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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남 목사 여호와를 찾으라
첫째, 아모스 선지자는 민족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백성이 여호와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치와 허영과 죄악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찾으라고 아모스 선지자는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저희들이 읽은 다섯 절의 짧은 본문 속에도 세 번이나 여호와를 찾으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생각으로는 여호와를 찾는 것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한 번 말씀하는 것으로 그칠 수 없어서 다시금 세 번이나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본문 속의 아모스는 여호와를 찾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사느냐 죽느냐하는 것을 결정하는 문제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찾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모스 선지자가 이 문제를 이스라엘 백성이 분명히 듣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세 번이나 거듭 강조하면서 또 아모스 전체를 통해서 이와 비슷한 부르심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4장에서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를 다섯 번이나 언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모스서에서 이렇게 중요하게 여러번 반복하여 외치고 있는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했던 것, 하나님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했던 것을 뉘우치고 고백하며 그러한 잘못된 일에서 돌아서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모스는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바른 예배와 관련하여 성소에 대해서 말씀하고 공법과 정의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뜻을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다시금 분명하게 저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가르쳐 주는 것은 여호와를 찾는 것은 악인의 길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서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며, 불의한 사람이 악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선하고 바른 생각을 하고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이사야가 가르쳐 주는 것은 여호와를 만나기를 원한다면 언제든지 우리가 여호와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시고 기다리고 계실 때에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기다리지 아니하시고 떠나가시면 우리를 징벌하시기로 결정하시면 그때는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이시간 내 생명 가져가시면 하나님을 찾을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뉴욕 어느 한인교회에 한 권사님의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은 서울대를 나왔고 노래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답니다. 그 교회 찬양대의 알토 중에서 제일 잘하는 분이었답니다. 그런데 몇주일 교회를 나오지 않아서 목사님이 권사님께 물어보셨답니다. 그때에 권사님께서 딸이 창세기 22장을 공부하다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을 듣고 나도 외아들 하나 뿐인데 아들을 바치라 하면 어쩌냐고 하면서 이런 하나님은 못 믿겠다면서 교회를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딸은 창세기 22장을 자세히 끝까지 공부하지 못했던 것같습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은 이삭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이삭대신 바칠 수양을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바치라는 요구, 명령과 함께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대대로 믿음의 조상을 만들어주는 큰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저희들이 아는대로 고전10:13에서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당하게 할 때에도 피할 길을 주사 우리로 하여금 시험을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자상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을 깨닫지 못했던 것같습니다. 이 딸이 교회를 안나오고 있으면서도 교회 장로님이 생일잔치를 한다고 하니 온가족이 참여를 했습니다. 식사하고 교제하다가 남편이 장모님과 부인을 먼저 집으로 보냈습니다. 남편은 그 외아들과 함께 남아서 음식도 나누고 놀다가 술을 마시고 싶어서 다른 곳에 가서 술을 마시고는 저녁늦게 롱아일랜드에 있는 자기 집을 향해서 갔습니다. 그러나 가는 길에 안개가 끼고 술기운이 돌아서 중앙선을 침범해서 앞차와 충돌해서 그 남편과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린 젊은 딸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살펴보며 우리에게 이런 불행이 오기전에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대하16:9에서 여호와를 찾되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는 자에게 단순히 죄 용서하는 은혜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주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세대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가 싶지 않은 세대입니다. 정말 여호와를 전심으로 찾아서 단순히 죄 용서함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면서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나라가 바로 서고 백성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바른 예배를 드려야함을 아모스 선지자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바른 예배를 드리는 곳을 찾아가서 예배드려야함을 말씀합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과 길갈, 브엘세바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모스 선지자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들에서 거짓 가짜예배가 드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벧엘은 야곱이 돌 베개 베고 잠을 자며 하나님을 대면하고 단을 쌓았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의 첫 왕인 여로보암이 그곳에 금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우상을 통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치않는 저주받은 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에 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요단강을 건너와서 처음 밤을 지새면서 진을 치고 할례를 행하며 유월절을 지켰던 곳으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곳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곳에 우상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았던 곳으로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름이 기억되고 있는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에도 성소를 지어놓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예배를 드렸던 곳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길갈이 이방사람의 침략에 의해 탈취되며 벧엘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폐허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벧엘을 가 보았는데 돌과 바람소리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저주받아서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처럼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바른 신학과 신앙이 서있는 중앙교회에서 예배드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중앙교회가 좀더 하나님 앞에 예배 잘 드리기 위해서 변 목사님께서 여러 가지로 연구를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장로교 전통에 서있지 않는 것도 성경에서 허락한 것은 우리가 사용해서 즉 예배 때 박수를 치든가 하면서 우리 성도들이 보다 생동감있게 하나님께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귀한 목사님 밑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을 감사하면서 드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기도도 많이 하겠다고 하면서 기도원이나 가정 제단을 찾을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방언자들이 많고 오히려 사탄의 사주를 받는 가짜예배와 기도처소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에 저희 대학이 2학기를 시작했는데 시작하면서 신앙수련회를 가졌습니다. 강사 목사님이 삼각산에서 기도도 많이 하시고 영적 체험도 많으신 목사님이십니다. 우리나라 각처에 있는 많은 기도원들을 찾아가본 목사님이십니다. 그 목사님 말씀이 전남지역 기도원 중에 바로 서있지 못한 기도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 가정처소는 무엇이냐면 어느 교회에서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켜서 가정처소를 세워 예배드리는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보다 자기의 개인적인 이권을 챙기고 어쩌면 사탄의 사주를 받아 예언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면서 우리에게 경고해 주셨습니다. 중앙교회 성도님들은 기도원 가실때에도 담임목사님께서 허락하시는 기도원만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정처소는 아예 가지 않는 것이 좋은줄 압니다. 예배드린다고 해서 유명하다고 해서 무조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경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하는 것을 잘 살펴보아서 가야 될 것을 오늘 아모스 선지자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둘째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 순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와 사랑과 주신 말씀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찬송, 헌금, 성경봉독, 설교, 성찬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 무엇하러 오셨습니까? 왜 예배드리러 오셨습니까? 제가 가끔 이렇게 물어보면 어떤 분은 은혜 받으려고 예배드리러 왔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복 받으려고 왔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예배드리러 온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며 경배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예배드리는 주목적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 경배하는 것. 내가 은혜받는 것은 후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린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말로만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까?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다른말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경에서 보면 구약에서도 예배라는 말을 섬김, 봉사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긴다는 말을 예배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영어에서도 예배를 서비스라고 합니다. 왜? 예배를 통해서 내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것이 중요한 핵심요소이기 때문에 섬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릴 때 순서 순서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께서 일주일 동안 베풀어 주신 것 감사해서, 우리 가족을 지켜주신 것 감사해서, 내가 일주일 동안 범죄한 것 있으면 회개하는 간절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기도를 드릴 때 그 예배가 그냥 지나가는 예배가 되지 않을 줄 믿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각성, 새롭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하는 다짐하는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찬양을 어떻게 드립니까? 정말 하나님을 내 입술로 가지고 섬기십니까? 잘 부르든지 못 부르든지 내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냐는 말씀입니다. 저는 가끔 저의 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리러 와서 찬송소리가 잘 안들리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물어봅니다. "얘야 너 아까 예배드릴 때 찬송소리가 안들리더라?"그러면 찬송했다고 합니다. "찬송했어? 내 귀에 안들리던데?" 뜨겁게 찬송하라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찬송드릴 때 옆의 사람이 부르는 찬송 듣는 것 그것 아닙니다. 누가 찬송하는 것 들으러 온 것 아니라 내가 받은 것 감사해서 내가 하나님께 찬송드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찬송을 드릴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릴뿐만 아니라 내 자신이 성화됩니다. 내 자신이 기쁨으로 가득찹니다. 찬송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정말로 내가 드리는 찬송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헌금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지에게 주는 것 아닙니다. 누구한테 세뱃돈 주는 것 아닙니다. 내 장부를 아시고 재산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가진 것 최선껏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도 잘 듣기 위해서 잠이오면 나를 꼬집으면서 잠을 깨우면서 한 말씀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듣는 것입니다. 예배는 섬기며 드리는 것입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를 구경하는 것 보는 것 아닙니다. 중앙교회 성도님들 예배시간 순서 순서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예배할 때 여러분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저는 중앙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면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마지막 송영 때 성도들 많이 나가십니다. 그러나 송영도 예배의 순서입니다. 필요없는 것 해놓은 것 아닙니다. 찬양대가 송영을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한 주간의 생활을 하나님께 다짐하며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새로온 사람이 중앙교회에 와서 사랑없더라는 말을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로 격려해주고 악수하고 등을 다독거려주며 사랑을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강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일을 드로아를 출발하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온 성도들이 모여서 밤늦도록 하나님 말씀을 듣고 예배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유두고라는 청년이 2층 다락에서 졸다가 떨어져 죽었습니다. 나중에 살려주기는 했지만 .. 주석가들이 묻습니다. 왜 죽은 이야기를 써놓았는가? 후대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다가 졸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써 놓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졸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때 순서 순서 속에서 참 간절하게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중앙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바른 예배는 예배에 합당한 진실히 회개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찬송하는 마음이 수반되어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1장을 보면 무수한 제물 즉 수양의 번제, 살진 짐승의 기름, 수송아지, 어린양의 피를 가져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 너희들에게 그것 가져오라 했더냐? 너희들은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말씀대로 잘 살려는 결심과 각오없이 물질만 가져오는 것을 보고 "누가 그 물질 가져오게 했더냐?" 반문하시고 있습니다. 시편 50편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재물을 갖다 드리지 않으면 배고파하시는 하나님이신줄로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물질을 가져옵니다. 그들을 향해서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수소나 수염소를 필요치 않으시는 만물의 주인이심을 강조합니다. 삼림의 짐승과 천산의 생축이 주의 것이고 산의 새들과 들의 짐승도 주의 것이며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마음없이 헌금만 많이 내면 내 죄를 용서해주시고 복 많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헌금은 오히려 하나님께 짐이되고 싫어하시는 것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귀한 헌금 바치실 때에 헌금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헌금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고 회개할 것 회개하고 하나님께 다짐하면서 간절한 예배 드리는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넷째, 바른 예배는 예배의 정신이 예배후 계속해서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사울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과 양과 소의 좋은 것들을 살려주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책망하면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예배를 드릴때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찬양하는 것 같은데 예배가 끝난후 사회생활 할 때 믿는 자의 모습이 없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이 없을 때 그런 예배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불신자이고 예배때만 신자인 그런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눈을 감아 버리시고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우리의 삶이 신자다워야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이 민족이 살고 나라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우리 성도들이 공법과 정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7-8절에서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공법은 국가와 공공단체와 개인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 법을 인진 즉 쑥같이 쓴 것으로 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공공의 삶에서 공법을 지켜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며 안심하게 해주고 기쁨을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 공법을 악용하여 질서가 깨어지고 쓰리며 괴로운 쓰디쓴 쑥처럼 사회를 만들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정의는 공법에 맞는 행동을 말합니다. 부당하게 고발을 당하거나 억눌림을 받은 사람들을 변호해주고 자유롭게 해주고 바른 사회와 희망찬 사회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정의를 땅에 내던져 버리듯 정의를 행하려고 신경을 쓰지 않고 버려둠으로 부정부패의 사회를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나라의 공법과 정의가 행해지도록 다음 네 가지를 구체적으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나라에서 세운 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한 성실히 지켜야 할 것입니다. 둘째, 뇌물을 주거나 받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거짓말을 하지않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넷째, 우리가 해야할 책임과 의무을 성실히 해야 할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묘성과 삼성 바닷물을 생각할 때 이것들이 사람을 향해서 "여보시오. 사람들아!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셔서 이렇게 운행하고 있습니다. 왜 당신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습니까? 당신들이 어떻게 하려고 그런 불신가운데 행동하고 있습니까?" 하면서 책망하는 말을 듣듯이 우리를 자연을 향해서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사랑하는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밤하늘의 별빛처럼 밤과 대낮처럼 바닷물처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자기위치를 지키며 순복하는 자연들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땅에서 우리의 위치를 지키면서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사회가 복 받도록 하는 충성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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