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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난 사람요한복음 3:1-17
어렸을 때의 순진하고 청순한 아름다운 모습, 교회에 다니자고 자기에게 권유하던 열심있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떠올랐습니다. 소매치기는 옛 친구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성공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참 성공이 아니었구나, 지금까지 행복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참 행복이 아니었구나.”이런 생각을 하고서는“옛 생활을 정리하고 새롭게 살아야지. 새로운 결심을 가져야지, 어렸을 때의 고향친구 그 여자의 모습으로 선하게 살아야지”이런 결심을 하고 인생의 새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오 헨리’라는 작가가 쓴 단편 소설 중에“소매치기”의 이야기입니다. 소매치기가 옛 고향 친구를 만나서 새로운 결심을 하고 새롭게 출발을 하였듯이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출발로 거듭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거듭남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부분입니다. 어느 날, 니고데모가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관원으로 어느 정도 존경을 받고 권세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며, 산헤드린 공회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이며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니고데모가 밤에 계획적으로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가 나눈 주제는 거듭남인데, 이 거듭남이라는 것,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두 번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의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두번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할 때 니고데모는“어떻게 두 번 태어납니까 어른이 되어서 또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다는 말입니까?”하고 잘못 이해를 했습니다. 이렇게 거듭남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이 시간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거듭남의 귀한 은혜를 뜨겁게 체험하는 시간이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달라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최상의 수준의 교육을 받은 아주 상류층의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의 선생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을 가르쳤습니다. 또 그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윗트니스 리(Witness Lee)는 니고데모의 이때 나이가 60-70세쯤 되는 노인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니고데모가 삼십 세를 약간 넘은 젊은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더욱이 니고데모 자신도 선생이었지만 예수님을 가리켜 랍비(Rabbi)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인들이 어떤 사람을 랍비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을 말하거든요. 이렇게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수준의 높은 학식을 갖추고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적은 예수님께 찾아 온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유명인사로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니기에 만난 것이 아닙니다. 2절의 말씀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다같이 2절을 읽겠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학식이나 인생의 경륜이나 도덕적인 모든 경험을 통해서 예수님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행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나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서 이 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셨고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한낮 성자중의 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도덕적인 선을 베푸신 분이며 병자들을 고쳐주신 분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런 분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하실 수가 있지, 세상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잘 본 거예요. 그럼요. 잘 본 거지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기 때문에 앉은뱅이도 일으키시고 소경도 낳게 하시고 죽은 나사로도 살리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 신 분이라는 생각을 하고 믿어야 성령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생각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먼저 변화되어야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고 행동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생각이 변화되지 않고는 행동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는 “인간의 두뇌는 종이와 같아서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세모꼴도 될 수 있고 네모꼴도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의 생각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과 인생이 송두리째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생각과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보내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믿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생각하고 믿어야 거듭남의 체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인생의 가치관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성공한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시원스럽게 대답하지는 못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공을 소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을 많이 소유하는 것을 성공으로 생각합니다. 돈이든 명예든 기술이든 지식이든 간에 많이 소유하는 것을 성공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시간 심사숙고하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돈을 많이 소유했다고 그 사람의 인생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높은 명예를 소유했다고 그 사람의 인생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 많은 지식을 소유했다고 그 사람의 인생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은 거듭남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거듭나야, 새롭게 태어나야 성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듭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어도 거듭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모두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람의 생명 외에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했다면 성공한 인생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영적인 부분에 관심이 그다지 없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3절)”고 하시니까 니고데모가 다시 묻지요. 4절에 보면“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라고 하지 않습니까? 니고데모는 영적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어머니의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는 것인 줄로 알았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수도 없지만, 혹시 어머니 뱃속에 수없이 들어갔다 나온들 거듭날 수가 있습니까? 여전히 마찬가지예요. 안 돼요. 육신은 여전히 육신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지요. 5절부터 7절까지 보십시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예요. 마음에 새기면서 크게 읽으십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영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물로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사역을 말하는 것이고,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를 외쳤고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회개의 역사와 복음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영적인 부분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부분에 가치관이 확실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영적인 부분은 전혀 관심이 없고 현실적인 면에만 관심이 있으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를 믿어도 믿는 것 같지가 않게 되는 거예요. 큰 일 납니다. 인생의 가치관이 바꾸어져야 합니다. 영적인 부분에 가치관이 확실해야 합니다. 영적인 것에 확실한 가치관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최대 재벌 중에 하나였던 록펠러(John Davison Rockfeller, 1839-1937) 1세의 이야기입니다. 원래 록펠러는 가난한 행상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렵게 자랐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사업 수완이 좋아서 20대에 들어서서 벌써 자립하기 시작을 했어요. 30대(31살, 1870년)에 들어서는 오하이오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설립하여 석유업계를 지배했는데, 한 때는 전 미국 석유업의 95%를 독점한 적도 있어요. 40대에 들어가서는 철도회사, 금융회사, 부동산 회사 등의 여러 기업을 설립하거나 합병해서 미국 최대의 부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록펠러의 가치관은 오직 자기를 위하여, 그리고 돈을 위하여 사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자기 책상에도 “자기를 위하여, 그리고 돈을 위하여”라는 표어가 적혀 있을 정도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신을 위하고 돈을 위해서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어요. 노동자도 회사원도, 또한 상대 기업도 인정 사정없이 착취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부자는 되어 갔는데 많은 사람들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되어서 규탄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록펠러가 50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소유할 것은 다 소유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신경쇠약 증세가 일어났어요. 노이로제에 빠지고 우울증이 생기고, 일의 의욕도 없고 식욕도 없어요. 저녁이면 불면증에 빠져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하지만 이렇다할 효과가 없었어요. 그러니 큰 일 났지요. 부와 명예를 부러울 것 없이 얻었는데 몸이 그러니까 다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몸이 아프면 다 소용이 없게 되잖아요. 록펠러의 몸이 자꾸 말라갑니다. 이 때에 침상에 누워 있으면서 생각난 것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에 가난하고 어려운 때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에 가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는 어릴 때를 생각하면서 다시 교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40여 년 동안 떠났던 교회를 다시 찾았던 거예요.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그 순간 록펠러는 지난날의 자기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성공은 소유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생의 성공이 명예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는 자신을 위하여, 돈을 위하여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위하여,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살겠노라고 굳게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돈을 내 놓기 시작을 합니다. 시카고 대학교(1890년)를 비롯해서 수많은 교육 기관을 세웠습니다. 뉴욕에 리버사이드 교회를 비롯하여 전국에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회복지와 복지 재단에 기부한 돈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됩니다. 이때부터 록펠러는 친구가 생기고 이웃이 생기고 인류가 자기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은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수 안에서 거듭나게 되면 이렇게 놀랍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가치관이 달라지면 인생이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아래만 바라보고 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영적인 부분에 확실한 가치관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인생의 가치관이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로, 성령으로 난 사람은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제정신이 들면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새롭게 살아야지, 이제부터는 새롭게 출발해야지’하면서 결단을 합니다. 그래서 변화된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삶을 살다보면 아무리 결심을 강하게 해도 세상살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결코 내 힘으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삶이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전과 같은 삶을 살 때가 많이 있어요. 여러분은 그렇지 않으세요?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들이 내 계획대로 내 뜻대로 되었나요? 그렇지 않을걸요? 때로는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눈물을 흘리며 어둔 밤을 지새어야 하는 때도 있었을 거예요. 사람의 결단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 세상을 운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움직이시거든요.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결코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새로운 결단을 하고 삶이 변화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삶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에 의해서만 삶이 변화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성령의 세계가 활짝 열려야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게도 하시고 앞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일깨워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날마다 순간마다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삶이 변화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7장 50절에 가면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변호하는 사람이 되었고, 19장 39절에 보면 예수님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져와서 장례를 돕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몰약이나 침향은 값비싼 향료인데 구약시대에는 왕의 장례식에나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바쳐서 예수님의 장례를 가까이에서 돕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처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요. 니고데모가 처음에는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변화된 모습으로 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영국 사람으로 노예 매매업을 해서 큰 돈을 번 사람이 있습니다. 존 뉴턴(John Newton)이라는 사람입니다. 뉴톤은 약 200 여명의 무장한 사병과 함께 깡패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이 깡패들을 배에 싣고 아프리카로 가서 흑인들을 마치 짐승처럼 사냥하듯 잡아다가 미국 대륙에 팔아 넘겨서 떼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영국에 많은 부동산과 금융회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외형적으로는 기업인이지만 실제로는 깡패의 두목이고 술 주정꾼이었습니다. 뉴턴이 하루는 술에 취해서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이상한 노랫소리가 나오는 건물이 있어서 기웃기웃 거리다가 그 안에 들어갔어요. 그곳은 전도 집회를 하는 장소였거든요. 뉴턴은 술김이 앉았지만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 않았어요. 술 취한 뉴턴은 시간이 가면서 술이 깨게 되었고 동시에 목사님의 설교가 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어렸을 때에 들었던 탕자의 이야기였어요.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다시 들었어요. 그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용서해 주세요.” 뉴턴은 그 순간 회개를 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있는 재산을 정리해서 과거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미국과 영국의 흑인들을 위하여 양로원과 병원들을 세우고 많은 자선기관을 세웠습니다. 그가 말년에 자신이 타락한 생활을 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은 시가 바로 찬송가 405장입니다. 다같이 불러 보겠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뉴턴은 이 찬송을 매일같이 불렀습니다. 누가 이 뉴턴을 이렇게 변화시켰습니까? 누가 뉴턴을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으로 변화를 시켰습니까? 친구도 아니고, 스승도 아니고, 배우자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심령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뉴턴을 새로운 성령의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힘이었습니다. 여러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