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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자와 믿지 않는 자의 결말

(요3:16-2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유일하게 난 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니, 이는 하나님에게서 유일하게 난 아들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이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고 또 빛으로 오지 않음은 자기 행위가 책망받을까 함이요, 진리를 행하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자기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3:16-21)

1.정죄(condemnatison)란 무엇인가?

정죄(定罪 정할정, 허물죄)라는 말은 “죄인으로 정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라샤(rasha)라 하는데, “유죄하다고 선언하다. 죄 있다고 판결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법정상에서 “유죄”와 같은 의미입니다.

정죄를 받게 되면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죄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차 위반을 했다고 합시다. 그 때 자동차에 붙여놓은 스티커는 정죄 스티커입니다. 이것에 따라 위반한 사람은 범칙금을 물어야 하며, 그 때의 범칙금은 형벌의 일종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드러난 죄는 교도소에 수감되든지, 벌금을 물든지 하므로서 해결받습니다. 물론 최고형인 사형을 언도받는다면 더이상 이 세상에서 살 희망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사람들 앞에 드러난 죄로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모든 상황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특별 사면, 또는 보석, 탄원을 통한 정상참작, 석방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하나님 앞에 정죄로 드러날 때입니다. 이 때는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습니다.

『주여, 주께서 죄악들을 지켜보신다면 오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130:3]

세상에서는 죄를 짓고도 오리발을 내밀 수도 있습니다. 증거가 없거나 본 사람(증인)이 없을 때는 딱 잡아 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들을 지켜보셨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내가 가까이에서만 하나님이요, 멀리서는 하나님이 아니냐? 주가 말하노라 누가 은밀한 곳에 자신을 숨겨 나로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느냐? 주가 말하노라 내가 하늘과 땅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3-24]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 우리가 죄 짓는 자리, 그 곳에도 그분이 계셨습니다. 아무도 안보는 은밀한 곳이었다고요? 그래도 그분은 거기 계셔서 모든 것을 지켜보셨습니다. 누가 은밀한 곳에서 자신을 숨기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보시지 못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죄는 없습니다. 만일 제가 여러분을 멀리 떠난 곳에서 나쁜 일을 한다면 여러분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먼데 있다 하더라도 주 하나님께서는 거기에도 계십니다.

『그는 허망한 사람을 아시며 사악함도 보시나니, 그분이 사악함을 고려치 아니하시겠느냐?』[욥11:11]

그분은 사람의 사악함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 사악함에 대해 고려하십니다. 반드시 상관하십니다.

『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12:14]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행한 선안간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분께는 무엇이든지 감추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앞에서 정죄로 드러난다면 얼마나 큰 비극이 되겠습니까? 왜냐하면 거기에는 이 세상에서 당하는 그 어떤 부끄러움과 비교도 안되는 형벌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멸망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요3:15,16). 멸망, 이것이 정죄에 대한 결말입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시1:5-6]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판명된 사람들은 정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격리되어집니다. 그들은 의인들이 거하게 될 곳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정죄받은 자들이 처하게 될 곳은 영원한 결박, 의인의 회중으로부터 영원한 분리입니다.

2.정죄받은 자가 가야할 곳-지옥(Hell)

좀더 구체적으로 정죄받는 자들이 가게 될 곳에 대해 말해야겠습니다. 이 부분에 관한 것은 사실, 이야기하기 싫으면서도 진리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성경에 지옥에 대한 경고가 162번이 나오는데 그 중에 70번 이상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한 분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또 그분을 성인 중에 한 분이라고 높이면서도 이상스럽게 그분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분은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그분은 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만 말씀합니다. 그분이 말한 것이 만일 지어낸 이야기라든지 거짓말이라면 우리는 그분을 위대한 성자로 여길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옥은 어떤 곳이겠습니까? 그곳은 불의 장소입니다. 그곳은 고통받는 곳입니다. 그곳은 저주받은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곳은 영원히 존재하는 불입니다. 그곳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자가 가는 곳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라는 이야기를 통해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울부짖어...제가 이 불꽃 가운데 고통을 받나이다』[눅16:23-24]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 곳은 고통받는 곳입니다. 그래서 눅16:28에서는 그 곳을 “고통의 장소”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지옥은 울부짖는 곳입니다. 부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이었는지 그 곳에서 울부짖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지옥은 불꽃 가운데 고통받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 곳이 이 세상에 나타난 그 어떤 고통보다도 심히 고통스러운 곳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불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13:42]

이것도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지옥이 불타는 용광로임을 알려줍니다. 그 곳은 통곡하는 곳입니다. 통곡이란 고통스럽게 소리를 높여 우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허탈한지...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얼마나 안타까운지, 얼마나 허무한지...그 곳은 이를 갈면서 통곡하는 곳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시되,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 천사들을 위하여 에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마25:41]

이것도 지옥에 대한 예수님의 증언입니다. 사실 그 곳은 마귀와 그 천사들을 위해 준비된 곳입니다. 그러나 그 마귀와 천사들의 꼬임에 넘어가 온갖 죄악을 즐기면서 산 모든 저주받은 사람들이 거기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 대한 주님의 언급을 보십시오. 그 곳은 영원히 존재하는 불입니다.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 호수 속으로 던져지리라. 』[계20:15]

지옥은 불의 호수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춘천을 호반의 도시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호수가 도시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 호반의 도시란 말은 좋은 소리입니다. 그러나 불로된 호수를 생각해보십시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누구든지 그곳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물을 것입니다. 지옥이 어디있느냐고. 그것이 실재하는지를 어떻게 아느냐고.
지옥은 땅 속에 있습니다.

『이 일을 미리 보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되, 그분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고 그분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다, 하더니, 』[행2:31]

이 말씀은 주님의 혼과 육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 어떤 환경에 처해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혼이 지옥에 내려가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버려지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무덤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썩음을 보지 아니했습니다.

『그분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되, 악하고 간음하는 세대가 표적을 추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주지 아니하리라. 요나가 세 낮과 세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세 낮과 세 밤을 땅의 중심부에 있으리라(KJV와 개역을 비교).』 [마12:39-40]

우리 주님께서 죽으신 후 3일 밤낮을 계셔야 했던 곳은 땅의 중심부입니다. 무덤 정도의 깊이 아닙니다. 개역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내려가신 곳이 그 냥 “땅 속”이라고 되어 있으나 킹제임스에는 좀더 정확하게 “땅의 중심부”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혼은 지구의 중심부로 내려가셨던 것입니다. 에베소서에는 그 곳을 “땅 아랫부분”이라고 말해줍니다.

『(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먼저 땅의 아래 부분들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뇨? 』[엡4:9]

지옥은 예수님께서 내려가셨던 곳, 곧 땅의 아랫 부분에 있습니다. 1987년 4월 10일자 버밍햄뉴스에서는 지구 중심의 온도가 태양의 표면보다 더 뜨겁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구의 내부 중심은 화씨 12,000 이상의 온도를 갖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뜨거운 불은 바로 거기 그 곳에 그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산채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의 기록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던 코라당입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의 집들과 코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물건들을 삼키니라.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이 산채로 구렁(pit)으로 내려가고 땅이 그 위에서 닫아버리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멸망하니라』[민수기16:32-33] (KJV와 개역비교).

여기에서 말하는 음부(pit)는 지옥이라는 뜻(hell)입니다.

또 지옥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입니다.

『 악인의 거처들은 반드시 그러하리니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로다』[욥18:21].

『멸망이 장막 안에 거하리니 이는 그의 것은 아무것도 없음이요 유황이 그의 처소에 흩어질 것임이라. 』[욥18:15]

욥은 이미 지금부터 약 3500여년 전에 지구의 내부에 유황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1980년 세인트 헬렌 산이 폭발할 때 150,000톤의 유황가스가 분출되었다고 합니다. 지옥은 땅 속에 있습니다. 지옥에 관한 한 신문기사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는 핀란드 신문 암메누사스티아에 실린 내용입니다.
“공산주의자인 나는 하늘이나 성경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과학자로서 지옥을 믿는다”라고 아자코프박사는 말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는 그 발견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지옥의 문들을 통과하는 구멍을 뚫었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아자코프 박사는 계속해다. “...드릴이 갑자기 공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커다란 빈 공간이나 동굴에 도달했다는 신호였다. 온도계는 화씨 2000도까지 치솟았다. 우리는 축 아래서 나는 기계소음을 탐지하기 위해 마이크를 밀어 넣었다. 그러나 우리가 들은 것은 기계소음이 아니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비명소리였다. 처음에는 우리 장비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그러나 조정을 하고 다시 들었을 때, 모든 의심은 사라졌다. 그 소리는 한 사람의 비명이 아니고 수백만명의 비명소리였다”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가 불구가 되어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속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나으니, 』[막9:43]
『만일 네 발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가 절뚝거리며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 속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나으니, 』[막9:45]
『만일 네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가 한 눈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나으니,』[막9:47]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 속입니다. 이 세 번의 반복되는 말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옥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불구자로서 들어가지 않는 게 더 낫다는 뜻입니다. 그 만큼 우리 주님은 지옥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아무도 이런 경고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또 다음 세상이 있을 거라고 속삭입니다. 다시 기회가 있을 거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단 한번의 인생 기회를 그 곳 지옥에 가는 쪽으로 보내서는 안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 자신을 실족케 하는 것은 죄를 말합니다. 우리 자신의 육체가 죄의 종노릇 한 결과는 너무도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지옥심판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무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의 위험에 놓이게 되고, 자기 형제에게, 라카, 라 말하면 공의회의 위험에 놓이게 될 것이로되,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어리석은 자여, 라고 말하면 지옥 불의 위험에 놓이게 되리라. 』[마5:22]


아주 작은 욕으로도 나는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의 지은 죄로 인해 지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안전하십니까? 지옥은 여러분에게 해당사항이 없는 문제입니까?

3.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주님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요3:17).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온전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니라. 내가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KJV와 개역비교. 개역에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만 되어있다)』[막2:17]

주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가 죄인이 아니라면 주님께서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를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롬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대속이 필요했습니다. 대속이란 대가를 지불하고 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건지시기 위한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의롭게 되었다는 말은 정죄함이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비록 그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무죄라고 선언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고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대속물이 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정죄 받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이들은 육신을 좇아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좇아 걷는 자들이니라(KJV 개역비교). 』[롬8:1]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정죄가 없습니다. 죄 지은게 없어서 죄가 없다고 선언하는 게 아닙니다. 많은 죄, 또 그 어떤 죄가 있음에도 대신 형벌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해 무죄 선언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정죄가 없다면 형벌도 없습니다. 형벌이 없다면 지옥에 갈 필요도 없습니다. 마치 노아 방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물로서 심판하는 날 안전했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불심판에서 안전합니다. 멸망받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이 멋지지 않습니까? 그분은 말로만 지옥에 가면 안된다고 하신 게 아니라 지옥에 가지 않는 길까지 열어놓으셨다. 성경을 봅시다.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셨으니, 이는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벧전2:24]

주님은 친히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셨습니다. 주님께서 맞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4.주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러면 생각하여 봅시다. 주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성경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 이미 정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요3:18). 다시 말해 그에게 형벌이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며 그는 마침내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주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써 그 자신이 죄인을 위한 구원의 길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는 뜻. “나는 죄와 상관없다”라고 하는 뜻. “예수는 무모하게 죽었다”라는 뜻. 이는 예수님에 대해서 자기 실수로 인해 죽어놓고 나의 죄를 인해 죽었다고 거짓말하는 자라고 손가락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을 봅시다. 정직하지 않으면 살지 못합니다.

『자기의 죄들을 숨기는 자는 번성하지 못할 것이나 죄를 자백하고 버리는 자는 누구나 자비를 얻으리라』[잠28:13]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정직하게 자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구원의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 영접하는 것입니다. 길은 오직 하나, 예수님이십니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오지 못하느니라. 』[요14:6]

그분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분을 믿는다는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구속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구속을 이루기 위한 어떤 능력도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나의 구원이 이루어짐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정죄에 이르지 않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가지고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5:24] .

죽어봐야지 구원된 줄 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이 말씀을 잘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순간, 정죄는 끝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