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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되신 주님을 영접하라

   

      요한복음 14장 1-6절

  어느 원로 장로님께서 꿈에 불국사를 갔는데 불국사에 십자가가 붙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놀라서 통도사도 가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도 십자가가 붙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도 신이 나서 '우리 나라가 기독교로 완전히 통일이 되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다시 지리산에 가니 화엄사라는 절이 있는데 거기도 십자가가 붙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한 노스님이 성서를 펼쳐 읽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전도서를 펴놓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구절을 읽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야, 그래도 21세기에 우리 한국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세우는 교회 밖에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여하튼 우리가 믿기는 성서의 말씀대로 천하 만민 중에 그리스도라는 이름 외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음을 믿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만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유일한 소망이며 유일한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절기에 길목마다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 인하여 기쁨과 풍성한 평강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네 개의 영어단어 C로 결정된다고 합니다. 첫째는 크기를 말하는 캐럿(Carat)입니다. 둘째는 모양을 내는 컷(Cut)입니다. 셋째는 색깔이 어떠냐 하는 칼라(Color)입니다. 넷째는 투명함 선명함을 말하는 클레어리티(Clarity)입니다. 미국에서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이와 같다고 합니다. 즉 캐럿은 크기니까 돈주머니 크기로, 컷은 모양을 내는 것이기에 그 사람의 생김새, 옷, 자동차 등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칼라는 색깔이니까 피부 색깔로, 클레러티는 투명함, 또는 순결도 즉, 도덕적인 행실로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 네 가지 면에서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평점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에 높은 점수를 맞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절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님 나라에서 으뜸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 길에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문제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청천하늘에 잔별도 많고 우리네 인생살이 수심도 많다'는 옛 어른들의 노래가사처럼 우리네 인생살이는 문제가 많습니다. 어떤 이는 질병 때문에, 어떤 이는 자녀 때문에, 어떤 이는 남편 때문에, 어떤 이는 아내 때문에, 어떤 이는 물질 때문에, 어떤 이는 가정문제로 , 어떤 이는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무거운 짐들을 지고 갑니다. 가다가 길이 막혀 버린 것입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이 길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는 길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만이 '나는 길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길을 알고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무슨 문제로 길이 막혔든지 이 시간 길 되신 주님께 가져 오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길입니다. 길되신 주님께서 이 성탄에 우리에게 오십니다. 금번 성탄을 통하여 우리 삶의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길되신 주님은,
   첫째로 하나님을 향하여 끊어진 것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길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다리가 되어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건너 갈 수 있는 실제의 길이심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길 되신 주님을 따라 걸어가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한 건물에 불이 나서 가족 모두가 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창문을 열고 옆 건물로 넘어져서 겨우 닿아 다리를 만들고 가족들 모두를 피신시키고 다리와 길이 되었던 본인은 힘이 부쳐서 결국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가족애와 부성애를 볼 수 있습니다. 길이 되어 가족을 살린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십자가로 연결하여 화목케 하시는 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입니다.
 오래전에 유행했던 팝송 가운데 '험한 세상의 다리'란 노래가 있었습니다. 옳습니다. 바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우리를 건너가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불신앙의 세계에서 신앙의 세계로 건너는 다리,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원받는 천국으로 건너가는 다리, 반목과 이기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세계로 넘어가는 다리가 곧 예수님입니다.  
 영국의 윌리암 바클레이는 그의 주석에서 예수님 자신이 길이라고 하신 것을 해석하면서 그 뜻은 낯 선 도시에 길을 찾아 나섰는데 길을 물었더니 그 사람이 자신이 하던 일,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가 그 장소를 안다고 하면서 손수 손을 잡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 결국 원하는 곳까지 안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길이심을 믿고 주님 따라 승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 막힌 담을 허물고 열어주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앞에 가로막혀 있는 율법과 죄악과 관습을 뚫고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할 수 있는 예배의 길을 우리 주님이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함으로 하늘 향하여 막힌 것을 열어 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소의 휘장을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으시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예배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하기에 예배의 중요성과 감격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옛날 사람들은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물까지 받아서 대신 예배를 드렸고 백성들은 성전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둘로 갈라진 후에 우리도 마음껏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감사와 감격이 넘쳐야 합니다.
  예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핀크 박사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신위생학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권위자입니다. '안정을 위한 4박자 균형'이라는 책에서 현대인에게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안정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평안을 균형 있게 유지하려면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첫째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일을 해야 사람이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는 놀아야 된다고 합니다. 쉬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적절한 쉼이 없이는 안정을 유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랑해야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랑의 울타리에서 살아야 마음이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가 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지도 않는 사람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야 정신적 심리적 안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신학자인 슐라이어 마허가 교회가 무엇이며 신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교회는 전적인 의지의 감정'이라고 했습니다. 예배 드리는 자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지할 때 느끼는 감정이 교회이고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길을 우리 주님이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섬김의 도를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성육신 하시고 구체적 사랑으로 임하셔서 섬김을 보이신 그 주님을 만나 이 절기가 섬김의 절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수도원 정문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가장 큰 자유는 바로 섬김이다. 섬기는 자만이 자유롭다. 많이 섬길수록 많이 자유롭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 세상이 문제되는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섬기려고 결정을 하고 나면 그 나머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은 섬김의 길입니다. 과연 우리가 얼마나 섬기고 있습니까? 철저하게 주님의 말씀만 따르며 섬기는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그 어떤 유익도 버릴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930년, 프로펠러 하나 달린 단발기를 몰고 대서양을 처음 횡단 한 영웅이 있었습니다. 린드버그 대위입니다. 생명 걸고 한 모험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일에 도전했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린드버그 대위는 조그만 비행기를 타고 서른 몇 시간 동안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그리고는 일약 세계가 주목하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가 영웅이 된 다음에 파리를 한 번 방문했는데 그가 온다는 말을 듣고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어느 큰 담배회사 사장이 '이것 참 좋은 기회다.'라는 생각 이 들어 자기 회사 담배를 광고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린드버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담배 한 개피를 주면서 '선생님, 이것을 손에 끼어도 좋고 입에 물어도 좋습니다. 포즈 한 번만 취해주십시오. 그러면 사진 한 장을 찍는 대가로 5 만불을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70년 전에 5만불이라면 대단한 액수 입니다. 그러나 대단히 엄격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린드버그는 이런 말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저는 세례 받은 교인입니다.' 이 말이 파리 신문에 기사로 나왔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 당시에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자기들이 성금을 모아 서 10만불을 린드버그에게 갖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섬기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섬김, 이웃 섬김의 길을 보여 주신 예수님을 따라서 오직 주님께만 섬김을 다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이 오시는 절기입니다. 우리 마음을 열고 우리의 길이신 주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건널 다리이십니다. 주님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이 섬김의 길을 증거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곧 길입니다. 주님을 따라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부르짖습니다. 어디가 길이냐? 그 때 우리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다! 길 되신 주님을 맞이하는 귀한 절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