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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길을 달려가자(1)빌립보서3:12-16
이 연설을 들으면 마음에 깊은 감동이 오고 마음에 뜨거운 눈물이 납니다. 세상에 꿈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데, 유독 루터 킹 목사님의 연설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적셔지는 것은 저에게도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살아가는 교인들을 볼 때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 대한 기대와 꿈이 큰 목사입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꿈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며 귀하게 쓰임받는 것을 생각하면 기쁘고 큰 기대가 되어서 눈물이 절로 납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잠도 오지 않습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도 굴하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이들이 제게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길지 않은 10년의 목회를 하면서 저는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며 힘썼던 사람들을 위해서 말씀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었던 일이 소중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걸어도 좋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제게는 귀했고 그들을 위해서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그 시대와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특별히 지도자로 세우는 민족이 있고, 지도자로 세우는 교회가 있고, 지도자로 세우는 믿음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찌기 이스라엘을 선민백성으로 삼으셔서 지도자 민족으로 일을 하셨고,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셔서 믿음의 사람들이 따라오도록 일을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그 시대마다 교회를 복 주시고 성장시키셔서 지도자인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들을 중심으로 다른 교회들이 본받아 그 교회를 따라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러한 교회와 성도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좋은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귀하게 쓰임받는 영광에 이르게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 시대를 깨우며 영향력을 끼치는 능력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것은 무엇보다도 귀하고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이 생명을 길인 줄로 압니다. 이러한 길은 얼마나 복되고 귀한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 좋은 교회의 교인들이 세상의 방법대로 살면서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과 가족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고 노력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은혜를 받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하여 샌프란시스코와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생명을 걸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무수히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꾼이 되기 위하여 생명을 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은 어느 것보다도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께 생명을 걸고 생명의 길을 달 려나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에는 생명을 걸어도 좋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생명의 길을 달려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몇 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에릭 프롬이라는 학자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인간을 소유형의 인간과 존재형의 인간으로 나누었습니다. 말이 좀 어렵습니다만은 소유형의 인간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소유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말하고, 존재형의 사람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인간답게 존재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유형의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하는 것에다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여 삽니다. 말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곳에다 모든 초점을 소유에 두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인 지위를 높이 소유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문을 통하여 많은 지식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을 많이 소유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에다 삶의 목적을 두고 이러한 것들을 소유하면 삶이 기쁘고 즐거운 것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행복하고 즐겁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 얼마간은 그럴지 모르지만 그러한 인생이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도 명예가 삶을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높은 학문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삶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해서 부유하다고 할지라도 물질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세상에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이러한 부류에 두고 살아서 행복하고 부자인 것 같은데 실상은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모든 것들이 일시적으로는 삶을 의미있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소유는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유형의 사람은 세상을 잘못 사는 것입니다. 반면에 존재형의 사람은 인간다운 가치에 삶의 의미와 목적을 두고 삽니다. 어떠한 일이든지 그 일이 가치가 있으면 그곳에 의미를 두고 살아갑니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답게 존재하는데 관심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존재형의 사람들은 소유에 두지 않고, 일에다 두고 삽니다. 내가 어떠한 일을 하느냐? 그 일에 가치가 얼마나 있느냐? 내가 누구를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습니다. 그것은 복된 일입니다.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하여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입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하여 입느냐가 중요합니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하여 내가 돈을 버느냐가 중요합니다. 공부를 얼마나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하여 공부를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가치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가치있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생명을 걸어도 좋을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무엇인가를 두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젊은이들에게 자주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젊음을 투자할만한 것을 찾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젊은이가 아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젊음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젊음이잖아요. 젊었을 때에는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가 무엇인가를 밤을 새워가면서 고민하기도 하고 발버둥쳐보기도 해야 합니다. 젊음을 바칠 만한 일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젊음을 투자하고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젊은이가 그러한 용기와 패기도 없이 삶의 목적과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찾지도 못하고,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하면서 헤멘면서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만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쌍한 젊은이입니까? 저는 그러한 사람은 젊은이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한 사람이 무슨 젊은이입니까? 젊은이가 아니예요. 이러한 사람은 인생을 다 살고서 다음 단계인 요단강 건너갈 준비를 하는 사람이지 무슨 젊음이입니까? 나이와 상관없이 젊다고 생각이 되시는 여러분, 여러분의 젊음을 예수님을 위하여 바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생명을 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충성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실 것입니다. 꿈꾸지 못한 놀라운 일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날마다 꿈꾸는 것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어거스틴은 젊었을 때에 삶의 목적을 세상의 지식이나 철학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향락에서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고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어거스틴은 나이 30이 지나서야 삶의 목적을 바로 찾았습니다. 삶의 목적을 예수님께로부터 찾았습니다. 그리고 삶의 목적과 가치를 예수님께 두었습니다. 그 후로는 오직 예수님을 향하여 전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그는 성자라고 부름을 받지 않습니까? 지난 5월 31일자 타임지에서 “A Surge of Teen Spirit(10대의 심령 부흥)”라고 하는 제목의 중요한 기사가 났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4월 20일날 있었던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에릭 헤리스와 딜런 클레볼드가 총으로 난사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타임지가 그 사건을 소개하면서 그 죽은 사람 가운데 17살 된 캐시 버넬(Cassie Bernall)이라는 여학생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이 범인들이 총을 캐시에게 들이대고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때에 이 캐시가 총구 앞에서 “There is a God, and you need to follow along God's path.”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을 뿐만 아니라 너도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할 것이다.”라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범인들은 총을 쏩니다. 이 여학생인 캐시는 이 한마디를 하고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때에 그러한 모습을 지켜본 많은 학생들이 깃대 앞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냥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친구들은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을 뿐 아니라 너도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외치며 죽었던 이 캐시를 “작은 순교자”라고 불렀습니다. 비록 17세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던 캐시는 삶의 존재와 가치를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총구 앞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17세를 살면서도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캐시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 뒤에 전 미국에서 영적 운동이 퍼져서 10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숨을 거둔 딸에게 그의 부모는 말하기를 “내 딸 캐시는 이 일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다.(Cassie was born for this.)”고 했습니다. 지난주(99년 9월)에 딸의 신앙고백을 담아서 어머니가 책을 냈습니다. “그녀는 그렇다고 말했다.(She said yes)”<캐시 버날의 믿기지 않는 순교>라는 제목인데 160페이지 정도 되는 얄팍한 작은 책자입니다. 서점에 가면 있을 거예요. 한 권 사서 읽어도 좋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비디오와 영화도 제작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 캐시는 한 때는 불량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술과 마약에 손을 댔으나, 기독교 학교로 옮긴 후로부터는 반성을 하고 2년 전부터 새로운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복음으로 무장한 캐시는 암환자들을 돌보아 주었고, 갱들과 마약중독자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캐시는 “목숨을 버릴만한 일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산다고 할 수 없다”는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말을 마음에 담고 사건 당일 학교에서 친구들과 의견을 나눌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존재형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소유형의 사람입니까? 삶의 존재와 의미를 깨닫고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가는 존재형의 사람이십니까? 아니면 소유에 집착하고 소유에 만족하며 사는 소유형의 사람이십니까? 삶의 목적과 가치를 분명하게 정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적과 가치를 예수님께 두실 수 잇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데 젊음을 바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데 생명을 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일은 평생 후회하지 않고 보람되고 복된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삶의 우선 순위를 바로 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잘 압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를 우선 순위에 두면 하나님 나라와 의는 멀어진다는 것도 잘 압니다. 잘 알면서도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세상 식으로 힘들이지 않게 살면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되라고 부단히 유혹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여기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식으로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참 기쁨과 맛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을 하신 후에 사탄이 제일 먼저 시험한 것이 먹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험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셨기 때문에 먹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떡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먹는 것인 떡과 하나님의 말씀을 혼동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떡이 말씀보다 앞서게 생각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삶의 원칙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4:4)”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떡이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과 떡이 우리에게 있어서 모두 소중하지만, 그 우선 순서가 바뀌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선 순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삶의 우선 순위를 바로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우선 순위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하여 떡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말씀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 순위를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에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삶의 여러 문제들이 떡으로 해결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 교회 성도들의 구성원들이 다양해 질 것입니다. 이중에는 직장인도 있을 것이고, 사업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학업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마다 많은 계획을 세우고 뜻을 이루기 위하여 땀을 흘리며 노력할 것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일은, 여러분들이 하는 일 중에서 삶의 우선 순위가 어떻게 되었는가 확인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민사회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사는 일은 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일보다 더 힘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우리의 우선 순위를 확실하게 하고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 땅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보다도 놀라운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 중심으로 우선 순위를 정하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마찬가지고,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곳에도 많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 중에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나는 학위를 하고 한국으로 갈 건데요. 그러기 때문에 공부하느라고 시간이 없어요. 하면서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신앙 생활을 게을리 하며 우선 순위를 바꾸는 분들이 혹시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한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돼요. 예, 좋아요. 그런 분들 말이 맞아요. 공부하고 고국으로 가세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곳에 보내신 것은 공부만 하기 위함이 아닌 줄로 압니다. 신앙생활을 위해서도 유학을 온 것입니다. 고국에 가서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실력도 쌓아야 되지만 신앙생활의 영력도 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공부도 책임져 주시고 여러분의 삶도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 잡혀서 예수님께 목표를 두고 달려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숙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하든, 삶의 우선 순위를 바로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좋은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삶의 목적과 우선 순위가 분명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유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치에 의미를 두고 살아서 예수님을 위해서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삶의 우선 순위를 떡에 두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두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고, 여러분의 삶은 평생토록 빛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만 바라보고 달려가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 꿈꾸는 것 같았다고 고백하며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다 사실 수 있는 복된 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