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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가르치라

시78:1-8

박우택 목사

오늘은 우리 한국의 교회들이 다함께 지키고 있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이 날 우리가 우리 가정의 자녀들과 우리 교회 주일학교의 유·초등부 어린이들과 청소년기에 해당되는 우리의 자녀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성경의 대표적인 역사시인 78편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핌으로 우리와 우리 교회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며, 왜 가르쳐야 하는지의 문제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시는 시편에 기록된 대표적인 역사시입니다. 대개의 시편이 거의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편 105편, 106편과 더불어 이 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차례로 서술하면서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셨는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시들은 공통적으로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행동과 지속적으로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여,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역사시라고 할지라도 약간씩 관점을 달리하면서 역사를 보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할 시편의 주제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역사를 가르쳐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역사는 세상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역사, 또는 하나님 중심적인 역사를 의미합니다. 이 주제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는 이 시의 저자와 성격을 먼저 살펴보고, 두 번째로는 어떤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가, 세 번째로는 왜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 시의 저자와 성격

이 시편의 표제에 보면 "아삽의 마스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이 시의 저자가 누구이며, 어떤 목적으로 기록하였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의 표제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시의 저자는 아삽입니다. 아삽은 다윗 시대의 사람으로 성막에서 노래하는 자로 특별히 세움을 받은 세 사람의 레위인(헤만, 아삽, 에단)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대상15:16-19; 16:4-7). 그의 시가 시편에 모두 12편이 있습니다(시50, 73-83, 참고. 대하29:30). 아삽이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로 세움을 받은 것은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겨와 성막을 설치하였을 때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언약궤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언약궤가 빼앗긴 이후 약 70년 동안 방치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 정상적인 예배를 드릴 수 없었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았기 때문에 법궤를 옮겨와서 성막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노래하는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어떻게 주장하셨고 인도해 오셨는지를 가르치기 위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였습니다. 이 때에 지어 부른 시가 시편 105편인데, 이 시를 짓는 일에 아삽이 관여하였습니다(대상16:7). 그래서 이 시는 다윗 시대에 아삽이 지은 시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지으진 시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가 어떤 성격의 시인지 "아삽의 마스길"이라는 표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스길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생각하다," "교훈하다"(ࠌऄহ)의 분사형으로 "교훈," "지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표제 그대로 이 시편은 교훈시입니다. 그러면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하여 지으진 시일까요?

이 시의 저자인 아삽은 교훈이 무엇인지 먼저 말하지 않고, 자기 백성이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내용이라는 점을 먼저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그러면서 아삽은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일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시78:2-3)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 시의 저자인 아삽은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일을 발표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였을까요? 이것은 신약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실 때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13:13)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6)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너무 쉽고도 명백한 이야기를 전하여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알지 못하는 비밀한 이야기로 남게 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비밀이 아니라 은혜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삽이 전하는 교훈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의 내용을 잘 알고, 이 시가 교훈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2. 어떤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가?

그러면 아삽이 지은 이 시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것"(시78:3)인데, 곧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이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구원해 주신 일부터 가나안에 거주하여 다윗 시대에 예루살렘에 성막을 설치할 때까의 역사입니다. 아삽은 이 역사에 대하여 "후대에 말하리라"(시78:4)고 하였고, "여호와께서 …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시78:5-6)고 하셨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 역사를 자손들에게 계속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history)라는 말은 헬라어에 "찾아서 안다"는 의미인 히스토레오(historeō)라는 말에서 나왔고(참고. 갈1:18, 우리 번역에는 '심방한다'는 말로 번역하였으나 찾아서 알기 원한다는 의미임), 여기에서 라틴어 히스토리아(historia)로 발전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역사라는 말을 쓸 때 어떤 사건이나 인물이 걸어온 자취를 말할 때 사용하기도 하고, 인간사회가 변천해 온 전 과정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공동체든지 역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나라의 역사, 미국의 역사, 우리 교회의 역사, 어떤 가문의 역사 등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지나간 과거를 살피는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하여 미래를 전망하고, 현재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그 방향성을 찾게 하는데도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나 공동체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러한 역사는 쓰는 사람의 관점, 즉 역사관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의 역사를 기술할 때 문화사적인 관점으로 볼 수도 있고,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볼 수도 있고, 작고한 서울대 교수였으며 역사학자였던 이병도 씨처럼 식민사관을 가지고 우리 나라의 역사를 기술할 수도 있습니다.

아삽이 이 시에서 말하는 역사는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부터 가나안에 정착하여 다윗이 예루살렘에 성막을 설치할 때까지의 역사입니다. 이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시편78:9-72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애굽에서 큰 능력으로 구원해 내시며,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일과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삽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역사가 단순히 한 국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역사는 아브라함의 자손과 다윗의 자손을 통하여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는 구원역사입니다. 이 점은 스데반의 설교 가운데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구약의 아브라함 시대부터 요셉과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 시대까지에 역사를 개관하면서 그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관련된 역사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에서 아삽이 설명하는 역사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역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어떻게 교제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특히 아삽이 기록하고 있는 이 시편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어떻게 교제하시는 지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내용을 가만히 조사해 보면 하나님의 양면성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면은 하나님의 큰 능력과 기사를 행하시고, 약속의 땅을 주시며, 거기에서 기업을 얻게 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면은 그러한 능력과 기사를 베풀었는데도 언약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하나님이 심판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보면 "그러나" "그럴지라도"라는 말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아삽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언약에 신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큰 능력으로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지만, 언약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악을 행할 때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삽은 바로 이 역사를 말하면서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일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시78:1-3)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것은 비유도 아니고 비밀한 일도 아니고 누구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구원함을 받아 가나안에 거하게 된 일과 이 곳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신 역사이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거나 불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역사에 개입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역사입니다. 아삽이 보여주고자 했던 역사는 바로 이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 인간의 생사화복의 문제, 즉 살고 죽는 문제나 복을 받거나 화를 당하는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연이거나 사람들의 의도대로 만들어 가는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역사를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아삽은 이 역사를 기록하면서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신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시78:4)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역사를 인간중심적인 관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이 복을 받는 문제와 화를 당하는 문제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이 역사를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역사는 거의 동일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역사시인 시편 105편과 관점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편 78편과 105편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관점의 차이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05편도 78편처럼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보호하신 역사부터 가나안에 거주하여 예루살렘에 성막을 설치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행하신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하지 않고 그 가운데서도 그들을 은혜로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편 78편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함께 언약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할 때 벌하신 사건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시편 78:14-22과 시편 105:39-42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이 차이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시편 78:14-22

시편105:39-42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화광으로 인도하셨으며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며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같이 저희에게 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 반석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저희가 저의 탐욕으로 식물을 구하여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능히 떡을 주시며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

여호와께서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 불로 밝히셨으며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로 오게 하시며, 하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케 하셨도다. 반석을 가르신즉 물이 흘러 나서 마른땅에 같이 흘렀으니 이는 거룩한 말씀과 아브라함을 기억하였음이로다.













 

우리가 이러한 차이점들을 비교해 볼 때 시편 105편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의 은혜라는 관점에서 본 것이고, 78편은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역사는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인간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으로 역사를 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3. 왜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가?

그러면 우리는 왜 하나님 중심적인 역사를 가르쳐야 할까요? 그것은 시편 78:5-8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시편 78편에 아삽이 기록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이 역사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보셨습니까?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를 알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큰 능력과 기사로 은혜를 베푸신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언약관계를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거나 불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역사도 함께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세상을 주장하시며 통치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모든 좋은 것들은 어디서부터 나옵니까? 우리는 이 하나님 중심적인 역사, 그리고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할 수 있는지의 역사를 우리의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고 할 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을 말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 또는 상황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소망을 두도록 가르치고 있습니까?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세상교육을 잘 시키는 일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만드는데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 신자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진리에 의해 자녀들을 가르치고 인도하기보다는 변화되어 가는 세상의 교육관을 따라 인본주의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교육방법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가르치는 일들, 예를 들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들, 매일 성경을 읽는 일, 정직하게 사는 일 등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일날에 학교에 보내거나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이 경쟁사회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 아삽이 기록한 시편 78편을 보면서 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잘되고 못되는 문제, 복과 저주를 받는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지의 여부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중심적인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와 모든 신자 부모들은 무엇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까요? 우리는 아삽이 소개하고 있는 대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큰 재앙으로 구원하신 능력, 홍해를 갈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일,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신 일 등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일들을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거나 신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일들은 역사 가운데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과 교제하시는지를 가르쳐야 하고, 하나님의 통치방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모든 일을 행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온 역사와 세상의 주로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 구원역사이며, 이 역사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까지 계속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어떻게 행하셨으며, 현재 어떻게 교제하시는 지의 역사만이 아니라 장차 이 역사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지에 대한 미래의 역사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누리지만, 주님이 재림하시게 될 때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어떤 교제하시는지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들을 저주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사실을 가르칠 때 우리 가정의 자녀들과 교회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축복해 주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역사를 알고도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살지 않고 상황 때문에 여전히 인간 중심적으로 산다면 그것은 진정 믿음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우리의 자녀들을 언약의 자녀로 키우는 문제는 믿음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사는 자들에게는 복을 주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한 자들에게 화를 내리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사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여기에서 역사를 배워도 여전히 비유와 비밀한 일로 남아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 인식하느냐의 차이점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키울 때 지금 당장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조급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때가 되면 그 차이점들을 서서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온 우주와 역사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특별히 오늘 어린이 주일을 지키면서 우리 가정과 교회에 맡겨주신 언약의 자녀들에게 어떤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지 이 시편 78편의 말씀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이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어떻게 교제하시는지를 보여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 역사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지만,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거나 불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를 보면서 온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게 하옵소서. 세상을 주장하시며 통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모든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와 우리 교회에 맡겨주신 자녀들에게 가르치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궁극적으로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역사도 우리가 알고, 우리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 역사를 가르칠 때 당장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조급하거나 낙심하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와 우리 교회에 맡겨주신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조만간에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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