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 총리 요셉

(창41:46-57)



  서른 살에 자립한 두 사람

  공자는 열 여섯살 처녀와 칠순 노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공자를 낳고 3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무당 노릇을 해서 공자를 먹여 살렸습니다. 공자가 열 일곱살 되던 해에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되었습니다. 신분도 비천한 공자는 억척스럽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 살에 학문의 세계에서 자립했습니다.

  공자는 17세에 양부모를 모두 잃었으나 30세에 학문으로 자립했습니다. 공자도 요셉도 열 일곱 살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자는 17세에 고아가 되었고 요셉이 노예로 팔려간 것이 17세 였습니다. 공자는 학문적으로 자립한 것이 30세이고, 요셉은 정치적으로 자립한 것이 30세입니다.

  “요셉이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세라...”(46절) 노예로 팔려갔던 소년 요셉을 애굽의 총리에 오르게 한 것은 무엇일까?


  ������ 사랑이 성공의 토양입니다.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본다(세익스피어)고 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아들 요셉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아기가 충분한 젖으로 자라듯이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 사랑이 필요한 것은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창37:3-4)

  요셉을 편애하는 야곱을 이해할 만도 합니다.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  7년간 보수 없이 외삼촌을 섬겼습니다. 7년이나 지나자 언니가 결혼하지 않았으니 동생부터 보낼 수 없다며, 7년을 더 봉사하면 레아까지 주겠다고 했습니다. 한 여자를 위해 14년을 섬겨 얻은 아내 라헬의 몸에서 90이 넘어서 얻은 아들입니다. 라헬은 임신도 늦어져 나이 들어 요셉을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귀염둥이였습니다. 왕자처럼 키웠습니다. 자존감을 갖고 자랐습니다. 주인공 의식이 인생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긍지, 자부심, 용기는 모두 사랑에서 나옵니다. 기가 꺾여서 자신을 비하하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힌다면 긍지도 없고 용기도 없습니다. 자존감은 사랑을 받은데서 옵니다. 자존감이 높아야 자신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도 좋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증오심은 자존감이 부족해서입니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여성이 전혀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주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부모가 이혼하고 새 엄마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에 아이들이 놀면서 던진 돌에 맞아 얼굴에 상처가 났습니다. 그 날 돌에 맞아 쓰러져 잠시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났을 때 호랑이 같던 할머니가 자기를 안고 달려가면서 “어떤 놈이 나의 귀한 손녀를 다치게 했어! 잡히기만 해봐라. 그냥 두지 않겠다!”고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귀한 사람이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 엄마 밑에서 기죽어 지내던 소녀는 할머니의 사랑의 언어로 자기를 각인 한 것입니다. 할머니가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귀하다는 자존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성격장애는 사랑의 결핍에서 옵니다. 삐뚤어지고 탈선하는 것은 사랑 받지 못한데서 생깁니다. 요셉의 성공 요인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에서 왔습니다.


  ������ 은혜가 성공의 에너지입니다.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심으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창39:4-5)

  보디발의 눈에는 요셉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창37:3). 보디발이 요셉에게 은혜를 베푼 것은 그가 은혜를 받을 만큼 눈에 들었습니다. 믿을 만하고 무엇이든지 맡길만한 인물로 보여 가정 총무를 시켰고 모든 것을 위임한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학을 마치고 1965년 현대 건설에 입사했습니다. 입사한지 5년 30세만에 이사가 되고 35세가 되던 해에 최고 경영자가 되었습니다. 젊어서 성공한 것입니다.   다윗 왕도 그렇습니다. 그는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13:22)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사람의 눈에도 거슬리지 않습니다.

  은혜는 힘입니다. 진리를 분별할 수 있고, 은혜로 선을 행 할 수 있습니다. 고난과 억울함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 은혜의 힘입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은혜로 믿습니다. 믿기 때문에 죽인다해도 살기 위해 믿음을 포기할 수 없는 믿음, 그것이 은혜입니다. 욥은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더라도 나는 그를 믿으리라” 하였습니다(욥13:15).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해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을 이겼습니다. 억울함도 참았습니다.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감옥에서 바라고 기다렸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창41:41)

  요셉은 30세에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윗도 30세에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삼하5:4). 레위인들이 성직에 봉사할 수 있는 최소연령이 30세입니다(민4:23). 예수님도 가르침을 시작하신 것이 30세였습니다(눅3:23). 요셉이나, 다윗이 30세에 총리가 되고,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17세부터 설교를 시작하여 설교 황제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은혜로 더 좋은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수고가 성공에 이르게 합니다.


  “요셉이 그의 장남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51절) 하나님이 현재의 고난을 잊어버리게 하시고 아버지 집 생각을 다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의미를 담아 장자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잊어야할 지난 일을 잊지 못하는 것은 불행입니다. 좋은 기억력이 축복이지만 망각하는 것은 더 큰 축복입니다. 잊어버리는 능력은 위로부터 오는 은혜의 힘입니다. 자기를 괴롭힌 사람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고 자기를 해친 사람에 대한 보복의 칼이나 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한심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이 망각 없이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잊어버릴 수 있는 영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52절) 둘째 아들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지었는데 “번성함”이라는 뜻입니다. 번성 앞에 있는 단어가 “수고”입니다. 수고 없이는 번성할 수 없습니다.

  수고가 무엇입니까? 가장 힘든 노력입니다. 운동 선수들이 땀 흘리며 훈련하는 수준이 수고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한도의 힘과 에너지를 최후의 땀 한 방울까지 쏟아내는 것이 수고입니다.

  “수고의 떡”(시127:2) 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떡을 얻기가 그만큼 힘든다는 뜻입니다.    소설가 김훈이 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렇습니다.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히 말해서 돈벌어 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먹고사는 일이 중요한 것을 아는 것이 사내의 가장 중요한 일이고 이것을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말콤 그레드웰이 쓴 아웃라이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타고난 재능이라는게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합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 재능 있는 이들의 경력을 조사하면 할수록 타고난 재능의 역할은 줄어들고 연습이 하는 역할이 더 커졌습니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이 재능을 키운다는 연구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엘리트그룹, 둘째 그냥 잘하는 그룹, 셋째 음악교사가 꿈인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첫째 엘리트 그룹 학생은 1만 시간 연습, 둘째 그냥 잘하는 그룹 학생은 8천시간 연습, 세 번째 그룹은 학생은 2천시간 정도 연습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야든지 하루 세시간 10년을 꾸준히 하면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1만 시간 연습하는 그룹입니다. 에디슨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 천재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전3:13). 노력하는 수고가 성공에 오르게 합니다. 요셉의 성공은 수고하여 얻었습니다. 


  20대 성공은 10대에서 나오고, 30대의 성공은 20대를 어떻게 살았느냐는 결산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4,9)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배할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합니다.   

 일본의 부자 히토리는, 상인은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는 정도에 따라 그 점수만큼 그에게 돈을 벌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영혼을 살찌우면 큰돈을 벌게 되고, 영혼을 살찌우지 않으면 돈벌이도 없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영혼으로 승부를 걸면 돈벌이의 성적표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