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드릴 것인가?
갈6:6-10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쓴 " 기탄잘리" 라는 작품에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기탄잘리는 ' 신에게 바치는 노래' 라는 뜻이다.
나는 마을 길로 이집 저집을 구걸하며 다녔습니다. 그 때 갑자기 님의 황금마차가 멀리서 마치 꿈처럼 나타났습니다. 나의 희망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나의 불운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님이 내게 베풀어 주실 식물과 재화를 기대하며 나는 님이 타고 있는
황금마차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황금마차가 내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님과 시선이 마주치자 님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내려오셨습니다. 나는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때 느닷없이 님은 오른 손을 내미시며 말씀하셨습니다. ' 그대는 내게 무엇을 주려고
왔는가?' 아! 거지에게 구걸을 하시려고 님이 손을 내미시다니, 그건 얼마나 님다운 농담입니까? 여하튼 나는 얼떨떨하며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그제야 내 전대에 작디작은 낟알 하나를 꺼내어 님에게 드렸습니다. 그것을 받아든 님은 내게는 아무 것도 주시지 않고 그냥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도 저물어 갈 즈음 바닥 위로 내 자루를 털었을 때에 그 초라한 누더기 속에서 작디 작은 황금 한 낟알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그 때 나의 놀라움과 뉘우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나는 땅을 치면서 울었습니다. 님에게 나의 전부를 바칠 마음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하면서 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걸인은 님을 만나기를 그렇게 원했다. 그가 님을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기 위해서 님을 만나고자 했다. 그토록 님을 만나기를 원했는데 막상 만나고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가 얻었던 것은 고작 황금 낱알 하나
였다. 그래서 이 걸인은 님을 만난 후에도 평생 걸인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기탄잘리의 내용을 명상하면서 주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우리는 시에 나오는 걸인처럼 항상 무엇인가 주님으로부터 얻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만나고 싶어했던 님을 만난
걸인은 님이 오른 손을 내밀자 당황했다. 그는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당연했고 습관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님을 만났을 때 님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에 당황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님에게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거지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거지로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생각의 전환을 가지자는 것이다. 믿음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만나기를 원한다.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 시킨다. 언제나 우리는 달라는데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에게 무엇을 드릴까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눅6:38) "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황금마차를 타고 온 님을 만난다는 그 자체가 걸인에게는 최고 축복의 기회이다. 님이 손을 내밀었을 때, 그는 자신의 전체를
드렸다면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걸인으로 살지를 않았을 것이다. 아프리카 흑인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리빙스톤이
어릴때에 요즘 말하면 교회학교에서 예배를 볼 때 였다. 예배 중에 헌금 시간이 되었다. 리빙스톤은 자기의 호주머니를 뒤졌지면 돈이 없었다.
리빙스톤은 생각하다가 작은 주먹을 헌금 바구니에 넣고 이렇게 기도를 했다. ' 하나님! 지금 저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은 없지만 저는 후에
어른이 되어서 제자신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다. 리빙스톤은 나중에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되어서 일생을 주님을 위해 자신을 바쳤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기를 원한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만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내게 있어 가장 좋은
것을 드리기위해서 만나야 한다. 오늘의 본문에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 하셨다. '자기의 육체를 위해서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였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심는 것과 드리는 것을 동일시
하고자 한다. 주님께 무엇을 드릴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고자 한다.
1. 목슴을 드려야
한다.
(요한복음13:24-25)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목슴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것을 드리는 것이다. 목숨을 드려야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마16;24)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 했다. '십자가를 집니다'는 말은 주님처럼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말이다. 주님을 위해서 죽는 것 보다 더한 것은 없다. (눅 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마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자는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버리지 아니하고 얻기만을 바라는 자는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졌을 때에 부활의 첫 열매가 되고 구원주가 되셨다.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라. 그리고 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원한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가장 신실한 주의 종이 될 것이다.
2. 육체를 드려야
한다.
육체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시간, 능력, 지식, 노력, 경험, 등 육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님을
위해서 드린다는 것이다. 썩어질 육체를 주님께 드려서 우리는 영생하는 육체를 얻는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시간과 노력과 능력은 작은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것으로 하늘의 집과 하늘의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의 몸을 얻는 것이다. 아무리 하늘나라에 집이 있고 땅이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없으면 하늘나라는 내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3. 재물을
드리는 것이다.
주님을 만났다.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드릴 수 있는가? 가장 쉽게 드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재물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재물을 바치라고 여러 곳에서 말씀하신다. 농부가 한 알의 밀을 땅에 심을 때에 그 한 알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많은 수확을 염두에 두고서 씨를 뿌린다. 많은 수확을 거두기를 원한다면 많은 것을 심어야 한다. 주님께 많은 것을 드려야 한다. 이것은
법칙이다. 농부가 많은 것을 심을수록 더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생활에서 환경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법칙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시119:56) "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 니이다".
여러분의 환경은 여러분에게 복음의 말씀을 따라 어떤 것도 심을 것이 없다고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분명하게 우리가 환경에
지배당하면 결코 심지 못하리라는 것을 말해 준다. (전11:4) "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여러분이 심지 아니하면 거둘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이 어떤 조건에서든지 심으라고 말씀하신다.
(전11:6) "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 이니라" (고후9:60 "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만이 거둔다" 고 하였다. 우리는
주님께 작은 알갱이 하나만 드리는 걸인이 되지 말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드리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사람들처럼 '
힘에 지나도록 '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이제 사람이 생각하는 가난의 법칙을 따르던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적인 법칙을
따르던가 하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 선택의 결과는 우리의 책임이다.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요한 삶을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