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imr.co.kr 인터넷 목회정보


의인의 대표성
(창세기 18 : 22 ~ 28)

역사가 토인비는 세계 21개의 문명 중 대부분이 몰락했는데 내부의 부패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로마제국도 훌륭한 제국이었으나 내부의 부패로 인하여 몰락했습니다. 역사 속에 로마제국처럼 훌륭한 체계를 수립한 국가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멸망당하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혼의 증가와 가정의 파괴였습니다. 둘째는 과다한 세금부담과 지나친 소비풍조였습니다. 셋째는 지나친 쾌락의 추구와 스포츠의 잔혹화였습니다. 넷째는 지나친 군비의 증강이었고 다섯째는 종교의 다양성과 혼란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강성한 로마가 급속히 멸망하였습니다.

죄는 나라로 망하게 하고 의는 나라를 왕성하게 만듭니다.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고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만듭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의 비극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간청으로 의인 10명만 있어도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이 조건도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심히 타락하였고 부패하였습니다. 결국 무서운 심판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이 성을 구하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간청에 관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려는 계획을 전해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체면 불구하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간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다소 무례해 보이는 아브라함의 간청을 꾸짖지 않으시고 들어주셨습니다. 의인 10사람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의인의 대표성"이라는 주제가 부각됩니다. 오늘은 이러한 제목을 중심으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환대의 아름다움

이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나그네 환대에서 시작됩니다. 어느 날 정오 즈음에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 세 명의 나그네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마자 달려가서 집안으로 들어와 쉬었다 가라고 청하였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8장 1-8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급히 달려가 좋은 송아지를 잡아 요리하여 나그네들을 대접하였습니다. 그것은 극진한 환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그네들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죄악상을 살피러 가는 하나님과 사자들이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다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을 극진히 대접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나그네를 대접하는 자세가 돋보입니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발적인 섬김이었습니다. 마지못해 하는 대접이 아니었습니다.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대접이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단어들이 여러 개 나옵니다.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였다고 하였습니다(2절). 또 6절에는 '급히', '속히' 준비하여 대접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대접하였습니다(7절).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나그네를 환대했습니다. 언제 보상을 기대하는 대접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안타까운 마음에서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과 사자를 환대하였습니다.

사랑받는 아브라함

나그네를 환대하던 아브라함이 결국 하나님을 대접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8장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증거가 여럿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일년 후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10절). 이 말을 듣고 아브라함도 웃고 사라도 웃었습니다. 그러나 일년 후에는 정말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너무 좋아해서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웃음)이라고 지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비밀의 일을 알려 주셨습니다. 17절의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하려는 것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시고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둘러보고 심판하시려는 계획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신 증거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떠나지 않으시고 잠시 더 머물러 계시면서 간구할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거기를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오실 때는 하나님과 두 사자 즉 세 분이 왔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의 집에서 하나님은 잠시 더 머무시고 두 사자만 소돔성으로 보냈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는 사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떠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원래 뜻입니다. 이러한 호의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 라를 위하여 간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염치 불구하고 몇 번이나 내용을 바꾸면서 간청했습니다. 처음에는 소돔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45명으로, 40명, 30명, 20명으로 계속 낮추어 가며 간청했습니다. 나중에는 의인 10명만 있어도 소돔성을 용서하여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기꺼이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계속적인 간청을 꾸짖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들어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께 사랑 받는 성도가 되십시다. 하나님께 사랑 받는 것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의인의 중보기도

이제는 의인의 중보기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인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본문을 보니 하나님은 의인의 중보기도를 기쁘게 받으시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토록 말을 바꾸어가며 간청했는데도 하나님은 그를 꾸짖지 않으시고 끝까지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만 있었어도 멸망당하지 않을 뻔했습니다. 이처럼 의인의 중보기도는 위력이 있습니다. 시편 34편 15절에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야고보서 5장 15절에는 "의인의 기도는 역사 하는 힘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기도도 기쁘게 들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죽은 줄 알고 대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몹시 진노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2장 이 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진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모세에게 단호하게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여짜오되 슬프로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32:31-32). 결국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의인의 중보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널리 알려는 조지 뮐러는 친한 친구 중 믿지 않는 5명을 위하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5년 후에 한 친구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또 10년 후에는 두 명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또 25년이 지났을 때 한 친구가 예수를 믿고 크리스찬이 되었습니다. 뮐러는 죽는 날까지 마지막 한 친구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뮐러가 죽은지 몇 달 후에 그 마지막 친구까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뮐러는 그를 위하여 죽는 날까지 52년간 기도한 것입니다. 결국은 그가 작정하고 기도한 것이 응답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의인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도 하시되 중보기도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셔서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중보기도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의인의 대표성

이제 마지막으로 의인의 대표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에 보면 의인 10명만 있었어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인의 대표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병들고 타락하여 부패해도 그 중에 신실한 의인들이 있으면 그 의인들로 인하여 하나님은 심판을 보류하십니다. 군사력이 나라를 지키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경제력으로도 한계가 있습니다. 나라가 튼튼하려면 의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전부 의인이 되어야 하나님이 은총을 내리시는 것 아닙니다. 모두가 의인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모두가 의인될 수도 없습니다. 소수의 의인이라도 좋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인하여 이 사회를 붙들어 주십니다.

열왕기하 13장에 엘리사의 마지막 사적이 있습니다. 엘리사가 세상 떠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옹 요아스가 울며 부르짖습니다. 요아스가 엘리사를 향하여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시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의미 있는 말입니다. 엘리사가 있음으로 나라가 든든했었다는 고백입니다. 선지자 엘리사 한 사람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나라를 지켜 주셨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 의인의 대표성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사회를 대표하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의인이 득의 하면 큰 영화가 있습니다(잠28:1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들이 즐겁게 됩니다(잠29:2). 잠언에는 이런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의인들이 있음으로 사회가 형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들 위에 계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대표성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이 역할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세상 따라 적당하게 살고 싶은 욕망도 일어납니다. 때로는 나 하나쯤 잘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혼자 잘난 척 해봐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유혹을 이기십니다. 잘난 척 한다고 손가락질하더라도 잘난 척 좀 하십시다. 의인의 대표성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겨나갑시다. 할 수 있는데 까지 해 보십시다. 하나님 앞에서는 의를 지키는 영적 군사가 더 위력이 있습니다. 나라의 군사력만 의지하지 마십시오. 나라의 경제력만 쳐다보고 있으면 실망합니다. 의를 지키는 영적 군사가 많아야 나라를 튼튼히 설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석교 가족 여러분!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의를 지키는 영적 군사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