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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 (여호수아 5:1-9)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길갈에 진을 친 다음에 몇 가지 의식을 가졌는데, 그 첫 번째가 요단강 가운데서 가져온 12개의 돌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할례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린 대로 길갈에 세운 열 두개의 돌들은 ①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②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③하나님의 능력을 세계 열방에 선포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계 열방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그 자리에 나와 우리의 자녀들이 있기를 소원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의식인 할례를 행한 것을 중심으로 말씀드림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또 다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12개의 돌로 요단강 도하를 기념하는 일이 끝나자 여호수아를 불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2절과 3절을 읽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2년이 좀 지나서 바란 광야에 머물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12지파에서 뽑힌 12명의 건장한 청년들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40일간 가나안의 지형과 군사력과 토지 등을 자세히 조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의 모든 상황이 현재 이스라엘의 모습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부정적인 보고가 문제가 된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들의 보고를 듣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며 애굽에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불신앙을 보시고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보고를 한 10명의 정탐꾼들을 재앙으로 죽게 하시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던 20세 이상 된 모든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다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들이었습니다. 출애굽 1세대들의 비극 때문에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라고 했습니다. "다시"라는 말을 주목하십시오. 이 말은 할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또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중에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이제 하나님과 좋지 않았던 관계를 정리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언약의 표인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진입해 있는 그 백성들을 당신의 백성들로 인정하신다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너희와 언약을 맺겠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멸망의 길로 달려간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나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가나안의 풍요와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1세대들이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졌지만 개의치 않으시고 지금 현재 순종하고 따르는 백성들과 손을 잡으셨습니다. 할례를 통해서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순종하며 주님께 나오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받아주시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과거에 어떤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통회하는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거지꼴이 되어 돌아오는 탕자를 먼발치에서 알아보고 달려가서 끌어안고 입맞추고 결정적인 것은 인장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아들이 밖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묻지 않고 다시 아들로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 길갈에 진을 치고 있는 백성들에게 할례 행할 것을 원하신 것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할례 없는 백성이 되어 가나안의 더럽고 타락한 문화에 휩쓸려 살다가 멸망할 것인지, 아니면 할례 받고 하나님의 영적인 은혜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기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회복하고 가나안의 축복도 보장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적인 풍요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불행과 실패와 낙심과 절망과 저주와 죽음과 지옥의 운명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시기까지 순종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행복과 승리와 기쁨과 희망과 축복과 생명과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축복의 길, 승리의 길, 행복의 길, 다시 말해서 살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삽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유대의 관원인 니고데모가 어느 날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인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지 않으면 이러한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의 관심은 영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예수님에게 영생의 비밀이 있음을 알고 달려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노력을 한다 해도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성 삼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죄 사함의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변화될 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변화되지 아니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천국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라도 언제나 지옥과 같은 삶을 살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할례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몸은 교회에 있지만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들입니다. 주일마다 예배는 드리지만 예수는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12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내려오시던 중 그의 부모가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사흘 길을 찾아 나선 끝에 성전에서 서기관들과 논쟁하는 예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 속에 주님이 계십니까? 진짜 예수님을 만난 감격이 풍성합니까? 깨끗이 청소되어서 마귀가 일곱 귀신을 데려올 상황은 아닙니까? 예수 없는 목사, 예수 없는 권사, 예수 없는 집사는 아닙니까?
거듭나야 합니다.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우리의 옛 사람이 죽어 장사지낸바 되고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함께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영적인 체험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식들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습관적인 신앙으로는 안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나의 의가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나의 지식이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나의 명예가 나의 물질이, 나의 자존심이 나를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거듭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 즉 하나님과의 영적인 만남이 있었을 때, 그의 축복은 열려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길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입니다. 세례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축복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
9절을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마치고 낫기를 기다릴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셨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본래 이 땅의 이름은 '기브앗 하아라롯 산'(할례산)이라고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례를 행하자 그곳의 이름을 길갈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길갈'이란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애굽의 수치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아픈 기억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면서 이방 백성들에게 당한 조롱과 비웃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극적인 기적들을 통하여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연단 과정이었지만 애굽 사람들의 눈에는 "아직도 광야를 헤매고 있다"고 하는 비웃음으로밖에 보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렇게 오랫동안 광야에서 헤맬 것이면 차라리 애굽에 남아서 우리의 종노릇이나 할 것이지 그러면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 수 있을 것인데"라는 비아냥이 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할례를 받는 그 날,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회복되는 그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가나안 땅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이제 광야 생활의 수고가 끝났습니다. 이제 애굽의 수치는 굴러갔습니다.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풍요는 실제적으로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예수 믿으면 아멘! 합시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세례 받은 우리들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애굽의 수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과거의 죄악의 습성들, 술 취함과 방탕함, 음행과 사치 등에 빠져 방황하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광야의 수고를 가지고 사는 분들이 있습니까?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지신 분이 계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할렐루야!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광야의 모든 수고는 끝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애굽의 수치, 세상의 모든 수치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천국의 축복들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서 애굽의 수치가 다 사라지셨음을 믿으십니까? 광야의 수고가 다 끝나셨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독립기념관에서 느낀 일-수치스런 역사를 대물림하지 말자)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애굽의 수치, 광야의 수고를 물려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 모두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