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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중심적인 삶

시127:1-5

박우택 목사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신앙고백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1문에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두 가지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인데,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표현으로 하면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의 목적을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과거 역사에서부터 철학자들은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하는 문제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 중에 소피스트 철학자들은 인간은 짧은 이 세상을 살면서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존재를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서 인간을 정의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방법은 잘못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떤 존재로 만드셨는지에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철학을 무엇이라고 정의합니까? 철학을 "보편적인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진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함이 없이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에서 모든 좋은 것이 나옵니다. 이것이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인데 우리는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연구할 시편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를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연구하기 위하여 우리는 첫 번째로는 이 시편의 표제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의미, 두 번째로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중요성, 세 번째로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의미

시편 150편 가운데 120편부터 134편까지 모두 15편의 표제가 우리 번역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ࢫࠌ०लࣉ ࠘ࠉৌ)라고 붙여져 있습니다. 이 말의 원문은 "제사한다"(ࠄࠌࠒ)는 말의 복수 명사형에다 정관사를 결합한 말입니다. 우리 번역처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붙여지게 된 것은 유대 랍비들의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에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일곱 개와 여덟 개로 이루어져 모두 15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습니다(겔40:6, 22, 26, 31, 34, 37). 그리고 "올라간다"는 말의 복수 명사형은 계단으로 사용된 예도 있습니다(사38:2; 왕하20:9-11; 느12:32). 이 말에 근거하여 유대 랍비들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 랍비들이 율법을 해석한 미쉬나(The Mishnah)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15편의 시 가운데 어떤 시들은 성전에 올라가는 것과 관계없는 시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에서 이것을 이해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영어 번역본을 보면 아주 다양하게 이 말을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단순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KJV에서는 "가장 뛰어난 노래"(A Song of degrees)라고 번역하였습니다. RSV에서는 "송영송"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문자적인 의미로는 "올라가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자적인 의미를 고려해 볼 때 한 가지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노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15편의 시를 내용적으로 검토해 보면 단순히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120편은 환란 가운데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고, 121편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도움의 원천이라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22편은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자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132편은 다윗과 맺은 언약을 이루시는 분을 찬양하는 노래이고, 133편은 성도의 교제의 행복에 대한 노래이며, 134편은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 있는 자의 복에 대한 노래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검토하여 볼 때 하나님을 알고 그와 교제하는 사람이 가장 복되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120-134편에 기록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중요성

그러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 본문에서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적으로 이 시의 전반부에서 여호와의 도움이 없이는 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하여 먼저 1절에서 두 가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집을 짓는 자와 성을 지키는 파숫군의 이미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중요성을 논증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집이라고 할 때 이 시의 저자인 솔로몬의 경우 성전을 말할 수도 있고, 그가 사는 궁궐들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솔로몬은 그의 재임 기간 중 7년은 성전을 지었고, 13년은 궁궐을 지었습니다(왕상6:37-38; 7:1; 9:10). 그는 이 건축을 할 때의 경험을 가지고 이 시편을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집을 짓는 일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세우시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20년간의 건축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건축자재를 마련해 주시고, 그 건축자재를 잘 다룰 수 있는 기술자를 붙여 주셨는지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건축하는 자가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대구에서 아주 큰 교회 가운데 한 교회가 지난해에 엄청난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대형건물에 짓는 큰 H형의 빔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듯이 국제통화기금(IMF) 시대가 되어 모든 금리가 올라가고 환율이 배로 올라서 그 교회를 건축하던 회사가 부도를 당했습니다. 지금 그 교회는 H형의 빔만 높이 세워져 있고, 그것이 녹이 슬어 흉측한 모습만 드러내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큰 교회가 내분에 휩싸여 교회가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단 이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삼풍백화점 사고나 성수대교 붕괴사건 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 지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건축자의 이미지에 이어서 파숫군의 이미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파숫군은 적이 침공해 들어오는 것을 감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파숫군이 성을 열심히 지키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파숫군이 아무리 열심히 지키면 적이 들어오지 않을까요? 들어오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성을 안전하게 수비할 수 없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힘이 없어서 나라를 빼앗기 나라도 많이 있지만 최강의 전력과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망하는 예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과거에 로마제국이 그러하였고, 몇 년전에 걸프전 때에 쿠웨이트가 그러하였습니다. 특히 쿠웨이트가 후세인이 지배하는 이라크에 의해 침공을 받았을 때와 상황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 나라는 첨단무기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방 세계의 이익 때문에 자기 나라를 지켜줄 뿐만 아니라 이라크와 종교가 같고 동맹을 맺어있기 때문에 안전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전격적으로 이 나라가 함락되지 않았습니까? 결국 개인의 운명이나 국가의 운명이나 하나님이 지켜주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여러분! 요즘 밤늦게 공부하기도 하고, 일하기도 하지요? 아침저녁으로 쉴 사이 없이 분주하게 일합니다. 이 일은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없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쁘다는 이유로 하나님은 항상 뒷전입니다. 조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친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라고 말하며 교회생활을 등한히 여깁니다. 물론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입니다만 이러한 태도는 말씀을 악용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어제 제가 참 사랑하는 한 장로님의 사고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1월17일, 우리가 소위 설 대목이라고 부르는 날에 예전과 같이 밤이 늦도록 일하시다가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습니다. 오른쪽 대퇴부와 무릎 아래 뼈가 완전히 부수어지고, 왼쪽 발목의 복숭 뼈가 완전히 부수어져 대수술만 네 번이나 받았습니다. 어제야 소식을 듣고 제가 전화를 드렸더니 병원에 누워서 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제가 이번에 하나님 앞에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장로가 새벽기도회와 수요밤예배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하게 하셨지만 뇌에 이상이 없고, 척추에 이상이 없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중상이긴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가면 낫게 된다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먼저 생각하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좋은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있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저는 이 장로님에게 왜 이러한 큰 어려움을 주셨는지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은 참 신실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로님은 우리 교회의 주보를 보내어 드리면 그것을 꼬박꼬박 읽고 빠진 주일이 있으면 전화로 꼭 챙겨서 읽으시고 감사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가정이 어려울 때 꾸준히 도와주신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장로님이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제가 목사님이 강도사 시절에 바쁜 일도 중요하지만 교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새벽기도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는 말씀이 생각이 나서 참으로 많이 회개하였습니다."라고 울먹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가장 바쁜 일입니까? 우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 수고한 모든 일이 헛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헛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집을 건축하는 자와 성을 파수하는 파숫군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가지고 어떤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집을 짓고, 성을 지키고 양식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모두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의미가 있고, 복된 생애가 되기를 바랍니까?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요즘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용어가 있다면 구조조정입니다. 기업의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자기 자본없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저축한 돈으로 기업을 확장하거나 외국의 돈을 국가와 국민을 담보로 빌려다 사업확장하는 기업풍토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려고 하지 않고 권력잡은 자와 줄만 서면 기업이 되는 풍토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벌 회장의 위치에 있으면서 개별 업체에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구조를 조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우리 나라에 국제통화기금의 신탁통치를 받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성장이 거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구조를 조종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구조가 무엇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노력과 지혜로 학위를 받고,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며, 경제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우리 삶의 모습을 성찰해 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과신, 자기의 노력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신앙의 거품입니다. 이 거품을 속히 제거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하는 날이 속히 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의 구조를 조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삶을 개혁하고 구조를 조정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리 삶의 구조를 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구조를 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구조를 조정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하여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많이 연구하며 고민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우선권을 어디에 두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을 위하여 규칙적인 예배생활, 성경읽기, 기도, 성도들과의 교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과 봉사 등의 방법들을 사용해 왔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하는 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헌금하는 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이 일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까? 말라기 선지자 당시에 사람들은 그 차이점이 빨리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느냐? 지금 이 상황을 한 번 보라. 교만한 자가 잘되고, 하나님을 악을 행하는 자가 잘 되지 않느냐?"(말3:14-15)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계명을 지키는 생활을 등한히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믿음의 표현들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신경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요 수학자인 파스칼(Pascal)은 그의 신앙명상록인 팡세 제3장 "도박의 필요성에 대하여"에서 "인간은 사소한 일에는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것은 기이한 전도이다."(198)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으로 말미암아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축복

하나님을 그 삶의 중심에 놓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축복을 주실까요? 그것은 2절 하반절부터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2절 하반절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여기에 "그의 사랑하시는 자"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구약시대에는 언약의 백성들이요,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함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이 구원받은 사람의 특성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구조를 조정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구원함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 중심적으로 그의 삶의 구조를 주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할 때 꾸벅꾸벅 존다든지, 예배시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졸면서 간혹 이 말씀은 인용하기도 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잠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해하기도 하였고, 또한 하나님이 축복하신 때와 방법으로 이해하기도 하였습니다. RSV에서는 잠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번영과 안식, 평화를 주시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번영을 주신다, 안식을 주신다, 평화를 주신다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NASB같은 성경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때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잠을 잘 때도"(even in his sleep)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밤에 잠을 잘 때에라도 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싶습니까?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으로 해석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그 삶에 중심에 놓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3-5절에 나오는 말씀은 본문과 관련없이 보입니다만 이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을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에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은 자녀들을 축복하셔서 그들로 인하여 위로를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자녀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구조를 바꾸고 그 말씀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은 그 자녀들이 든든한 힘이요 자랑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자녀들이 든든한 위로와 힘이 된다는 것을 비유로 말하기를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할 때 그 자녀들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 시편의 저자 솔로몬은 자녀들이 잘되는 문제도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전환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원리를 알고 이 원리를 생활에 적용하기 위하여 힘쓰는 생활은 우리 생활에 선택적인 요소인 기호품같은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고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신명기에서는 이러한 삶을 가리켜 "너희의 생명"(신32:47)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여러분의 삶의 구조를 조정하십시오. 이것은 결국 믿음으로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구조를 조정할 때 이 말씀처럼 하나님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순종할 때 이 축복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파스칼은 그의 책 팡세에서 어떤 사람이 "나는 믿음을 가지자마자 쾌락을 포기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가정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쾌락을 포기하자마자 믿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주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믿음을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를 행할 수도 없고 당신이 말한 것의 진실을 검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쾌락을 포기하고 (믿고 순종할 때) 내가 말한 것이 진실인지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240)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이 삶을 체험하고 싶습니까? 자기 중심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삶의 구조를 조정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어떻게 축복해 주시는지 검증해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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