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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건축의 중요성 학1:1-15 박우택 목사 우리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리의 생활에서 가장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요?
직장문제, 자녀문제, 장래의 진로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성전건축을 준비하고 난 뒤에 한
기도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1-12). 이 기도에서 다윗은 모든 것이 주께 속하였고,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를 이해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에 공을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편은 일반적으로 예배생활과 성경공부, 기도, 봉사 등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방편들을 잘 사용함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학개서는 단순히 외형적인 성전을 건축하는 문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신약의 실체를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신약의 실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성전은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완전한 나라에서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고 영원히 교제하는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법을 가르치거나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돕는 외적인 교회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연구하면서 학개 시대에 성전건축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전건축을 소홀히 여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 있는 언약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언약관계를 지속해 주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서 이 문제의 위험성을 지적하시고 위협하시면서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음으로 결국 북쪽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남쪽 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성전을 불사르고 성전 안에 있는 모든 기물들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거민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왕하25:9-14). 이 모든 일은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죄들은 성전에서 예배하는 일이 부패하고,
사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538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고,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다시 건축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스1:2-4;
6:3-5). 이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었고 다시금 이들에게 성전을 중심으로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약 2년 뒤인 기원전 B.C. 536년에 성전의 기초를 놓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스3:8-10). 하지만 이 때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에스라 4장에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에스라 4:1을 보면 성전 건축을 방해한 사람들은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마리아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기원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북쪽 이스라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앗수르가 북쪽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난 후에 앗수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부를 앗수르로 옮기고, 또한 앗수르 거민을 이곳에 이주시켜 살게 하였습니다. 이들이 성전건축에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표현하였으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가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거절하였습니다(스4:2-3). 이들이 성전건축에 참여하려는 의도는 분명하지는 않습니다만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나라가 강성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성전을 중심한
생활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면 주도권을 잃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에 이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하였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결을 유지하며 독자적으로 성전을 건축할 수도 있었을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당하자
그들의 본색을 드러내었습니다. 그것은 팔레스틴에서 정치적으로 주도권을 쥐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에스라 4장 전체를 자세히 읽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결국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방해를 받음으로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힘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에스라 4:4을
보십시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당시 사마리아에 살던 사람들이 진정으로 성전을 건축하려는 의도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에스라 4:5부터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에스라 4:5을 보십시오.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 이 말씀의 의미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뇌물을 주어서 성전을 건축하려는 계획을 죄절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전건축에 참여하기를 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어 성전건축을 방해하였습니다. 이들이
페르시아 왕에게 어떤 내용의 들을 올렸으며, 그 글에 대하여 페르시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에스라 4:12-16과 21-24을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라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우리가 이제 궁의 소금을 먹는 고로 왕의 수치 당함을 참아 보지 못하여 보내어 왕에게 고하오니
왕은 열조의 사기를 살피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빈역하는 일을 행하여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 이 성읍이 훼파됨도 이 까닭이니이다. 이제 감히 왕에게 고하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을 필역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서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이제 너희는 명을 전하여 그 사람들로 역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치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너희는 삼가서 이 일에 게으르지 말라. 어찌하여 화를 더하여 왕들에게 손해가 되게 하랴 하였더라.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역제하여 그 역사를그치게 하니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바사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이르니라." 이들이 왕에게 상소한 경위와 내용을 보면 원래 이들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뜻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방해로 말미암아 B.C. 522년에 페르시아의 왕 다리오가 왕이
되기까지 약 15년간 공사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스4:1-5, 24). 우리가 이러한 역사를 볼 때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지 아니한 1차적인 요인은 외부적인
방해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외부적인 방해를 극복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역사는 오늘날 교회를
건축하는 문제나 주님의 일을 하는 일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당시의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을 아는 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뇌물을 주어서 방해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오늘날에도 주님의 일을 하는
일에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해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목적을 좌절시키려고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건축문제에 이러한 사람들이 없게 해 주시도록 많이 기도했고, 또한 계속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시작하면서
가장 목회자인 제가 하나님 앞에 고민한 것은 여러 가지 개인의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이나 희생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 의해 방해를 받는 일이
없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비단 바벨론 포로 이후 하나님의 교회인 이스라엘에게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고
교회를 세운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러한 외부적인 시련이 있게 되면 기도하고 힘을 내기보다는 점차적으로 용기를 잃고 무관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하나님의 교회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선전을 건축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 학개
1:2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이 말씀을 볼 때
이들은 적절한 때를 핑계로 성전을 건축하는 문제를 게속 미루어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전을 건축하는 문제는
외적인 건물로 성전을 짓는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성전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처소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비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사야 선지야는 이 성전에 대하여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이사야 56:7을 보십시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그들
생활의 가장 중심이 되는 문제였고 본질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때가 아직 멀었다는 이유로 이 일을 뒤로 미루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의 생각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지적하고 있습니다. 학개
1:3-4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이 말씀은 아직 때가 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당시 하나님의 교회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변명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들은 외부적인 여건으로도 때가 되지 않았고, 또한 가난하기 때문에 지금은 어렵다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여기에 "판벽한 집"이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천정을 댄 집"이라는 뜻입니다만 아주 고급스러운 자재로 집을 지은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칠십인역 성경(LXX)은 "둥근
천정 지붕을 한 집"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벽과 천정을 우아하게 단장한 집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이 의미하는 것에 대하여 19세기에
살았던 미국의 유명한 목사님이신 토마스 무어(Thomas V. Moore, 1818-1871)는 이렇게 풀어서 썼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때가 아니라면 너희들의 일을 해야 할 때란 말이냐? 너희가 하나님의 집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가난하다면 어디 돈이 있어서 너희들의
집을 짓느냐? 너희가 거처하는 집에 돈을 낭비하는 것을 보니 이 핑계는 위선과 허위로 가득찬 것이 아니냐?" 2. 성전 건축의 중요성을 설명하심 이제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소홀히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설명해 주시기 위해 일상적인 삶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학개 1:5-6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니느라." 여기에 "소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걸어온 삶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너희는 너희
소위를 살펴보라"는 뜻은 자기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주의해 보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실을 돌아보라는 뜻일까요? 당시 농경 사회에서 뿌린다는 것은
농사가 주업이 되어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주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여도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일군이 그 받은 임금을
주머니에 넣어도 구멍뚫린 주머니에 넣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표현으로 바꾸면 열심히 일하여 은행에 저축하는 것같은데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빠져나간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때로는 사고로, 때로는 질병으로, IMF로 돈 가치가
떨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매어달렸던 직장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럴 때 원인을 어디에서 찾습니까? 주변 환경에서 찾습니까? 특히
신자는 주변 상황에서 찾아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상태의 원인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는 학개 1:9에서 아주 분명하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이 말씀은 포로에서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빈궁하게 사는 원인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등한히 여긴 일에서 찾았습니다. 이들에게 성전을 건축하는 일의 중요성은 단순하게 외형적인 성전을 짓는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성전이 의미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등한히 여긴 일에 있습니다. 여기에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많은 것을 기대하였으나 실제로는 너무
적었고, 적은 수입을 집으로 가져갔지만 그것마저도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모습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바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5:10에 보면 "열흘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지기에서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원인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에 소홀히 한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하나님의 성전은 폐허가 된채로 그대로 있는데도 이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일에만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전체적인 의미는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의 어려움의 원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주의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을 등한히 여긴 결과 어떻게 하셨는지 학개 1:10-11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잘 되는 문제가 외적인 상황의 변화나 자기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또 우둔한
사람들은 자연을 지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헛된 우상에게 답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들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당시 농경사회에 적용한 말씀이지만 소위 정보화된 사회에서도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솔로몬도 시편 127:1-2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솔로몬이 집을 건축하는 자와 성을 파수하는 파숫군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가지고 어떤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집을
짓고, 성을 지키고 양식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모두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의미가 있고, 복된 생애가 되기를 바랍니까?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요즘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용어가 있다면 구조조정입니다. 기업의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자기 자본없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저축한 돈으로 기업을 확장하거나 외국의 돈을 국가와 국민을 담보로 빌려다 사업확장하는 기업풍토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려고 하지 않고 권력잡은 자와 줄만 서면 기업이 되는 풍토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벌 회장의 위치에 있으면서 개별 업체에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구조를 조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우리 나라에
국제통화기금의 신탁통치를 받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성장이 거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구조를 조종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구조가 무엇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노력과 지혜로 학위를 받고,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며, 경제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우리
삶의 모습을 성찰해 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과신,
자기의 노력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신앙의 거품입니다. 이 거품을 속히 제거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하는 날이 속히 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의 구조를 조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삶을 개혁하고 구조를 조정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리 삶의
구조를 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구조를 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구조를 조정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하여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많이 연구하며 고민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우선권을 어디에 두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을 위하여 규칙적인 예배생활, 성경읽기, 기도, 성도들과의 교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과 봉사 등의 방법들을 사용해 왔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하는 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헌금하는 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자기 중심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삶의 구조를 조정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어떻게 축복해 주시는지 검증해 보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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