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wer massge internet:www.imr.co.kr |
|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복음전파 행13:13-52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은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이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얻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 위치해 있는 가장 중요한 존재목적 가운데 한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의 전 영역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는 생명을 얻은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여 생명을 얻게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기 위하여 사도 바울이 여러 나라, 여러 지역,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곳에 복음을 전파하는 내용을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연구하면서 복음전파의 중요성을 우리가 인식하고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통찰력을 얻을 수 있고, 항상 우리가 전도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형성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설교한 내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연구할 본문의 주제는 구약의 중심되는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설교의 내용 사도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먼저 유대인들이 많이 모이는 유대인 회당을 찾았습니다. 유대인
회당은 유대인들의 공적인 예배와 가르침, 그리고 총회들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율법을 가르치고 메시아 사상을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회당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바나바와 바울이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구약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소위 복음 전파에 대한 접촉점을 가지기가 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이 설교한 내용은 구약성경을 가지고 구약성경에 예언된 분이 누구이며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행13:17-23)은 구약역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바울은 구약의 역사는 그리스도가 오시는 통로라는 점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행13:24-37)은
구약의 역사가 예언하고 있는 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논증하였습니다. 세 번째
부분(행13:38-41)은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도록 권유하는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서론 : 그리스도가 오시는 통로로서의 구약의 역사(행13:17-23) 이 내용은 우리가 읽어보아서 알고 있겠습니다만 이스라엘 역사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회상하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을 택하신 일에서부터 다윗 때까지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 지방에
있을 때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거기에서 떠나라고 한 사건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여호수아
24:2에 보면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곳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에
우리가 성경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는 것처럼 애굽에서 약 400년간 있었습니다. 이 일 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백성을 구원하시고, 광야생활
40년의 역사를 거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특히 이 40년간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행13:18)라고 하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덧붙인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한 행동 때문에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 것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하신 약속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후 약 450년의 역사 동안
가나안에서 사사시대를 거치게 하셨습니다. 이 후에 사울을 세웠다가 다시 다윗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이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운 것은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삼상13:14).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13:22)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물리적으로 다윗의 육체적인 후손을 왕으로 삼는 일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윗의 씨,
즉 그의 자손을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사도행전
13:23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을 통하여 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을 통하여
오신 분이 곧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약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야기는 곧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는 말씀과 잘 연결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구약성경을 가지고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역사를 언급하고 있는
실제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발견하셨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부터 다윗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순히 육체적인 후손이나 국가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약속된 메시아가 오시는 통로였다는 것입니다. (2) 본론 :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행13:24-37) 그런데 바울은 아브라함부터 다윗에 이르는 역사를 언급하고, 다윗으로 씨로부터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로 세우신 분이
예수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난 뒤에 이 분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사도행전 13:24-37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할 때부터 예수님이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까지의 역사를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먼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였습니다(행13:24). 그런데 세례요한이 오실 예수님을 예비하였다는 사실을 전파하고 난 뒤에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불행하게도 그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26-27을 보십시오.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관원들이 예수와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바울이 이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말씀을 전파하였으나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관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구약의 선지자들, 특히 안식일마다 듣고 배우는 구약성경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절에서 바울은 구약에서 약속하고 있는 대로 메시아가 오셔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28-30절의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 저를 살리신지라."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신데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셨고 부활하심으로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한 증인으로 사도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행13:31) 바울은 구약성경에 약속된 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난 후에 이 사실과 지금
설교를 듣고 있는 청중들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13:32-33의 말씀입니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 그리고 32절에 "우리는 너희에게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라고 하는 말은 원문에 있는 대로 번역하면 "우리는 너희에게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인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번역과의 차이점은 복음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에 대한 설명이 33절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시고, 승천하시사 하늘 우편에 앉게 하신 모든 사건을 말합니다. 복음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하늘 우편에 앉으신 사건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구약의
예언을 증거로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말이 지어낸 말이 아니고 구약의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33-35을
보면 바울이 구약의 세 본문을 인용함으로 그리스도의 왕되심과 언약의 성취와 부활을 증거 하였습니다. 첫 번째로는 시편 2:7이고, 두 번째로는
이사야 55:3이며, 세 번째로는 시편 16:10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하거나 논문을 쓸 때 자기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하여
권위있는 증거를 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 설교한 내용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가지고 아브라함과 다윗에 이르는 이스라엘 역사를 언급하면서 그 역사는 다윗의 씨로 말미암아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약속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예수님이신데 이미 이 세상에 오셨는데도 선지자의 말인 구약성경을 잘못 이해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구약성경의 예언을 성취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이 장사되신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유대인들이 가장 권위있게 생각하는 구약성경을 가지고 입증하였습니다. (3) 결론 :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의롭다함을 얻음(행13:38-41) 바울은 지금까지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구약성경을 가지고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셔서 결국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입증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3:38-3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ՏՕՍ, Therefore)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죄사함을 얻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아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모세의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모세의 율법은 오히려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 아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구속사역을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하는 말은 법정적인 용어입니다만 이 말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였지만 의롭다 하심을 얻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신분이 되었다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의롭다 하셔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무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적용되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9절 하반절에 보면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이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을 때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생명을 얻는 일과 대조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엄숙한 경고를 사도행전 13:40-41에서 말씀함으로 그의 설교를 마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모두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바울은 당시 회당에 모였던 유대인 청중들에게 하박국 선지자가 행한 위협적인 심판을
인용하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멸시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 인용된 말씀은 구약성경 하박국 1:5의 말씀입니다.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모두지 믿지 못할 일이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들이 경고를 무시하였을 때 바벨론을 들어서 엄청난 재앙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역사를 언급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면 당시에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한 유다처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의 설교 마지막에 믿는 자의 결국과 믿지 않는 자의 결국을 소개하는 실제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느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행하신 모든 구속사역을 믿는다면 성령께서 그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해
주시며,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구약시대 하박국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복음을 거절할 때는
바벨론의 침공 때보다 더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을 선택하셨습니까? 믿음의 길을 선택하셨다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주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계속하여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설교의 결과 : 청중의 반응 그러면 바울의 이 설교를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반응은 거의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과, 다음에 믿겠다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그 말씀을 사모하고 계속해서 설명해 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42의 말씀에 보면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청하다"고 하는 동사의 헬라어는 파라카레오(ՐՁՑՁՊՁՋՅՙ)인데,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용어에 대하여 RSV는 간청한다(beg)라고 하는 용어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설교한 내용에 대하여 합당하게 응답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그 다음 안식일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여기 모인 청중들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을
관심있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만 대개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3:45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ՄՅ,
But RSV)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여기에 "그러나"가 보여주는 사상은 많은
사람이 모였으나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유대인이었다고 하는 사상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박한다"고 하는 말은 원어적인 의미로
반대한다(ՁՍՔՉ-ՋՅՃՙ)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반대하고 비방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유대인들에게 바울과 바나바는 사도행전 13:46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 향하노라." 바울과 바나바가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해져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주의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먼저 듣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도 오순절 이후에 설교할 때 이 사실을 말하였습니다(행3:26). 이러한 사상은
바울의 글이나 행동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이 복음이 전파되어져야 하고, 다음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또한 그렇게 하였습니다(행14:1; 16:13; 17:2; 17:10,17; 18:4,19; 19:8; 28:17,23).
그러나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므로 이방인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구약의 이사야
49:6의 말씀을 인용하여서 그 증거를 밝혔습니다. 사도행전 13:47의 말씀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바울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순종하면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특히 이 말씀과 함께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Luke)는 아주 의미있는 말씀으로 주석(comment)하였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영생을 얻기로 작정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작정과 믿음의 상관관계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사람만 믿기 때문에 전도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전도해도 소용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작정하신 사람은 다 믿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부르시는 방법이 복음전파를 통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전1:21)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전파의 능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전파할 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영생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은 복음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복음을 전파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말씀의 전파를 통하여 그의 택하신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여지고 믿어진다면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파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은 우리들이
전하는 복음을 통하여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이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하여 그 인생관이 달라지고 세계관이 달라지는
것을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꿈을 가집시다. (우리의 기도) 살아계셔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택하시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믿어지게 하시고, 또한 이 복음을 전파해야 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약에 예언된 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우리가 열심을 내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로 인하여 복음을 들은 자들의 인생관이 달라지고, 그들로 인하여 세상이 아름답게 변해가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
은혜목회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