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1∼6
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미래에 교회를 통한 복음 증거의 사역을 준비시키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복음증거를 위하여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우신 일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 두 번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을 마태복음은 두 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
4:18∼22에서 먼저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 4명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마 10:1∼4에서
다시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이 두 부르심 사이에 마 5장∼7장 산상수훈을 선포하심과
마 8∼9장 10가지 이적 행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부르신
뒤에(마 4:18∼22) 가르치시고(마 5∼7장) 기적을 보여 주시면서(마 8∼9장) 그들의 믿음을 양육하심으로 헌신할 제자로,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신 것입니다.(마10:1∼4) 이는 예수님께서 부르심에 응하는 자를 예수님이 친히 양육하시고 끝까지 인도하여 주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못한다고 핑계하지 말고, 능력 없다고 주저하지 말고 제자들처럼 곧 따라나서면
됩니다.
마 4: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 4: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된
것도 예수님이 불러주신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도 예수님이 사명 주셨고, 훈련시켜 주시고,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르심은 그 자체가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부르시는 주님의 부름에 주저 말고 결단하십시오! 예수님을 따라
갑시다. 그러면 예수님이 모두 다 인도하여 주십니다.
2.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이 권능은 메시야적 능력입니다.
마 9:32∼33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문제는 이 능력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기대하거나 구하지만 오늘날은 거의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이 있다는 집단은 거의 이단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이단들은 거의 이런 권능을 나타낸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에
빠뜨립니다. 그리고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을 보면 문제가 매우 많습니다.
칼빈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 예수님이 가시고자 하는 지역에 예수님을
대신하여 파송 받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도록 그 때 그 당시 주어진 일시적 능력이지 오늘의 파송자들에게 주시는 능력이
아니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이미 예수님이 세상에 알려진 오늘날 파송 받은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능력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복음이 한번도 전해지지 않은 그래서 예수님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개척지에서 복음이 전해질 때 이러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증명해주는 표시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칼빈은 주석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말씀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복음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말씀의 권세, 말씀의 능력이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권능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3. 제자들을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내셨습니다.
마 10:5∼6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그런데 이
파송은 다른 곳과 충돌이 일어남을 봅니다.
마 10: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라는 말씀은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모순입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복음을 전파한 것과도
모순입니다.
행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그리고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라는 말씀과도 모순입니다.
그리고
사 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는
말씀하고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마 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말씀의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 먼저 선행되어야 함은 "잃어버린 양"이 누구냐? 하는 문제입니다. 요한복음은 10:16에서 "잃어버린 양"을 "우리에 들이지 않은 양"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그러므로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말씀의 의미는 이방인에게 가지 말라가 아닙니다.
마
15:21∼28에 보면 이방 땅 두로와 시돈 지방의 가나안 여인이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려 고쳐 달라고 소리칠 때 마 10:6 말씀을
하십니다.
마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그러나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딸을 고쳐
주십니다.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그러므로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말씀은 결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잃어버린 양 에게로 가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상한
갈대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신 다는 말씀입니다.
마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이는 완악하게도 예수님을 대적하는 이스라엘을
끝까지 포기하시지 않으신다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쉽게 포기하시거나 버리시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양과 같은
"믿음의 실족한 우리들"을 하나님은 또 다시 불러주시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말씀을
요약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부르심에 무조건
따르십시오! 예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둘째,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을 받으십시오! 그러기 위해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십시오. 말씀의 능력이 자유자재로
나타납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여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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