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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2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22) 예수께서 각 성 각 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 저희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
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
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
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
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
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29) 사람들이 동서 남
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눅 13:22-30, 참조 : 마
7:13,14,21-23)

예전에 이 세상에서 사치란 사치는 다 하고 많은 존경을 받던 한 여인이 있
었다고 합니다. 그 여자가 죽어 하늘 나라에 도착했을 때 그녀에게 할당된 집으
로 그녀를 안내하기 위해 한 천사가 파송되었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저택을 여
러 개 지나쳤으며 그 여자는 한 집 한 집 지나칠 때마다 그것이 자기에게 할당
된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하늘 나라의 중심 도로를 지나 교
외의 변두리 지역에 이르게 되었을 때 거기에는 훨씬 적은 집들이 총총이 세워
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변두리에 있는 오두막집보다도 작은 집에
이르렀습니다. 안내하는 천사는 "이것이 당신의 집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
자는 "무엇이라고요? 이것이 내 집이라고요? 나는 여기서 살수가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천사는 말하기를 "안됐소마는 우리는 당신이 올려보
내 준 물자로서는 고작해야 이것밖에 지을 수가 없었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
다. 하늘 나라가 지상에서 올려보낸 물자로 각자의 집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면
천국은 역시 부자들의 천국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 하늘 나라는 사
랑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표준은 세상의 표준과 다릅니
다. 세상에서 먼저 된 자가 종종 하늘 나라에서는 나중 되고 세상에서 나중 된
자가 종종 하늘나라에서는 먼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 잔치에 모두 참여하시기 바랍니
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향하실 때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들 모두
가 하나 같이 다 흩어지고 예수 홀로 남으셨습니다. 예수의 수제자로 일컫는 베
드로마저 예수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며 발뺌을 하고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
다. 이런 제자들을 두고 일찍이 예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과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끝까지 따라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수를 따르던 자들이 하나 둘씩 예수곁을 떠나자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이 예수에게 물었습니다.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이에 예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두고 마태복음 7장 13절-1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
음이니라."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해서 찾는 사람이 적어도 그 문은 사는
길이고, <넓은 문>으로 가는 길은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아
무리 많아도 그 문은 죽는 길입니다. 예수께서 가신 길, 십자가의 길은 비록 고
난과 아픔의 길이었지만 부활과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생
명의 구원을 주신 길, <산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
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
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브리
서 10:19,20)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 가로막힌 성전 휘장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
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야말로 인류가 사는 <좁은 문>으로 가는 길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가시기 원하신다면 예수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고 예수께 나아가는 길이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는 길
입니다. <좁은 문>은 예수께서 가신 길, 곧 십자가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스데
반은 복음을 전하다 동족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천사의 얼굴로 그들
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했습니다. 자신을 해롭게 하거나 원수에게 저주하
지 않고 오히려 그가 잘 되기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며 사는 길이 좁은 문으로
가는 생활입니다. 가시면류관을 받으시고 멸시 천대 조롱을 받으면서 급기야는
옆구리에 창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신 예수님을 따라
가는 길이 좁은 문으로 가는 생명의 길입니다. 원수를 사랑으로 섬기는 길이 생
명에 이르는 좁은 문으로 가는 생활입니다. 역경 중에도 기뻐하며 감사하는 생
활이 좁은 문입니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어주듯이 자기를 낮추어 겸손히 하
나님과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생활이 바로 좁은 문으로 가는 생명의 길입니
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사랑으로 섬기고, 배운 자가 못 배운 자를 사랑으
로 섬기며,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사랑으로 섬기며, 건강한 자가 병든 자를 사랑
으로 섬기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며 사는 길이 바로 좁은 문으로 가는 생
활입니다. 예수 믿고 환상을 보았다거나 천국을 경험했다거나 하면 신령하고 거
룩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낮고 천한 곳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신령하다거나 거룩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 경험담을 그토록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얘기할 때만 예수 믿고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 같고 다른 때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보다 더 못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사람은 떡(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사람은 엄연히
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는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여러분 남편과 아내가 밥으로만 삽니까? 남편과 아내
사이에 밥도 있어야만 하지만 사랑이 있어야 남편과 아내로 사는 것입니다. 마
찬가지로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
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밥을 먹지 않고는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기도만 한다고 저절로 배부른 것이 아닙니다. 밥을 잘 먹고
건강해야 기도생활도 건강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밥을 먹기 위하여 일하는 것 보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욱 거룩한 일처럼 잘
못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느니라"는 말씀에서 "하나님 입에서는 나오는 말씀"은 '말씀
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요 바로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의 사랑을 말합니다.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이동철의 실화 소설에 보면 주위의 창녀들 때문에 교
회에 지장이 있다고 경찰에 신고하여 창녀들을 쫓아 버린 교회 이야기가 나옵
니다. 영업을 못하게된 한 용기 있는(?)창녀가 술에 취해 알몸으로 교회 철문에
매어 달려 "이 개새끼들아! 우리가 너희들보고 밥 달라고 했니? 떡을 달라고 했
니? 내 몸 팔아 내가 먹고사는데 너희들이 웬 상관이냐? 우리들 다 먹여 살려
라!"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창녀의 처절한 몸부림은
더럽고, 창녀를 신고하여 쫓아버린 교회는 거룩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창녀를
더럽다고 그들의 밥그릇을 차버린 교회는 과연 <좁은 문>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남의 밥그릇 차버리라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까? 이러한
교회가 장차 천국 문에서 환영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속칭 <청량리
588>, 창녀촌 마당 한복판에서 창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노숙자들과 결식 부랑
인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지어 대접하며 그 마당에서 예배드리는 교회도 있습
니다. 이 <청량리 588>에서 예배드리는 교회는 더러운 교회요 넓은 문으로 가
는 교회입니까? 창녀들 밥그릇 차버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교회입
니까? 아니면 창녀촌 마당에서 밥 퍼주며 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가 하나
님 뜻대로 하는 교회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천국의 문전에서 거절당한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
수와 안면이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
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이 말은 예수와 친분을 구실로
구원을 보장받으려는 유대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와 함
께 식사한 적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배척하고 멀리했던 세리나 창기들과
한번도 식탁을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나는 너희가 어디
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며 분명하게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와 유대
인이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격적인 관계란 서로의
기쁨 뿐만 아니라 고통과 아픔, 배고픔을 함께 나누어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를
말합니다. 유대인이 구원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관계는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
에서 가르치셨나이다."는 것입니다. 예수께 배웠다는 이유로 구원을 보장받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거절당한
이유는 "행악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여기 "행악"은 다음 성구에서 그 분명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
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
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
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다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고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해서 그런 것이 구원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노릇한다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한다고 해서 그것이 예수를
잘 알고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인격적인 관계는
피차에 서로 아는 관계여야 합니다. 서로를 안다는 것은 참된 사랑의 관계를 말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내 자신이 하나님께 알려지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삶의 근본적인 변화는 내가 하나님을 아는데서 오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아실 때 비롯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보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신다는 데서 나의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인류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다는 데서 시작됩니
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
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
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
히 이루느니라...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
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
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
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
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한1서 4:7-19)

천국 문턱에서 거절당하지 않는 하나님의 아는 자가 되어 천국 생명의 문으
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믿고 십자가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
랑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
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고 궁
극적으로 심판과 두려움을 벗어 던지게 하고 구원의 생명에 이르게 했습니다.
여기 분명히 나타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
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바로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인
류 사랑의 길입니다. 제아무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사
랑으로 섬기는 십자가의 길, <좁은 문>으로 가는 생활이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
다. 제아무리 예배를 많이 드리고 금식기도를 밥먹듯 한다할지라도 그리고 성경
을 수도 없이 읽었다해도 사랑으로 섬기는 십자가의 길, <좁은 문>으로 가는
생활이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제아무리 귀신을 쫓아내며 예수의 이름으로 많
은 권능을 행했다해도 사랑으로 섬기는 십자가의 길, <좁은 문>으로 가는 생활
이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혹시 율법대로 산다고 신앙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
습니까? 율법은 죄를 정하여 죽이는 것이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지 못합
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 십자가의 길만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
좁은 문>입니다. 예수 믿고 그가 보여주신 사랑으로 섬기는 생활로 생명에 이르
는 <좁은 문>으로 가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