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히 구별된 삶
(요17:16-19)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내가 그들을 위항 내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를 통하여 거룩히 구별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6-19)
1.주님의
기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이었습니다.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주님은 중요한 내용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주의 기도는 기도의 방법들, 혹은 형식들을 가르쳐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르치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늘을 향해 직접 아버지께
기도하시던 주님의 기도는 요한복음 17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요한 복음 17장은 주님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셨던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 요한 복음 17장이야말로 진정한 주의 기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요한복음
17장에서 여러 가지 내용들을 기도하셨습니다. 먼저, 주님은 그 자신을 위한 기도를 시작으로 해서, 자기의 사도들을 보존해주실 것에 대한 기도를
드리셨고, 또 그 사도들을 통해 주님을 믿게 될 사람들, 다시 말해 우리들을 위해서까지 기도해 주셨습니다(요17:20).
오늘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고자 하는 부분은 예수님께서 죽기 전날에 남기셨던 기도의 내용입니다. 특히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구하신 내용인
무엇이었느냐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을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주님은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기도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세상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도 바라시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주님을 믿는 자들이 죽을 때까지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내용은 그들을 거룩히 구별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거룩한
구별이란?
그러면 무엇이 거룩한 구별입니까?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나이다』(요17:16)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이니이다』(요17:14)
성경은 어떤
특별한 단어가 나오면 그것을 그 문장 안에서 설명해 주는 예들이 많습니다. 구별한다는 말은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진정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라는 것을 가슴 속에 늘 새기고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로마서를 크게 두 개로 나눕니다. 하나는
교리적인 부분이고 하나는 생활적인 부분입니다. 교리적인 부분이 로마서 11장에서 끝나고 12장에서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들이
가득합니다. 그것은 곧 참된 교리를 받은 자들이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열매를 맺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제일 먼저 언급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12:2)
야고보서는 무엇이 참된 믿음의
모습인가를 설명하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행함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든지, 여러 가지 행위들을 강조한 것을 보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만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서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순수하고 더럽지 않은 신앙심은 이것이니 곧 고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니라.』(약1:27)
순수하고 더럽지 않은 신앙은 세상에
물들지 않는데서 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날 밤 기도하시면서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세상과는 다르게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구별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은 이전에 살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게 하는 구별이십니다. 만일 그것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그대로라면 그것은
구별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똑같은 것을 가지고 다르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에 살던 방식이 더럽고 불결하고
형편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님은 이제 거룩한 구별하심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골1:13)
주님은 우리를 어디로부터 건져내셨습니다. 또 어디로
옮기셨습니다. 이것이 구별입니다.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요 또 그들로 하여금 죄들의 용서를 받고 내 안에 있는 믿음으로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 가운데서
상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더라』(행26:28)
이 구절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소유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에게는 상속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거룩히
구별된다는 것이 죄사함을 받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에 의하면 거룩히 구별된다는 것은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옮기셨습니다. 거기는 우상숭배가
극심했고 아브라함은 더 이상 거기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구별하신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 땅에서 가나안으로 옮기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곳은 압제 받으며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거기에 계속적으로
안주한다면 그들의 자유로운 의사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에게 했던 좋은 약속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옮기셨습니다. 곧 그들을 구별하셨던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은 우리들을 죄악된 삶의 방식에서 거룩한 삶으로
옮기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대로 안주한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으면 하나님의 진노와 무서운 심판만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별하심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 남자와 더불어 욕되게 하는 자나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전에는 너희도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겨지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고전6:9-11)
전과 지금이 달라진 사람들이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3.구별된 무리
그런 점에서 교회는 거룩히 구별된 무리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히 구별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고전1:2)
『이는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시고 정결하게 하시며 자기 앞에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사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5:26-27)
만일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교회의 일원이라고 한다면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거룩히 구별하신 사실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의 원리가 지배하지 않는 곳이어야 하며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쫓아가서도
안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라』(골2:8)
나는 여러분들이 세상의
철학으로부터 구별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조차 인간이 만든 철학적인 방식의 성경해석이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셨던 구별이 아닙니다. 또 나는 우리들 자신이 세상을 사는 논리로부터 구별되기를 바랍니다. 약한 것을 짓밟고
강한 것을 숭배하는, 그래서 있는 것, 갖춘 것만 찾는 그런 자세로부터 구별되기를 바랍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은 약한
것이며 천한 것이며 없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있는 것, 가진 것, 유능한 것만 선호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세상원리의 지배로부터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교회인 우리들이 살아온 경험으로 구별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그 경험이라는 것 때문에 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절대로 그 경험이라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동안 배워온 지식으로부터 구별되를 바랍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할
뿐입니다. 지식 때문에 망하게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식은 이 세상을 사는데 유용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지나친 신봉은
오히려 그 사람을 피곤하게 할 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구별하심을 입은 우리 교회가 그동안 익혀온 전통으로부터
구별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좋은 전통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통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전통에 의해 구별된 사람들은 전통을 깨는 하나님의 말씀을 만날 때 혼돈스러워 하며 하나님 말씀조차도 의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거룩하게 구별하심을 입은 성도인 여러분들이 교파라는 틀로부터 구별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결코 교파를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교파는 교주가 있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모이다가 형성된 것입니다.
물론 훌륭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높게 생각할 것을 아시고 그의 시체를 감추셨으며, 마리아를 높일 것을
아시고 그에 대한 기록들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구별되기를 바랍니다. 앞에 열거한
모든 것에서부터 벗어나 아버지의 말씀 안으로 들어오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에 열거한 모든 것에 제한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여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시되 아버지의 진리로 그렇게 해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4.왜 이렇게
구별하시는가?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17:18)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주님을 보내실 때도 거룩히 구별하셨습니다(요10:36). 우리 역시 보내시려 할 때 구별하기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보내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된 세상의 사람들을 구원하려면 고상한 삶의 모습, 곧 거룩히 구별된 삶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지옥의 문들 앞에 선
그들을 돌이키려 한다면 천국문을 향해가는 성도들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 매여 있는 사람들을 건지려면 하나님의 아들의 왕국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나 혼자만 잘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거룩히 구별하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안 보는데 가서 멋대로 살면 되니까? 기도와 나쁜짓을 병행하면서 얼마든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다고 믿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통해서 누군가는 건지시려고 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 또 나는
반드시 주님의 뜻에 따라 내가 건져진 것처럼 다른 어떤 사람도 건져야만 한다는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거룩히 구별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초는 확고히 서 있으며 거기에 이같이 새겨진 말씀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신의 백성인 자를 아신다, 하시고 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법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 것들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하게 쓰는 그릇, 곧 거룩히 구별되어 주인의 쓰기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그릇이
되리라』(딤후2:19-21)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구별하심은 모든 성도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어떤 사람은 손으로 구별하셨고, 어떤 사람은 발로, 또 어떤 사람은 눈으로, 또는 귀로...다양하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구별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목사만 구별된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구별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목사로
구별되었다면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교사나, 음악인도자나 반주자나 혹은 다양한 모습으로 구별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거룩한
구별하심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구별하심에 합당하게 살았는가,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의 역할을 얼마나 잘 해내었는가?
결국은 그 구별하심에 대한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성도인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무시한다면, 그래서 이전의 모습을
반복한다면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은 결코 상이 아닐 것입니다.
『곧 나로 하여금 이방인들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하게 하사 이방인들을 바치는 일이 성령님을 통하여 거룩히 구별되어 주께서 받으실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여러분이 만일 복음 전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먼저 구별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의 피로 구별된 사람이어야 하며 그 구별하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은즉』(히13;12)
예수님의 고난은 바로 우리를 거룩히 구별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주님께서 드리신 기도를 이루시기 위해 일차적으로 귀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우리를 거룩히 구별하시는 일에 대한
주님은 수고는 이미 다 끝났습니다. 나머지 일은 우리가 얼마나 구별하신 의도를 품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거룩히 구별된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전에 주님을 알지 못할 때에 행하던
모든 더럽고 추한 관습들을 그대로 끌고 가려한다면 우리의 믿음이 제대로 된 것인가 의심해보아야만 합니다.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것을 강조하고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그분의 피로 인해 얻게 된 거룩한 구별을 소중한 재산처럼 여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지 않는다면
그분의 피흘리심을 그야말로 헛되게 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말로 전한다해도 삶보다 더 좋은 증거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거룩하지 않고 세속에 젖어 있는 상태로는 결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부모님이나 형제들, 직장 동료나 친구들을
주님께 인도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거룩히 구별하신 주님의 뜻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의 복음은 능력을 잃고 말 것입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신뢰할 수 없다면 여러분의 전하는 말도 약한 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맺는 말
주님은 여러분들을 누군가에게 보내시려고 합니다. 정말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에 의해 생명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 얻는 일을 위해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시지만 결코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똑같은 모습의 사람으로 보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거룩하게 구별하시어 다른 모습의 사람으로 그들에게 보내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그래서 거룩한 구별을 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가서
건져야 할 어떤 사람과 우리가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그들이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일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나는 주님께서
여러분을 누군가에게 보내시려 하신다는 사실에 눈떴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전도를 통해 어떤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될 거라는 소망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런게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 주님이 보내실 때, 여러분에 의해 구원받아야할 어떤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보내시지
않는다는 것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거룩히 구별하시어 보내십니다.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충분히 주님께서 귀하게
쓰실만한 그릇들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신 의도를 외면하고 주님의 쓰임에서 버림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