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 교회의 특징
사도행전13:1~3,
11:19~26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13:1~3)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로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로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를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19~26)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의 교회로는 최초의
교회입니다. 오순절 이후에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환난과 핍박이 심해 마가 다락방에 모여 은혜 받아 즐거워하던 제자와 성도들이 산지 사방으로 흩어져
은거하면서도 그들의 입에서는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이런 결과로 각 지역마다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소문이 예루살렘 교회에 들려지게
되었고, 교회에서는 바나바를 파송하고, 안디옥 교회의 여러 가지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한
내용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고
했습니다.(사도행전11:23)
안디옥 교회는 각종의 사람들과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였으므로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되기 어려운 교회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바나바는 재산이 있는 자요,
니게르는 흑인종이요, 로마 분봉왕 헤롯으로 동학한 사람입니다. 마나엔은 고등관이요(사도행전13:1), 그 외에 재산이 없는 무식한 자와 비천한
자들이었습니다. 유식한 사람들이 교만함으로서 무식한 사람을 멸시하거나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지위가 높은 자가 자만할 수도 있었지만,
한마디의 불평이나 시비 없이 상부상조하며 동고동락하며 피차 서로 격려하면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면서
교회를 잘 섬기는 성도들을 보고 그 지역의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교인들에게 별명을 붙였는데, '그리스도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사도행전11:26) 이렇게 서로의 자기 입장보다는 주님의 영광을 높여 드리고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기를 먼저하는 안디옥 교회
교인들을 칭찬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현대 교회는 겉으로는 안디옥 교회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학교,
병원, 유치원, 복지 시설 그리고 제도와 조직이 엄격하고 장엄하게 짜여져 있으나 교회 속에 있어야 할 은혜가 없어서 교역자는 교역자끼리, 제직은
제직끼리, 신자는 신자끼리 암투와 시비가 교회 내에서 일어나 불신자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전도에 지대한 지장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어릴 때 신앙으로 잘 자라 교회 안에서 청년 회장도 하고 젊은이로서는 중요한 일들을 맡아서 충성을 했는데,
교회가 은혜가 떨어져서 시험 당하는 것을 보고는 그때부터 교회와 멀어져서 30년이 넘도록 신앙 생활하지 않는 사람을 봅니다. 시설도 있어야 하고
조직도 잘 짜여져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내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전폭적인 것이니 이 은혜에 감사와 감동이 신앙에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시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고 조직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다가 길 옆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찾으시다가 결국에 열매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나무를 저주하시기를 "영원히 결실치 못하리라"하시니
그 나무가 말라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그 나무가 말라죽고 결실치 못하는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종교인들 즉 은혜가
메말라버린 교회들, 조직과 제도는 매우 장엄하고 훌륭하지만 말씀의 열매가 없음으로 하나님의 엄위하신 징벌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조직이나 제도나 사업보다 더 중요하고 귀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풍성한 교회는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따뜻하고 섬겨주는
교회는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성경 연구에 전력하는 교회였습니다.(사도행전11:26)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3:16절에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① 생명의 양식이 되므로 연구하지 않으면 우리의 심령이 약하여지며, 마지막에는
영적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말씀은 영적 생명의 양식이기에 깨닫고 자기 것으로 삼고 잘 실천하는 것이 양식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다해서 연구하고 자기의 말씀으로 삼아서 살아야 합니다. ② 무기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하늘 나라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들인데, 능력 있는 성도가 되어서 매일 매일 마귀와 싸워서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도 넘어뜨리기 위해서
시험했습니다. 40일 금식 기도하신 후에 돌이 떡이 되게 하라고 시험했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마귀에게 경배하라고, 이런 시험을 받을
때마다 말씀으로 물리치신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마태복음4:1~11)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알아야 마귀를 대적하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대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유혹하기 때문에 말씀을 분명히 연구하고 깨닫지 못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하와를 시험할 때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는 뱀의 말에 하와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17절에서 "실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놓았는데, 하와는 죽을 수도 안 죽을 수도 있다고 애매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말씀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분명하고 똑똑하게 말씀을 자기의 말씀으로 받지 못하면 이단과 진리를 구별하지 못하여 결국 마귀에게 포로가
되고 맙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준비해서 마귀가 덤비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머리와 골수까지 조개며 퇴각시켜야 합니다. 마귀를 물리치는 신령한
군사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③ 기쁨을 주는 진리입니다. 주님께서
가나 혼인 잔칫집에 갔을 때에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주께서 하인에게 명하시기를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부으라고 하셔서 하인이 그대로
하였더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먹는 자들이 말하기를 사람들마다 먼저 좋은 술을 내다가 손님들이 잘 마시게 한 후에 나중에는
나쁜 술을 내는 법인데, 어찌해서 여기는 좋은 술을 지금까지 두었느냐고 칭찬했습니다. 하인들이 주님이 시키는 말씀대로 행하여 잔치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을 가지게 할 뿐 아니라 주인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주님이 우리에게 교훈으로 주신
말씀인바 열심히 연구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또는 그 뜻을 잘 알 수가 없어서 재미가 없어서 말씀
공부를 게을리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단 사설에 포로가 되고 진리를 배반하게 됩니다. 성경 볼 시간이 없습니까?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조금만 빨리 하면 됩니다. 그리고 한담하는 시간과 무익한 잡지 보는 시간을 이용해서 열심히 진리의 말씀을 탐독하시면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며, 마귀들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3.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사도행전13:2~3)
안디옥 교회가 주님을 잘 섬겨 보려고 기도하며 금식할 때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이방인들을 위해 선교사로
파송할 것을 명받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금식할 때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환난을 당해서 급박한 상황
속에서 도움이 요청될 때입니다. 니느웨 땅을 멸하시겠다는 요나의 선포의 말씀을 듣고 왕과 관원과 온 백성들이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나라의 침공을 받아 고통을 받고 법궤마저 빼앗겼다 겨우 돌려 받아 아미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해서 궤를 지키게
했습니다. 이때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죄를 회개케 하기 위해 미스바로 모여서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사무엘상7:1이하)
두 번째는 슬픈 일을 당했을 때 금식했습니다. 사무엘상 31:13절에 사울이 길보아산에서 전사하고 블레셋 사람들이 벧산 성벽 못박아
걸쳐 조롱거리가 되게 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체를 수거해다가 장사를 치르고 칠 일을 금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직분자를 세울 때 금식했습니다. 교회로서 중요한 일입니다. 사도행전14:23절에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울 때 금식하고 기도하므로 직분을
맡겼습니다. 사람의 능력한계 이상의 능력이 요청될 때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성경에는 금식기도에 대한 유익에 대해 말씀을 하고 있는데, 속히
응답을 받습니다. 병들었을 때 금식하며, 자신의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응답을 받았다고 시편35:13절에 말씀합니다. 이사야 58:6절에서는
금식은 흉악한 결박을 풀어주며 압제 당한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금식기도는 너무 자주 하면 육을 가진
우리들에게 건강상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원할 때는 언제든지 금식하며 기도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4. 전도에
열중하는 교회입니다.(사도행전12:3)
은혜 가운데 사는 교인이나
교회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기를 자기 몸같이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열정이 불일 듯이 일어나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를 보면 개인이
자기 가족 친척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령이 충만한 몇 사람을 택하여 외지로 선교사를 파송한 것을 보면 전도에 대한 열심히 대단한
교회입니다. 고린도전서9:16절에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임할 것이라"는 이런 믿음과 열심을 가지고 핍박과 환난이 빗발치 듯 할지라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매일 죽음을 무릎 쓰고
전도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전도하라고 계속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주님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내 제자를 삼으라"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증인이 되라"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바로 잃어버린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 교회 초기에는 구령의 열정이 불일 듯 하여 개인 개인이 전도하고 단체적으로 전도 계획을
세워 백 만명 구령 운동을 벌려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했습니다. 지금은 더욱 열심히 전도해야 될 때인데도 전도의 열심히 식어져가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주님의 뜻과는 전연 다른 사람들입니다. 죤 번연은 백주에 큰 길
위에서 개가죽을 뒤집어쓰고 개 걸음을 걸으며, 개소리를 내며 다니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며,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고 구경하려고 모여들자
그때 개가죽을 대중 앞에서 벗고 당당히 복음을 능력 있게 전했습니다. 그의 구령의 열정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전도는 지옥을 닫고
천국 문을 열게 하는 것이고, 지옥 갈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조롱하든지, 괄시하든지, 멸시하든지,
천대하든지 상관이 없이 환경 여하를 살필 것 없이 사망의 웅덩이에서 호곡하는 자들에게 우리의 시선이 집중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의 도구인 능력
있는 십자가를 증거 하여 구원해 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요, 구원받은 사람들의 양심인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고 부흥하는 현장만 구경하는 사람은 죽음을 방치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옆에 있는 어른이 능히 구해 낼 수 있는데도, 팔을 펴서 구원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사람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교회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세웠습니다. 성경 연구에 전력하고, 금식기도하며, 전도에 열중하는 교회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범스러운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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