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음을 가지는 생활 고전 1:10~18
인사/ 오늘은 본문 고린도전서 1:10-18 의 말씀을 중심 하여 [한
마음을 가지는 생활]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 - 바울 사도가 제2차 전도 여행기간 가운데 아가야 지방의
수도이자 당시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을 연결하는 교역의 도시인, 고린도에서 1년 반 동안이나 체류하면서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제3차 전도 여행을 할 때, 소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에 머물면서 에베소 교회를 개척하고 있을 때에, 그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의 어려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전해오는 고린도전서란 편지를 보내기 전에 이미 한 통의 편지를
고린도에 보냈습니다. 그 편지가 효력이 없었다고 판단한 바울 사도는 다시 한 번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을 처음부터 강력하게 비판을 하는데, 본문은 그 시작 부분입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그런데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일치하는 말을
하며, 여러분 가운데서 분열을 일으키지 말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 나는 여러분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을 글로에의 집사람들의
편에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저마다 말하기를 "나는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 "나는 게바 파다" "나는 그리스도
파다"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습니까 ? 바울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기라도 했습니까 ? 또는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 내가 여러분 가운데 그리스보와 가이오 말고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준 일이 없음을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스데바나 가족에게도 세례를 주었습니다마는 그밖에는 다른 누구에게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않게 하셨으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도입)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 살면서 다투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일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무위도식을 하면서
지낸다면 몰라도, 무슨 일이든지 시도한다면, 다툼과 갈등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모여 일을 하고자 할 때 모두의 의견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등도 종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산적인 상생하게 하는 갈등이 있는가 하면, 공연히 힘만 소비하고
시비하고 원망만 만드는 상멸하게 하는 갈등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회사를 살리는 노동운동도 있는 반면에 회사를 망하게 하는 노동운동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개) 특별히 교회의 경우는 그 현상이 더욱 심각합니다. 그것은 교회라는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모여진 공동체일 뿐
아니라, 교회는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모인 집단들처럼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물질을 준다거나, 어떤 구체적인 이익을 보장해주는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공동체들처럼 처벌이나 권징 규정이 강하거나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에 교회의
징계라는 것은 '출교' '출회'정도이므로, 자신의 인신이 구체적으로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런 환경 가운데서 교회의 사명인 '선교 교육 친교 봉사'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지고의 과제인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 가는 생활을 실행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 공동체는 당연히 갈등과 다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심령에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그 빈 심령의 공간에 악령이 찾아 들게 마련인 것처럼, 교회의 구성원들이 하늘의 뜻, 주님의 바램, 성령의 소원을 이루려고
마음을 합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사람들의 다양하고도 세속적인 여러 가지의 욕구들 때문에 시끄럽고 갈등이 있는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과 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세상의 요구보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뜻으로 하나가 되고자 노력을 해야만 화평한 공동체,
주님과 이웃들과 하나인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예화 1)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교사 짐 월톤은 남미 콜롬비아 정글에 있는 라사바나의 뮤나네 종족들을 위해 신약성경을 번역하고 있었는데, 한 때 그는 "화평"이라는
단어를 번역하는데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동네 추장인 훼르난도에게 걸어서 가면 사흘이 걸리는 곳을 비행기로 태워다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라사바나에 도착하는 것이 너무 늦어져서 추장은 기다리다 못해서 걸어서 가기로 하고 출발을 했습니다. 추장이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비행기가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추장을 다시 데리고 오기 위해 사람이 뛰어 갔습니다. 그러나 추장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비행기가 이미 떠나 버렸습니다. 추장이 얼마나 화가 낫겠습니까? 상상이 가지요, 태워주지 않을 것이면 그냥 내버려두기나 하지 공연히 시간을
낭비하고 힘은 힘대로 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 훼르난도 추장은 선교사 짐에게 가서 화풀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월톤은 추장의
화내는 말을 녹음 테이프에 녹음을 할 수 있었습니다. 후에 그것을 다시 듣다가 보니까, 추장이 "나는 한 마음이 아니다"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짐은 다른 사람들에게 "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물어보았더니, 그 말은 "당신과 다른 사람 사이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짐은 그것이 바로 "화평"을 번역하는데 필요한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는 죄와 가리움이 없어야합니다. 또 사람들 사이에서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서로간에 속이는 것이나 가리는 것들이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관계이든지 화평하려면 둘 사이에 다른 아무 것도 없어야만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화평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5:1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했습니다.
Q.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십니까? 한 번 자신의 신령상 형편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속하기 위하여 고난을 대신 받았을
때, 하나님의 진노는 녹아졌으며, 주님 예수께서 죄없이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께
용납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은 곧 주님과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과 평화를
이루고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며 그리스도인다운 마음생활로
살아가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 말씀 속에서 답을 찾고 그 답이 되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기로 하면 승리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하기를 (1) 주 예수 안에서 같은 말을 하라. (2) 한 마음을 가지고 분열하지 말라.
(3)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만을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Q.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바울 사도의 말씀대로 한
마음을 가지자면 어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말하기를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일치하는 말을 하며, 여러분 가운데서 분열을 일으키지 말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 다투지 아니하려면 > (1)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생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같은 마음과 생각으로
뭉친다는 것은, 자기중심의 생각이나 세상에 속한 모든 욕구를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생각과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 이루기 위하여 하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살아가신 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이제까지 내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포기한다는 것이요, 예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기 위하여 세상의 방법을 버리고 주님의 방법대로 살고자 노력을 하되 혼자가 아니라 믿음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마음을 합하고 생활방법을 같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 사도가 지적한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1) 편을 가르고 파당을
만들어 다투는 것이요, (2) 자신들만이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인들이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지라도 교인들 사이에서 다투는 일을 그만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말하기를 '다른 누구에게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게 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교회 안에 다툼과 분열이 있게 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혼돈과 어둠에 빠지고, 구원의
소망을 잃게됩니다. '어떻게 하면 의미 있고, 소망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고민하다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 앞에 나온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믿음의 길에서 실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자기의 이익이나 챙기기에
급급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게을리 하고, 서로간에 기득권 유지를 위하여 싸우는데 만 열중한다면, 그 나라는 혼란에
빠질 것이요, 국민들만 애매하게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갈급한 심령으로 교회를 찾아왔는데, 내가 잘못
판단하여 주님의 교회 안에서 두려운 줄을 모르고, 자기 생각 때문에 다투고 교회를 분열시키게 된다면 곤란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소자 하나를 실족시킨 사람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자기 목에 매고 깊은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한 영혼을 실족케 한 책임은 면할 수가 없습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공의롭다고 해도 교회를 분열시켜 한 심령이라도
낙심케 했다면 그 사람은 연자맷돌을 자기 목에 매고 물로 뛰어드는 것이 났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나를 의로운 자로 착각하게 하고 공연히 교만하게 하는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탄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되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가질 뿐 아니라, 믿음의 형제들과도 항상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고자 정성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다투지 아니하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예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누가 더 잘 믿는가?'를
보여주고 평가하는 품평회장이 아니라, 교인들 스스로가 십자가 정신으로, 예수의 보여주신 대로 살아가고자 힘을 쓰는 공동체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도 여러분 ! 사람이 세상을 바라 볼 때 어느 편을 보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두운 부분을 보면 모든
것이 잘못돼 보이고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부분을 본다면, 해결 방안이 있고, 희망이 생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보고, 힘이 되어 주시는 성령을 의지한다면 새 길을 열어가겠다는 힘이 생깁니다. 요즘 한국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많은
말을 듣습니다. 저는 그 말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면만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다니면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맙니다. 否定的인
사람의 뿌리는 罪요 罪의 뿌리는 魔鬼입니다. 교회 안에는 세상보다 어두운 면이 더 많다고 보아야 합니다. 논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살아가고 의인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죄인들이 모였고, 내힘으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주님의 도움으로 새 사람되기 위하여 모인 곳이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흥하는 교회도 그렇고 신앙생활 잘한다고 하는 교인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성도가 다 완전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자를 사용함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맡기는 부분(5병2어)을 축복하시고 자신은 물론 모든 자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시게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게 하십니다. 허물을 철저히 회개하고 어리석음을 온전히 버리고, 주안에서 새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말하기를 '여러분은 모두 일치하는 말을 하며, 여러분 가운데서 분열을
일으키지 말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 나는 여러분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을 글로에의 집사람들의 편에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저마다 말하기를 "나는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 "나는 게바 파다" "나는 그리스도 파다"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습니까 ? 바울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기라도 했습니까 ?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라고 했으며, 엡
4:3-6에서는 '여러분은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한
희망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숫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하나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는 뭉쳐진 상태, 즉 일치를 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에도 많은 조직이 있습니다. 사지백체 오장육부 신경 뼈 등이 서로 연합하여 하나된 것이 육체입니다. 그리고 육체를 움직이는 윤활유가
"피"입니다. 피가 육체를 움직이며, 육체가 살아있게 합니다. 젊은이들은 피가 뜨겁다고 합니다. 이것은 활동력이 많고 움직임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움직여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 된 나를 위해 죽으셨으며 나는 예수님 피값으로
구원받았다는 진리를 믿음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움직일 때는, 몸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하나로 뭉쳐져야 합니다. 하나된 믿음이
있는 곳에서 힘이 생겨나고, 하나된 기도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Q.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를 위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오직 우리의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하나로 연합합니다. 분열된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을, 갈라진
생각으로 영생의 진리를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주님의 피로 하나가 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와
성경책 찬양하는 모습만 보아도, 누구든지 믿고 용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서 정신이 하나되지 못하면 정신분열증이 생깁니다.
가족이 일치하지 못하면 가 정이 분열됩니다.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면 분열된 교회 즉 마귀가 역사하는 교회가 됩니다. 인간관계가 하나되지
못하면 우정도 깨지고 사랑도 깨지고, 스승과 제자의 도리도 깨집니다. 이렇게 어떤 이유로든지 갈라지고 분열된 관계들을 회복시키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생각도, 감정도, 내 뜻도 꺾고 순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열된 제사보다 일치된 순종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의 수洋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한가지 주님의 일을 이루기 위하여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주안에 잇는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로
모으고,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Q.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왜 교회의 한 식구로 불렀습니까? 왜 여러분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지금까지 보호하시고 사랑하셨을까요?
주님은 여러분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런 귀한 사랑을 받은 사람답게 살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언제나 변화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Case① 예수의 핍박자 사울이 변하여 그리스도의 증거자 바울이 되고, ② 마술사 시몬이
변하여 전도자 생명을 사모하는 자가 되고, ③ 수많은 남성들을 유혹하던 밤무대의 무희가 변하여 경건한 수녀가 되게 하는 것이 구원의
역사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만이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누구와도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마음과 생활자세를 낮추고, 사랑해야만 합니다. 자기 욕심만을 위할 때에 하나되지 못합니다. 자기 유익만 구하려고 할 때에 하나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차별의식을 버리고 모든 사람들과 하나되기를 힘써야만 합니다. 그 때에 주님의 능력과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살다보면 때로는 미움과 사랑의 감정이 갈등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에 기도하세요, 주님의 판단을 따르겠다고,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주님께서 분명히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우리 교회가 언제나 주안에서 하나가 되는 공동체가 되도록 애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화) - 탈무드 사람을 구분하는 이야기 - ☞ ㉠ 머리가 두
개인데 몸은 하나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을 두 사람으로 보아야 할지 한사람으로 보아야 할지 모르는 데 이를 분별해준 유대인 랍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분별/ 몸이 아플 때 두 얼굴이 함께 아파서 울면 한사람으로 보아야 하고 , 몸이 좋을 때 두 얼굴이 함께 웃는다면
그도 한 몸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 ㉡ 머리는 하나인데 몸은 두 개인 사람이 있습니다. 머리가 두 개라서 생각이 서로 다른데 몸이
하나로 움직이면 한 몸이고, 양손이 따로 움직이거나 손발이 서로 다른 뜻으로 움직이면 둘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머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지체가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움직이면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한 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평안한 교회, 복음으로 연합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주안에서 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 2:1 이하에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격려나, 사랑의
어떠한 위로나, 성령의 어떠한 교제나, 어떠한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나의 기쁨이 넘치게 해주십시오.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결론적 예화) 영국의 크랜취 감독은 자신의 시에서 노래하기를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밝은 낮에
평탄한 길을 가다가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험하고 캄캄한 밤에 길을
가다가도 조그마한 빛만 비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비로운 빛이라 하여 감사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인생이란 왜 이리도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는가?'라고 불평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다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자신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한없으신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일생을 불평과
원망 가운데서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질곡 가운데 있으면서도 감사하며, 이웃을 돌보는 사람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를 보는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처럼 엉터리 같은 곳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밤새도록
찾으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열심히 사랑을 말하면서도 형제의 작은 실수 하나를 용서하지 못해서 몇 년씩 싸우고 시비하는 사람들도
있고, 입으로는 빨리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가고 싶다고 열심히 말하면서도, 세상에 속한 욕심을 전혀 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 구세군만큼 좋은 교단이 어디 있습니까? 구세군만큼 좋은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구세군만큼
잘된 조직체가 있습니까?
교회에 대하여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시 동안 악한 사람들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 같이 보일는지는 몰라도 교회의 진정한 인도자는 주님 예수이십니다. 그 분이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인도하실 줄 믿고 따르고
그 분을 의지하며, 교회 중심의 믿음 생활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 정신으로만 살려고 노력하고 마음을
모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는 흠과 점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는 어느 누구도 정죄한 일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도 누구를 정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판단하지 않으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아껴주고,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고자 할 때에,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삶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면 기적을 보며,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체험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세요,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욥바의 여제자 다비다란 여인이 죽었는데, 그와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생활을 감당하던
믿음의 동료들이 포기하지 않고 룻다에 계신 베드로 사도를 모셔다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베드로 사도가 기도하던 가운데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죽은
다비다를 부른즉, 죽은 여인이 살아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삶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들만이 경험한 사건입니다.
성도 여러분 ! 주안에서 하나가 되려는 목표를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목표를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든지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유익한 복된 흔적을 남기는 생활을 감당하게 됩니다.(그렇게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 것은 성령이 안 계시거나, 하나님의 손이
짧으셔서가 아니라 여러분과 내가 주님과 연합하지 못하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으로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생각되시면 지금 이 시간 분명하게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하고 주님의 마음을 찾고 사모하세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주님과 같은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갖기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열고, 주께서 바라는 생활을 감당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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