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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도의 아름다운 얼굴

본 문 : 출 34:27-35

성홍모 목사, 영주교회

 

지난주간에 몇 분의 목사님들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 머리가 아주 희어지고 늙은 모습이 물씬 풍기는 것이었습니다. 한 목사님이 하시는 말, "어이 成 목사는 안 늙을 줄 알았는데, 좀 늙어 뵌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더해졌으니 늙어 가는 것이야 어쩔 것입니까? 그러나 한 가지 바라는 것은 험하게 늙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마지막까지 목사다운 얼굴을 지녔으면 좋겠습니다.

얼굴을 주제로 하는 명언도 많고, 의미 있는 금언도 많습니다. 우리 나라의 속담에는 "사람의 얼굴은 열 번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의 얼굴 모습은 살아가면서 겪는 환경에 따라 여러 번 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얼굴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좋은 환경과 좋은 마음을 품고 사는 것으로 좋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우리말에 재미있는 말이 하나 있는데 "밥이 얼굴에 더덕더덕 붙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뜻은 얼굴이 복 있게 생겼으니 잘 살겠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복스럽게 생겼고, 돈이 따라붙을 얼굴이 있습니다.

영국의 명언 가운데는 "얼굴은 마음의 초상이다." "The Face is the portrait and picture of the mind" 라고 하였습니다. 영국의 속담으로 "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 "얼굴은 성격을 말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라틴세계에 내려오는 말 중에 "얼굴은 마음의 인덱스"라는 말도 있습니다.

문학을 하고 철학을 하던 사람들은 얼굴에 대한 명언을 많이 남기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다. 한 권의 책이다. 용모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H. 발작의 말입니다. "남자의 얼굴은 자연의 작품, 여자의 얼굴은 예술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A.프레보) 얼굴에 대한 가장 유명한 말은 "40을 지낸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저야 한다" 아브라함 링컨의 말입니다.

학생 때 영어 시간에 읽었던 미국의 소설가 나다나엘 호오도온이 쓴 [큰 바위 얼굴]이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간단히 그 내용을 소개하면 산골 오두막에 사는 어니스트라는 소년은 자기 집 앞 바위산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바위산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아서 "큰 바위 얼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전설에 따르면 언젠가는 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엄 있고 인자한 성자요, 훌륭한 인물이 이 고장에서 태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년 어니스트는 그 예언이 실현되어 성자를 만나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그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면서 항상 마음을 수양하였으며 큰 믿음과 열린 마음과 원만한 성품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하는 억만장자 부자가 나타났으나 조금 겪어보니 인색하기 짝이 없는 장사꾼이었으며 후에 보니 굶어 죽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천하 장군이 나타났으나 조금 후에 보니 무자비하고 거친 사나이에 불과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또 큰 바위 얼굴을 닮은 대통령이 나타났습니다. 그의 웅변은 뛰어나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것 같았으나 그 사람도 위엄하지도 못하였고, 인자한 마음이란 전혀 없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였습니다. 네 번째로 천하에 제일 가는 천재적인 시인이 나타났습니다. 시는 장엄하였는데 그 사람을 만나보니 시만큼 뛰어나지 못하여 어니스트는 실망하였습니다.

어니스트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 전도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니스트는 해가 넘어가는 석양녘에 큰 바위 얼굴이 잘 보이는 숲 속에 동리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어떻게 살면 인생을 보람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것인가를 가지고 정열적인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리 사람들과 천재적인 시인이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으면서 이 동리에서 일생 살아온 농부이며 전도사인 어니스트야말로 전설에 나오는 그 큰 바위 얼굴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어니스트는 인품이 뛰어나며 사랑과 자비를 가지는, 인간이 가질 최고의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재 시인이 외쳤습니다. "보세요. 보세요, 저 어니스트야말로 큰 바위 얼굴 바로 그 사람입니다. " 이리하여 그 예언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나다나엘 호오도온이 이 [큰 바위 얼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내 안에 큰 바위 얼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가 고대하고 사모하는 큰 인물은 바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사십일 사십야를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친히 새겨주시는 율법의 두 돌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므로 수건으로 가리고 사람들에게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특히 얼굴은 바로 그 사람이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 바로 얼굴입니다. 어떤 얼굴은 참 고운 얼굴도 있고, 험상한 얼굴도 있습니다. 얼굴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얼마쯤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영국의 아놀드라는 사람은 자기 동족들 중에 천박스러운 얼굴이 너무나 많은 것을 한탄하면서 "우리 나라에는 진흙탕 같은 얼굴이 너무 많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느 나라를 나쁘게 말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얼굴을 다시 고쳐야 할 때라고 봅니다. 멋진 의복보다는 아름다운 얼굴, 웃는 얼굴, 긍정적인 얼굴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많은 사람의 얼굴을 소개하고 있는데 찾아보니 천태만상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아주 세상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있는 안색의 가인의 얼굴입니다. 창4장에 "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4:4하-7) 동생의 제사는 기쁘게 받으시고 자기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을 때 동생을 미워하여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는 분노와 질투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얼굴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의 지혜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람의 여러 지체들 중에 이 얼굴처럼 중요한 것은 다시없는 줄로 압니다. 그 사람의 얼굴은 곧 그 사람입니다. 얼굴을 보고서 사람을 구분합니다. 그 사람의 얼굴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리 쌍둥이라고 해도 그들의 부모님은 구분합니다. 우리도 오랫동안 그들과 사귀다 보면 구분이 쉬워집니다.

사람의 얼굴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요긴한 오감의 작용이 바로 얼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각과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모두 얼굴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창문이 된다는 점에 있어 얼굴은 그 사람의 전부요, 그 사람 자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바로 얼굴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참으로 정교하고, 다양하고, 풍부한 인격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의 수많은 생물 중에 하등 동물에는 얼굴이 없습니다. 여러 짐승에게 얼굴이 있다고 하지만, 생존을 위한 기능 외에 다른 가치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름답고 균형미가 있고, 성숙한 모습의 얼굴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얼굴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천하에 없는 엄청난 은혜를 받고 있다고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얼굴을 찾아보니 참으로 다양한 인간사를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범죄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의 얼굴은 숯보다 검은 얼굴이었습니다. 에례미야 애가 4:8에 보면 "이제는 그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 가죽이 뼈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거리에서 알 사람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죄악의 열매가 바로 얼굴에 나타났으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데 바로 그들의 얼굴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 중의 한 분이신 느혜미야는 민족을 위한 마음에 수심으로 가득한 얼굴이었습니다. 그가 바사의 수산궁에서 왕에게 술을 따라 드릴 때에 왕이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네가 병이 없는 사람인데,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느혜미야는 나라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황무해지고 성문이 다 불타 없어졌으며 민족이 뿔뿔이 흩어졌으니 어찌 그 얼굴에 수심이 없겠습니까? 느혜미야는 왕의 후한 사랑을 받아 이스라엘의 총독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와 성을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은 어떠한 얼굴이어야 할 것입니까?

먼저 우리는 인간으로 부끄러운 얼굴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죄악에 사로잡히고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 그 얼굴은 어두어지고 부끄러운 얼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먼저 밝은 얼굴이어야 합니다. 항상 기쁘고 웃음이 가득하고 온유함이 흘러야 합니다. 이 죄악 세상에 살아가지만, 우리 주님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보니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매사에 긍정적이고, 얼굴은 해같이 빛나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은 소망으로 가득 차 있는 얼굴이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얼굴을 보니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삼상16:12)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속 중심을 보시는데, 다윗을 보니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총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총리가 되신 요셉의 모습을 보아도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확신이 넘치고 소망이 있어 좋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인격과 성품은 반드시 그 얼굴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 인간을 하나의 기계로 찍어내서 똑같이 만드시지 않고 모두가 다른 성품과 인격으로 창조하시고 얼굴의 모양도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얼굴은 우리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얼굴 속에 나타나는 인상, 얼굴 속에 비치는 인격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격이 성숙해지면 인상이 바뀌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흐리게 되면 얼굴이 흐리게 되고 마음이 즐거우면 표정도 밝아질 수가 있습니다.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 얼굴에 성실한 향기가 풍겨납니다. 그러나 추한 생각과 더러운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얼굴에서는 자연히 비열한 인상이 풍겨지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속이려야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얼굴은 영광스러운 얼굴입니다.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 주는 얼굴입니다. 마음에 양심이 살아있고 평화가 있고 그 마음에 사랑이 있는 얼굴이 영광스러운 얼굴입니다. 성경에서 영광스러운 얼굴은 순교자 스데반의 얼굴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천사의 얼굴이 된 것입니다. 천사의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로 나타난 것입니다. 얼굴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그 마음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원형인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배우고 모방하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을 하고 주님과 함께 기도하고 주님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주님을 모방하고 닮는 생활인 것입니다.

본문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사십일 사십 야를 지냈습니다. 그럴 때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났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바라봄의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진리의 광채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그 얼굴을 들어 주실 때 우리에게는 참된 평안이 있고, 진리 안에 거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제사장의 축복 가운데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 얼굴 빛 아래서 살아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외쳤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세아 6:1-2)고 하셨습니다. 시편의 시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5)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눅9:29)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짝하면 세상을 배우지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사십주, 사십야를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시간을 내야 합니다. 신앙을 위한 시간을 쪼개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미 들었던 말씀이었고, 한 번 기록되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에 분노하여 산 아래로 그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렸습니다. 이제는 모세가 돌판을 깎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갔으며, 하나님께 친히 말씀하시면서 그 돌판에 새겨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야 합니다. 신6:6에 "오늘 날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신6:6-7)고 하셨습니다. 잠3:3에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고 하셨습니다. 잠7:3에도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고 나의 마음 중심에 간직해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알아서 새겨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자신도 그 말씀을 들고 살기로 하였습니다. 그럴 때 그의 얼굴은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빛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교회}라는 표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멋으로 붙인 간판이 아닙니다. 일년간 기도의 제목으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의 성품에 있어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분노를 품지 말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얼굴에 나타나고, 나의 생활에 있어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일생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 예수님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고 하면 마침내 나의 생각과 나의 의지가 예수님의 것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그가 생각하는 것 우리의 마음에 품은 것을 그의 언어로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되 우리의 생활에서 예수님의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은 과연 그리스도인인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도 얼굴도 행위도 점점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가 될 수 없더라도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삶에서 표현되고 또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예수의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얼굴을 가꾸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얼굴을 갖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성도의 아름다운 얼굴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데서 출발합니다. 주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령 충만 사람이 되어 기도하며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과 얼굴은 더욱 아름다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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