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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중보기도
                      
  
(창세기 18:16-33) 

하나님과 천사를 극진히 대접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낳을 것이란 축복을 해주신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의 운명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이어 아브라함은 의인들을 악인들과 함께 멸망시키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나님께 간언합니다. 50명의 의인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애원은 결국 의인 10명이 없어서 좌절에 부딪칩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비밀과 소돔성을 위한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 소돔성의 타락 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돔의 사해 남단에 있는 소알 성읍 근처의 지역입니다. 소돔은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등과 함께 싯딤 골짜기에 있었습니다.(창14:2-3) 소돔이란 뜻 자체가 “죄악의 도시”의 대명사가 된 것은 이 도시가 성적 타락과 사치로 이름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계획 

아브라함의 극진한 대접을 받은 사자들은 다시 가던 길을 갑니다. 그들은 소돔으로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남아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창18: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마치 아주 친한 친구와 같이 대화하시는 모습입니다. 좋은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의 비밀을 아브라함에게 알려 줄까요? (창18:18-19)이 이유입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언약을 하셨기에 소돔에 관한 비밀도 알려주신다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며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될 것입니다. 그의 후손이 대대로 하나님의 도를 지켜 행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계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에게도 그랬습니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실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다름 아닌 소돔의 심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부르짖는 탄식이 들렸다고 하시면서 사실여부를 알아보시겠다고 하십니다. 소돔의 죄악은 하나님께 다 드러났습니다. 죄악이 심히 중하다는 표현을 쓰십니다. 이미 어떤 죄인지 다 아시고 계십니다. 주님 앞에 드러나지 않을 게 어디 있겠습니까? 

중보기도 

자신의 조카가 살고 있는 소돔에 심판이 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의 논리는 (창18:23)에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성의 심각성을 모른 것 같습니다. 의인 50명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를 너무 좋게 본 것입니다. 항상 사람들은 자신을 좋은 점수를 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웃인 조카의 땅에 대하여 관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브라함의 오판이었습니다. 의인이 50명은커녕 45명도, 40명도, 30명도, 20명도, 10명도 없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하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지만 워낙 타락한 도시입니다. 당시 소돔의 인구가 몇 명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도시라 해도 의인 10명이 없다는 것은 이곳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여실히 증명합니다. 

 

그런데 당시 소돔은 큰 성입니다. 비옥한 평지에 위치한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살 던 곳입니다. 그 중에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말한 50명은 아주 작은 숫자입니다. 그러기에 그만한 명수는 의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25절)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했습니다. 50명이라도 억울하게, 공정한 재판이 아닌 것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에 의지하여 의인을 살려달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요구는 결코 자신을 잘못을 해놓고 하나님의 긍휼에만 의지하려는 나약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맹목적이고 기복적인 주술신앙도 아니며, 지식에만 근거한 지식신앙도 아닙니다. 너무도 당연한 하나님의 속성인 정의를 아는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인 10명이 없습니다. 그의 기도 속에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사랑이 담긴 기도 

하나님과 사자들을 대접할 대도 그랬지만, 그는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과거에 자신을 버리고 좋은 땅을 향해 갔던 조카 롯을 그리 생각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 기도는 철저하게 이웃을 생각하는 기도입니다. 자신의 번영이나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의 중보기도는 이타주의의 산 증거가 됩니다. 중보기도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멸망을 즐기는 삶이 아니고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것을 막기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소돔은 악한 곳입니다. 우리는 그런 곳이라면 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이 망하지 않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같은 입장인데 아브라함은 망하길 바라는 게 아니고 정말 안타까워 기도합니다. 그 기도에 사랑이 베어있습니다. 

2. 최선을 다하는 기도 

그냥 해보는 기도가 아닙니다. 간절함이 있습니다. 50명에서 시작한 그의 기도는 10명이 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어떻게 해서든 소돔 땅에 내릴 심판을 피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이 기도하는 아브라함의 모습 속에는 거룩한 용기가 있습니다. 신앙적 담대함이 하나님 앞에 이토록 담대한 외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습니다.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하는 표현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합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선지자의 간구와 아브라함의 간구가 닮았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강하게 소돔성을 용서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고, 남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아끼지 않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정말 안타까운 중보기도를 보았습니다. 간절한 아브라함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타락하고 죄악으로 가득한 소돔은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돔은 망했으나 아브라함은 그 기도가 그냥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와 후손의 복으로 돌아옵니다. 중보 기도하는 이들의 자손은 잘됩니다. 여러분이 중보 기도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라를 위하여, 교회와 복음사역을 위하여, 선교사들과 목사들을 위하여 … 너무 기도의 제목이 많지 않습니까? 혹 그 기도가 이루지지 않는다 해도 기도한 분과 그의 후손이 복을 받습니다. 이런 중보기도 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