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예배

(시30:11-12)

 

 

 

축구 선수가 춤을 추는 것은 골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춤이 있다면 감격과 기쁨의 예배입니다. 춤을 춘다는 것은 최고의 기쁨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춤을 춘다든지, 손뼉을 치는 것을 보고 경박하다거나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춤이란 강요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몸을 흔드는 것입니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자기 감정을 자유롭게 표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도저히 그러지 못합니다.

예배란, 각자 자신의 방법과 신념에 따라서 춤을 출 수 있고, 안 출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멘!”을 외치든 침목하든 강요하거나 제재할 일은 아닙니다.

 

㰊± 춤 Dance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화여 춤이 되게 하시며” 슬픔은 고통입니다. 성경은 슬픔과 고통은 같은 의미로 나타납니다.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걱정이나 번민이 모두 슬픔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성전 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구걸하기 위해 성전 문 앞에 두는 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려고 성전에 들어가다가 그 사람을 봅니다. 그는 무엇인가 얻고자 하여 사도들을 바라봅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키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벌떡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행3:1-8).

앉은뱅이가 앉아 있던 자리는 가난과 슬픔의 자리였습니다. 그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본 것이 처음입니다. 40년 동안 눌려 있던 슬픔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었습니다(말3:2).

춤을 영어로는 dance 댄스라고 합니다. 댄스는 기뻐서 껑충껑충 뛰는 것입니다. 뛰면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몸을 마구 흔드는 것입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셔서 춤을 추는 것이 예배의 핵심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된 것입니다.

사람의 몸짓에 따라 의미가 다릅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회개와 겸손의 표시요, 엎드리는 것은 겸손과 간구의 표시입니다. 뛰는 것은 기쁨과 감격의 표현입니다.

앉은뱅이의 춤은 준비된 춤이 아닙니다. 음악이나 장단에 맞춰 추는 배운 춤도 아닙니다. 한번도 일어나 보지 못한 자가 구원에 감격하여 나타내는 기쁨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홍해를 건넜을 때 그들의 기쁨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바로의 군대가 홍해에 진입하자 물이 군대를 덮어 버렸습니다. 출애굽의 기쁨을 춤으로 나타냅니다. 억압된 노예 생활속에서 탄식하고 울부짖던 그들이 속박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15:21)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고 찬송하는 그 힘으로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임신한 엘리사벳이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를 방문했는데, 엘리사벳의 태아가 복중에서 뛰어 놀았습니다(눅1:41).

여러분의 영혼이 춤추는 예배가 되기 바랍니다.

 

㰊² 기쁨 Joy

 

기쁨은 인생의 요소요, 인생의 욕구입니다. 기쁨은 인생의 힘이며 인생의 가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기쁨에 대한 욕구가 있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권리도 있습니다.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11절하)

예배시간은 옷을 갈아입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베옷을 벗기고 기쁨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기쁨의 옷을 입히기 위해 슬픔의 옷을 벗기십니다.

탕자가 먼나라에서 돌아올 때 누더기를 걸쳤습니다. 아버지는 누더기부터 벗겼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혔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입고 있던 옷은 종으로 살면서 입었던 옷입니다. 새로 입혀준 옷은 장롱 속에 깊이 간직했던 준비된 옷입니다.

전에 입었던 옷은 집을 떠난 후회와 주린 배를 채우려고 쥐엄 열매를 먹던 수치와 슬픔의 옷입니다. 아버지 집을 제 발로 떠났다가 제 발로 돌아온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이 입혀졌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슬픔의 옷을 벗기고 기쁨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새 옷은 자유인의 옷이요 아들의 옷입니다. 먼 나라에서는 배도 고프고 자유도 없었습니다. 돌아온 아들은 양식도 풍족하고 좋은 옷도 있습니다.

“...이 날은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느8:10) 이 날은 주의 날입니다. 성도는 주의 날 주께로부터 오는 기쁨을 입어야 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약1:17)라고 했습니다.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온전한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슬픔과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기쁨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던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요20:20).

주일은 주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주님을 만나서 기뻐하는 날입니다. 기쁨은 능력입니다. 기쁨은 행복의 원천입니다. 기쁨은 성공의 자원입니다. 기쁨이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됩니다.

어떤 여성이 우리 남편은 3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무덤덤, 무심심, 무표정”이랍니다. 그럼 당신은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3감이랍니다. “감사, 감동, 감격”이랍니다. 목사님은 뭐냐 물었습니다. “나는 3뻐”라고 했습니다. “나는 나 뻐야, 나는 기뻐야, 나는 바뻐야”라고 했습니다.

예배자가 무덤덤, 무심심 해서는 안됩니다. 감동, 감격이 있고 “나는 기뻐!”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의 기쁨은 천국의 기쁨입니다.

세상의 소망인 기쁨, 천국의 기쁨인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기쁨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㰊³ 찬송 Praise

 

예배는 간절한 기도가 있고 빠른 회복이 있고, 찬송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10절) 이것이 다윗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간절한 기도 후에 빠른 회복이 뒤따라 왔습니다. 급속한 변화 놀라운 전환입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11절)

다윗왕이 불레셋에게 빼앗겼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운반할 때, 모시로 만든 에봇을 걸치고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이를 보고 환호하며 나팔을 불며 여호와의 궤를 메워왔습니다(삼하6:14-15).

다윗이 자기 가족에게 축복하려고 궁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이 비웃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자가 염치없이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임금님의 체통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윗이 미갈에게 말했습니다. “그렇소, 내가 주님 앞에서 그렇게 춤을 추었소, 주님께서는 나를 뽑으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통치자로 세워주셨소, 그러니 나는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소, 나는 언제나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뛸 것이요, 내가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주님 찬양하는 일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소, 그래도 그대가 말한 이 여자들은 나를 더욱 더 존경할 것이오”(삼하6:20-22 새번역)

춤과 찬송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다윗의 춤은 억누를 수 없는 감사의 몸짓이었습니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12절) 다윗이 춤을 추고 기뻐 뛰는 것은 하나님이 다윗을 영광스럽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잠잠할 수 없었습니다. “내 영혼이 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새번역)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사람들이 몰려 나와 겉옷을 벗어 나귀등에 깔고 길에 깔았습니다. 나뭇가지를 흔들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이라!” 어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보고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셨습니다(눅19:28-40).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시33:1)라고 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사43:21)

 

춤추는 예배는 가장 적극적인 예배입니다. 정적인 예배가 아니라 동적인 예배입니다. 역동성이 있습니다. 손뼉을 치며 외칩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체험적인 예배입니다.

교회의 심장은 예배요, 예배의 심장은 말씀입니다. 교회의 능력은 성령이시고, 성령은 권능입니다.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시68:3)

춤추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변화시켜주심에 대한 반응입니다. 슬픔에서 춤으로 전환시켜주십니다. 베옷을 벗겨주시고, 나들이 옷으로 입혀주십니다. 기쁨의 힘으로 춤을 춥니다. 뛰면서 찬양합니다. 기뻐하며 경배합니다. 춤추는 예배자의 경지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기쁨이 충만한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갖기 바랍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