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9:35-10:1

교회(5) 세계를 품는 교회

오늘은 해외선교주일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님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우리도 선교를 결단하는 주일입니다. 지난 목요일, 권사수양회를 마치고 권사님들과 함께 양화진에 있는 선교사의 묘지를 방문했습니다. 1893년 고종의 시의였던 선교사 죤 헤론이 죽자 고종이 땅을 하사하여 그 후 선교사들의 무덤이 된 이 곳에총 500여명의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 중 한 선교사의 묘비가 유난히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선교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㰡’내게 줄 수 있는 천번의 생명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모두 한국에 바치겠다㰡“.

이렇게 비장한 말을 한 사람은 루비 켄트릭이라고 하는 여성 선교사였습니다. 루비 켄트릭은 미국 남감리교회 파송 선교사로 1908년, 25살의 나이로 한국에 왔습니다. 택사스에서 태어나 캔자스 여자 성경학원을 졸업한 켄트릭은 우연히 한국에 대하여 안 후 한국에 가기를 소망했습니다. 그 당시 25살의 처녀로 해외선교에 나선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켄트릭은 하나님의 소명에 순종했고 머나먼 태평양을 건너 결국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와서 그는 개성에서 학교 선생으로 봉직하면서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민족은 그에게 낯선 민족이었습니다. 남자들은 상투를 틀고 다녔고 사람들은 흰옷을 입고 가마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 한국사람이 그는 사랑스렀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가 8개월동안 한국말을 배우는 동안에 갑자기 병이 났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죽고 말았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된 일이었습니다. 그가 죽어가면서 한 마지막 말은 이것입니다. 㰡’내가 죽거든 나를 한국땅에 묻어 주세요㰡“.

루비 켄트릭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택사스의 모교회를 통곡을 했고 그를 대대적으로 추모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로 인해 도전받고 해외로 선교를 떠난 젊은이가 20명을 넘습니다. 그야말로 한 알의 밀알이었습니다. 그 25살의 꽃다운 나이로 순교한 루비 켄트릭이 남긴 㰡’내게 줄 수 있는 천번의 생명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모두 한국에 바치겠다㰡“ 는 비문을 보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100년전, 미국의 한 처녀가 25살의 나이에 한국에 왔는 데 오늘 한국의 25살 청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한국교회가 오늘에 이른 것은 루비 켄트릭같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는 많은 선교사들의 희생과 죽음과 눈물로 말미암은 것인 데 우리는 그들의 수고를 보답하고 있는가? 우리도 사랑의 빚을 졌으니 우리도 이제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이 땅에 처음 선교사로 오신 분은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입니다. 그 분의 4대가 모두 한국에서 사역했습니다. 아들 원한경 박사, 손자 원일한 박사, 그리고 그의 증손자가 원광한 박사입니다. 원광한 박사는 30여년동안 연세대에서 봉직하다가 2004년 11월에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4대 선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날, 사람들이 아쉬어서 말했습니다. 㰡’우리는 당신과 당신 후손이 계속 이 땅에 남아 선교하기를 원합니다㰡“. 이때 원광한 박사가 말했습니다. 㰡’한국은 이제 선교를 받을 나라가 아니고 선교를 할 나라입니다㰡“. 그렇습니다. 우리는 120년동안 많은 선교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외국의 선교사들이 이 땅에서 땀흘리고 필흘리고 순교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줄 때입니다. 그동안 받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줄 때입니다. 120년동안 받았으면 많이 받았습니다. 많이 받았으니 많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마10:1절을 보십시오. 㰡’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좇아 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㰡“. 마10장은 예수님이 12제자를 선택하신 내용입니다. 그 명단이 2절에서 4절까지 나오는 12제자요 그들이 받은 사명이 5절 이하에 나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제자를 선택하셨습니까? 그것이 중요합니다. 제자가 누군가도 중요합니다. 어떻게 제자가 되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왜 제자가 되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믿는 것 잘 했습니다. 예수믿고 행복하고 축복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왜 예수믿는냐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믿으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예수믿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은 우리가 예수믿는 유일한 목적이 아닙니다. 유명한 영성가 시. 에스. 루이스가 말했습니다. 㰡’만일 내가 예수믿는 목적이 행복에 있다면 나는 그 날로 예수믿는 것을 그만 두겠다. 이른 아침 조용한 창가에서 커피 한 잔만 마셔도 행복하다. 출출한 날, 레스토랑에서 배불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어도 행복하다. 해저무는 석양, 붉게 타오르는 호숫가의 낙조를 보아도 행복하다. 내가 예수믿는 이유가 겨우 이 정도라면 나는 예수믿는 것을 포기하겠다㰡“. 그는 예수믿기 전 많은 인생의 쾌락과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인생이 즐겁지 않아서 예수믿은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 이상을 찾아 예수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믿는 목적이 다만 인생의 즐거움을 주는 데 있다면 차라리 예수믿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즐거움과 행복은 오히려 교회 밖에 더 있다는 것입니다. 스위스 영성가 프란시스 쉐퍼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심미적 자기 만족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가 스위스의 라브리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을 때 한번은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미국교회 여기 저기 가보고 미국 크리스쳔들을 만나보니까 크리스쳔들이 모두 자기 행복,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굴은 행복해 보이는 데 다만 그 뿐이었습니다. 행복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㰡’오늘날 미국 크리스쳔들은 돈을 매고 맥도날드에서 소시지가 든 햄버거를 사먹는 것보다 더 나은 목적을 가지고 매일 아침 자리에서 눈 뜰 필요가 있다㰡“.

하루 하루 자기 만족에 빠져 예수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 10:1절에서 예수께서 12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왜 불렀습니까? 10장만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9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9장으로 돌아가면 오늘 말씀이 걸립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마9:35, 㰡’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㰡“. 여기에 예수님의 3대 사역이 나옵니다. 천국복음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고치시니라. teaching, 가르치시고, preaching, 전파하시고, healing, 고치시니라. 교육, 선포, 치유가 예수님의 3대 사역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 가지 사역을 할 대상입니다. 하는 일은 세 가지인데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누구에게 전파하고 누구를 가르치고 고칩니까? 마9:36절입니다. 㰡’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㰡“.

예수님은 사람을 보고 계셨습니다. 자기를 보신 것이 아니라 남을 보고 계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 보아야 복음의 의미가 있습니다. 불교는 자기를 보고 기독교는 남을 봅니다. 철학은 자기를 살피고 복음은 다른 사람을 살핍니다. 나를 행복하게 한 자기 만족의 복음에서 벗어나려면 부지런히 남에게 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다른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잘 사는가 못 사는가? 학교를 어디 나왔는가? 남편이 무엇하는가? 직업이 무엇인가? 몇 평 사는가? 잘 생겼는가 못생겼는가? 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시 마9:36입니다. 㰡’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㰡“.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품고 세상을 보았더니 그들은 하나같이 목자없는 양과 같았습니다. 양이 얼마나 연약합니까? 제가 이스라엘 가기 전에는 양들에 대한 좋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목자를 따라 유유히 풀을 뜯는 그림을 볼 때마다 양은 참 우아하고 아름다운 동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양은 참으로 약하고 우둔한 존재였습니다. 양은 절대 옆으로 가거나 뒤로 가지 못합니다.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따라가는 데 앞에서 인도하는 자가 없거나 잘못 인도하면 영락없이 잘못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리판단의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지능지수도 낮습니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합니다. 이사야53:6, 㰡’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㰡“. 양은 제 길로 가기 쉬운 존재입니다. 벧전 2:25, 㰡“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㰡’. 양을 길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목자없이는 길을 잃게 되어 있고 잘못 인도하면 그릇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양이 주인을 잃었습니다. 양에게 주인을 잃었다는 것은 전부를 잃은 것입니다.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인이 없으니 다른 짐승에게 먹일 수 있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서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저녁이 되어 어두어지면 돌아갈 집이 없습니다. 꼼짝없이 광야에서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목자없는 양입니다. 그래서 목자없는 양은 불쌍합니다. 36절에 나타난 예수님 마음이 이것입니다. 㰡’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㰡“. 여기서 㰡’민망히 여겼다㰡“는 말은 with compassion, 불쌍히 여겼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 㰡’라쿰㰡“에서 왔습니다. 㰡’라쿰㰡“은 어머니의 자궁입니다. 부모가 자궁에서 나온 사랑으로 지식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는 㰡’스프랑크나㰡“라고 합니다. 㰡’창자, 내장㰡“이란 뜻입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으로, 내장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뜨거운 눈물의 사랑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㰡’민망히 여겼다㰡“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마음, 교회가 세상을 향해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초대교회 사막교부중에 포에멘이란 교부가 있었습니다. 그가 늘 산에서 기도하다가 하루는 제자와 함께 세상에 나왔는 데 거리에서 한 여자가 술이 취해 비틀가리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많은 남자들이 그 주변에서 박수를 치며 좋아합니다. 포에멘이 이것을 보더니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자가 물었습니다. 㰡’아바, 왜 우십니까?㰡“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우네. 하나는 저 여자가 저렇게 춤을 추며 사람들을 기쁘게 하듯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고 있어서 울고 또 하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저렇게 비참한 인생을 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우네㰡’. 이것이 교회가 세상을 향해 울어야 할 마음입니다.

선교는 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이 목자이신 하나님없이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compassion,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부터 선교는 시작됩니다. 선교는 선교사보내고 기도하고 후원금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는 우선 눈물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없는 민족에 대한 긍휼의 마음입니다. 집나간 자식을 찾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카자흐스탄에 18명의 청년과 목회자가 단기선교를 떠납니다. 제가 재작년에 카자흐스탄을 다녀왔는 데 카자흐스탄은 선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나라입니다. 중앙아시아의 한 복판에 있는 이 나라는 과거에 중국 신장성에서 시작하여 몽골, 키르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히스탄, 아제르바제인, 아르메니아, 터키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중심지였습니다. 중국의 비단이 터키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가고 유럽의 문화가, 아랍의 문화가 아시아로 흩러간 동서 문물의 통로였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역사상 한번도 복음이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행16장에서 바울이 아시아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 데 성령님이 막으셔서 유럽으로 들어갔습니다. 만일 바울이 그 때 아시아로 갔다면 아마 이 지역에도 복음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가지 않자 7세기 이래 이 지역에 이슬람이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러시아가 공산화되자 약 70년 동안 소련 공산당에게 붙잡혀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자유가 없고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종교적으로 사술에 눌려 사는 사람들, 하나같이 얼굴이 어둡고 몸은 말라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월급이 10만원 수준입니다. 목자없는 사람들, 그들을 볼 때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말도 안 통하고 답답했습니다. 그들중에 우리 고려인이 많습니다. 현재 카자흐스탄에만 고려인이 약 11만명이 산답니다. 그들은 1937년 스탈린에 위해 강제로 카자흐스탄에 추방된 후 간신히 살아남은 우리 민족의 후손들입니다. 스탈린이 30만 고려인을 열차에 태워 동토의 이 땅에 버렸습니다. 추운 겨울은 반은 얼어죽고 굶어죽었습니다. 그러나 한민족은 대단한 민족입니다. 그 황무지같은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농업문화를 이루었습니다. 일제 침략으로 삶의 터전을 뺏기고 러시아로 연해주로 떠났던 불쌍한 우리 민족, 그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땅이 카자흐스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타깝게 그 땅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 하루 교회생활에 안주한 나머지 자기 만족을 위한 신앙생활에 취해 있습니다. 밖을 향한 시선은 닫은 채 안에서만 아웅 다웅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예산의 70-80%는 교회 자체운영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선교를 위해서는 극히 적은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10%쓰면 많이 씁니다. 우리는 가끔 선교지는 변두리고 우리가 사는 곳에 중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교지에 나가보면 선교지가 중앙이고 우리는 변두리에 삽니다. 우리는 우리는 할 일이 많은 데 선교사는 할 일없이 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교지에 나가보면 선교지는 일꾼이 없어 일을 못하는 데 우리는 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7만의 목회자가 있는 데 그중 2만은 놀고 있습니다. 아직도 세계는 12,000종족이 하나님을 모르고 있고 그 수는 무려 30억에 해당합니다. 중국은 빠른 속도로 복음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10억이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북한에 예수님 믿는 사람은 13,000명이라고 하고 지하교회는 약 300개가 있다고 합니다. 이 통계를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북한 동포의 태반이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다 목숨걸고 북한을 탈출한 사람이 한 해에도 수백, 수천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사람들은 나라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만도 약 80%가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의 80%의 불신자들중 55.1%가 과거에 교회에 나가본 사람들이고 41.0%가 교회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까? 대답이 첫째가 직업, 돈벌이, 둘째가 몸, 건강, 셋째가 가정이랍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마시는가 문제로 고민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베들레헴 시장일행이 우리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시장의 말이 그렇습니다. 팔레스틴에 하마스 정권이 들어선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교류가 끊겨 팔레스틴이 거의 아사직전이랍니다. 미국과 유럽의 원조도 이스라엘 때문에 끊겨 팔레스틴백성들은 지금 굶어 죽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보고 도와달라고 호소합니다. 어떻게 도우면 되겠느냐고 했더니 세 가지를 도와 달랍니다. 하나는 성지순례를 많이 보내서 팔레스틴의 경제를 살려주고 두 번째는 기도 많이 해서 팔레스틴 상황이 호전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셋째는 미국, 이스라엘중심의 일방적 세계질서에 항의하여 약소국가인인 팔레스틴을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도 과거 36년간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느냐고 말했습니다. 세계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때는 정치적 이유, 경제적 이유, 민족적 이유지만 근본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지 않으면 누구나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계인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때 지금의 터키 내륙지역을 통과하여 터키 서쪽 소아시아까지 왔습니다. 비시디아, 부르기야를 지나 무시아지역까지 드로아에 이르렀습니다. 드로아에서 보면 지중해가 보이고 지중해를 건너면 그리스, 로마입니다. 문제는 바다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고대에 있어서 바다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오죽 위험했으면 군대갈 때는 한번 기도하고 바다에 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고 했겠습니까? 바울은 이 위험한 바다는 피하여 안전한 아시아쪽으로 선교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거기 가면 에배소가 있고 에배소는 사통팔달의 교통이 있어 이 지역에서 복음 전하면 소아시아 전체가 복음화될 수 있는 전략상의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㰡’여기가면 성공하겠다㰡“ 하고 생각하고 있는 데 뜻밖에 하나님이 밤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유럽쪽으로 선교의 방향을 바꾸게 했습니다. 그 밤에 기도하는 데 사람 하나가 나타나 바울에게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행16:9입니다. 㰡’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케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㰡’마케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㰡“ 하거늘㰡’. 다같이 㰡“우리를 도우라㰡’. 여기에 나타난 마케도니아사람은 알렉산더가 태어난 지역 사람들입니다. 알렉산더와 함께 그리스를 세계적인 나라로 만든 사람들, 그들은 조금도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㰡“도와 달라㰡’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냥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㰡“서서 청하며 도와 달라㰡’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는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살고 그렇게 잘나가는 사람도 도와 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없이는 못살게 되어 있습니다. 목자없는 양은 방황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없이 사는 사람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선교는 이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언더우드가 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언더우드는 본래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다섯 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고 열 세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열 아홉 살에 뉴욕 대학에 입학했으나 너무 가난하여 20여리의 길을 걸어다니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고 졸업한 후에는 뉴 브런위스키 신학교에 들어가 졸업하고 25살에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가 신학교 다니면서 꿈꾸었던 것은 인도선교였습니다. 그는 질병으로 고통받은 인도사람을 치료하려고 1년간 의학도 공부하고 인도어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도서관에서 korea Review라는 잡지를 보았습니다. 이 잡지의 제목에 이런 제목의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㰡’Korea calls you". "한국이 당신을 부른다㰡“. 그가 이 제목을 읽고 내용을 읽었을 때 그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가난한 아침의 나라 조선, 쇄국정책으로 닫혀 있고 동학혁명으로 피폐한 조선, 그 흰옷 입은 사람들이 영상에 들어오기 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감아도 조선, 기도해도 조선, 그 조선인이 please, help us, 㰡’우리를 도우라㰡“고 소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때마침 미국장로교 선교부에서 한국으로 가는 선교사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났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 언더우두가 응모해서 3번 떨어지고 네 번만에 합격하여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언더우드가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은 㰡’우리를 도우라㰡“고 외친 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이수정이었습니다. 이수정은 본래 귀족출신으로 고종의 호의를 입어 1882년 일본 유학을 떠났습니다. 일본의 발전한 농업을 연구하고 싶어 일본에 갔는 데 일본에 가서 일본 농업의 대가 츠다센을 만나면서 우연히 성경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런데 너무 성경이 좋아 거기 심취하다가 그만 1883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에서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공부하려던 농업을 그만 두고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미국교회에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쓰게 되는 데 그 편지가 <Gospel in all lands>라는 잡지에 실리게 됩니다. 서두에서 이수정은 인사말을 전한 후에 한국에는 정말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과 이 땅에 속히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㰡’아직도 수천만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참된 도를 모른 채 이방인처럼 살고 있습니 다. 아직도 그들은 주님의 구속하시는 은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퍼져 나가는 오늘과 같은 시대에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지구 한쪽 구석에 박혀있어 기독교가 주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한글로 옮기 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통해 복음이 확산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잘 되도록 저는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㰡’.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㰡“저는 비록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분이 선교사들을 파송만 해 준다면 최선 을 다해 돕겠습니다. 간곡하게 바라는 바는 지금 당장이라도 몇 명을 이곳 일본에 보내 여기서 일하고 있는 이들과 협의 하면서 사업준비를 하도록 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야 말로 가장 안전하고도 적절한 방법입니다. 데가 드린 말씀을 진지하게 검토해 주시기를 간절하게 빌고 원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 기쁨은 한이 없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종, 이수정 드림㰡’. 이것이 1883년 가을이고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1885년 4월에 한국에 오기 때문에 이 편지가 잡지에 실려 미국선교부가 보고 한국선교를 준비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라가 한국으로 가기 위해 일본을 들렸을 때이수정이 한국말과 문화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국선교는 이렇게 㰡’우리를 도우라㰡“고 외친 한 사람 때문에 극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우리를 도우라는 세계인의 음성을 듣습니까? 120년전에 언더우드가 들었듯이 여러분도 듣기를 원합니까? 지금은 세계는 이수정처럼 㰡’우리 민족을 도와 주세요. 아직 우리 민족은 하나님을 모르고 이방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세요㰡“하는 소리를 듣기를 원합니까? 사람은 듣고 싶은 소리를 듣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열려야 소리도 들립니다.

선교는 이 소리를 듣고 순종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선교는 㰡’가라㰡“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㰡’가라㰡“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떠났습니다. 순종이 선교입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성령이 빌립에게 사마리아로 가라고 명합니다. 그래서 갔더니 거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러운 귀신과 마술사 시몬과 갈급한 수많은 영혼들이 가기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의 전도를 채 마치기도 전에 성령께서 또 말씀합니다. 행8:26, 㰡’일어나 남쪽으로 향하여 에루살렘에서 가자로 난 길로 가라㰡“.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에루살렘에서 가자로 난 길은 사막이었습니다. 그 사막은 시내반도로 이어지고 애굽으로 이어졌습니다. 분명 성령님이 잘못 말씀한 것이었습니다. 왜 하필 성령은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사막으로 가라 하시는가?

그런데 빌립이 그 말을 듣고 사막으로 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막에 한 사람이 마차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고보니 이 사람은 아프리카 에디오피아에서 온 왕궁 직원이었습니다. 그가 성경 이사야 53장을 펴서 이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53:5-6, 㰡’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아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㰡“. 도대체 여기서 㰡’그㰡“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다 양같다고 하는가? 양같은 우리를 위해 그가 담당했다고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에루살렘 순례를 왔다가 고국으로 돌어가는 에디오피아 궁중직원은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누가 그가 거기 있는 것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때 그가 성경을 읽다가 의문이 생긴 것을 알았습니까? 누가 사람의 마음속에 영혼의 갈증을 일으키고 누가 그에게 때맞춰 사람을 보내고 누가 그 입에 말을 주어 하나님을 전하게 합니까?

이스라엘은 동서는 짧지만 남북은 깁니다. 사마리아는 에루살렘에서도 70킬로나 됩니다. 이 길은 매우 험합니다. 해발 800미터 이상의 고지를 계속 오르고 내려야 합니다. 만일 나귀를 타고 간다고 하면 3일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에루살렘에서 가자까지도 130킬로 이상 됩니다. 길을 조금 낫지만 쉽지 않은 길입니다. 거기서 광야까지는 또 한참 가야 합니다. 그 먼 거리에 누가 에디오피아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까? 누가 거기서 성경 읽다가 영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까? 누가 그것을 가장 적절한 사람에게 알게 하고 때맞춰 그를 보냅니까? 누가 그 입에 말을 주어 하나님을 전하게 합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외에는 그렇게 할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아야 할 사람의 형편을 아시고 그에게 복음을 전할 가장 적절한 사람을 택하여 가장 적절한 때에 그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명령하면 그 앞에 예비된 것이 있는 줄 알고 가는 것입니다. 내일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교하도록 감동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선교의 환경을 조성하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감동에 순종할 때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다는 것은 내가 가면 무엇인가 예비된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다는 것을 내가 입을 열면 말할 수 있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다는 것을 내가 가면 그곳에 가장 알맞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선교는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선교로 한신교회와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선교를 계획하고 명령하시는 일이요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품고 순종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선교에 힘썻지만 앞으로 우리는 더 선교에 힘써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㰡’주여, 우리로 선교하는 교회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로 목자없이 방황하는 세상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주옵소서. 주여, 우리로 익은 곡식 거두는 부지런한 추수꾼들되게 하옵소서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