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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

레11:44-45

출애굽기 3장 1절 이하에 의하면 모세가 그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이끌고 광야 서편 호렙산에 가까이 갔을 때 였다. 모세가 보니 가시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그 불꽃이 사라지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가까이 갔다. 도대체 어찌하여 가시나무가 불은 붙었는데 타지 않는다는 말인가? 모세가 가까이 하는 것을 보신 여호와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모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대답을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리로 가까이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모세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거룩한 곳에서 거룩하지 아니하는 그의 신을 벗었기 때문이었다. 신을 벗는다는 의미는 이 세상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하나님을 만나려면 누구를 막론하고 거룩하여만 한다. 죄인 된 몸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지금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결단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살려 주시기위해서 스스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거룩한 산 제물이 되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로운 존재, 거룩한 존재가 된 것이다.
  오늘의 본문에는 여호와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 고 하신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 때문에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고 해도 우리의 삶 까지도 거룩한 생활로 변화 시켜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우리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자녀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거룩함에 대한 말은 언제나 '죄'와 결부되어 있다. 거룩한 삶이란 죄를 떠난 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죄는 결단코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거룩함에 대한 말은 현대의 믿음 생활에서는 좀 진부하고 낡은 것처럼 느껴진다. 거룩하다는 생활의 모습은 남자들은 검은 양복, 여자들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와 운동화나 고무신을 신은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거룩함은 이러한 생각과는 다르다.
  어떻게 살아야 거룩하게 사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거룩한 생활을 특별한 금기 사항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담배,술, 춤, 오락, 농담, 스포티한 옷을 입는 것, 머리에 염색을 한다는 것 등등 이런 것을 하지 않아야 거룩해진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에 치중하다보면 우리는 바리새인의 생활로 되돌아가 버리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거룩함이 특별한 옷이나 습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들은 어떤 면에서는 맞는 것도 있지만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흠 잡을 데가 없다는 뜻이다. 거룩함이란 말은 '하나님께 구별된 자들에게 맞는 행위'를 의미한다. 거룩함에 대해서 신약에서는 여러곳에서 말씀을 한다. 바울은 거룩함을 부도덕과 불순전함에 대조 되는 말로 사용했다.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살전 4: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살전 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살전 4: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살전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베도로는 거룩함을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서 살 때 지녔던 악한 욕구에 따라 사는 삶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벧전 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거룩한 삶이란 성경이 말하는 도덕적 교훈을 따라 사는 것이며 세상의 죄악된 방법과 달리 사는 것이다. 에베소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엡 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거룩한 삶이란 기본적인 것인데도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이것을 외면하고 살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죄와의 투쟁에서 계속 패배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이 세상에 더 잘 발을 맞추며 더 잘 순종하며 살고 있다. 현대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적인 삶은 거룩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경건된 삶을 사는 것이다. 거룩한 삶을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할 기본적인 몇가지를 생각하고자 한다.

1. 자기 중심을 버려야 한다.
  죄의 첫째 항목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의 생활을 하는 데서 시작 된다. 우리가 범하는 죄가 하나님을 분노하게 한다는 것보다 우리 자신의 성공 위주의 삶에 더 관심이 쏠려 있다. 때문에 죄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w,s 플러머는 "죄를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으로 보기까지는 죄를 바르게 볼 수 없다. ...죄는 하나님께 대항한다. 죄로 인해서 깨어진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고 무시된 것은 하나님의 권위이며, 무가치하게 된 것은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적으로 승리 하기보다는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순종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태도로 승리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것은 죄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우리가 승리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승리는 거룩한 믿음의 부산물이다.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살 때 죄를 정복하는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2, 죄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을 버려야 한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    ) 말에 의지해서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것은 오직 성령의 인도함이 있어야 된다는 것으로 착각하는 믿음이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 모든 원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시지 않기 때문이라는 핑계이다. 성령은 우리가 지금껏 가지고 온 잘못된 습관이나 생활을 청산하게 하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습관 판단을 따라서 산다. 즉 자기 중심적인 삶이다. 성령의 역사는 나의 잘못된 생활 태도를 고치고 바꾸라고 하는데 나는 그러하지 못하면서 궁극적으로 내 생활 태도를 바꾸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사는 것이다.

3. 우리는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을 해야 한다.
  죄는 하나님께서 판단 하실 것인데 '내가' 스스로 죄를 용납하고 관용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일상ㅇ의 생활에서 작은 법을 무시할 때 그것은 우리의 판단에는 심각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심각한 죄가 되는 것이다. 앤드류 보너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법이 아니라 법을 주신 분의 위엄이다. 그 위엄이 순종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했을 때 열매를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말씀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금지 하신 일과 하라고 명령하신 일을 우리가 분류해서 따르든가 따르지 않든가를 해서는ㄴ 안된다. 우리는 다만 따르는 순종만 하면 되는 것이다.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심각한 죄에 대한 의식을 가wu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