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골 골짜기 (여호수아 7:16-26)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정복에 실패하자 하나님 앞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즉시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통회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전리품을 숨겨 두었으니 그것을 찾아 멸하지 않으면 다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리라고 엄히 경고하였습니다.
드디어 아이 성 정복에 실패한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불러
놓고 제비를 뽑게 했습니다. 그 결과 유다 지파 사람인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히게 되었습니다. 아간은 여호수아
앞에서 자신의 모든 죄악을 숨김없이 고백하였습니다. 결국 아간과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돌에 맞아 죽고 숨겨두었던 전리품들은 불에
태워버렸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있는 죄악을 제거하자 하나님께서는 극렬한 진노를 멈추셨습니다. 사람들은 아간이 심판을 받은
돌무더기를 아골 골짜기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골짜기의 돌무더기는 오늘까지 남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주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고통의 돌무더기, 파멸의 돌무더기 아골 골짜기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죄는 반드시 드러나게 됩니다. 16절에서 18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여호수아는 제비 뽑힌 아간을 불러 하나님 앞에서 모든 범죄한 사실을 숨기지 말고 자백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아간은 자신의 모든 범죄 사실을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자복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간은 홀로 숨어서 행한 일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그의 행동을 지켜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간은 남 몰래 숨어서 죄를 짓고 그 사실을
완벽하게 숨기고 있었지만 결국 며칠이 못되어 그의 죄악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간의 모든 행위를 모두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는 다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한 후에 그의 죄를 숨기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최전방에 내어보내 전사하게 합니다. 이제 다윗은 모든 죄를 감추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나단 선지지가 올 때까지 다윗은
자신의 모든 죄악이 완벽하게 숨겨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죄악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모든 행위를 다 보고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시편 69:5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내 죄가 주의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히브리서 4:13에도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마태복음 10:26절에서는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죄는 숨김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심령을 피폐해지기만 하는
것입니다. 괴로움만 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32:3-4에 보면 다윗은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라고 죄를 숨기려 하면서 당했던 고통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행과 공로 사상을 주장합니다. 공로 사상은 대충 이런 것입니다. 내가 40의
죄를 지었는데 60의 공로를 쌓으면 20정도가 남을 것이다. 그러니 남은 20의 공로로 내가 천국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공로 사상이 가장 잘 정립된 사상이 불교입니다. 인간의 업보를 고행과 공로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몇 해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철 스님이 있습니다. 그분은 결혼 직후 처자식을 버리고 집을 떠나서 산 속에 들어가서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부모가 찾아와도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만나지를 않았습니다. 기거하는 곳에 철조망을 쳐 놓고 십 년 동안 사람들과의 일체 만남을 끊고 살았습니다. 십 육 년 동안 솔잎가루와
쌀가루만 먹고살았습니다. 팔 년 동안 눕지 않고 앉아서 잤다고 합니다. 엄청난 고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 남긴
열반송이라는 게 있습니다. "나는 평생 무수한 사람을 속였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 보다 더하다. 산채로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한 덩이 불덩이 푸른 산에 걸려 있다" 한 평생동안 무지무지하게 많은 사람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서 그
결과 산채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 솔직해지는 법입니다. 그는 평생의 수행과 고행이 헛된 것임을, 그리고 많은 사람을
속이는 행위였음을 마지막 죽음 앞에서 솔직히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숨길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고행과 많은
공을 쌓아도 그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죄는 숨길수록 심각해집니다. 변명할수록 추해집니다. 책임을 회피할수록 무거워집니다. 도망할수록 그
죄질이 더욱 악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는 숨길 수 있거나 공로와 수행을 통해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반드시
드러나고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악으로 인하여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말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나아와
자신의 모든 죄악을 자복하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죄에서 떠나시기 바랍니다. 탕자처럼 죄의 구렁텅이에서 방황하지 말고 속히 아버지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은
화려합니다. 20절과 21절을 읽겠습니다.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여차히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아간이 노략한 물건은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 백 세겔, 그리고 오십 세겔이 나가는 금 덩어리였습니다. 은과 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보석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본문에 나오는 시날의 외투는 아름다웠다고 했습니다. 유대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시날'땅에서
생산되는 외투들은 자주색을 띤 고급 옷으로 왕들이 입던 옷이라고 합니다. 아간은 그만 그 화려함에 도취되어 생긴 탐심으로 인하여 죄를 짓고
말았던 것입니다. 죄의 유혹은 화려합니다.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 실과를 따서 먹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죄의 세계를 아름답고 화려하게 포장하여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을 금식하며 기도하실 때, 나타난 마귀가 가져온 유혹도 에덴 동산의 유혹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배고픔을
면하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을 것이다. 나에게 무릎꿇어라 천하만국을 네게 주리라" 이러한 시험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한 일서 2:16에서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죄의 유혹은 화려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죄의 결과는 너무나 어둡고 비참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죄의 결과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인데, 하와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근사하고 흥분되는 일입니까? 하나님처럼 된다는데 무얼 주저하겠습니까? 이
세상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주겠다는 데 무얼 망설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속임수인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말에 속아넘어가고 있습니다. 백화점들은 고객들의 주머니에서 더 많은 돈을 끄집어내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냅니다. 어떤 백화점의 지배인이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더 많은 돈을 끄집어내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처음 매장에 들어서면 아주 향이 진한 커피를 끓이는 냄새를 온 매장에
가득하게 합니다. 손님들이 그 냄새를 맡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2층에 올라가면 빵 굽는 냄새를 매장 가득히 흘려 보냅니다. 역시
손님들은 기분이 좋아집니다. 커피 향과 빵 굽는 냄새에 기분이 좋아진 손님들은 자기가 예상한 것보다 많은 물건을 고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고,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백화점의 상술입니다. 얼마 전 울산에서 파이넨스 간판을 내 걸고 엄청난
이윤을 남겨 주겠다고 고객들을 모은 다음에 그들이 맡긴 돈을 모아서 잠적한 사기 극이 있었습니다. 70만원을 맡기면 한달 후에 120만원인가를
주겠다는 말에 너도나도 속았다는 것입니다. 사기를 당했다고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누가 돈을 공짜로 줍니까? 그것도
2배로 얹어서 말입니다. 얼마나 분별력 없는 사람들입니까? 속인 사람들이나 속은 사람들이나 모두 일확천금을 보장하겠다고 유혹하는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간 불쌍한 인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마귀(죄)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유혹을 이긴 힘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영적 분별력과 온전한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배불리 먹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인기를 얻어 왕이 되려 하심도 아니었습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십자가였습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져 죄와 불행과 사망에 빠진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제물이 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의
어떤 화려한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영적 분별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바른
영적 가치관으로 무장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떠한 화려한 죄악의 유혹을 받을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승리하는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죄의 영향력(아간과 이스라엘 공동체) 또 한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교훈은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7장1절과 11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죄를 지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누가
범죄하였다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간이 죄를 지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범죄하였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그들 곁을 떠나심으로 아이 성 정복을 실패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간 한 사람의 죄를 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대표성의 원리인 것입니다. 이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 원죄요, 예수님의 구속사입니다. 로마서에 보면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이 죄인이 되었고, 한 사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원리를 쉽게 생각해봅시다. 몇 주전 일본에서 한일 양국간에 축구 경기가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 올림픽에 나갈 국가 대표팀과 역시 일본의
올림픽 대표간에 벌어진 경기였습니다. 온 국민이 응원을 했는데 그만 4:1이라는 큰 점수차이로 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우리가 또는 우리 나라가 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경기에 나가 11명의 축구선수들이 뛰어서 졌는데, 말하기는 우리 나라가 일본에게
졌다고 말합니다. 실제로는 선수들이 뛰었지만 선수들이 우리 나라를 대표해서 뛰었기 때문에 그들이 진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가 진 것입니다.
그래서 속이 상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표성의 원리인 것입니다. 대표성의 원리는 영적인 세계에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다 죽을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다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에서는 한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간' 이라는 이름 없는 한 사람의 범죄는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민족을 대표하는 교회, 다음 세대의 영적 지도자를 배출하는 교회, 그리고 지역 사회를 책임지는 교회라는 목표를 목회 비전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목표는 대표성의 원리에 입각하여 세운 것입니다. 우리 송악교회 성도들인 여러분들에 의해서 나라의 운명도, 다음 세대의
비전도, 이 지역 사회의 미래도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간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실패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범죄가 작게는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 넓게는 이 지역과 민족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시고 날마다 구별된 삶을 살아가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아골 골짜기
24절부터 26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아간이 죄를 자백한 후, 그 증거품들과 그의 가족들을 아골 골짜기로 끌고 가서 돌로 치고 불사르는 심판을 행하였습니다.
아골 골짜기는 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괴로움의 골짜기입니다. 고통의 골짜기입니다. 아간은 아골 골짜기에 깊이 묻혔습니다. 그제서야 하나님은 그
극렬했던 진노를 그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실패케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악은 아골 골짜기에 깊이 묻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골 골짜기를 오늘까지 남겨두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간과 같은 탐욕의 범죄를 짓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골고다 언덕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이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다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죄의 대가로 내가 죽어야 합니다. 아간이 묻힌 아골 골짜기에 나를 장사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사망을 다 짊어지시고 대속물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나의 모든 저주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와 저주와 사망의 사슬을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 믿으면 아멘
합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니라"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는 저주가 없습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미 끝났습니다. 아골 골짜기의 저주는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이 씻기었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흠뻑 적셔지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죄는 반드시 드러나게 됩니다.
또한 한 사람의 죄는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화려함으로 위장한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묻고, 거룩하고 정결한 신앙으로 새롭게 일어나 나라와 교회와 지역과 가정의 대표로
세워지는 능력 있는 종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