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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바의 언약 앞에서 우리는 이런 내용들을 살폈습니다. 야곱은 20년 간의 종살이를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가족과 가축들을 이끌고 라반 몰래 도망하여 밧단아람의 라반의 집을 나왔습니다. 양털을 깎으러 갔던 라반이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야곱 일행을 추격합니다. 그 추격의 이유는 드라빔을 라헬이 훔쳐 가지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추격 7일만에 야곱 일행을 만납니다. 야곱은 이 위태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위기를 모면합니다. 라헬은 드라빔을 잘 감추었고 결국 라반은 드라빔을 찾지 못합니다. 드라빔은 우상이기도 하지만, 재산상속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드라빔을 차후에 찾게 되면 발생할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라반은 언약을 제안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언약체결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이 언약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살펴보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보이는 것 라반과 야곱의 언약에서 돌무더기는 바로 언약의 증거물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계약서와 같은 것이지요. 드라빔을 결국 찾지 못한 라반은 나중에라도 후환이 없게 하기 위해 언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합니다. 라반은 아주 못마땅한 듯 말합니다. 딸들도 그들이 낳은 자식들도, 양떼들도 다 자기 것이지만, 이제 와서 자신이 어쩔 수 없으니 언약이나 맺자고 제안합니다.(1,2절) 현재 야곱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싫지만 인정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중에 드라빔이 발견되어도 상속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야곱도 여기에 대하여 좋게 생각합니다. (45,46절)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취하여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라반이 언약을 세우자고 제안을 하자 야곱은 기둥을 세우고 그곳에 돌무더기를 쌓습니다. 이것은 언약의 증표입니다. 보이지 않는 약속을 하는데 보이는 것으로 증거물을 삼는 의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아마 사람이 보이는 것을 믿길 좋아하는 특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돌무더기는 장차 이스라엘과 아랍 유목민간에 경계가 될 것이라는 걸 그들은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무더기 곁에서 먹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언약을 체결하기 위해 갖는 언약 전 성찬을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계약을 가지기 위해서는 서로 모여 회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원류가 오늘 성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반과 야곱의 언약에서 보이는 것은 식사와 돌무더기뿐입니다. 그러나 분명 그것 뿐은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하지 못함을 교훈 합니다. 보이는 돌무더기가 다가 아닙니다. 그 뒤에는 그들이 맺은 언약의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매사를 보이는 것만 볼 줄 알아서는 안됩니다. (고후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겉으로 보이는 것의 이면과 속내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그것을 보고 계십니다. 보이지 않는 것 1. 감찰하시는 하나님 두 사람의 언약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언약입니다. 혼란스럽던 라반과 야곱의 대치가 결국 호의적인 언약으로 이어지며 결론을 맺습니다. 인간관계의 결국을 아름답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잘 발견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두 사람이 체결한 계약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깊숙한 개입 속에 이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49절)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 피차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감찰하옵소서 함이라"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아무리 멋있는 약속을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계속 지켜보아 주지 않으면 헛것입니다. 원래 '미스바'는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북 길르앗의 한 성읍(삿10:17)과 팔레스틴 북부의 한 지방(수11:3,8), 가나안 땅에서 유다지파 분깃 안에 있는 곳(수15:38), 또 사무엘의 미스바 성회로 유명한 유대와 이스라엘 경계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한 성읍(수18:26, 삼상7:5) 등이 그것입니다. '미스바'라는 뜻 자체가 '망대, 감찰하다'입니다. 이 지명은 '갈르엣'이라고도 하는데, 히브리어로 '무더기'를 뜻하는 [갈]과 '증거'를 뜻하는 [에드]가 합쳐져 된 말입니다. 같은 뜻으로 아랍어로는 '여갈사하두다'라고 합니다. 야곱은 히브리어로 불렀고, 라반은 아랍어로 이 지명을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무더기'는 보이는 언약의 증거물이고 '증거'는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섭리와 증거를 기대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언약은 어떤 장소나 돌무더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돌무더기나 장소가 의미하는 바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사이의 모든 분쟁에 최종적인 증인이며 감찰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따르는 게 중요합니다. 바로 라반과 야곱의 언약엔 이것이 들어있습니다. 2. 언약의 의미 이 언약은 라반이 주도적으로 체결한 것으로 성경은 말합니다. (50절)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취하면 사람은 우리와 함께 할 자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너와 나 사이에 증거하시느니라 하였더라" 또, (52절)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않을 것이라" 그 내용은 단순합니다. 자신의 딸들을 박대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과, 서로 경계를 넘어 쳐들어오지 말자는 내용입니다. 불가침 조약의 성격을 띈 이 언약은 실은 그리 큰 영향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라반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7일 길이나 되는 곳에 와 야곱과 언약을 체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 또한 이곳이 그가 살 곳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살고 있는 하란으로 가야 합니다. 서로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리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행여부에 그 주안점이 있지 않습니다. 라반이 주도적으로 체결하지만 실은 라반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없는 언약입니다. 차라리 야곱에게 이익이 많습니다. 야곱이 고향을 찾아 떠난 것이 조금 전만 해도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언약을 체결함으로 라반은 야곱이 자신을 떠나 모든 가족과 소유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정식으로 승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억지로 언약의 객체가 되어 언약을 체결하지만 그 언약의 이익은 다 하나님의 사람인 야곱의 차지가 됩니다. 여기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개울을 친 사람은 라반이지만 동전을 주운 사람은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여러분 곁에서 역사하심을 믿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은 아주 조그만 언약체결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하는 라반과 야곱 두 사람이 맺은 작은 약속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보이는 돌무더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것입니다. 즉, 보이지 않는 이익이 더 크다는 말입니다. 여기서도 여실히 하나님의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게 중대한 작용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라반이 스스로 제안하여 맺은 언약이지만, 그에겐 손해만 있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맺는 것 같지만 야곱에게는 엄청난 이익이 있습니다. 누가 시작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주도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문제인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느냐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