가 일을 다 이루기 전까지 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다 알아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그걸 알았습니다. 며느리가 가져온 보리 몇 되박을 보고서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계십니다.
초라한 보리 보퉁이를 든 한 형제, 한 자매를 보내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 너는 믿음을 가지고 잠잠히 내가 하는 일을 보아라" 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메시지를 깨닫고 잠잠히 주님을 기다리십시다.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신 그 일을 이루시기까지 기다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