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밤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32) 너희의 말대로 너희 의 양도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 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백성을 재촉하여 그 지경에서 속히 보내 려 하므로 (34)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 라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 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37) 이스라 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 십만 가량이요 (38) 중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 하 였으며 (39) 그들이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 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 남으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4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 삼십년이라
(41)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출12:29-42)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애굽에 있 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강제 중노동과 온갖 학대로 인해 부 르짖는 소리를 들었노라. 이제 내가 그 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내가 알고 내
백 성을 애굽에서 해방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리라. 그러므로 너는 애굽의 왕 바로에게 가서 광야로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허락하며 민족의 해방을 요구하라. 그러나 내가 강한 손으로 그들을 치기 전에는 바로가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내가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 를 해방하리라. 그리고 너희가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 빈손으로 가지 아니 하고 애굽
사람으로부터 온갖 금은패물과 의복, 물품 등을 취하여 가지고 나오 게 되리라."(출애굽기3:1-22) 과연 모세는 4백여년의 노예생활에서
이스라엘 백 성을 해방하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대로 애굽 왕 바로에게 가서 민족의 해방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번번히 바로는 코웃음을
치며 거절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적들을 보여주었지만 그럴수록 바로는 더욱 더 마음을 강퍅케 하며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는 수 없이 재앙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에 있는 물은 흐르는 물이나 고인 물이나 모두 피로 변하여 고기는 죽고 악취가 나서
물을 마실 수 없는 재앙, 온 땅에 개구리와 파리떼로 득실거리게 만들기도 했고, 사람과 짐승들에게 독종이 들게 하기도 했고, 사람이나
짐승이 맞으면 즉 사하고 온갖 채소밭을 쑥밭으로 만들만한 우박을 내리게도 하셨고, 전무후무한 메뚜기 떼를 보내 식량창고를
고갈시키기도 했으나 그럴 때마다 바로는 여전히 강퍅하게 맞대응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로 하셨습 니다.
애굽에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을 죽이는, 이른바 <장자 재앙>을 내리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기를 "그 장자재앙이 내리는 날을 해방원년 첫 달로 삼고 흠없는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집집마다 문설주에 바르라.
그 피가 너희를 위한 표적이 되어 내가 그 피 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 장자 재앙이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 할 것이라. 그리 고 이
날을 하나님의 절기로 삼아 영원토록 지키라."(출12:1-14) 이스라엘 백성 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대로 행했습니다. 낮에 여러
재앙들로 어수선했었 으나 밤이 되니 깊은 정적에 쌓였었습니다. 그런데 돌연 그 깊은 정적의 밤을 찢어 놓을듯한 비명과 통곡 소리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밤중에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묻어있는 이스라엘 집을 제외하고 애굽의 왕 바로의
장자로부터 감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온갖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죽였던 것입니다. 한 어머니가 미친 듯이 집밖으로 뛰어 나와
죽음의 사자가 우리 장자를 쳐죽였다고 울부짖자 곧이어 여기저기에서 첫 아들이 죽음을 당해 비통해 하는 어머니들의 호곡 소리가
천지를 울렸습니다. 순식간에 애굽은 통곡 의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사장과 의사를 불러보고 마술사와 궁중의 요 인들을 불러
보았댔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밤샘 일을 하던 노예나 비단 상 아 침대에서 단꿈을 꾸던 귀부인도, 저 바로의 왕궁에서부터 시골 움막에
이르 기까지 문설주에 어린양의 핏자국이 없는 집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장자재앙 >의 비통함을 당했습니다. 왕을 계승할
황태자가 급사했다는 뉴스속보에서부터 한 집안에 죽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급보에 이르기까지 이 비보는 요원의 불길같이
퍼져나갔습니다. 이 밤의 사건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밤에 바로와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 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고 하였습 니다.(출12장) 이날 저녁은 애굽 전체가 비탄의
통곡소리로 뒤덮인 밤이었습니 다. 그러나 사백 여년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견디기 힘든 온갖 압제 와 잔인한 학대에 비하면
시체말로 새발의 피였습니다. 결국 그날 밤 바로와 그 신하와 전 애굽인들이 일어나 황급히 모세와 아론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스라엘의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들 소원대로 풀어놓아 줄테니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가지고 빨리 이 땅을 떠나라는 것이었습 니다.(출12:31-33)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갖 금은패물들과 의복들과 물 품들을 원하는대로 취하여 가지고 지체하지 아니하고 그 밤에 엑소더스,
출애굽 한 것이었습니다. 애굽에 거한지 무려 4백 30년만에 자유의 첫발을 내딛고 누려 보는 해방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 삼십년이라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 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 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출12:40-42)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된 날 밤을 가리켜 <여호와의 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된 것은 모세와 아론 등이 민족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고 이웃 나라의 도움을 힘입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밤"이 암시하듯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에 결정적인 <장 자재앙>이 임했던 그 밤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 로 우리 나라가 일제치하에서 해방된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이 남태평양 섬인 사이판과 괌 중간에 위치한 티니안 섬 공항에 두 개의 원자탄을 운반했습니다. 직경 70cm,
길이 3m, 무게 4.4t이 되는 유도탄 모양으 로 홀쭉하게 생긴 "꼬마"(Little Boy,우라늄탄)와 직경 1.5m, 길이 3.5m,
무게 4.5t 되는 요즘 플라스틱 정화조 모양의 "뚱보"(Fat Man,플루토늄탄)였습니다. 본래 계획에서 6일 늦어진 1945년
8월 5일 홀쭉이 "꼬마"를 실은 "에놀라 게 이"(Enola gay)라는 별명의 B29 폭격기가 동료 폭격기 2대와 함께 폴 티베츠
중령과 11명의 부하들을 싣고 꼭두 새벽 2시45분 티니안 섬 공항을 출발하여 아침 6시 15분에 히로시마 상공에 이르렀습니다.
9,300m 상공에서 낙하산을 달 아 던져진 원자탄 "꼬마"는 13초후 580m 상공에서 폭발했습니다. 히로시마시 한 복판에 거대한
구멍을 뚫으며 직경 1km 내의 온도는 섭시 3,000도, 기타 지 역의 온도는 540도의 뜨거운 불덩어리가 튕겨져 하늘로 솟아올라 버섯
모양의 거대한 구름을 만들었고 동시에 음속의 두배나 되는 광풍이 사방으로 퍼졌습니 다. 이 우라늄 원자탄 투하로 24만여명의
히로시마 인구 중 최소한 11만8천6백 61명이 사망하고, 3만5백44명의 중상자와 4만8천6백6명의 경상자를 냈으며, 이 가운데는
조선인 노무자가 2만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원자탄으로 반경 3km가 넘는 지역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7만6천채의
건물중 7 만채가 아주 날아가 버렸고 6천채만이 겨우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시 중구 만한 크기의 중심구역에 있던 사람들은 가루도
남지않고 수증기가 되어 공중에 증발되었고 그날에 죽은 사람만도 10만여명, 그해 연말까지 4만명이 더 죽어갔 습니다. 그러나 동경의
전쟁본부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전쟁장관 아마미 고레 치가는 "그까짓 것 한 개 가지고..."하며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럴 줄 알고 두
개를 준비했던 미국은 3일 후인 8월 8일, "뚱보"를 싣고 새벽 3시 47분 같은 공 항을 출발하여 무기창고가 있는 규슈의
고구라시를 찾아갔으나 구름에 덮인 고 구라시를 찾지 못했고, 연료부족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보이는 나사가키에 플루 토늄 원자탄을
투하했습니다.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7만3천8백84명의 사망자와 7만5천명의 부상자를 냈습니다. 두 번째 원자탄을 맞고서야
일본당국 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동경의 전황회의는 오전 11시 30분에 시작되어 밤 11시 까지 계속되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천황의 결심을 묻게 되었습니다. 천황 은 항복을 결심하고 8월 14일 12시 방송을 지시하고도 실제로 방송하기까지 4 일간의
전사자만도 무려 1만5천명이나 되었습니다. 결국 8월 15일 일본 천황은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해방이었습니다. 솔직한
표현으로 우리의 해방은 우리들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태평양전쟁 승리가 가져다 준 선 물이었습니다. 물론 그 배후에는
해방약속을 유도했던 독립 운동가들의 호소와 피맺힌 절규, 그리고 산하를 벌겋게 물들인 수 없는 애국선열들이 흘린 피가 흐 르고
있었으나 해방은 분명 날아 들어온 하나님의 선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 다. <장자재앙>에 비교되는 원자탄 2발에 일본도 애굽의
바로 왕처럼 무릎을 꿇고 만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 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 했는데
어찌 30여만명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원자탄 투하에 하나님의 뜻이 없겠습니까? 분명 일본에 대한 두발의 원자탄 투하는
< 여호와의 밤>에 이루어진 이 나라 민족 해방을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일 본은 신처럼 떠받들던 천황이 무릎을 꿇고
전쟁 패배를 인정하는 항복에 서명 했음에도 패전을 종전이라 하며, 과거 그들이 저지른 전쟁을 미화시키는 왜곡하 고 날조한 역사교과서를
공식 인정하는 등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청산하기는 커녕 막강한 국가 경제력을 의지하여 오만불손하고 거만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출애굽 사건 이후의 애굽의 형편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되고 애굽에서
빠져나가고 보니 애굽 왕 바로와 그 신 하들은 금새 마음이 변했습니다. 장자 재앙으로 죽은 황태자가 살아날리 없고 이 이상 무슨
재앙이 있겠는가 하고 도로 마음을 강퍅케 하여 광야로 질주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부려먹던 노예가 없어진
것도 엄청난 손실인데,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대로 온갖 금은보물들 을 몽땅 주어 보내었으니 뱃속이 편할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엄청난 병력 을 동원하여 추격하다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열어놓으셨던 홍해 바다길 이 닫힘으로 홍해바다에 수장되어 엄청난
국력 손실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과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 신다는 사실과
여호와야말로 진정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일본도 마찬가지로 지난 날 그들이 아시아 여러 민족과 서방 국가들에게
저지 른 잔인하고 엄청난 만행과 과오에 대해 보상은커녕 일절 회개를 거절하고 역 사를 왜곡하며 군국주의의 부활을 상징하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교활하고 강 퍅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배는 홍해바다에 애굽의 군대 가 수장된 것처럼 하루 밤에
침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경제적 교만에 빠져 있습니다. 참회없는 경제적 부강은 최후의 심판에 독수리들의 잔치 를
위해 살찌우는 바산의 암소에 불과하다는 것이 하나님 사상입니다. 린다 고에츠 홀메스가 저술한 "부정한 축재"(Unjust
Enrichment, 스택폴 북 스)라는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정부와 군부, 그리고 기업이 자행한 전쟁 포로들에 대한 착취와
그로 인한 일본의 금전적 이익을 세세하게 폭로하고 있 습니다. 그 한 예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얀마의 국경지대 정글 속에 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 에 영국군 포로와 니콜슨 대령이 이송되어 옵니다. 이들은 포로답지 않게 절도
있는 동작과 행진곡 '콰이마치'를 휘파람으로 부르며 신고식을 할 정도로 기세 등등합니다. 한편 포로수용소장 사이토 대좌는 콰이강이
흐르는 절벽 위에 3개 월 안에 군수물자 수송용 교량을 건설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습니다. 사무라이 정신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의
화신인 사이토 대좌. '죽음의 철도'를 3개월 안에 건설해야 한다고 포로들에게 발표하고, 강제노역을 통해 다리를 완공하려 하지 만
니콜슨 대령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합니다. 사이토 대좌는 니콜슨 대령을 철 창에 가두고 포로들을 위협하지만 결국 교량을 완공할 수 없자 이에
대한 책임 을 지고 자결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다리 건설 노역을 거부하던 니콜슨 대령은 조국에 불리한 철도 건설에 소극적인 부하들을
영국의 자존심을 내세워 설득해 다리를 기한 내에 건설하려는 집념을 보입니다. 그러나 미군 포로들의 탈출과 폭로로 결국 콰이강의
다리는 폭파되며 영화는 끝납니다. 전쟁 중에도 국가에 대한 명예와 사나이들의 용기, 동료애를 보여주는 영화 "콰이강의 다리".
그러 나 실제 상황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 공사에 동원된 실제 인원은 10만명 의 아시아인, 3만명의 영국인,
1만8,000명의 네덜란드인, 그리고 1만3,000명의 호 주인이었습니다. 강제노역에 동원된 이들 덕분에 5년이 걸려야 할 공사는 불과
17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완공됐습니다. 그 와중에 약 1만6,000명의 포로와 5만명의 주민이 죽어갔습니다. 1942년부터
1945년 사이에는 하루 수백명씩이 참혹한 강제노역의 현장에서 기아, 혹사, 잔인무도한 체벌 그리고 질병으로 인 해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전쟁 중에 사망한 전체 미군 포로 10명 중 9명이 일본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죽었다고 실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이 었습니다. 오늘의 일본 대기업 미쓰미시, 가와사키 등은 당시 군부와 합작으로 전쟁포로 대부분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여 포로들의
피와 땀의 대가로 오늘날까 지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포로를 강제노역장으로 실어 나르는 지옥선을 최소 한 17대나 보유하고 있었던
미쓰비시는 다른 기업들보다 더 광범위하게 포로들 을 이용했습니다. 그리하여 혼슈(本州) 북쪽의 광산에서 태국의 정글, 만주 외곽 에
이르기까지 연합군 포로들의 무임금 노동을 이용해 막대한 이득을 취했습니 다. 공식적인 일본 정부의 기록만 봐도 미쓰비시는 수천명의 미국인
포로를 하 나와·고주쿠라·이쿠노 지역의 구리광산과 나고야의 비행기 공장, 나가사키의 조선소, 조센조의 철강소 그리고 만주의 각종
공장에 투입했습니다. 생존자 케 네스 칼빗은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광산은 춥고 축축해서 천장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었다. 우리는
광산으로 들 어가기 위해 가파른 산을 2마일 이상 걸어야만 했다. 우리가 걸어간 산의 끝자 락에는 눈과 바람이 휘몰아쳤고 길을 잃지
않으려고 서로 팔짱을 껴야 했다. … 그곳에서 우리는 살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 더 이상
숨김없이 체계적이고 정확한 조사를 해야 하며, 포로들의 생명을 대가로 아직도 번영을 구가하는 일본 기업들은 수 천명의 미군 포로들의
착취에 대해 보상과 함께 사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 장하고 있습니다. 일본 패전 이후 반세기가 훨씬 지나가고 있지만 그들의 만행 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와 청산은커녕 일본은 날이 갈수록 전쟁 포로들의 강제노역과 그들을 착취하여 이룩한 경제력을
내세워 파 렴치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 등을 포함하여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참회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망언과 망발을 서슴지 않 는 일본에 전세계가 참된 반성을 촉구하며 비난을 퍼붓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
개인이든 국가이든 그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만이 복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는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한 시 대의 선각자라 불리우는 함석헌 선생은 그의 책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해 방 전후의 기독교의 모습과 갖추어야 할 자세를 이렇게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계 학교를 세우고,
고아원과 양로원을 운영하고, 기도해서 병을 고치고, 성령을 받아 예언을 한답시고 미치고, 일본 때는 일본에, 이승만 때는 이승만에
붙어, 벽돌로 집을 짓고, 종을 울리고 부흥회를 했지만 그밖에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 것들은 없어도 괜찮은 것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기울어져 가는 민중의 혼을 깨우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안 주하여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쳐 신랑되는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는데 실패한 유교와 불교의 자리에서 기독교는 책임을 지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십자가를 바로 지고 가야만 했 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천당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 다. 천당 가기 전에 이 땅 위에 하늘나라가 임하게 하자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천당에 가게 될 것입니다. 구원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형 제의 죄를 사해주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구원이 저절로 될 것입니다. 그 런데 천당만 찾고
구원만 부르는 데서 잘못을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그래, 이 나라 민족을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를 위해 구레네 시몬이
되 어 본적이 있었습니까? 그 십자가를 조금이라도 들어주었습니까? 비탄과 비통함 으로 얼룩진 나라 민족의 주름살을 한 치나마 펴준
것이 있습니까?...기독교가 무엇을 하자는 겁니까? 무엇을 하자고 수많은 순교자의 피를 뿌리며 이 은둔 나라에 왔겠습니까? 이
수난의 민족을 다시 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 사명을 못했으니 못한 증거를 단적으로 말하겠노라. 백 년의 기독교
역사에 기독교 인물이 나지 못했느니라. 신부, 목사, 장로 교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인물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
응용 못하는 학문이 소용이 없는 모양으로, 역사에 응용 못되는 종교는 소용이 없습니다. 전문 종교가가 아 니고 산 역사에 응용된
종교 인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연구실은 생산공장을 위 해 있고, 교회는 산 역사의 행진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 상재, 이승훈,
안창 호, 조만식 한번 간 후에는 기독교 인물이 없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같은 선각자의 말이 실감나게 공감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형교회 지도자들이 기독 교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김일성 일가나 재벌들의 리스트에 올려야 될 인물들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회사 키우듯이 키워 물려줄 줄 이나 알았지 이 나라 민족을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빛과 소금이 되라는
사명은 저버리고 있습니다. 나라 민족의 십자가를 걸머지고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이 홍해를 가르고, 요단강을 건너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계속해서 함석헌 선생이 본 해방전후의 우리 모습과 그가 발견한 해방의 의 미를 살펴봅시다. "교활하고 악독한
이리가 물었던 양을 놓고 물러갈 줄은 감히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 날카로운 이빨로 간을 관통하고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는 등뼈
마디마디를 파고들었습니다. 적어도 이성을 가지고는 그 물러갈 날을 예측 할 수 없었습니다. 정치권은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났고, 나라의
토지를 대부분 차지하여 나라경제를 제멋대로 휘둘렀고, 교육정책은 조선사람을 영원한 노예로 양성하는데 목표를 두어 성을 갈고 말과
글을 말살하고 풍속까지 뜯어고치려 대들었습니다. 세계는 혼란에 빠져 열강의 도움을 기대하기조차 힘들었고 국제 사회는 정의감마저
사라져 백주에 공공연하게 대량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형편 이었으니 이 나라의 해방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옛 날에 지사, 지도자라 하던 사람들이 시대와 타협하고 왜놈의 앞잡이로 넘어가고 지식인들마저 몽땅 팔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교육자는
학생을 보고 일본인이 되 어야 한다고 아는 거짓말을 하고, 종교가는 교인들을 보고 일본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죄악으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45년 8월 15 일 갑자기 해방이 되었습니다. 도둑같이 뜻밖에 왔습니다. 이 해방은 하늘에서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해방은 하늘이 준 떡입니다.... 이 해방은 민족주의자가 한 것도 아니요, 공산주의자가 한 것도 아니요,
전체주의자가 한 것도 아니요, 무정부주의자가 한 것도 아닙니다. 국내 사람의 손으로 된 것도, 해외 지사의 손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 해방은 어느 누구의 노력에 돌릴 수는 없고 부득이 하늘에 돌릴 수밖에 없이 되었습니다....그러므로 민중의 마음에서 나올 것은
감 사밖에 없습니다. 이 감사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인생의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이 나라 백성에게 값없이
생명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사회를 맑게 하는 청정 공기같은 것이요 민족 국가들 사 이에 선의를 도모하게
만들 것입니다... 어떤 나라도 국민의 가슴속에 감사와 감 격하는 생각을 기르지 않고는 나라를 향상시킬 수도 없고 국제간 친선을
도모 할 수도 없습니다....감사하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마음입니다. 역사의 의미를 깨닫는 마음입니다. 감사는 이 나라
역사에 새로운 통일을 가져다 줄 것 입니다. 이 나라의 해방을 하나님께 감사할 때 역사속에 자신과 나라의 존재 의 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해방이 되던 날에는 고맙고 기쁜 마음밖에 없었 습니다. 뉘게 대하여 고맙다는 것도 아니요, 그저 고마웠습니다. 그저
고마웠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이 역사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감사
감격에 솟아 날 때, 이때까지의 불평과 고통이 모두 사라지고 모든 고난의 의미가 환해졌고, 모든 민족이 다 우 리를 향하여 축하의
손을 드는 것을 느꼈으며, 하늘의 별들도 우리편을 들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종교를 믿는 사람, 아니 믿는
사람 할 것 없이 다 어떤 한 뜻을 믿었습니다. 그때는 누구에게나 이 세상은 분 명 뜻이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뒤에는
아무 부끄러운 것, 원망스러운 것이 없었고, 앞에는 아무 무서운 것, 미운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간
증거입니다." 이 나라 백성은 8.15해방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고 하나 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목 구멍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와 정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8.15해방은
<여호와의 밤>, 곧 하나님께서 이루신 해방의 사건임을 기억하여 영 원토록 감사하며 광복절기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만을 규탄할 것이 아니라 81.5해방은 <여호와의 밤>에 이루어진 사건임을 바르게 증 거하고 전할 수 있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왜곡하고 미화 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56년전 <여호와의 밤>에 일어난 해방의 사건에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을
섬김으로, 다시 한번 남과 북에도 <여호와 의 밤>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사치와 향락과 방탕, 그리고
부정 부패와 불법으로 치닫고 있는 이 나라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밤>의 역사 가 일어나 죄악에서 해방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나라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뜻 을 위해 모세와 같이 쓰임 받는 인물들이 교회들을 통해 일어나기를 기원합니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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