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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뜨거우냐?요한복음24:13-35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뛰어난 명작이라고 하는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스탠버그의 십자가”라고 하는 그림인대요, 아주 유명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일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스탠버그라고 하는 유명한 화가가 성 베드로성당의 위고 신부의 요청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림으로 그리게 되는데 그는 그림을 조심스럽게 그려갑니다. 그렇게 얼마동안 그리다가 그만 그림을 중단해 버렸어요. 왜냐하면 신부님하고 약속한 그림 값이 너무 싸게 계약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너무 싸게 계약이 되어서 다시 흥정을 할 생각으로 그림 그리기는 것을 중단하고 있었던 검니다. 그러던 중에도 스탠버그는 다른 그림을 또 그리기 시작했는데, 집시인 페피타라고 하는 모델을 놓고 그림을 그린 것을 보니까 세속적인 그림, 아마 나체화 같은 그림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림을 그리다가 잠깐 쉬게 되었는데 이 모델 페피타라고 하는 여인이, 베드로 성당의 위고 신부의 요청으로 그리다가 만 예수님의 그림을 보고서 "저 그림은 무엇이예요?" 하고 물었어요. 그 질문을 듣 고 있던 스탠버그가 “예수님에 관한 그림이지요.” 이렇게 대답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이 집시 여인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모습이군요.”라고 하면서 말을 건냅니다. 그래 스탠버그가 “그렇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던 집시 여인이 또다시
물어요. “무슨 사연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연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 여인은 교회와 성경에 대해서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사연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는거예요. 성경을 모르는 여인에게 좀 귀찮지만
설명 안 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부득이 성경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베들레헴에서 오셨고 33년 동안
사시면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이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이 페피타라는 여인이 그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요 그냥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슬퍼하는 거예요. 이 여인이 너무너무 슬퍼하니까 화가인 스탠버그는 그 우는 집시여인을 위로할
마음으로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예수님은 부활하셨어요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셨다가 말씀하신대로 다시 부활하셨으니까 울지 마세요.” 그랬더니 이 여인이 울다가 눈을 번쩍 뜨면서
“정말로 부활 하셨습니까?”그러는 거예요. 순간 이 여인이 기쁜 얼굴을 하면서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이 모습을 스탠버그가 보는 순간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몰라요. “내가 지금 이
여인에게 예수는 만백성을 위해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셨다고 말했는데 이 말을 듣고 이 사람은 저렇게 밝은 생명력을 얻는데,
내가 정말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는가? 성당에서 그림을 요청해서 십자가의 그림을 그리고는 있지만 내가 정말 부활을 믿고
있는가? 나는 부활했다고 말했는데 정말 예수님의 부활생명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가?”이 그림을 그리고 있던 화가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물어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던 거예요. 그러면서 스탠버그가 그 자리에서 마음을 돌이키고 부활신앙을 회복하였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림을 그리면서 돈 적게 준다고 흥정을 하고 있다니, 야 내가 나쁜 놈이로구나, 내가 못된 놈이지.....” 하면서 자기 마음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 그림을 완성하게 되었는데, 부활신앙을 회복하고 나서 부활신앙을 가지고 그림을 완성하게 되는데,
여러분 그러한 그림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스탠버그의 십자가' 이 그림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영감을 주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해마다 부활주일이 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른 어떤 주일보다 남달리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을 기뻐하면서 찬양을 합니다. 다른 때는 연합새벽기도를 안 해도 부활절 새벽은 연합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이른 새벽부터 온누리에 전하며 기뻐합니다. 또 부활절이 되면 삶은 달걀을 예쁘게 색칠도 하고 포장도 해서 선물하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하면서 부활의 소식을 전하기도 합니다. 해마다 우리가 부활주일을 이렇게
지내는데, 말씀을 준비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의 마음속에 부활주일의 행사가 습관처럼, 또 연례행사처럼 지내게 되는
모습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부활주일을 지키면서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 하셨다고 찬양하고 즐거워는 하는데 우리의 삶이 과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온전히 변화되는가? 이런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지가 못한 것 같아요.
목사님, 무슨 증거로 모두를 도매금으로 넘겨버리십니까?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예수믿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알 수가 있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누구도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부정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다는 아니지만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로 드려서는 안 됩니다. 몇 주년 기념식, 몇 주년 기념식 하는 식으로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되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부활의 주님을 내가 입으로 고백하며 그 주님을 직접 만나고, 그래서 그 주님으로 인해서 내 삶이 놀랍게 변화되는 은혜가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기뻐하면서 찬양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 신비한 부활주일 아침에 하나님께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두 제자는 믿음이 식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은 목자없는 양같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잖아요. 생전에 예수님께 대한 기대와 소망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맥없이 돌아가시니까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 중에 글로바와 다른 제자가 너무 절망하고 근심하면서 예루살렘에서 약 7마일 정도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부활절 아침입니다. 아마 이 시간쯤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부활절 아침인데도 부활을 믿지 않고 서둘러 자기의 생업을 찾아 엠마오로 가고 있는 거예요. 이 두 사람이 몇 일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내려가는데 예수님이 동행하십니다. 그런데도 두 제자가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를 못하는거예요. 그때에 예수님께서 “서로 주고 받는 말들이 무슨 얘기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침통한 얼굴을 하고서 말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19절부터 24절까지의 내용인대요, 그 말을 가만히 들여다 보십시요. 제자들이 뭐라고 합니까? 이 두 제자는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힘있는 선지자인데요,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법정에 세워서 사형선고를 받게 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21절을 보세요.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요?. 22절을 보세요. 사흘 후에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시체는 보지 못하고 천사로부터 예수께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하는 소식도 들어서 알고 있지요?. 또 24절을 보시면,
두 제자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갔다가 예수는 보지 못하였다는 얘기까지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여러분! 증거가 이렇게 완벽한대도요, 이 두 제자는 근심하면서 실망하고 낙심해 가지고 엠마오로 가는 거예요. 참 기가 막히지 않아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는 소식을 몰랐다면 모를 수가 있겠지요. 또 부활하신 빈 무덤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소식을 못 들었다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모든 소식을 다 알아요. 여러분, 이 두 제자가 동료
제자들의 말을 이 정도로 들었으면 예수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성령을 기다리고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대요, 그래요 그렇지 못해요? 그렇지가 못하잖아요. 예수님께서 엠마오를 향해서 걷고 있는 두 제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까 제자들은 오히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으면서 이 며칠 동안에 일어난 일을 다들 알고 있는데 왜 당신 혼자서만 모르고 있단 말입니까? 하면서 예수님께 톡 쏘잖아요. 아이구 얄미워.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는 있는데,
구원자인 것도 알고 있고, 십자가에 죽은 것도 알고 있고, 부활하신 것도 알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뭐가 빠졌어요? 그분을 믿는 믿음이 빠졌어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어요. 예수님과 함께 다닐 때는 믿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못해요. 예수님이 그것을 보시면서 얼마나 마음이
서운하셨을까요. 25절을 보시면 예수님이 얼마난 섭섭한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라고 하시잖아요. 한번 따라서 해 보실까요.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다.
여러분, 신앙은 학문과는 다릅니다.
학문은 아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으나 신앙은 아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어디까지나 믿는 것에 도달해야 합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한낮 머리로만 알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예수의 부활을 어디까지나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미안한
말씀이지만 대단히 불행한 일이고 대단히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다니지만 신앙이 자라지 못합니다.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든 것을 마음으로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입으로는 예수 부활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것은 절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예수의 부활이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판단이 되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믿음을 갖고자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알고자 하지 마시고 믿고자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만 가지고는 필요 없어요. 알고자 하는 사람과 믿음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엄청난 차이예요.
도마와 같이 “내 눈으로 손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내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의심하는
사람은, 만사를 자기 잣대를 가지고 재어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지 말고, 믿으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믿음의 신비를 깨닫게
될 줄로 믿습니다. 회의적인 사람일수록 예수님을 만나지를 못해요. 예수님이 도마에게 말씀하신 대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예수님인 줄을 몰라요. 또 그 분이 예수님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예수님은 사라졌고, 자신들이 느꼈던 감정을 회고해 보면서 마음이 뜨거웠던 때를 회고해 봅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서 회고해 보니까 언제 그렇게 되었습니까? 32절에 보십시요.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언제 마음이 뜨거워졌다구요? 성경을 풀어 주실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제자들은 새로운 신앙의 확신과 기쁨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뜨거운 마음으로 충만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제 여러분의 마음이 뜨거워집니까? 소설을 읽다가 마음이 뜨거워집니까? 비디오를 보다가 마음이 뜨거워집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읽다가 마음이 뜨거워집니까? 무엇을 하다가 마음이 뜨거워지십니까? 물론 영화 한 편을 보다가도 마음이 뜨거워 질 때도 있어요. 저도 영화를 보다가 많이 눈물이 나요.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도 잔잔한 감동이 되어서 울기도 하는데, 눈물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눈물은 아니잖아요. 눈물의 농도가 다 다르지 않겠어요. 내가 측정을 해보지 않았지만 다 다를 것 같아요. 언제 마음이 뜨거워집니까?
일하다가도 마음이 뜨거워지지만 오늘 제가 말씀을 드릴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영생에 관계된 것인데, 언제 뜨거워져야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읽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야 되는 거예요.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읽다가 듣다가 뜨거워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를
보세요.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뽕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예수님께서 부르셔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삭개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삭개오의 마음이 뜨거워지니까 삭개오는 자기의 재산을 절반을 팔아서 나누어주겠다고 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합니다. 젊은 부자 청년은 예수님이 재물을 나누어주고 나서 주님을 따르라고 하는 소리에 근심하고 돌아갔는데, 이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져서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고 이웃에게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였던 요한
웨슬리(Johe Wesly)는 목사가 되어서도 마음에 뜨거운 열정도 없었고 구원의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의 조지아주에 선교를
갔으나 아무 유익도 없이 실패만 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갑니다. 그 후인 1738년 5월 24일 저녁에 고민에 쌓여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런던의
올더스케잇(Aldersgate Street) 거리에 있는 집회에 참석했는데,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고 있을 때에 그것을
들으면서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그 날 웨슬리는 일기장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역사를 하신다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만을 믿는다고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나서 즉시 동생 찰스에게로 달려가 미칠 듯한 기분으로 “내가 지금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웨슬리 한 사람의 뜨거운 가슴으로 훗날 영국이 새로워졌습니다. 웨슬리가 말씀을 듣다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은혜를 체험하여 영국을 변화시킨 것처럼, 오늘 부활절 아침에 저와 여러분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마음이 뜨거워져서 샌프란시스코를 변화시켜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읽다가 마음이 다시 한번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마음이 다시 한번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열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삶이 변화됩니다. “벤허”라는 영화의 원작소설을 쓴 월러스(Wallace)라는 사람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할 무렵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그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친구가 들려준 비판적인 얘기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얼마 후에 이 세상에서 존재를 감추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남을 것이다." 이러한 친구의 말 밖에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벤허”를 쓰기 위해서는 그 배경이 되는 시대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던 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일어났던 생각과 삶의 변화를 벤허라는 주인공 인물에 그대로 연결을 시켰습니다. 원래 벤허는 칼과 창을 가지고 민족을 해방시키겠다고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그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간 사람이 누구십니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 님, 오늘 아침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벤허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 영화의 장면입니다. 여러분, 예수의 부활을 믿습니까?
예수의 부활을 믿으면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세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 치고 변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그렇고, 성경을 보아도 그렇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 치고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즉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거예요. 33절을 보십시다.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35절에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성경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사람들이 만나는데요,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완전히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데 먼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도 있고요, 열 명의 제자들도 있고요 무명의 제자들도 있어요. 특별히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모른다고 도망갔던 사람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나서 초대교회의 큰 기둥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까지 하지 않아요? 또한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정말로 극적으로 만났는데,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인도에 가서 복음을 외치다가 순교하는 영광의 자리까지
나아가지 않아요? 여러분!,
입으로는 예수 부활을 말하면서 살아 계신 주님과 만나고 자신이 변화되는 모습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공포가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어떤 때는 용기가 생깁니다. 어떤 때는 의심 때문에 흔들릴 수도 있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요동치 않게 붙들어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은혜를 체험하면요 나 자신도 모르게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어떤 때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분명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가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살아 계신 주님과 교제하면서 살면 나도 모르게 주님을 닮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교회 가족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십시다. 그래서 부활절 이 아침에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우리의 삶이 날마다 순간마다 변화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