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imr.co.kr |
착하고 충성된 교회마태복음 25:14-30
새 해가 시작이 되면 누구든지 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비전을 갖습니다. 금년에는 뭔가 새롭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향하여 새롭게 도전을 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렇게 살기 위하여 새로운 출발점에서 하루를 떠나서 이틀째 달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두 달을 달리다보면 이상하게 아쉬움이 남습니다. 연말이 되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1년은 ‘그렇게 하기를 잘했다’하는 자부심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금만 더 열심히 할걸. 그래서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걸’하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한번쯤은 1년을 먼저 살아보고 나서 다시 1년을 산다면 정말로 멋지고 가치있게 살수가 있어서 그런 후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금년 2000년을 살면서 신앙생활을 한 후에 다시 똑같은 2천년을 맞이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후회하지 않고 하나님께 칭찬을 듣는 사람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1년을 먼저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1년은 커녕 하루라도 먼저 살아 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만약에 그 누군가가 2천년을 먼저 살아보고서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칭찬하시는 것을 체험했다고 한다면 아마도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은 달라질 것입니다. 확실히 달라질 거예요. 그러나 이 세상에 세월을 한 번 살아보고 나서 똑같은 년도를 다시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좀 엉뚱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이 몇 일이지요? 1월 2일입니다. 오늘이 1월 2일이지만 12월 31일이라고 가정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들었다고 하고 다시 1월 2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Y2K가 아닙니다. 혼돈하실 것 없어요.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을 현실감각을 살려서 보고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미리 다 알았기 때문에 금년 1년이 새로워 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결산을 할 때에 보통 12월에 가서 본문으로 사용되는 말씀인데, 저는 새해의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다 이러한 이유에서 입니다.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심판하시나 하는 것을 알게 되면 막연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보다 충실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착하고 충성되게 1년을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12월 31일에 하나님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릴 때에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잘했다 칭찬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한번 그렇게 해 보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25장에는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세 가지의 비유가 나오는데, 세 가지 모두가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어떤 기준으로 심판하느냐 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달란트 비유라고 하기도 하고, 충성 된 종과 불의한 종의 비유라고도 합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이 심판 때를 준비하여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금년 2천년을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의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금년 1년 동안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달란트에 신실하여 일하며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분명히 잘했다 칭찬받고 착하고 충성된 교회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한 성도와 교회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어요. 어느 날 그 부자가 장기간 동안 해외로 출장을 가게 되어서 오랫동안 집을 비워야 했어요. 이 부자는 그 기간 동안 자기의 재산을 종들에게 맡겨서 재산을 늘리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열심히 일을 했던 종 세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들을 불러다가 놓고 내가 해외로 출장을 가게 되어서 그러니까 그 동안 내 재산을 너희들이 관리 해 다오. 그러면서 유능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었고,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었고, 다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살림을 꾸려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주인이 일을 다 보고 돌아 와서 종들에게 맡겼던 것을 계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종들을 부릅니다. 처음으로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이 나왔어요. 이 종은 자신있게 걸어 들어옵니다. 그리고 ‘주인님 저에게 다섯 달란트 맡기셨지요? 제가 열심히 일했더니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서 열 달란트가 되었어요. 주인님 여기 있습니다.’그러면서 열 달란트를 주인에게 돌립니다. 주인이 그것을 받으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주인이 잘했다고 칭찬을 합니다. 조금 있다가 두 번째 종이 들어옵니다. 이 종은 두 달란트를 받은 종입니다. 이 종도 조금 전에 왔던 종과 마찬가지로 아주 씩씩하게 들어 와서‘주인님, 저에게 두 달란트를 맡겨 주셨지요. 제가 열심히 했더니 네 달란트가 됐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인에게 돌려주는 거예요. 그랬더니 주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잘 했다고 칭찬을 해 줍니다. 얼마쯤 지났을까요? 세 번째로 종이 들어옵니다. 이 종은 한 달란트를 받은 종입니다. 이 종은 걸어오는 모습이 벌써 자신이 없어요. 힘이 없어요. 조금 전에 들어 왔던 종하고는 다릅니다. 받은 것을 가지고 일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한 달란트를 주인에게 그대로 내 놓으면서 핑계를 댑니다. 그랬더니 주인으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습니다. 주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면서 책망을 받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쫓겨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가 있습니다. 달란트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재능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별하셔서 그 사람에 맞는 달란트를 맡겨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시간의 달란트를 맡겨 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의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의 달란트를 맡겨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섬김의 달란트를 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계를 잘 다루는 달란트를 맡겨 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찬양의 달란트를 맡겨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다 있어요. 누구든지 골고루 다 받았어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달란트에 그저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만 비교를 합니다. 남의 떡이 더 맛있어 보이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구요, 내가 받은 달란트보다 다른 사람이 받은 달란트가 더 좋아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불만이 많고, 충성을 다하지 못해요.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받은 달란트는 한 달란트라는 거예요. 그래서 늘 그게 불만이예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를 맡겨 주시면 잘 할 수가 있는데 너무나 작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자기를 잘 못 봤다는 겁니다. 자기는 수준도 있고 능력도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자기의 수준에 맞지가 않는다는 겁니다. 착각이 아무리 자유라고 하지만 이와 같은 사람은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입니다. 증세가 좀 심하지요? 여러분, 한 달란트가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예수님 당시에 금 한달란트면 한 사람이 적어도 15년에서 20년은 생활할 수 있는 액수라고 합니다. 15년에서 20년을 생활하며 살아갈 수 있는 돈이 적어요? 많아요? 많지요. 굉장히 많은 거예요. 그러니 한 달란트도 많은 거예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겨 주신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소중한 것입니다. 소중하니까 맡겨주셨지 하찮으면 뭐 하러 맡겨주시겠어요? 그러니까 비교하지 마세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비교하게 되면 인생이 추해지고 비참해져요. 아시겠지요. 남이 맡은 직분은 잘 보이는데 왜 자기가 맡은 직분은 보이지가 않는지 모르겠어요. 달란트를 비교하지 말고 자기가 맡은 직분에 충실하면 됩니다. 그러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수가 있음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판단하는 기준과 사람들이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아시지요? 오늘 성경에서 어떤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았고, 어떤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았고, 어떤 종은 한 달란트를 받았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다섯 달란트가 분명히 많습니다. 한 달란트나 두 달란트보다 분명히 많잖아요.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보세요. 하나님은 많다고 얘기하지 않으세요. 두 달란트가 많고 다섯 달란트가 많으면 분명히 칭찬이 다를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한 달란트가 15년에서 20년은 생활할 수 있는 돈이라면, 계산하기 쉽게 20년이라고 생각하고 두 달란트는 40년을 생활할 수 있는 돈이고, 다섯 달란트는 적어도 100년은 생활할 수 있는 돈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더 남겨서 네 달란트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80년을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이구요,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서 10달란트 잖아요? 그러면 200년을 생활할 수 있는 돈입니다. 액수만 보더라도 누가 더 많이 남겼어요? 다섯 달란트를 맡은 종입니다. 그러면 주인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 말은 맞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이런 말은 들어야 합니다. ‘야, 너는 대단하구나. 사업에 소질이 있나보구나, 정말 엄청난 일을 했구나.’ 이래야 되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200년 동안 생활할 돈을 벌었는데, 어마어마한 돈 아닙니까? 보통 칭찬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주 극찬을 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뭐라고 하세요? 하나님은 뭐라고 하세요?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 뭐라고 하세요? 21절을 읽겠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아멘. 그리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 뭐라고 하세요? 23절을 읽겠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아멘. 주인으로부터 칭찬이 어때요. 달라요 같아요?. 같지요. 같잖아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나 한 달란트 모두가 같습니다. 만약에 한 달란트 받은 종도 열심히 일을 해서 두 달란트를 가지고 왔더라면 분명히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분명히 21절과 23절과 똑같은 말씀으로 기록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적다고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는 무엇이든지간에 똑같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커 보일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두가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신실하게 충성하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를 받았느냐?, 어떤 것을 받았느냐? 많이 받았느냐, 적게 받았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께 헌신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년 한해 동안에 여러분에게 좋은 기회가 많이 주어질 겁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오늘날과 같이 만날 똑같겠어요? 제자리겠어요? 아닙니다. 많은 기회가 주어질 거예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출세할 수 있는 기회, 더 나은 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 공부할 수 있는 기회, 뭐 이런 기회가 주어질텐데,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회를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나에게 얼마나 많은 재능과 달란트가 주어졌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주를 위하여 선용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살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게 되지만,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고 자기의 잇속만 챙기고 충성하지 않으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사람에게는 더 많은 것으로 맡기시지만, 악하고 게으른 사람에게는 있는 것까지도 빼앗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똑같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하실 지 모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공평한 것입니다. 주인은 각자의 재능에 맞는 달란트를 주었다고 1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차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것을 보시고 다르게 말씀을 하십니다. 믿음으로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은 그것 위에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시지만, 작다고 충성하지 못하고 주님 앞에 불평하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 빼앗아 버리십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영적인 원리입니다. 각자의 믿음과 능력대로 받는 것이 공평한 것입니다. 믿음과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평등하게 똑같이 받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도둑놈의 심보입니다. 아주 나쁜 심보입니다. 여러분 공평과 평등을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평등은 각자의 재능과는 상관없이 받는 것이고, 공평은 각자의 능력에 맡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평등하게 달란트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능력에 맞게 공평하게 달란트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충성된 자에게 더 많은 것으로 맡기시고 충성하지 않은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 빼앗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평한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맡겨진 일에 충성을 하여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서 열 달란트를 주인에게 가지고 왔다고 했지요?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해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겨서 네 달란트를 가지고 주인에게 왔다고 했습니다. 이 두 종에게 주인이 뭐라고 칭찬을 합니까? 아까 21절과 23절을 읽었는데, 거기에 보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라고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으로 맡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맡은 자는 맡겨진 일에 충성하지 않고 그대로 주인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주인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면서 29절에 뭐라고 합니까?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합니다. 충성한 자에게는 많은 것으로 맡기시고 충성하지 않은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도 빼앗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요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송명희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아주 영감있는 찬양의 곡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고 많은 은혜를 끼치는 자매입니다. 이 자매는 뇌성마비 장애자입니다. 우리처럼 말을 잘 하지도 못하고 손으로 글씨를 잘 쓰지도 못합니다. 한 마디를 하려면 한참을 걸려야 합니다. 글씨를 쓸려고 해도 얼마나 힘들게 쓰는지 모릅니다. 이런 자매가 오래 전에 시를 써서 책으로 냈습니다. 이 자매가 고백하기를 하나님은 공평하시다고 했습니다. 이 자매가 쓴 찬양 중에 “나”라는 제목의 찬양이 있어요. 최덕신 형제가 불렀는데 우리의 귀에도 익숙한 곡입니다. 송명희 자매가 거기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가진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갖게 하셨네. 저는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를 할 수 없는 찬양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어느 정도의 사람이 공평하신 하나님. 이렇게 하면 몰라도 뇌성마비 장애자가 하나님은 공평하시다고 말하는 데 여러분 같으면 이해하실 수 있어요? 우리와 같은 정상인에게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지만 그 자매에게, 뇌성마비 장애자에게 공평하신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송명희 자매는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했어요. 이 고백을 한국 남서울 은혜교회의 홍정길 목사님께서 들으시고 송명희가 하나님이 공평하시다고 하면 하나님은 공평하시다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맡기신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송명희 자매가 비록 뇌성마비 장애자였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달란트가 있었어요. 그 자매도 그것을 깨닫고 달란트에 충성을 하면서 하나님은 공평하시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충성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직장에 충성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가정에 충성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것과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충성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혹시 여러분 들 중에도 그러한 사람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그런 분들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 얘기하지 말고 더 있다가 이야기를 하도록 하십시다. 금년 1년 동안 하나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일을 한 이후에 12월말 송구영신예배를 드릴 때에 가서 이야기를 하자는 말씀입니다. 그 때에 가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면서 맡았던 달란트를 주님과 그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하는 것을 주님과 계산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금년 연말에 가서도 1년 치를 계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교회를 섬기며 어떤 정신을 가지고 헌신하며 충성을 했느냐하는 것을 보십니다. 충성되게 일한 사람들과 충성되게 일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은 모르지만 그 때에 가서 표시가 나게 될 것입니다. 금년 1년도 지난해와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착하고 충성된 교회와 성도들이라고 칭찬하실 줄로 믿습니다. 2000년인 올해의 우리교회의 표어는 “착하고 충성된 교회”입니다. 다같이 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올해에도 우리교회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맡기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그 달란트는 모두가 같지 않습니다. 좋은교회는 이웃교회와 다를 수도 있고, 성도들은 이 자리에 함께 앉아 있어도 각자 맡은 달란트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와 같은 일을 맡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와 같은 일을 맡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와 같은 일을 맡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몇 달란트를 맡았던 간에 각자가 맡은 사역에서 신실하게 충성을 다하면 잘했다 칭찬받고 착하고 충성된 교회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맡은 달란트에 충성하지 않고 요령부리고 게으름을 떨고 변명을 한다면 연말에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들게 되고 금년에 맡았던 달란트까지도 내년에는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금년에 좋은교회와 성도들이 교회와 성도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여 착하고 충성된 교회와 성도들이라는 칭찬을 듣고, 내년에도 금년보다 더 많은 일을 맡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지역사회와 이웃을 섬기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좋은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서 샌프란시스코에 기둥과 같은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크고 놀라운 은혜를 맛보실 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우리에게 2000년을 주신 하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