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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천사
마 25: 31~46 A. 서론 오늘은 자선위문단 주일입니다. 자선위문단 이름으로 수고하시는 모든 단원들에게 이 시간을 통하여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천국의 상이 있음을 믿고 말씀을 통하여 힘을 얻고 더욱 활동하시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성경에는 가끔 현대적인
사고 방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나 사건들이 많이 나옵니다. 사람이 물위로 걸어갔다던가, 물이 포도주로 변한다든지 하는 것들입니다.
천사라는 존재도 그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현대의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존재들에 대해서 우리는 맹목적으로
믿던가 아니면 그저 신앙적 표현이거니 하고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B. 본론 천사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처럼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천사란 존재는 아주 친숙하고 중요한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성경에 154번 정도 등장하는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때는 꼭
등장하고 또 그때 천사가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 천사? 천사란 무엇이겠습니까? 어느 가정에서
하루는 천사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중세 그림에는 천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천사는 꼭 발가벗고 등장하고 또 아기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막내가 언니한테 "왜 천사들은 항상 발가벗고 나오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천사는 늘 그런 모습이었으니까 별 생각 없이 당연하게 보아왔는데
동생에게 그런 질문을 받고 나니까 본인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때 질문했던 막내가 오히려 대답하기를 "내가 한번 대답을 해볼까?" 하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옷을 벗은 이유는 타락하기 전의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옷을 입었으니 천사가 벗고 있는
모습은 타락하기 전의 인간의 순수한 모습을 표현한 것인 것이 아닐까?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천사가 나오는 이유는 어른은 무슨 말을 하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리 꼬고 저리 꼬고 받아들이지만 아이들은 말한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순수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대답했답니다." 일리가 있는 해석이었습니다. 2. 두 종류의 천사 성경에는 두 종류의 천사가
등장합니다. 먼저는 기분 좋지 않는 천사들인데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이들은 "공중권세 잡은 자" 란 말로 표현되는데 이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특권을 잘못 이해해서 마구 휘두르다가 마침내 하나님까지도 거슬리는 행동을 합니다. 이들 왜에 천사는 일반적으로 착한 이미지로서 역할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하나님의 어떤 뜻을 인간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3. 천사의 역할 ① 먼저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계시전달자의 역할입니다. 천사가 성경에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곳은 요한 계시록인데 여기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보내어 요한에게 모든 계시를 알려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시에도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가 잉태할 것이라는 계시를 해 주었습니다. ② 둘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수행원의 역할입니다. 마태복음
4:1절에 보면 예수님이 40일 광야시험을 받으실 때 천사들이 수종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대 예수님을
호위해서 오는 역할을 합니다. ③ 세 번째는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집행관의 역할을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 천사들이
와서 하나님을 대신해 심판을 집행한 경우(창19:1)가 바로 이 경우입니다. 이렇듯 천사의 존재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4. 현대인의 천사관
현대인의 천사관은 성경의 의미도 아니고 또한 현대인은 성경의 천사와 동일시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도 이 천사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몇 년전에 죽은 애인이 영혼으로 살아남아서 살아있는 애인을
모든 위험에서 보호해 준다는 "사랑과 영혼"(Ghost)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사랑이야기지만 그 이면에는 포스트
모던(post-modern)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근대 과학적 사고에서 전면 부정되었던 영적인 세계에 대해 갈망하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즈음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기계가 인간이 되거나 인간이 기계가 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와 영적 세계가 결합된 영화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현상에서 인간의 영적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영원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천사와 같은 존재에 대한 추구도
아니고 또 성경이 의미하는 천사의 모습도 아닙니다. 5. 성경에서 보는 존재 O.T) 오늘에 있어서 천사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먼저 성경에서의 천사에 대한 존재를 좀더 면밀하게 살펴봅시다. 구약성경에 천사가 처음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곳이
창세기19:1의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천사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롯과 그 가족을 구원하러 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천사는 철저히 의인화(擬人化)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의 모습을 띠고 있다는 말입니다. N.T) 또 예수님의 부활의
장면을 보십시다. 예수의 부활의 장면에서는 무덤을 찾아갔던 막달라 마리아 등 여인들에게 나타나 예수의 부활의 소식을 천사가 알려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보면 천사가 하늘에서 광채가 찬란한 흰옷을 입고 내려오는 장면으로 나오지만 마태복음보다도 더 먼저 기록되었고 더
사실적으로 기록되었다는 마가복음(16:5)에 보면 웬 젊은 남자가 흰옷을 입고 오른 쪽에 앉아 있는데 여자들이 그를 보고 흠칫 놀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천사는 의인화(擬人化)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띠고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천사들의 현현이 인간
이상의 존재로 등장하는 곳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성경에서는 자주 천사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제가 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오늘의 천사의 존재를 구명하기 위함입니다.
6. 오늘날의 천사
천사는 과연 존재하는가? 오늘도 존재한다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오늘 읽은 본문에
여기에 대한 실마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최후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태25:31-33) 여기에서 양은 선한 사람, 구원받을 사람, 염소는 악한
사람, 구원받지 못할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기준이 뭐냐하면 주님을 어떻게 대했느냐는 것입니다. 재판장은 양들로 분류된 구원받을
자들에게 선언합니다.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해주었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너희는 복을 받을찌어다." (마태
25:35-36)
그들은 금시초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은 한번도 주님에게 그렇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적이
전혀 없다고 양심적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인자는 다시 말합니다. 너희는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갇힌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염소로 분류된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은 정반대의 이유로 그렇게 분류되었습니다.
주리고,목마르고,나그네되고,헐벗고,병들고, 감옥에 갇힌 지극히 작은 자들을 외면했고 그것은 곧 주님을 외면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S) 오늘 우리 신앙인들을 가만히 보면 주님은 무지무지하게 열심히 섬기려고 하는데 고통 당하는 이웃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이것은 주님을 섬긴 것으로 계산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율법적 신앙이고 죽은 신앙입니다. (P)
우리의 신앙은 복음 적이어야 하고 살아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적 신앙, 살아있는 신앙이란 말은 우리의 신앙이 의무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그것이 기쁨으로 사랑하는 소망으로 봉사로 밖으로 표현되어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고통 당하는 이웃에게, 마음이
상한 이웃에게 작은 물 한 그릇으로 대할 때 그것이 곧 복음적인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Bex) 마가복음 2:1-12에 보면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예수님에게 고침 받게 하기 위해 들것에 담아
지붕을 뜯고 예수님 앞에 내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중풍병자는 네 사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평생 그 불행한 병에서 태어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선위문단원은 이런 분야에서 봉사되고 활용하는 것입니다.
Bex) 또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루살렘 성문 곁에 베데스다란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물이 동할 때마다 먼저 그 연못에 들어가는 환자가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병자들이 물이 돌기 시작하면 먼저 들어가려고 진을
치고 기다리는데 거기에서 38년 된 병자가 섞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첫눈에 알아보시고 그에게 "낫고 싶으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그
38년된 환자가 대답하기를 "선생님,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에, 남들아 보다 먼저
못으로 들어갑니다."
물이 동할 때마다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려고 아비규환을 이루는데 다리를 질질 끌며 사람들의 발에 차이며 넘어지며, 그러나 끝내는
이번에도 뒤쳐져 버려서 연못에 들어 갈 수 없어 실망하는 38년된 환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주님은 수 없는 환자 중에서 가장 소외되고
그에게는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철저하게 소외된 그 환자에게 치유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38년된
병자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9. 적용 / 오늘날의 천사의 사역-자선위문단 봉사
오늘의 천사는 누구인가? 저는 이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서 지붕을 뜯고 결사적으로 내려준 그 네명의 사람, 38년된 그 환자에게 오늘
네가 낫고 싶으냐고 다가오던 예수님의 모습에서 천사가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천사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전달하는 자인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천사가 될 수 있고 또 천사가 되기를 주님이 바라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행동을 가만히 모십시오. 매일 매일 사는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때로는 천사의 모습이, 때로는 악마의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를 향해 누가 천사처럼 대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부부간에도 천사처럼 서로를 위하여 산다면 얼마나 사는 것이 기쁘겠습니까? 부부간에도 여러 가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삽니다.
어떤 아내는 경찰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당신, 왜 이렇게 늦어? 어디 갔다 왔어?, 아침에 준 돈 나머지 다 내놔!!" 하면서 매일
취조하듯이 삽니다. 또 어떤 남편은 아내에게 항상 선생처럼 훈계하면서 대합니다. "사람이 말이야, 그러면 못써!!, 당신 집안 사람들
보면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가 의심이 가! 사람이 인간의 최소한 도리를 하고 살아야지!!" 하면서 은근히 처가를 아래로 깔고서 자기의
위치를 확보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르게 아름답게 사는 방법도 많이 있겠지만 부부가 서로에게 천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대한다면 얼마나
집안에 평화가 넘치겠습니까?
ex) 저 아프리카 중부에 르완다(Rwanda)란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에는 후투, 투치, 트와란 세 종족이 수천년동안 평화롭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독일, 벨기에가 식민통치를 하면서 종족구분을 해주었고 투치족을 우대하였기 때문에 종족갈등이 생겨 서로 원수처럼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다수족인 후투족이 투치족을 말살하기 위해 다 죽이기로 계획하고 1994년 4월 7일 대통령이 탄 비행기를 격추하는 것을
신호로 전국적으로 살인극을 벌였습니다. 불과 4개월 동안에 인구 550만 명중에 무려100만 명을 죽이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콩고루(Gikongoru)란 동네에 가면 후투족이 투치족 50,000명을 언덕에 모아놓고 3일 동안 수용하다가 1994년 4월 21일
한 밤중에 언덕에 다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서는 자정을 기해서 죽이기 시작했는데 이튿날 저녁까지 50,000명중 4명만 빼고 다 죽였습니다.
50,000명의 희생자중에서 27,000명 정도의 유골을 찾아내 진열해 놓은 곳을 방문해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구토를 하고 이후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다고 합니다. 르완다에 이런 살육전이 감행되고 있을 때 한 선교사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지금 지옥에는
악마도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모든 악마나 다 르완다에 내려와 있다." 사람들은 교회에 피하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몸을 숨겼는데
살인자들은 교회 문을 걸어 잠그고 몽땅 죽여서 시체더미가 교회천장까지 차 오를 정도였습니다. 이 살상극 가운데 시체더미에 깔려서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한 16살의 한 소년은 그 악몽의 순간을 떠올리고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천사가 우리 곁을 떠났다'(The angels
have left us!) 이런 상황에서 오늘 천사가 자기들 곁을 떠났다고 말하는 이들의 절망을 우리는 과연 이해할 수 있을 까요?
에볼라, 에이즈, 종족갈등으로 인한 수십 년의 내전, 가난, 수탈, 노예와 식민지경험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형제들을 보면서 어떤 선교사가 "이들도
과연 아담의 자손인가?" 하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형제에게 천사는 과연 없는가? 중풍병자를 들것에 담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내려주던 그 네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봉사도 없고 구제도 없고 그냥 교회 다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려는 현대 크리스천을 생각해보면
"천사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그 르완다 소년의 말이 자꾸 메아리 칩니다. 오늘 이 시간 아프카니스탄은 어떻습니까? 주님은 지금도
지구촌 이곳저곳을 헤매시며 하나님의 자녀를 구원하시기 위해 여념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고상하고 우리에게만 기쁨으로 남아있어서는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 고통받는 이웃이 있을 때 그들을 외면하면 우리 신앙은 의미가 없는 신앙입니다. Bex)
누가복음 16:19-31에는 유명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사람은 땅위에서 상다리가 부러져라고 호강하고, 한 사람은 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연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그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는데 너무 너무 목이 말라 나사로에게 손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 달라고 간청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실 부자가 나사로
에게 크게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요즘 부자들은 자기 동네에 장애인시설도 못 세우게 하지만 이 부자는 최소한 자기 집앞에 거지를 살도록 했고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도 먹게 했습니다. 부자가 유일하게 잘 못한 것은 나사로를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았다는 죄입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는
죄는 주님을 돌보지 않는 죄입니다. Bex) 이 이야기로 바로 뒤인 누가복음 18:35절 이하에는 이런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자 청년이 자기는 율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지키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네가 완전 하려거든 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대답했습니다. 영생을 얻는 길이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천사는 누구입니까?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히고 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희망 없이, 기본적인 인권도 없이 살아가는 지극히 작은 자들을 보듬어 안은 것이 곧 천사의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주님에게 하는 것이고 그 말은 곧 그 자비와 사랑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C. 결론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결코 지나쳐서 안 되는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32절의 말씀서두에 있는 한 단어입니다.
인자가 최후의 심판을 할 때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은다고 했습니다. 개인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들, 영어성경에는 'All the
nations'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이 만약 '최후의 심판은 개인적인 것과 민족단위로 받는 것이 있습니다' ① 민족적으로는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고통을
주는 민족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세계의 약소민족, 고통받는 민족들에게, 헐벗고, 굶주리고, 주리고, 목마른 민족에게 정의와 평화,
그리고 소망을 심어주는 민족이 된다면 그것은 곧 주님에게 드리는 최고의 섬김이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온갖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가난과
전쟁, 굶주림과 헐벗음, 식민지와 분단의 고통, 기 고통의 경험들을 가슴에 안고 세계의 소외된 민족을 향해 다가갈 때 우리 민족은 천사 민족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천사의 역할을 민족을 대표해서 할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교회이고 크리스챤인 우리들입니다. ② 개인적으로는
가족을 향해 눈을 엽시다. 이웃을 향해 눈을 엽시다. 먼저 이웃된 어려운 교인들을 돌아봅시다.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주변의 사람들에게 구세군
자선위문단 이름으로 봉사합시다. 이들에겐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담긴 모든 것들이 필요합니다. 단원들의 봉사에 힘을 실어주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런 꿈을 꾸어 봅니다. 언젠가 르완다의 그 16세 되는 소년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천사는 결코 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천사는 대한민국 구세군 송림영문에서 지금 너를 찾아오고 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향하여
오늘의 천사가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동안 수고하신 자선 위문단은 여러분들이여 오늘의 천사가 되셨음에 기뻐하시고 더욱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상이 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오늘의 천사가 되고자 더욱 헌신하고 자원하여 단원으로 입대하는 분들이 있기니다. 아울러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며 도와주신 모든 분들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깃드길 빌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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