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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응보(야곱의 삶의 결과)

창세기 37:29~35

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와서 가로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그들이 요셉의 옷을 취하고 수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 채색 옷을 보내어 그 아비에게로 가져다가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매 아비가 그것을 알아 보고 가로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응보란 선과 악의 행위에 따라 복과 화로 갚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보답 받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합니다. 선을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멸망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해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응보란 야곱이 살아온 삶에 대한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의 삶에 어떤 결과가 왔는지 생각하면서 서로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번 더 강조하는 것은 사람은 자신이 살아 온 삶의 내용 따라 그 열매를 값지게 얻으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순리는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되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되고, 게으르면 풍년을 기대하기 어렵고 부지런하면 탐스러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야곱이 살아 온 삶을 생각하면 태어날 때 형의 발꿈치 잡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형에 대한 시기심과 도전적 마음 가지고 태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장자 명분을 사는 이기적이고 욕심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복을 받아 낸 사람이고, 혈육인 형을 속였기에 형제지간에 살인적 감정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의 마음을 섭섭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최대로 이용하는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형과는 원수가 되고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어 가정을 떠나 외롭고 쓸쓸하고 고된 타향에 가서 살게 되고 그 곳에서 외삼촌에게 속으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열매로 살게 됩니다. 어떻게 살았는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가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느냐는 중요합니다. 내가 행한 것에 대해서 나에게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손에게도 돌아가게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두 사람의 예를 들어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손님 잘 대접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더니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큰 복을 주고 그의 후손들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되어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아합이란 왕은 결혼하고 난 다음 믿음이 변했습니다. 믿음을 배도 하고 우상을 섬기며 사마리아에 바알 신당을 짓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도 하고 우상을 섬기도록 유도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하던 아합과 이세벨은 모두 다 짐승에게 찢김 받아서 뼈만 남는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니 지금 믿음으로 살고, 선하게 살고, 덕 있게 살아야 나와 후손들이 다 좋은 열매 풍요로운 열매로 살게 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야곱이 믿음의 사람임에는 분명하나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살았더니 그에 대한 응보를 어떻게 받았는지 생각해 보면서 혹시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 있으면 고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자녀들의 생각이 모두 다 악했습니다.

   부모는 형제지간에 평화롭고 우애 있게 깊은 정을 나누면서 사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자식 키우는 보람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형제들간에 마음이 화합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화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형 에서와 화목하게 살지 못하고 기회만 있으면 형의 장자 축복권을 빼앗아 자기의 야욕을 채우려던 사람이 야곱입니다. 형제 간에 화목하지 못하고 시기와 질투 따라 살아왔던 야곱의 응보가 지금 야곱의 자녀간에 시기와 질투 미움 그리고 언제 그 꿈이 이루어지는가 두고 보자 하는 원한 맺힌 마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야곱의 자녀들이 화목하지 못하고 시기와 질투 가운데 살아가게 되었고, 형제들 간에 선이 아니라 악이 독버섯처럼 강하게 돋아나고 있었으니 형제들 간에 화목이 아니라 너무 깊은 갈등의 골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 말로 표현하면 형제간에 서로 으르렁거리고 살았습니다. 야곱이 형제 간에 화목하지 못하고 정을 나누지 못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기에 급급하며 살았기에 자기의 아들들이 형제들 간의 정이나 화목하지 못하고 기회만 있으면 요셉을 해치려 한 악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환경은 가정이 아니라 전쟁터입니다. 전쟁은 수단 방법 가릴 것 없이 이겨야 자신이 생존합니다.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악한 방법을 동원케 됩니다. 형제들 간에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살아야 하는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형제가 형제를 잘되기를 바라고 돕고 격려하지는 못할지라도 악한 생각을 가지지는 말아야 되는데 야곱의 아들들은 동생 요셉이 잘못되기를 바라고 그의 꿈이 산산조각 나기를 바라고 기회만 있으면 죽일 생각을 했으니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터질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성경에 형제들 간에 질투 때문에 고통받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입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으니까 가인이 질투가 났습니다. 마침내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이 사건이 최초의 살인 사건입니다. 이때 아담과 하와의 심정은 표현하기 어려운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살인자로서 고난과 고통 당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 또한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부잣집 둘째 아들이 자기의 분깃을 받아 타국에 가서 사업하다가 망했습니다. 결국에는 돼지 우리에서 살다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형제 간에 의지하고 믿고 정을 나누지 못하고 제 욕심만 채우려는 동생 때문에 아버지는 동생이 나간 그 날부터 돌아올 때까지 매일 대문간에 서서 아들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빈손 들고 돌아오는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다시 예전과 같이 회복시켰다는 내용입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형제는 골육이니 화목하게 지내야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형제 간에 악한 마음 가지면 그것이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입니다. 자식들 때문에 야곱이 고통 당하는 것이 야곱의 응보입니다. 내가 형제 간에 잘못하고 악한 생각을 가지면 자신이 부모가 되면 내 자식들이 형제간에 악한 생각 가지고 살아가는 것 지켜보며 살아야 되는 부모가 됩니다.
   잠언 21:10. "악인의 마음은 재앙을 원하나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이사야 48:22.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였느니라"
   골로새서 3:6.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생각 탐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악한 생각은 은혜를 입지 못하고 평강이 없고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기억하고 삽시다.

   
2. 속이던 자가 속임을 받게 됩니다.

   야곱이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더니, 자신도 자식들에게서 자신이 속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자녀들이 들에 가서 양을 칠 때 요셉을 형들에게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그때 형들이 요셉을 보고 "꿈꾸는 자, 우리의 왕이 되겠다고 하는 자가 가까이 옴을 보고 죽이기로 의논"했습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 것을 보고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유다의 만류로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개를 받고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는 요셉의 옷에다가 짐승의 피를 묻혀서 가져가 요셉의 옷이 아닌가 보소서 했더니 야곱이 요셉의 옷인 줄 알고 악한 짐승에게 잡혀 먹힌 줄 알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아들을 위해 애통했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위로하되 야곱이 위로 받지 못하고 "내가 너무 슬프니 음부에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하면서 울었더라고 했습니다. 자식들 농간에 속아넘어간 것입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에서라고 속여 장자의 복을 받으므로 아버지와 형의 마음을 아프게 하더니 자신도 자녀들에게 속아서 슬픔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응보입니다.
   예화를 하나 들어봅니다. 개와 수탉이 우정을 맺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밤이 되자 수탉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잠을 자고 개는 나무 아래 움푹한 곳에 와 잠자리를 폈습니다. 새벽이 되자 수탉은 버릇대로 "꼬끼오"하고 동이 틈을 알렸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여우는 침을 흘리며 나무 가까이 달려와 수탉을 꼬였습니다. "야, 네 목소리 한 번 멋지구나. 내가 너를 한 번 안아 주고 싶으니 어서 내려오느라" 여우의 못된 심보를 익히 아는 수탉은 "좋아요. 그렇담 먼저 저 아래서 잠자고 있는 문지기를 깨워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해서 안으로 들어와요"하고 말했습니다. 여우가 문지기를 찾다가 개의 발을 밝아 개가 깨는 바람에 여우는 개에게 물려 갈가리 찢겨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수탉을 속여서 자기의 양식으로 삼으려는 여우가 오히려 수탉에게 속아서 결국에는 개에게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응보란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입니다. 선을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고 악을 심는 자는 멸망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자식들에게 속아서 평생토록 고통 당하면서 살아가게 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야곱의 응보임을 기억합시다.

   
3. 노년의 삶을 슬프게 지냈습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와 바로 앞에 섰을 때 바로가 묻기를 "네 연세가 얼마냐"고 했습니다. 그때 대답하기를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 입니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노년의 삶이 편안하지 못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짐작컨대 요셉에 대한 편애 때문에 다른 자식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혀서 자식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사랑하는 아들을, 왕이 되는 꿈을 가지고 있던 아들을 심부름 보냈다가 악한 짐승에게 잃어버리게 된 것에 대한 애통히 그의 삶을 고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또 흉년이 들어 양식이 없으니 많은 식구 거느리려니 고통스럽고 애굽에 양식을 사러 보냈더니 양식은 사왔는데, 시므온을 남겨두고 오고, 또 베냐민까지 데려가야 되니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야곱은 이래저래 고통과 근심의 노년 세월을 보낸 사람입니다.
   이것이 이삭과 에서를 고통스럽게 했던 야곱의 응보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결과를 얻게 되고 그 결과가 어느 때까지 이어질지는 모릅니다. 잘 살아야 잘되는 결과가 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고, 사랑하고 살고, 덕을 끼치며 살고 다른 사람들에게 평강을 끼치면서 삽시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갑시다. 내 인생 노년이 평안해 질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