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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눅12: 13-31 11월 감사의 달을 마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한사람이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진정한 감사를 하고 살아갈까? 여러분은 내 평생에 몇 번이나 감사하고 사셨다고 생각하십니까? 평생은 너무 길으니까 한달 아니 하루로 줄여서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이나 감사하고 사십니까?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5:18)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살려면 사람은 하루에 평균 400번 이상은 감사하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 평균 400번 이상 어떤 일을 결정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나 감사생활에 인색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감사의 절기를 만들어주시고, 자연을 통해서 인간이 받은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축복된 사람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감사의 절기를 통하여 우리의 감사치 못하는 삶을 회개하고 1년 12달 항상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사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감사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감사하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왜 감사생활을 하지 못하고 매일 불평과 원망 속에서 살게 될까요?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축복을 받았다 할지라도 결코 감사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감사생활을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그 방해요소를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생활을 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감사생활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잘나와 있습니다. 본문에는 2가지 대표적인 인물이 나오는데 첫째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았지만 그는 감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22절에 보면 반대로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가난한 사람도 감사를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본문의 비유를 통해서 부자나 가난한자나 어떻게 하면 감사생활을 잘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부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이 부자는 농사를 지었을 때 밭에 소출이 풍성하여 쌓아둘 곳간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축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자는 심중에 말하기를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소출을 쌓아두고 그리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이와 같은 큰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란 말이 없고 오히려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부자이지만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아무리 많은 물질을 가지고 있다해도 감사가 없으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게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감사하며 살수가 있다면 그것은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다 (15절)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의 부자가 그렇게 많은 축복을 받았으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탐심 때문입니다. 본문의 부자는 농사를 지어 그렇게 많은 소출을 얻었는데도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도 부족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곡간을 헐고 다시 짓자고 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탐심이 많은 사람입니까? 사람들은 바로 이 탐심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탐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탐심 때문에 부는 축적하지만 항상 불안한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삽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부자는 말할 때마다. 항상 "내가"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내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다" 또 "내 곡식과 모든 물건을" 본문에서 부자는 "내가" 라는 말을 6번씩이나 강조합니다. 결국 부자는 내 중심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중심으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오늘밤 내가 네 영혼을 거두워 가면 이것들이 뉘것이 되겠느냐?" 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자기 중심으로 살며,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탐심을 가지고 사니 어떻게 감사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혀 감사가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화를 하나 들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20세기의 세기적인 부자였던 록펠러 씨가 55세때 원인 모를 질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워싱턴포스트지 기자가 찾아가서 록펠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록펠러 씨 당신은 그렇게 많은 재물을 모았는데 이제는 만족하십니까?" 하니 록펠러 씨는 대답하기를 "아니요 나는 아직 만족함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시 기자가 질문하기를 "그러면 당신은 도대체 얼마를 더 가지고 있으면 만족하겠습니까?" 하고 반문했더니 "Just little more" (조금만 더 있으면)라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록펠러 씨의 말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 심장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탐심은 끝이 없으며 모든 인간은 이 탐심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하고, 괴로워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 탐심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 소금물과도 같습니다. 갈증이 나서 소금물을 먹으면 목이 타서 자꾸 물을 먹고 싶고 이렇게 해서 계속 소금물을 마시면 결국 혈중에 소금의 농도가 높아져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은 다윗과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시편 24편 1절에서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것이 다 여호와의 것이라" 고 했습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또 그분이 내 아버지임을 믿으며, 그분께서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고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셔야 하나님 앞에서 늘 감사하며 사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감사의 달을 맞이하여 나에게 탐심이 있다면 내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22절부터 보면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사람들은 부자도 있었지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주님은 가난한자들을 향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부자들은 탐심 때문에 감사생활을 못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감사를 못한다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를 가난하기 때문에 감사를 못한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생활은 물질의 다소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염려 때문에 감사하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가난한 자들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또 무엇을 마실까 하고 염려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제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그들은 창고가 있느냐? 그래도 잘먹고 살지 않느냐, 또 들에 나는 백합화를 보라 그들은 실도 짜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지 않느냐?" 그것들은 다 내가 먹이고 입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나의 보혈 값주고 산 너희일까 보냐? 하시며 염려를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으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염려가 있느냐? 자식에 대한 염려, 사업에 대한 염려, 학업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시라고 권면하십니다. 이러한 모든 염려들을 주님께 다 맡겨 버리시면 대신 내 마음은 평안하게 되고, 그 다음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아시고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겨 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들의 생애 속에 염려와 근심이 들어오면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첫째로 감사가 사라지게 됩니다. 둘째는 기도가 사라지게 되고, 셋째는 성령이 근심하게 되며, 불신의 안개가 내 마음에 가득 차게 되어 내 목을 조여 영적으로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염려가 가져오는 결과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물 한 컵이 완전히 증발되면 600억개의 수증기가 되고 그것을 30개 층의 안개를 만들고 웬만한 도시를 안개로 덮어 버린다고 합니다. 물 한 컵이 이와 같은 안개를 만들 듯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조그마한 염려와 근심이 들어오게 되면 안개가 온 도시를 덮어버리듯이 우리의 심령을 완전히 덮어버려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방향을 잃게되고, 방황하다가 지쳐서 불행한 신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 일주일 동안도 여러분들이 어떠한 모양으로 사셨든지 모든 염려 근심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의 감사를 방해하는 두 가지 요소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탐심과 염려 이 두 가지는 다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첫째로 탐심은 물리쳐야 합니다. 본문 15절에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습니다. 탐심은 순간마다 우리를 유혹해 옵니다. 그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십시요. 그리고 모든 염려는 주님께 맡기십시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교회 나오셔서 모든 염려, 근심을 주님께 다 맡겨 놓고, 돌아가실 때 다시 찾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보시니까 주일날 예배 시에 십자가 앞에 성도들의 근심, 걱정 보따리가 가득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시고,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시어서 그 보따리들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문제와 염려들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가 돌아와서 주님께 보고하기를 주님 말씀대로 그 교회의 십자가 앞에 가보았더니 아무 것도 없어서 그냥 왔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쌍한 자녀들이 다시 가져갔구나" 하시며 우리의 믿음이 없음을 한탄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교회 나오실 때 가져오신 염려와 근심이 있으십니까?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시고 절대로 다시 가져가지 마시고 이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맡아서 해결해 주실 줄 믿으시고, 감사하며 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탐심을 물리치시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기시고 사시면 주님은 대신 여러분의 마음속에 은혜와 평강과
기쁨을 주시어서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시면서 살도록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