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imr.co.kr |
야곱과 라헬의 만남 (창29장)은 야곱이 하란에 도착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슴생활을 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앞부분으로 야곱이 라헬을 만나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몇 가지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우선 야곱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그곳에서 라반을 알고 있는 목자들을 만납니다. 다시 라헬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이어 라반의 집으로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아주 순조롭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없는 형편이어서 쫓겨난 사람치고는 상당히 잘 풀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후에 기다리는 라반의 집에서의 종살이는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지만, 여기까지는 아주 순조롭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 숨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목자들과의 만남 (1-8절) 말씀은 야곱이 하란에 이르러 목자들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만남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길 설고 물 설은 곳에서 이렇게 라반을 알고 있는 목자들을 만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4,5절)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형제여 어디로서뇨 그들이 가로되 하란에서로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가로되 아노라" 길가다 맞닥뜨린 어떤 우물에서 하란의 목자들을 만났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라반을 아는 목자들을 만납니다. 나중엔 직접 라반의 딸, 나중에 야곱의 아내가 될 여인을 만납니다. 이 상황을 어찌 우연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비록 집에서는 쫓겨난 신세이지만 야곱이 약속의 아들이기에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성경은 분명히 (1절)에 "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라고 했습니다. 물론 야곱이 떠난 브엘세바에서는 720km쯤 떨어진 하란 근처를 말하는 것이지만, 당시 야곱은 거기가 하란인 줄 몰랐다는 의미입니다. 그냥 동쪽으로 2-30일 가다가 한 우물가에 멈췄는데 그곳이 바로 하란 근처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택한 백성인 성도들이 이토록 돌보신다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긴 여정에 지친 야곱은 우물을 만나자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곳에 떼를 지어 물을 먹이려고 늘어선 양떼들이 목자들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나의 형제여"하고 다가갑니다. 그만큼 사람이 그리워서이기도 하고, 당시 목자세계의 풍습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친절합니다. 오늘날 그들의 조상이 베두인들도 그렇습니다. 그렇지 못한 우리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친절을 베풀고 다가가니 뜻밖에 좋은 소식을 듣습니다. (6절)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가로되 평안하니라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단순히 라반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라반의 딸 라헬이 온다는 소식도 전해줍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향한 배려는 그 끝이 없습니다. 야곱은 이 말을 듣고 아직 밤이 안 되었으니 모이는 걸 기다리지 말고 물을 먹이고 가라고 목자들에게 말합니다. 라헬을 빨리 만날 심산이었습니다. 야곱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라헬과의 만남 목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목자들이 말한 대로 라헬이 양떼를 몰고 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야곱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 양떼들이 마시게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골육을 만난 기쁨에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아마도 이 울음의 의미는 친척을 만난 기쁨과 아울러 이곳까지 무사히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함에서일 것입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그 감격 또한 대단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만난 일은 한편으론 기쁜 일입니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론 고생길을 여는 일입니다. 그녀 때문에 종살이를 자처했으니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항상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겹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가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20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그렇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만난 게 행복이요 기쁨일 뿐입니다. 종살이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살면 행복합니다. 일이 고되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오래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오래 참는 게 사랑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며 사십시오. 그럼, 행복할 겁니다. 당시 고대근동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얻으려면 지참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야곱은 지참금이 없습니다 그러니 종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라반과의 만남 라헬과 야곱이 먼저 만나고 나중에 라헬이 안내하여 라반을 만납니다. (12절) 이하 말씀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생질이며 리브가의 아들이라고 밝히자 라헬은 달려가 아버지에게 이를 알립니다. 라반은 아주 기쁘게 야곱을 맞이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그곳에 오게 된 이유를 다 말했습니다. (13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매"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얼마나 할 얘기가 많았겠습니까? 에서와의 관계와 갈등, 에서의 분노를 사게 된 일, 결국 쫓겨나게 된 일, 라반의 집에서 아내를 취하라는 부모님의 명령을 받은 일 등을 낱낱이 말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다 들은 라반은 조카를 인정했습니다. (14절) "라반이 가로되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라고 합니다. '골육'이란 한 핏줄이란 말입니다. 처음 보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동생인 리브가의 아들이 틀림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그게 말이든 그게 행동이든 인정받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여기서 야곱이 라반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면 그의 앞길은 참담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그렇습니다. 신용사회라 하지 않습니까? 신용을 잃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살기 힘듭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생활을 하시는 신앙인들이길 바랍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조카로 인정한 라반은 조카에게 줄 마땅한 것들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한 달간 같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공짜로 그렇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골육으로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다음으로는 보수를 책정하자고 합니다. (15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아마도 이 제안은 한 달 동안 지내면서 야곱이 일을 열심히 해서 좋은 목자로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한 달 동안의 삶을 통하여 충분히 타인의 신뢰를 이끌어 낼 정도로 성실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니라 상대편에서 계약을 체결하자고 나오도록 만들었습니다. 만약 자신이 일을 시켜달라고 하면서 계약을 맺었다면 좋은 보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쪽에서 먼저 계약을 하자고 하니 그는 사랑하는 라헬을 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인정받고 결과를 기대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함을 교훈 얻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야곱이 하란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목자들과도 라헬과도 라반과도 우연한 만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속에 이루어진 만남입니다.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속에 깊숙이 개입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신하고 맡기는 삶을 사십시오. 사랑하며 사십시오. 행복한 삶이 그대의 것입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