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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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 (고린도전서 16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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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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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을 맞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 그동안 지었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허물을 감싸
주시옵소서.
- 지금까지 살았던 11달 때문에 12월을 우습게 보지 않는 겸손함을
갖기 원합니다.
- 힘들었던 11달 때문에 12월까지도 포기하지 않는 삶의 용기를
주시옵소서.
- 남은 날들이 복되도록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옵소서.
- 육체의 병든 이들, 상하고 아픈 심령을 가진 마음에 병든
이들,
- 경제적으로 병든 이들, 영적으로 병든 이들
- 치료 받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군대에, 객지에 있는 이들, 병상에 누운 환자들,
- 요양원이나 양로원 등에 수용된 외로운 이들에게
- 하나님, 그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도 허락하여주시옵소서.
- 인터넷을 통해 기둥교회 예배를 동참하는 이들
- 저들의 형편과 사정을 기억하여 주시되
- 저들이 예배의 자리에 찾아 나갈 수 있는 조건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이 예배를 하나님께서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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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직접 여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29절에 직접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하나님이 보내신 자, 다시 말해서 자기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신학대학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고, 전도사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 잘 믿는 여러분이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주일 성수하는 것… 등이 모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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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예수믿는 사람들, 현대인들의 문제는 모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나 잘 알면서도 아는대로 행치 않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한마디로 너무 잘났습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들도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기독교 TV를 시청하고, 또
비디오 테이프나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서 유명하다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습니다. 그래서 귀가 커져서 얼마나 아는 것이 많은 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는 대로 행치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에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2장 26절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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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랑으로 행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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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일반적으로 4가지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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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능적인 사랑 - 스톨게(Storge)
- 혈연관계에 있는 사랑입니다. 호적에서 뺀다고 어쩐다고 해도 혈연관계는 법적으로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이 본능에 의한
사랑입니다.
- 2. 이성적인 사랑 - 에로스(Eros)
- 이성관계에서의 사랑입니다. 남녀 간에 눈빛이 서로 맞아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 어떤 분이 자신이 교제하고 있는 분을 제게 소개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전에 제가 멋있는 사람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아닌 것 같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아닌 것 같다"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에 대해서 함부로 말씀드려서 안됐습니다만, 그분은 제 눈으로 보기에 이상하게 생긴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저 보고 "멋있죠?"라고
묻는데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좀 아닌 것' 같았는데… 다 제 눈에 안경입니다. 이것이 남녀 간의 에로스의
사랑입니다.
- 3. 사회적인 사랑 - 필리아(Phillia)
- 사회적인 사랑, 즉 스승과 제자간에 서로 존경하고 아끼는 것 같은…, 어떤 관계에서 오는 사랑을 말합니다.
- 4. 희생적인 사랑 - 아가페(Agape)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시키신 것 같은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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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사람들은 스톨게의 사랑, 에로스의 사랑, 필리아의 사랑, 아가페의 사랑 속에서 혼돈하고 갈등합니다. 주일이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혈연관계에 있는 조카가 결혼한다고 할 때 '교회를 가야 할까, 결혼식에 가야 할까… 망설이며
갈등하다가 하나님 오늘은 좀 참아 주십시오.'하고 혈연관계를 따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애인이 오늘 꼭 만나자고 할 때
"하나님! 저도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시집은 가야겠습니다."하고 그쪽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사랑 때문에 갈등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런 갈등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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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는 성도가 가질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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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 말씀인 고린도전서 16장
14절에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는 말씀의 '사랑'은 아가페적인 희생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신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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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 1. 내 하나님
- - 시 118:6-7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 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 좋은 집사님의 하나님, 믿음 좋은 아내의 하나님, 믿음 좋은 목사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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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내 하나님"과 "내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 2. 내 교회 - 하나님의 조직(교회)
- 하나님께서 세상에 이루어 놓으신 조직인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데 교회는 나가기 싫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조직인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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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역사를 통해서 볼 때 교회에는 정말 지저분하고 더럽고 추한 역사가 많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웃기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입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받고, 축도를 받고, 안수를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속한 교회에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이 교회 저교회 여기 저기 다니면서 드립니다. 그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입니다. 자기
교회, 자기 제단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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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타고의 감독을 지냈던 '키프리아누스(Cyprianus)' 발음에 따라서는 '사이프리아누스'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258년에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순교를 당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어머니인 교회가 없다면 아버지인 하나님을 볼 수 없다."
- 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 교회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그런데 방주에는 온갖 짐승이 다 모였습니다. 간혹 교회에서 "아유, 이 기둥교회에 저 돼지
같은 아무개 꼴 보기 싫어서 다른 교회에 가야지 못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회에 가면 거기엔 더 큰 돼지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방주에는 돼지가 있고 각종 짐승 같은 사람이 다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기둥교회에 호랑이가 있다고 다른 곳에
가면 더 큰 사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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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각종 짐승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함께 어울려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거부하고 외면하면
스스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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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하나님", "내 교회"가 있는 사람은 "내 목자"도 있어야 합니다.
- 3. 내 목자
- 집사, 권사, 장로, 목사 등 이런 관계에 있는 사람들 모두다 사랑하고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고
성찬을 집례하고 축도하는 목사와 바른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 여러분 가운데 '고신일목사'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기둥교회에 와서 설교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손을 들고
축도를 하는데 '아멘'이라고 하겠습니까? 떡과 포도주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성찬을 분급하는 그 성찬을 받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목회자와
'목양관계'를 바르게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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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자는 좋은 교회를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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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12월이 되면 이 교회 저교회 방랑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연말까지 이 교회에 다녀 보고 맘에 드는
교회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잘 들으십시오. 예배자는 좋은 교회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집에서 가까운 교회가 좋은 교회는
아닙니다.
- "집에서 가까운 교회가 좋은 교회이며 가까운 교회에 출석해야 한다"고 열을 내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그렇습니까? 가까운 곳에 유치원이나 학원이 있으면 무조건 그리로 아이를 보내나요? 가까운 곳에 식당이 있으면 거기만
갑니까? 실력이나 적성 그리고 장래희망에 상관없이 가까운 곳에 대학이 있으면 무조건 그리로 가나요? 자동차를 두 번 세 번 갈아타고 하숙을
시켜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합니다.
- 그런데 만약 집에서 가까운 교회가 좋은 교회라면, 정말 믿음 있는 사람은 집을 정하기 전에 좋은 교회를 정하고 그
교회 가까운 곳에 집을 정하는 것이 옳은 순서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곳이 좋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편의주의적인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일뿐 신앙적이지는 못한 사람들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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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교회는 멀어도 다닐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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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교회입니다.
- 설교자는 성경을 설교하며 성경말씀대로 살라고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 2) 생명력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 살아 움직이는 교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일하자고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 3) 하나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리려고 애쓰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 저는 요즘 답답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애쓰기보다 "어떻게 하면 모인
사람들이 즐거울까,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재미있을까"에 관심이 있는 목회자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어야
하지, 사람들의 흥미를 위하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 4) 좋은 교회는 하나님 한 분이 중심이고, 하나님 한분의 눈치를 보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입니다.
- 제가 강단에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어떤 장로님의 눈치를 살피고 어떤
말많은 집사님의 눈치를 보고 교회에서 일 잘 하고 사회에서어떤 지위에 있는 권사님의 눈치를 보고 '이런 설교를 하면 그 사람이 좋아할까'하며
사람의 눈치를 보고 신경쓰며 목회를 한다면 여러분은 이 기둥교회를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 하나님 한 분만의 눈치를 살피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회를 하려고 애쓰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 5) 좋은 교회는 평안한 교회입니다.
- 제가 언제나 기도할 때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강조하는 것이 "평안"입니다. 성경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했습니다. 그렇다면 평안을 깨는 사람은 마귀의 자식입니다. 교회가 평안해야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평안한 교회를 위해 애쓰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평안한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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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에 기둥교회에 등록한 분들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기둥교회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담임목사의 선물을
걷습니다. 금년에도 선물을 현찰로 걷을 것입니다. "뭐 이런 교회가 다 있나"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96년도부터 그렇게 해 왔는데,
제 생각에 성탄절이 되어도 목사와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눌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바른 목양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심방을 가서 물어보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마음은 다 있는데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잘 모르고 기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양말
하고 싶은 사람은 양말 값, 넥타이 하고 싶은 사람은 넥타이 값으로 현찰을 주면 더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96년도부터 성탄절이 되면
새벽송을 돌면서 선물값을 걷습니다. 그리고 매년 성탄절에 여러분은 목회자를 위해 선물을 보내고 저는 그것을 구별하여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푸는
일을 합니다. 금년 성탄절에도 여러분들이 혹시 봉투를 얇게 넣을까봐 제가 아주 멋진 선물을 드리려고 벌써 마련해 놓았습니다. 교회는 목양관계가
바르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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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서 일꾼을 세우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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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교회에서는 새해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새 일을 위하여 새로운 일꾼을 세웁니다. 어떤 일이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위한 것이고, 목회자가 하는 일을 나누어 하기 위해 일꾼을 세우는 것입니다.
- 보통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을 '집사', 권면하고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을 '권사', 기도하고 목회자를 도와 일하는
'장로'로 각기 직분을 맡깁니다. 그런 일하는 사람은 '봉사의 일'을 맡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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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서 일꾼을 세우는 이유는
- 1. 사도들이 바쁜 것을 돕게 하려고(행6:1)
- 교회 집사, 권사, 장로는 목회자를 대신해서 일할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그 교회 장로님이 "저는 이 교회의 야당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야당이요, 교회에서 일꾼을 뽑을 때는 목회자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세우는 것인데, 야당이라니요. 교회에는 야당을 뽑는 곳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스스로 야당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교회에서 나와야 합니다. 나와서 갈 교회가 없으신 분들은 기둥교회로 오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는 야당이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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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일꾼은
- 2. 봉사하는 일을 합니다(행6:1).
- 교회에서 집사, 권사, 장로를 뽑는 것이 어떤 대립적인 관계로 자기의 권세,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라고 뽑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봉사의 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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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공궤를 일 삼는 일을 합니다(행6:2)
- '공궤'는 '먼지'에서 나온 말로 일하는 사람은 '먼지를 뒤집어 쓰고 먼지속을 왕래하며' 해야 한답니다. 다른 사람이
음식을 편안히 먹게 하기 위해 먼지 속을 왕래하며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하라고 직분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사도들이 혼자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일꾼을 뽑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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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 권사, 장로를 교회에 세우는 것은 교회에서
- 4. 사도로 기도하게 하기 위해(행:4)
- 5. 사도로 말씀 전하는데 전무하게 하기 위햬(행6:4)
- 6. 섬기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해(롬12:7)
- 7. 복음을 전하는 일(행6:8-7:53, 행8:4)을 하기 위해 세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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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執事, Deacon, Church
officer- 행6:1, 딤전3:8-13).
- 집사는 '잡을 집, 일 사'를 씁니다.
- 일을 맡아서, 일을 잡아서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 -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 신복, 종(마20:26, 골1:23),
- - 일군(고후11:23, 딤전4:6)
- -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 대리자(롬13:4, 15:8)
- - 추종자, 제자(요12:26)
- - 섬기다, 시중들다, 직무를 수행하다(요12:26, 행19:22)
- - 식사 시중을 들다(마4:11, 요12:2)
- - 음식이나 생활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다(마25:44, 히5:10)
- - 집안 일을 돌보다(딤3:10, 벧전4:11)
- - 돌보다, 간호하다(고후3:3, 딤후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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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보면 일꾼을 세울 때 그냥 아무나 뽑는 것이 아니라 시험해 보고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사항에 꼭 맞는 사람을 뽑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 잘못 뽑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꾼은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0절에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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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에게 가짜 계급장을 어깨에 붙여 놓으면 그 아이는 자신이 마치 장군이 된 양 계급장에 따라
목소리와 태도가 달라집니다. 장난감 계급장을 어깨에 붙인 아이도 태도가 달라진다면… 교회에서 혹 바르게 시험해보지 못하고 직분을 주었거나 직분을
받았다 할지라도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달라질 수 없다면 직분을 내놓는 것이 옳은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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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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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 섬기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월 마트(Wall Mart)"라는 가게가 있습니다. 그 월마트는 정말
대단한 회사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물건을 구입하러 갔다가 찾는 물건이 없으면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있는 월마트에 연락을 해서 재고 파악을 하고
그 물건을 찾으면 "몇월 며칠까지 이 물건을 갖다 놓을 테니 그때 찾아가라"고 할 정도로 책임지는 회사입니다. 그 월 마트의 사원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지침서에 보면 "종업원으로 일하는 사람은 손님으로 온 사람들이 3미터 이내에 접근하게 되거든 미소를 짓고 1초 이상 그 눈을 쳐다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3미터 정도의 거리에 손님이 오면 미소를 짓고 1초 이상 손님의 눈을 쳐다보면 손님으로 온 사람들의 마음에 물건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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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하는 사람,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의 자세는 기쁜 마음으로 미소를 짓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저는 가끔 교회
식당 주방에 자주 가 봅니다. 무슨 음식을 만드는지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덥고 힘든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분들의 얼굴을 보면 참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가끔 무엇에 화가 났는지 입을 쭉 내밀고 일하는 분들의 얼굴을 보면
밥 먹기도 싫어지고 제 맘이 편치가 않습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얼굴에, 눈빛에 미소와 기쁨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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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무엇보다도
- 1. 입술이 복되어야 합니다.
- • 입술에 축복의 말이 흘러야 합니다.
- • 입술에 긍정의 말이 흘러야 합니다.
- • 입술에 믿음의 말이 흘러야 합니다.
- • 입술에 소망의 말이 흘러야 합니다.
- • 입술에 사랑의 말이 흘러야 합니다.
- • 입술에 감사의 말이 흘러야 합니다.
- • 입술에 겸손의 말이 흘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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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제가 한번은 집에서 멀리 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에게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들아,
네가 내 아들인 것이 정말 감사하다. 나는 네가 내 아들인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응답이 올까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 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아 봤더니 그때가 수업시간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아들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제 아버지인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였습니다. 그 메시지를 받고 저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먼저 보낸 것이었지만 돌아오는 말이 좋은 말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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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타인에게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 • 예배, 주일성수, 기도, 배움, 순종, 헌신, 드리는 삶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 제가 어떤 목사님과 대화하다 그분이 읽으신 책 가운데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 "부자로 사는 사람이 있고, 부자로 죽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 여러분은 부자로 살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부자로 죽고 싶으십니까? 부자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것 가운데 넉넉하게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베풀고 자신의 삶도 윤택하게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색하고 쫀쫀하게 움켜 쥐고 살다가 죽을 때 보니 부자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자식들이 그 재산을 서로 나누어 가지려고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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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이웃 앞에 어떤 사람입니까? 그러나 제가 지금 설교한 대로 살기가 쉽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삶, 주와 동행하는 삶, 섬기는 삶은 좁은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요, 희생의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손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때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눈물 흘릴 만한 일들도 많이 겪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고통을 주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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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조선일보」에 정호승이란 시인이 쓴 글에 보니:
- 자연 상태에 있는 금붕어는 약 1만여 개의 알을 낳는데 비해, 어항 속의 금붕어는
약 3000 내지 4000여개의 알밖에 낳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무런 위험도 없이 적정한 온도와 먹이를 공급받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어항이 고통이라는 자연법칙의 진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통을 수반하는 삶이 자연의 삶이므로
- 어항속의 금붕어는 삶의 실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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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자연 상태의 금붕어이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어항 속의 금붕어이길 원하십니까?
- 우리가 살면서 겪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삶이 보다 더 풍부해지고 더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길잡이가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아까운 경험을 하고 우리가 어떤 희생을 경험하면 그것을 통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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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아까웠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소외당했던 경험, 섬김으로 눈물 흘려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복받은 사람입니다.
- 제가 초등학교 때 풍선껌이 처음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입에서 풍선을 만들며 불어대는 데 그것이 얼마나 씹고
싶었는지, 강원도 철원의 시골교회 전도사님 아들이었던 저는 풍선껌을 사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껌을 씹던 그 침 묻은 껌이라도 한번
씹어 풍선을 한번 불어봤으면…'하는 것이 저의 소원이었는데 드디어 어머니께 풍선껌 값을 받았습니다. 그때 돈으로 3원이었습니다. 풍선껌을 사서
단물을 다 빼고 풍선을 불어야 하는데, 빨리 풍선을 불어 보고 싶은 마음에 그냥 불다가 모래 위에 툭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아까운지 껌을 다시
주워서 모래를 열심히 떼어 내고 다시 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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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삶 중에 잊지 못한 서운했던 기억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이후로부터 음식을 대하든지, 물건을 살 때면 항상
신중히 다루는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살아 오면서 아까웠던 경험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소외당했던 경험, 섬기는 삶 때문에 오는
외로움, 심지어 모욕을 당해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손해만 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하나님을 섬기고 살려는
사람들에게 "너희 모든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희생적 사랑으로 행하라"고 가르치셨겠습니까? 교회는 물론 가정에서, 일터에서,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만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말하고 행한다면 여러분이 잠시 손해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결코 손해로 남겨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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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잘 믿는 것,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훗날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고 칭찬 받는 자리에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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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 신앙 안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 삶의 어려움도 많습니다. 아까웠던 경험도 많습니다.
- 소외의 외로움도 겪었습니다. 섬김의 눈물을 흘려 본 적도 있습니다.
- 하나님!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에게
- 이미 복으로 허락하신 것인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치루는 대가에 감사하며
- 기꺼이 감당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굽히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 오늘도 주의 제단에서 예배 드리고 세상에 나가 살기를 결심하는
저들
-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할 믿음과 마음을 주시옵소서.
-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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