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려야 할 것
마 23: 1~12
오늘은 [은급 주일]입니다. 일생을 주님의 종으로 헌신하여 충성
봉사하시다가 은퇴하신 사관님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특별 예물을 드려 그들의 은급비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날입니다. 요즘의 헌신도 어렵지만
과거의 헌신은 정말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구세군 사관이 된다는 것은 굶는 것을 밥먹듯 하기를 마음먹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요 영광된 길이요 축복의 천국이 있음을 믿기에 자원하여 선배 사관님들은 그 길을 갔습니다. 어느 교단의 목회자보다 더
배고팠고 더 어려웠던 주의 종들이 길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구세군을 성결하게 거룩하게 지켜주셨기에 오늘의 구세군이 있게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입) Q.1 여러분! 누구보다도 더 예수 잘 믿고 싶으신 분들이 계십니까? 교회 안에서
믿음 좋은 사람이라 하면 어떤 분을 말하던가요? 은혜 받은 사람, 성령 충만한 신자, 오직 예수, 교회 철저히 주일을 지키고 온전한
십일조 드리는 사람을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하고 전도 열심히 하는 분들을 그분 참 믿음 좋다 라고 할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전개)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 /ⓐ버려야 할 행위와 ⓑ앉아야 할 자리 예수님 당시에 철저한 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셨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들의 가르침은 지키는데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리새인 그러면 신앙생활 하신 분들의 개념으로는 아주 못된 사람들처럼 인식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모세 오경인 율법을 외우고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등장하는 무리들이 있는데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시 율법은 50권도 넘는 분량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를
장악한 정치적 지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옷에는 주문이 적혀 있고 푸른색의 큰 옷을 입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서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작은 율법까지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사람들입니다. 열정이 있었습니다. 까다로운 법까지 다 지키겠다는 사람들입니다.
* 당시 바리새파에는 7종류가 있었는데, 첫째, 명예파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데 그들의
명예를 과시하기 위하여 지키는 이들입니다. 쉽게 말하면 과시형 명예형 바리새파였습니다.
둘째, 지연파 바리새인들입니다. 핑계를
찾아 선행을 지연시키는 이들입니다. 말로는 자신들만이 정통파 바리새인이라고 하면서 행위는 지연시키는 이들입니다.
셋째, 고행
난행 바리새인들입니다. 정통파임을 대중 앞에 보이기 위하여 고행을 합니다. 금식기도 하기에 얼굴이 파리해졌다고 말하고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면 보면 안 된다고 눈을 감고 가다가 여기저기에 부딪쳐 피 흘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명 피 흘리는 바리새파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넷째, 곱사등 바리새파가 있었습니다. 자기들은 항상 겸손함을 보여주기 위하여 항상 허리를 굽히고 다니기에 허리가 굽고
곱사등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섯째, 계산형 바리새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베푼 선행을 계산하면서 자기 위로를 받고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여섯째, 떠는 파 바리새인들입니다. 하나님의 형벌이 두렵지도 않습니까? 하면서 벌벌 떨고 다니는
무리였습니다.
일곱째, 온전한 바리새파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율법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받아도 되겠지만 행위는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좋은 믿음은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앉아야 할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버려야 할 행위는 무엇입니까?
A. 바리새인들의 행위 중에 버려야 할 행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버릴 행위는 형식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3절을 보세요. "말만하고 행치 아니한다" 고 하였습니다. 물론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말이 있는데 나쁜 말만 골라서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단히 좋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보다는 낫겠지만 될 사람은 나은 것을 보아야지 못한 것을 보면 안될 줄 압니다. 은혜 받으면 달라져야 하는데 먼저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듣기 좋은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을 칭찬하는 말을 한다던 지 격려하는 말하기가 쉬울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조금씩 보태어서 말합니다.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을 잘하였습니다. 말은 포장입니다.
행동은 내용입니다. 내용이 다 중요한 것 아닙니다.
Q.2 예수님이 오셨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한 가요? 말도 하지
못하고 행동도 없는 극히 나쁜 신앙인이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말만 있고 행위가 없는 것은 형식주의입니다. 말쟁이들만 모여서 얼마나
말이 무성합니까?
사람들을 이렇게 분류하여 봅니다. ㄱ) 말도 잘못하고 행동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극히
불행스러운 사람입니다. ㄴ) 말은 잘못하는데 행동은 착한 이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섭섭했는데 오해가 풀리게 됩니다. ㄷ)
말은 잘하는데 행동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바리새인들입니다. ㄹ) 말도 잘하고 실천이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외식을 버려야 합니다. 말한 대로 살아가는 성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현실을 보세요. 이론이 없어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없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B.ex) 삼손 같은 이가 왜
비참한 삶을 살다가 갔습니까? 주어진 조건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주어진 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실인으로서의 행동을 했어야 했습니다. 약속은 했습니다. 그런데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파약의 죄입니다. 약속을 하고 일방적으로
해약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은급주일을 맞이하여 헌신한 것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하여 결단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내가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바로 현대판 바리새인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약속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이행해야 합니다. 말한 것에 대하여 책임을 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말한 대로 이행하지 못 하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말하는 대로 이행하지 아니할 때에 믿음 자체가 죽은 믿음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귀하고 귀하다고 하더라도 죽으면 버리고 맙니다. 믿음도 죽은 믿음은 버립니다. 바리새인의 위선을 버려야 합니다. 거짓말 죽은 믿음이
무슨 역사를 일으키겠습니까?
흔히 한국을 가짜공화국이라고 하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짜 상품이 너무나 많고 가짜
약품이 절반이라고 하는 말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사기가 무엇입니까? 거짓입니다. 이 나라가 가난하여 그렇다면 60년대 70년대보다 지금은
줄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잘 살게 되었는데 왜 사기하고 거짓을 하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진실을 생명같이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후진국일수록 거짓과 사기가 흥왕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앙인들은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말만이 아니라 실천에 옮기는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 위선을 버려야 합니다.
5절을 보세요. "그들의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다"
고 하였습니다. 옷술을 크게 하고 거기에다 경문을 수놓아서 입었습니다.
옷술은 유대인들의 겉옷 네 모퉁이에 다는 옷단인데,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의 기호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장군들이 입는 옷을 보면 훈장이 달려 있는 것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경문은 성경 구절을 쓴 종이인데 다른 사람들로 자신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긴다는 인상을 주려는데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하는 행위가 바로 위선입니다. 실제는 그렇지 못하면서 하는 체 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들은 때로는 기도 많이 하는
것처럼 회당과 네거리에서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구제할 때에는 나팔을 불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은밀하게 할 것이
있다고 하였는데, 1) 구제하는 일입니다. 나는 이렇게 다른 이들을 도왔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마 6:3) 2)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마 6:6절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들으신다" 고 하였습니다. 나 기도 많이 합니다 라고 하지 아니하여도 하나님이 보신다고 한 것입니다. 3) 금식하는 것도 은밀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마 6:18) 나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금식기도 합니다 라고 자랑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 그러합니까? 자기 과시요, 자기
선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자랑하고 예수를 높여야 합니다. 言中) 파스칼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종교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한 가지 죄를 더 범할 수 있는데 그 죄의 이름은 위선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내 모습 그대로 주 앞에서야 합니다. 위선은 버려야 합니다.
누구라도 위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화) 프레드릭 3세 황제 때의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황제에게 말하기를, "저는 위선이
없는 진실한 땅에서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때 황제는 대답하기를, "그러한 곳에 가려면 얼어붙은 대양을 지나서 훨씬 멀리까지 가야 할
것이라고 말 해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곳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에는 위선자가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자기 자신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위조된 선행이 있다는 말입니다. Q.위선 중에 위선은 무엇인가요? 무엇인가 하겠다고 해놓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위선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거짓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위선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화^^) 한 번은 지옥 법정에 재판이 열려 재판관 앞에 두 명의 죄인이 서있습니다. 한 사람은 도둑이었는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도적질 하다가 마침내 교수형을 당했으니 의당 지옥에 온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한 사람은 유명한 작가였습니다. 그
작가는 저서에서 불신과 위선을 심어주는 글을 실었습니다. 재판관은 두 사람의 죄상을 살핀 후에 각각 형벌을 내린 것입니다. 굵은
쇠사슬에 두 개의 거대한 가마솥이 매어져 그 솥 속에 두 죄인이 각기 앉혀졌습니다. 도둑의 가마솥 밑에는 장작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장작에 불이 붙여지고 도둑은 그 안에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이 점점 약해져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작가의 가마솥 밑에는 불이
약해져 있었는데 점점 세게 오르기 시작합니다. 도저히 사라지지 아니하고 불길이 거세어졌습니다. 작가는 불공평하다고 항의합니다.
흉악무도한 도둑은 금방 형벌이 끝나고 저는 점점 더 심해집니까? 그때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납니다. "네 이놈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놈이로구나. 네가 저지른 죄를 감이 도둑과 비교하다니 도둑은 나쁜 짓을 하였지만 저가 살아 있을 동안뿐이었다. 그러나 너는 너희 책을 보는
사람이 다 그 같이 계속 죄를 짓도록 하고 있으니 너 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죄를 짓게 하니 그 죄가 얼마나 큰지 아느냐?" 하더랍니다.
위선이라는 죄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위선을 버려야 합니다.
셋째, 무책임을 버려야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자기는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인은 중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데, 무 감정과 무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온갖 까다로운 법을 만들어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면서 자기들은 하나도 실행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예수께서는 남에게 짐을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은 종교라는 굴레를 씌워서
견딜 수 없는 짐이 되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Q. 참된 종교는 무엇입니까?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가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멋지고 평안하게 하셔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의무이고 특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한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이요, 잘못한 것이 있다면 제 탓이라고 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충성하는 것입니다. * 경제학 교수가 질문한
사항 Q. 채무자와 채권자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입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대답하기를 채권자는 채무자보다 기억력이 좋습니다.
맞습니다. 인간은 의무는 쉽게 망각하지만 권리는 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무도 이행하기를 바라고, 책임을 다하는 복되고 자랑스러운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 다른 이에게 짐을 지우는 자가 되지 말고 평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수행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책임은 속히 버려야 합니다. 가만히 살펴보세요. 문명인일수록 책임을 질 줄 압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이들은 책임을 다하는
이들입니다. 나라든지, 교회이던지, 가정에서든지, 서로가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자세를 가져 보세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넷째,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마 23:6-7절을 보세요.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기를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교만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겸손하지 아니하면 아직도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다고 할 것입니다.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겸손하면 자신이 행복합니다. 겸손하면 다른 이들에게 평안을 줄 수 있습니다. 겸손하면 자기 자신의 신앙에 유익하게 됩니다.
예화) 어느 날 벤쟈민 프랭클린이 이웃집에 놀러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주인이 집으로 빨리오는 지름길을 가르쳐 주며 근데 그
길에는 나지막한 들보가 하나 있는데 꼭 " 머리를 숙여요" 라고 교훈해 주었답니다. 그런데도 프랭클린은 돌아오다가 머리를 부닥치고 말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머리를 자주 숙이면 숙일수록 그만큼 부딪칠 일이 없는 것입니다.프랭클린은 그후 그 말을 마음에 담고
자만심을 버리고 머리를 숙일 생각을 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부딪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자주 부딪치는 이들은
깊이 생각하여 보아야 합니다. 머리를 숙입시다. 부부가 서로 이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겼다고 면류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져주고
머리 숙이면 평화가 옵니다. 교만은 신속하게 버릴수록 좋은 것입니다.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B. 바리새인들이 고쳐야 할 자리
앉을 자리입니다. 우리 주님이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그들의 행위는 버리고 가르침은 배우도록 하라 그리고 모세의
자리에는 앉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자리를 지키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타락하는 원인 중에 하나는 신앙생활을 적당하게
하자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이 예수 믿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종교인으로 만족하면서 세속에 물들어 아무렇게나 살면서도 회개하지 아니 하는 것 이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P) 회개가
무엇입니까? 내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하는 것으로 회개가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죄를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근데 사람들이 뉘우치고는 돌아 가야할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봉사 안하고 이제는 적당히 믿겠다 것입니다.
소금이 소금 맛을 못 내었다면 소금 맛을 내는 것으로 회복되어야지 소금이 되기를 거부하여서는 안됩니다. 맛을 잃은 소금이나 맛을 내지
못하는 소금은 둘 다 똑 같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리고 빛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썩는
것을 막는 것인데, 소금이 썩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빛이 되어야 하는데 빛이 어두워졌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와 성도를 걱정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이제는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자리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예화) 인도가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인들은 전역에 퍼져있는 크라이트라는 독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때 뱀의 해독에 대하여 평생 몸바쳐온
프레드릭 폭스 박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도의 수도 켈커타를 방문하였습니다. 많은 군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가 발견한 약 해독제를 마시고
준비한 크라이트 뱀을 꺼내어 물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뱀의 공포에서 벗어나십시오. 폭스 박사는 일약 유명 인사가 되어
여기저기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불려 다니느라고 너무나 분주하였고 계속 그는 연설을 하러 다니면서 뱀이 자신을 물도록 한 것입니다.
상처가 아물기 전에 상처 치료에 소홀하였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그는 갑자기 온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다가 고혈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과신하거나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히 자신이 앉아야 할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Q. 어떠한
자리인가요? 모세의 자리라 하였습니다.
1) 다른 이를 위하여 희생하는 자리입니다. 히브리서 11:4절에서 모세는 바로의
공주라 칭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지도자로서 깨끗하고 바르게 살아온 것입니다. 이 자리를 지켜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나만이 아닌 우리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애국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민중을
사랑하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한 번은 어느 교회에 허름한 옷을 입은 이가 찾아 왔습니다. 교회에 이런 이들이
많이 오기에 저분도 도움을 구하러 왔나보다 하였는데 뜻밖에도 선교헌금 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어렵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써
달라는 것입니다. 보니까 천원 짜리 지폐 구겨질 대로 구겨진 지폐 100장을 묶어 갖고 왔더랍니다. 그 순간 목사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더랍니다. 이렇게 생각하였답니다. 혹 하늘에서 보낸 천사가 아닌가? 우리는 모두 적은 천사가 되어 봅시다. 사랑하는 그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2)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자리입니다. 자기 자신의 자리입니다. 예화) 강아지와
당나귀 ^**^ 어떤 분이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주려고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사 갖고 왔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강아지를 데리고 놀기도 하고 주인 마님 무릎에 앉기도 합니다. 주인은 손으로 쓰다듬어 주기도하고 맛있는 것으로 배를 채워 줍니다.
이것을 보던 당나귀는 시기심이 났습니다. 난 한 번도 주인의 무거운 짐을 져주고 불평 없이 열심히 봉사하여 왔는데 돌아오면 마구간에
매어 놓고 먹이라고 여물을 주고 잠자리는 지푸라기가 깔려있는 누추한 곳에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가 찾아낸 것이
있었습니다. 강아지가 어떻게 주인에게 사랑을 받는 것인가? 바로 그거였습니다. 주인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애교를 떠는 것이다. 자신도
그러하리라 하고 주인집 안방으로 들어가 안주인의 무릎 위에 앉으려고 하였습니다. 주인 마님은 너무 놀라 정신까지 잃을 뻔하였습니다. 그때
바깥주인이 나오더니 몽둥이로 얼마나 맞았는지 모릅니다.
^^) 자기가 할 일이 있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아멘으로 순종하여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 보내어야 합니다. "명령을
기다리오니 말씀만 하시옵소서. 제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 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가 자리를
지키겠습니까? 바로 내가 지키겠습니다 라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사명을 다하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애굽에서 선민을 해방시켰고, 그들과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실패의
쓴잔을 마셔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습니까? 애국의 동기였습니다. 그는 애국에서 얻은 것은 자신이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EX) 1840년 리빙스턴이라는 이는 제1회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귀국하여 영국 국민들의 찬사와 환영을 받았습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에서 서로 다투어서 박사학위를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곳에서 리빙스턴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프리카
선교의 사명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내가 받은 은혜는 측량할 수 없어서 그러한 일을 했으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해야 할
사명을 받았기에 그 은총의 만 분지 1 이라도 갚으려는 생각에서 그리고 주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는 것뿐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러한 자리에로 돌아와 앉아야 하겠습니다. 사명을 다하는 거룩한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결론) 예화) 옛날 요단 계곡에 나무 세 그루 나무 이야기가 있습니다. ① 한 나무가 나는 꿈이 있는데
여기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쓰여지는 거야. 그때 많은 사람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라고 하더랍니다. ②
둘째 나무는 지중해를 왕래하는 배가되어 저편의 로마의 풍요로움을 이쪽에도 심어주는 일을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③
셋째, 나무는 고개를 쳐들고 말합니다. 나는 이곳에 머물러 사람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살게 끔 하겠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눈을 들어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햇빛을 쪼일 때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①
첫째 나무는 성전의 도구가 되겠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못되고 베들레헴 어느 농가에 소와 말이 음식을 담아 먹는 구유가 되어 있더랍니다. ②
둘째 나무는 지중해의 여객선이 되겠다고 하였는데 어부의 고기배가 되어 냄새나는 생선만을 실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③ 셋째 나무는 십자가
처형에 사용되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① 첫 번째 나무 구유가 된 것은 예수님이 나실 때 구유가 되었고,
② 생선 배는 예수님이 타신 배가 되었으며, ③ 세 번째 나무는 만민을 구원하는데 사용되는 십자가 나무였던 것입니다.
오늘은 은급주일입니다. 은급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말씀은 어떤 이는 주님의 종으로 일생을 바치는 헌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어떤 이는 목회자로 헌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생활 속의 헌신으로 예수님을 위해 살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모두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도구가 되어져야 한다는 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바리새적인 행위는 버립시다. 무책임한
행동도 버립시다. 그러나 자리는 분명하게 지켜야 하겠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자리요, 순종이라는 자리요, 사명을 위하여 대기하는 그
자리를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목회자로 헌신하는 모든 분들과 또한 생활 속에서 헌신하는 모든 분들 위에 말세
지말에 구세군을 사용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능력과 큰 은총으로 모든 분들 위에 함께 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