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고생하는 요셉
(창37:24-28, 39:20-21)
정주영 회장의 동생 정세영씨가 고려대학교 입학시험을 치고 돌아와 형에게 “아무래도 합격은 힘들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정주영씨는 버럭 화를 내며 “야 이놈아! 나도 고대에 들어갔는데 네가 왜 못 들어가니?” 알다시피 정주영씨는 소학교밖에 못 나왔습니다. 자기가 고대에 들어갔다는 말은 건물 지을 때 막 노동자로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형제는 큰 소리로 함께 웃었습니다. 웃기는 얘기로 불안한 마음을 날려보낸 것입니다. 웃어넘기자! 는 말은 옛부터 쓰여온 말입니다.
요셉이 아스낫을 아내로 맞고 첫아들을 낳고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젊어서 고생한 사람입니다. 형제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죄 없이 강간 미수범으로 몰려 2년의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 어디를 봐도 괴로워하거나 슬퍼한 일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는 웃어 넘겼습니다. “므낫세의 은혜” 억울한 고생, 눈물겨운 슬픔과 고통을 모두 잊어버리게 해주신 은혜입니다.
������ 구덩이에 던져지다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이 양을 치고있는 현장으로 갔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멀리서 보고 말합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18-20절)
열 두명 아들중 장남인 르우벤이 요셉을 구할 마음으로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그를 광야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아우들이 형의 말을 듣고 “그를 광야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24절)
요셉의 형들은 처음에는 요셉을 시기했습니다. 시기가 악의로 변했습니다. 악의가 살인 모의로 발전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감정에서 시작된 것이 갈수록 흉악해지고 갈수록 깊어져서 범죄의 밑바닥까지 추락합니다. 요셉의 형들도 그 타락하는 경사가 수직적으로 가파르게 치닫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군대에 있을 때 좌익단체인 남로당에 개입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1949년 2월 당시 정보국장이었던 백선엽 대령의 결정에 따라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박정희 소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의연하게 “한번 살려주십시오”라고 말했는데 백선엽 대령은 “그럽시다. 그렇게 해보도록 하지요”라고 했답니다. 10일 후 수색에 있는 처형장으로 끌려가 죽을 처지였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군대 내부의 좌익을 척결하지 않으면 안될 신생국가였습니다.
르우벤이 요셉을 살릴 마음이 있었듯이 백선엽 장군도 박정희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미군에서 백선엽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양해를 받았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요셉을 죽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정희가 소령 때 죽었으면 대한 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요셉도 박정희도 이 세상에서 해야할 일이 많아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요셉은 장차 이스라엘의 목자와 반석이 되었습니다. 박정희는 대한 민국의 과학 대통령, 경제를 살린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어떤 사람인데 그를 버립니까? 형제들은 요셉을 버렸고, 보디발은 요셉을 사들였습니다. 알고 샀든 모르고 샀든 요셉을 사들인 것은 최상의 결정이었습니다. 요셉을 사들인 보디발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창39:5)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과 살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 노예로 팔려 가다
“그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고 은 20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28절)
노예의 값은 은 30세겔 입니다. 예수님도 은 30세겔에 팔리셨습니다. 요셉은 은 20에 팔렸습니다. 미디안 장사꾼들은 자신들이 사다 판 요셉이 얼마나 비싼 보물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장차 바로의 신뢰를 받아 한 국가의 경제를 주무를 창고 열쇠를 갖게될 총리감인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그의 증조부인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손이 이방에게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4)
요셉은 지금 노예의 신분으로 팔려가는 신세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은 20세겔에 팔아 버렸지만 요셉은 천만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시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29-31)
사회적인 지위가 사라지고 물질이 내게서 떠나가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우리의 영적 신분은 변함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왕자요 공주들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명한자 같으나 유명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책에 그 이름들이 기록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시기, 질투, 모함, 누명, 감옥... 이 같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입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들에게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시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라 하매 그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러라”(26-27)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고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생명과 평안입니다. 살리는 말이 죽이는 자의 계획을 무너뜨렸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르우벤과 유다가 자비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이 요셉을 살렸습니다. 요셉을 죽인들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그 말이 요셉을 죽이려는 공모를 무산시킨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사랑과 돌보심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애매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 죄 없이 감옥에 가다
“이에 주인이 그를 잡아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하시매”(창39:20-21)
돌이 굴러굴러 가장 낮은 골짜기로 처박히듯이 요셉은 죽음의 구덩이에서 겨우 나와 보디발의 집을 거쳐 이제는 감옥에까지 굴러왔습니다.
감옥이란 재판을 받기 위해 범죄자들을 가둬 두는 곳입니다. 형벌이나 처형을 받기 위해 구류해 두는 곳입니다.
감옥은 굴욕과 수치의 장소입니다. 요셉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죄인들의 수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는 예수처럼 죄없이 곤욕과 심문을 당했습니다.
요셉은 죄수가 되고 얼마 후에 죄수들의 관리자가 됩니다. 간수장의 신뢰를 받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신뢰를 받아 가정총무가 되었고, 감옥에서도 간수장의 신뢰를 받았고, 나중에는 궁중에서도 바로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신뢰와 영예는 항상 함께 다닙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라는 말씀이 신뢰받음으로 증거되었습니다.
요셉에게 감옥생활은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는 거기서 왕을 모시는 신하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왕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감옥이 요셉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감옥이란 육체에는 나쁘나 마음에 좋은 곳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라”(전7:3)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지금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습니다. 그는 외국인으로 누구도 도와줄 자가 없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주면서 나는 히브리 소년으로 여기 들어올 죄를 지은 일이 없다면서 당신이 출옥하거든 나를 기억해 달라 부탁했지만 그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요셉은 2년이나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거기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생활을 회상하면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1:9)고 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참고 기다리는 것을 배웁니다. 꿈을 위하여 내 생명을 노린 형제도,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낸 자도 용서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세상에는 믿을 인간이 없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기로 결심한 곳이 감옥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자신의 무죄를 밝혀 주실 것과, 또 자신의 순결을 존중해 줄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사30:20) 풍요와 자유는 인생을 부패하게 하기가 쉽습니다. 환난과 고생이 인생의 스승입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17:3) 고난의 도거니가 사람을 만듭니다. 고생이 사람을 키웁니다.
욥은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성인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시는 비밀을 알았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꿈을 꾸었지요 난 꿈을 꾸었지요 하나님이 주신 그 푸르른 꿈을 꿈을 꾸었지요 난 꿈을 꾸었지요 하나님이 주신 꿈, 꿈을 품으며 알게된 꿈의 비밀을 기대하며 그 꿈을 위하여 난 끝까지 참고 기다렸지요 하나님이 주신 꿈... 나를 팔아 버린 형들을 용서하며 보디발의 아내를 용서하며 그 기나긴 시간 용서를 배우며 꿈을 이루어 갔죠...”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후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