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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의 특권』  

                                요 1:12∼18, 롬 8:12-17

   성경은 하나님과 성도 간의 관계를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깊고 친근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 '아버지'란 말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피를 나눈 관계요 생명적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사단에게 속죄 제물로 내어주심으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갈 3:26). 하나님 자녀의 특권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요1서 5:1).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믿는 자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예수님의 영)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갈 4:6). 롬 8:15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바"는 아랍어로 아버지를 가장 가깝고 친근하게 부르는 말로써 우리들의 말로 하면 '아빠'라는 말입니다. 혈육을 나눈 자녀가 아니고서는 자신 있게 아빠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빠"로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누구나 차별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아들이 된 자는 무엇이든지 아버지에게 요구할 수 있는 청구권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아십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필요한 것을 간청하기를 소원하십니다. 아버지는 조건만 되고 기회만 있으면 필요한 것을 무엇이든지 주시기를 소원하십니다. 자녀에게 기쁨으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7).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마음놓고 아버지께 필요한 것을 구하여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7:7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면 뱀을 주고,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들로서" 요구해야 합니다. 자녀는 담대하고 떳떳하게 픨요한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믿음의 차원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종의 믿음과 아들의 믿음입니다. 종의 믿음은 내가 무엇인가 주인에게 해 드려야 안심하고 주인의 집에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일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믿음입니다. 불안하여 평안히 쉴 수 없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아들의 믿음은 나의 행위나 아버지에 대한 공로로 아버지의 것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내가 무엇을 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됨을 믿는 신앙입니다. 요한 웨슬리가 1538년 5월 24일 8시 45분에 회심하였다는 것은 종의 믿음에서 아들의 믿음으로 방향을 바꾼 사건입니다. 탕자처럼 아버지에게 거지처럼 구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처럼 의심하며 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눅 15:11의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품군의 하나로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탕자를 아들로 받아들였습니다. 눅 15:20에 보면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이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입을 맞추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옷을 갈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잔치를 배설하여 돌아온 아들을 환영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아들로서 필요한 것을 담대하게 구하며 응답 받으십시오. 믿고 구한 것은 반드시 받습니다. 다만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음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을 위하여 구하기 때문입니다(약 4:3).

하나님의 자녀 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이어받을 수 있는 상속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후사"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계승자입니다. 우리는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유업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갈 4:7). 아버지의 것을 내 것으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 아버지의 것입니다. 이생뿐만 아니라 내세에도 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적당한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롬 8:17에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을 받지 아니하고 너무 세상에서 안락하게 살면 집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항상 나의 영원한 기업인 하늘나라를 생각하며, 사모하며,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집을 떠난 나그네가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 여행에 너무 맛들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너무 세상에 도취하여 하나님 나라를 잊어버릴까 조심해야 합니다. 모세가 가나안땅을 눈앞에 두고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설교한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주제의 설교입니다. 신 8:12에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며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시민권이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은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내세에 영원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약속 받은 존재들입니다.

'누르하치'라는 사람은 만주족으로서 중원을 정복하고 청나라를 세웠습니다. 신무기로 무장한 불란서 군대가 중원을 침공하러 왔다가 말을 타고 달리는 누르하치 군대를 잡지 못하고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몇 십년이 지난 후 불란서 군대가 북경을 정탐하러 왔는데 만주족이 북경에 특별구를 만들어 놓고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만주족은 먹고 마시고 향락을 즐기다가 후손들이 말타는 법을 잊어버려 결국 청나라는 불란서 군대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저는 우리 한국 교회가 누르하치 군대처럼 편안하게 복을 받아 풍족하게 살다가 사단 앞에 무릎 꿇고 고기가마 곁에서 고기 덩어리나 받아먹고 사는 애굽에서의 히브리 민족처럼 그때가 좋았다고 희희락락하는 교회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기마민족은 말을 타고 광야를 달려야 하듯 하나님의 자녀들은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의 광야가 어디인지 찾아 나서야 합니다. 배를 주리고 타는 목마름이 있을지라도 미래를 향하여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뒤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앞에 있습니다. 과거에 있지 아니하고 미래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