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주일(마16:17-19)

교회(1): 열쇠와 칼

오늘은 한신교회 창립 29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지금부터 29년전, 1977년 6월 5일, 서울 신반포 어린이 놀이터에서 한신교회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9년, 한신교회는 반포와 분당으로 이어지면서 한국교회와 민족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제 한신교회 제2기가 시작된 이때,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교회를 어떻게 이어가야 하느냐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신교회가 어떻게 되기를 바랍니까? 이를 위해 제가 기도하는 데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감동을 주셨습니다. 저는 6월 한 달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교회의 사명과 비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함께 말씀을 들으므로 비전의 공유자가 되고 실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 첫 시간에 살펴볼 것은 예수님이 세우신 첫 번째 교회입니다. 신구약을 통털어 예수님이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신 것은 오늘 이 처음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실제 교회를 세우신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세우시려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13절을 보십시오. 마16:13, 㰡’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㰡“ 예수님께서 처음 교회를 말씀하신 장소는 가이사랴 빌립보였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지금 이스라엘 북쪽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북쪽으로 달려 갈릴리를 지나면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세 나라의 경계를 이루는 국경지대를 만납니다. 이 국경 한 가운데 해발 2800미터 이상의 헬몬산이 우뚝 서 있고 사방은 숲과 물로 아름다운 자연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자연의 한 복판에 가이사랴 빌립보가 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두 사람의 이름이 합성된 도시입니다. 가이사랴는 㰡’시이저㰡“, 곧 당시 로마 황제의 이름입니다. 㰡’빌립보㰡“는 헤롯 대왕의 아들 빌립의 이름입니다. 당시 빌립은 아버지 헤롯 대왕의 영토중 지금의 갈릴리 북쪽, 시리아쪽 땅을 물려받아 통치하고 있었는 데 그가 당시 로마 황제를 찬양하기 세운 도시가 가이사랴 빌립보였습니다. 지금 그곳에 가면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을 만납니다. 그 물은 갈릴리 호수로 들어가는 주요 수원지가 됩니다. 그 물에 발을 담그면 뼛속까지 시원해 집니다. 그 물을 따라 조금 산으로 오르면 인상적인 고고학 발굴터가 있습니다. 그곳은 과거에 그 땅에 살던 원주민들이 섬겼던 바알 신 우상이 있던 자리입니다. 아마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점령하기도 전입니다. 지금도 그 옛날 사람들이 섬겼던 바알의 돌과 기둥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후 주전 3-4세기가 되면 그리스가 천하를 통일합니다. 그때 그리스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와 바알신들을 치우고 거기에 자기들의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 신이 㰡’판㰡“이라는 신입니다. "판㰡’은 그리스의 목동의 신이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바알을 쓰러뜨리고 그 자리에 㰡“판㰡’이라는 우상을 새기고 그 신에게 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주전 1세기에 그리스가 로마에 망합니다. 로마가 그 땅을 다스리면서 그 모든 신상들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 잔재위에 시저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당시 시저는 로마의 황제요 전 세계의 황제였습니다. 얼마나 그 권세가 컷는지 시이저의 이름으로 안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처음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실 때 왜 하필 그 장소를 선택했는가를 하는 것입니다. 헬몬산의 맑은 개천을 따라 올라가면 무너진 바알 신당이 나타나고 그 자리에 세웠던 그리스의 신 㰡’판㰡“의 잔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조금 더 언덕으로 올라가면 로마 황제 시이저의 동상이 있습니다. 시이저의 동상이 선 자리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가이사랴 빌립보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위로는 헬몬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가이사랴 빌립보시가 보이고 그 좌우에는 바알과 판 우상과 시이저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 한 복판에서 오늘 주님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13절, 㰡’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㰡“

첫째. 예수님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처음부터 건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예수님이 처음 교회 세운다 말씀하실 때 아무 건물도 없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교회였습니다. 㰡’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㰡“ 예수님이 바로 교회요 예수님이 누군지 묻는 것이 교회요 예수님이 누군지 아는 곳이 교회입니다. 다른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누구냐고 묻자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4절, 㰡’가로되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에레미아나 선지자중의 하나라 하나이다㰡“. 그때 예수님이 되물었습니다. 15절, 㰡’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㰡“ 제자들이 말한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님이 이야기하기를 동의했다면 예수님이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례요한, 엘리야, 에레미아를 말할 때 재빨리 㰡’내가 누구냐㰡“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회는 다른 사람 이야기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례요한, 위대한 신앙인이요 정의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칭찬한 것처럼 여자가 낳은 자중 가장 큰 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례요한같은 큰 사람을 말하는 곳이 아닙니다. 엘리야,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요, 갈멜산의 영웅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엘리야같은 영웅을 말하는 곳이 아닙니다. 에레미아, 눈물의 선지자요 위대한 순교자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에레미아같은 순교자를 말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위대한 독립운동가를 말하는 곳이 아니요 위대한 사상가, 계몽가, 철학자, 수도사, 위대한 역사적 인물, 심지어 위대한 성경적 인물을 말하는 곳이 아닙니다. 딱 한 사람을 묻고 딱 한 사람을 말하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6절을 보십시요, 㰡’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㰡“. 아멘.

그런데 그 예수님이 누굽니까?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를 그 말씀의 무대로 선택하신 이유가 여기 나옵니다. 자, 지금 예수님 주변에는 수천년간 사람들이 주라고 하나님이라고 믿어온 신들과 왕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바로 아래에는 아주 옛날 가나안 원주민들이 믿었던 㰡’바알㰡“이라는 신이 있습니다. 바알은 㰡’주인㰡“이란 뜻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을 자기들의 㰡’주인㰡“으로 믿어 왔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 뒤 㰡’판㰡“을 신으로 믿었습니다. 㰡’판㰡“은 㰡’우주㰡“라는 뜻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㰡’판㰡“이 우주를 창조하고 우주를 다스리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들은 과거의 신들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신도 있습니다. 시이저입니다. 시이저라는 신은 지금 살아 있는 불사신의 신입니다. 바알이나 판이 이미 지나간 종교적 신이라면 시이저는 지금 살아 있는 권력의 신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시이저 동상 밑에서 㰡’내가 누구냐?㰡“고 물은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다스리는 황제앞에서 마치 그가 주가 아니고 그가 하나님이 아니고 내가 주요 내가 하나님이라고 선포했다가 잡히면 황제모독죄로 가는 것입니다. 당시는 황제신상앞에 경배만 안해도 잡혀가던 시절입니다. 요한이 그래서 밧모섬으로 귀양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용기있는 분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왔는지 교회가 무엇인지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알신상 옆에서, 시이저 동상 앞에서 㰡’내가 누구냐㰡“고 물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주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습니까? 그 고백을 지금 이 자리에서 뿐 아니라 바알신옆에서도 할 수 있습니까? 바알이 내 주요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주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바알은 물질의 신이요 풍요의 신이요 쾌락의 신입니다. 내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고 부자되는 것이 내 생의 목표가 아니고 즐기고 사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요 내 인생의 최고 가치요 엎드려 경배할 예배의 대상이라고 믿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이 주요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시이저 황제의 동상앞에서도 선포할 수 있습니까? 세상의 어떤 권력도 여러분의 주님이거나 하나님이 아니라고 믿습니까? 만일 예수를 선택할 것이냐 세상의 왕을 선택할 것이냐 하면 예수님 선택하다가 스테반처럼 폴리캅처럼 주기철처럼 순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교회 나온 목적이 바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늘 고백할 수 있습니까?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세우려는 교회의 기초입니다. 이 기초가 바로 반석입니다. 18절 보십시오. 㰡’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㰡“. 여기에 반석이란 말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이 이 㰡’반석㰡“을 㰡’베드로㰡“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베드로는 㰡’페트라스㰡“, 곧 㰡’반석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 베드로위에 교회 세우겠다고 했다면 㰡’네 반석위에㰡“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십시오. 㰡’네 반석이 아니라 이 반석㰡“입니다. 이 반석이라고 했으니 앞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16절이 걸립니다. 㰡’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㰡“. 바로 이 반석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반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반석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반석인 결정적인 이유는 18절중간에 또 나타납니다. 㰡’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㰡“. 다같이 㰡’내 교회㰡“. 예수님은 다른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에레미아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기철 목사의 교회, 한경직 목사의 교회, 조용기 목사의 교회, 그리고 이중표 목사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같이 㰡’내 교회㰡“. 예수님 자신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창립 29주년을 맞은 한신교회가 다시 돌아갈 것은 㰡’예수 그리스도의 교회㰡“입니다.

창립 29주년을 맞아 목회자로서 제가 하나님앞에 다짐하고 여러분에게 약속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저는 앞으로 절대 한신교회 주인이 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목회하던 교회의 입구에 교회 간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세우기 직전 광고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㰡’목사님, 간판에 목사님 이름을 새길까요?㰡“ 제가 말했습니다. 㰡’새기지 마세요㰡“. 㰡’아니 목사님, 다 새기는데요? 목사님 이름을 세기는 것이 교회 홍보에 도움이 될텐데요?㰡“ 그때 또 제가 말했습니다. 㰡’새기지 마세요. 주인만 이름을 새깁니다㰡“. 여러분, 목회자가 교회의 주인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교회들이 교회 간판에 목회자의 이름을 크게 써 붙이고 있습니다. 아마 필요에 따라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고 더구나 교회는 개인의 교회가 아니라 공교회입니다. 목회자가 교회의 대표자는 될 수 있으나 교회 주인은 아닙니다. 그같은 심정으로 앞으로 우리 교회 장로님이 되거나 지도자가 될 분들에게 미리 말합니다. 누구도 이 교회 주인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도 한신교회 주인은 아닙니다. 주인의식은 가지십시오. 그러나 주인노릇은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만 이 교회의 주인입니다. 때로 당회가 교회 중요한 결정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당회가 언제나 예수님의 결정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당회만능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결정했다가도 예수님 원치 않으면 바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노회, 총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기관도 예수님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모든 조직은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바라볼 것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목회자로서 정말 간절하게 말씀드립니다. 교회에서 사람 바라보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도 구원이 필요해서 교회왔지 구원이 필요없을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왜 예수님 안 바라보고 사람바라보다 탈선합니까? 왜 예수님 말씀듣는 데 집중하지 않고 사람말 듣다가 일희일비합니까? 왜 예수님 말보다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다 스스로 시험에 듭니까? 사람과의 관계가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본질입니다. 㰡’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㰡“. 예수님이 바로 교회입니다.

둘째. 교회는 천국열쇠입니다.

예수님을 교회로 고백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두 가지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는 18절이고 다른 하나는 19절입니다. 18절 후반부터 보면 이렇습니다. 마16:18-19, 㰡’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㰡“. 여기 18절에 㰡’음부의 권세㰡“란 말이 나오고 19절에 천국열쇠㰡’란 말이 나옵니다. 이 두 단어는 예수님을 교회로 고백하고 철저히 그 분만을 섬기고 따르기로 다짐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두 가지 축복입니다. 그것을 간단히 말하면 하나는 열쇠요 다른 하나는 칼입니다.

이것은 제가 1999년, 로마를 방문했을 때 발견한 것입니다. 바울 대성당을 방문했는데 교회 정문벽에 커다란 벽화가 하나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좌우에 앉아 있었는 데 자세히 보니까 한 사람은 베드로고 다른 한 사람은 바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이 각각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열쇠를 들고 있었고 바울은 칼을 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그림을 처음 볼 때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특징을 말해주는가 보다 했습니다. 그 앞에 그 앞에 있는 바울 동상을 보았더니 동상도 역시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성경, 다른 한 손에는 칼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베드로 성당 옆에 위치한 바티칸 박물관은 미켈란젤로가 1508년에 그린 유명한 천정화가 있는 곳입니다. 미켈란젤로가 4년간의 노력 끝에 천정에 천지창조를 주제로 9개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한 중앙에 예수님이 있고 그 좌우편에 베드로와 바울이 서 있는 데 거기에도 베드로는 열쇠를, 바울은 칼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았습니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교회는 한 가운데 예수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좌우편에 베드로와 바울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결국 두 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축은 베드로요 다른 한 축은 바울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출신부터 다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 출신으로 이스라엘 본토 출신이고 바울은 학자출신으로 로마의 성 다소 출신입니다. 두 사람은 사명도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출신인 만큼 아무래도 유대인 선교가 그 사명이고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밖 출신인 만큼 이방인 선교가 그 사명입니다. 두 사람으로 상징되는 두 가지 메시지가 기독교입니다. 베드로는 예전 중심의 교회로 로마 천주교로 이어 갔습니다. 바울은 말씀 중심의 교회로 개신교로 이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제사장적 교회를 대표하고 바울은선지자적 교회를 대표합니다. 베드로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불을 보고 하나님을 따랐던 모세의 영성을 이어갔고 바울은 갈대아 우르에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따랐던 아브라함의 영성을 이어갔습니다. 둘은 다른 데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둘은 똑같이 예수님을 사랑했으나 예수님은 둘에게 각기 다른 것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열쇠를 주고 바울에게는 칼을 주었습니다.

우선 베드로에게 주신 열쇠를 봅시다. 19절입니다. 㰡’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㰡“. 예수님이 이 땅에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그를 따르는 베드로같은 성도들에게 천국열쇠를 맡겼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열쇠가 무엇입니까? 문을 열고 닫는 도구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열쇠를 맡겼다는 것은 성도에게 문을 열고 닫을 권한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슨 문입니까? 하늘의 문입니다. 하늘 문은 아무나 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열쇠를 받은 자만이 열 수 있습니다.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기도입니다.

언제나 문제는 해결되기 위해 있습니다. 문제 자체가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결과를 결정합니다. 사람들은 문제의 크기를 실제보다 부풀려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문제보다 큽니다.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를 푸는 열쇠가 있습니다. 기도의 열쇠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전화번호는 렙33국에 3번입니다. 㰡’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㰡“ 하나님의 전화는 통화 중일 때가 없습니다. 언제나 기도로 전화하면 전화를 받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여는 하늘의 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의 열쇠로 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계3:20, 㰡’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㰡“. 구원은 믿음의 열쇠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믿으면 천국문이 열립니다. 우리는 이 열쇠를 은혜로 받았습니다.

교회가 갖는 특징중의 하나가 중간성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천국 중간에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는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열린 문이 있고 세상을 향해서 열린 문이 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으로 가는 세상의 문이요 세상으로 가는 천국 문입니다. 누구나 아무 때나 천국가지 못합니다. 반드시 교회를 통해서 갑니다. 하나님도 세상에 직접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교회를 통해 말씀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에게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구원의 문이요 세상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생명의 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교회 문으로 들어오면 두 개의 문이 동시에 열립니다. 하나님께 가는 구원의 문이 열리고 세상으로 가는 승리의 문이 열립니다.

교회에 오면 세상 문도 열립니다. 언제나 중요한 영적인 원리가 이것입니다. 㰡’하늘 문이 열리면 세상 문도 열린다㰡“.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는 미국의 빌 게이츠입니다. 빌 게이츠는 십 수년동안 세계 최고의 부자자리를 고수해 오고 있습니다. 현재 그의 재산은 465억 달러, 약 50조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재산에 있어서 뿐아니라 자선에 있어서도 세계 최고입니다. 그가 현재까지 자선한 기금이 모두 30조입니다. 이런 빌 게이츠도 어릴 때는 매우 가난했고 열등의식이 많았습니다. 그 마음 속에 믿음의 문을 열어준 열쇠는 그가 11살 때 암송했던 마5-7장, 산상수훈이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마6:26을 읽었습니다. 㰡’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아궁이에 던질 들풀을 보라.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㰡’. 이 말씀이 빌 게이츠의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부요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믿음의 문이 열리자 세상을 향해서도 성공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자 20세에 마이크로소프트 사장, 31세에 최연소 백만장자, 37세에 미국 최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성공의 요인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문이 열리자 세상을 향해 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천국열쇠를 주셨습니다. 교회 문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 가십시오. 교회 문을 열고 세상으로 가십시오. 교회에서 기도의 열쇠를 사용해 응답의 문을 여십시오. 믿음의 열쇠를 사용해 기적의 문을 여십시오. 한신교회는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리는 믿음의 문입니다. 이 교회에서 천국열쇠를 사용하십시오. 㰡’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㰡“. 누구나 한신교회 오면 풀립니다. 막혔던 문제 풀리고 닫혔던 문이 열립니다. 안되던 사람이 되고 막혔던 사람이 풀립니다. 풀려라, 열려라, 교회는 신령한 하늘의 열쇠입니다.

셋째. 교회는 신령한 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에 주신 또 하나의 축복은 칼입니다. 18절 뒷 부분을 보십시오. 㰡’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㰡“. 여기 㰡’음부의 권세㰡“라는 말이 있습니다. 음부의 권세는 마귀가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여러분의 마귀의 존재를 믿습니까? 성경은 수없이 마귀의 존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귀가 가장 강하게 유혹하고 역사하는 곳이 나 자신입니다. 음부의 권세와 싸우는 성도는 우선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올림픽 2연승을 이룩한 이디오피아의 마라토너 아베베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마라톤 레이스에 임하기 전 67명의 참가자 중에 가장 큰 강적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가 서슴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㰡’가장 큰 강적은 나 자신입니다.㰡“

예수님이 음부의 권세를 이기기 위해 교회에 준 칼로 성도는 먼저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중세의 신비주의자 니느웨의 이삭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㰡’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자기 죄를 위해 한 시간 울부짖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르치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자기 약함을 알고 탄식하는 사람은 날마다 기도중에 천사를 보는 자보다 위대하다.㰡“ 그래서 영성가 애미 윌슨 칼마이클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㰡’하나님, 내 자아와 싸우는 데 나를 강하게 하소서. 나는 애처로운 목소리를 가진 겁쟁이, 편안함과 안식과 기쁨을 갈망하는 자,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큰 반역자, 나는 나의 가장 속 빈 친구, 나의 가장 무서운 적, 내가 가는 모든 길을 가로막는 나의 장애물, 오 주여,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소서㰡“. 하나님이 주신 칼로 늘 자신과 싸웠던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마다 삼층천을 오르락 내리락 했지만 늘 자신 속에 있는 작은 죄와 싸웠습니다. 밖으로는 큰 일을 하지만 안으로는 작은 죄 때문에 탄식하는 바울, 그는 하나님 주신 칼과 자기와 싸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죽는다 말했습니다.

성도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만큼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열쇠가 닫힌 문을 여는 것이라면 칼은 원수와 싸우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으로 천국문을 열었고 바울은 일생 대적과 싸웠습니다. 젊었을 때는 기독교와 싸웠고 회개한 뒤에는 이방인과 우상과 싸웠습니다. 그는 평생을 이방인 집권자과 그들의 무서운 핍박과 싸우고 이방종교와 우상과 악한 영과 싸웠습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지배하는 악한 세상에 세우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예수님은 교회를 죄없는 하늘 나라에 세우지 않고 죄많은 이 세상에 세우셨습니까? 이 땅이 음부의 권세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몰라서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때 놀라지 마십시오. 예수님도 우리를 세상에 보낼 때 양을 이리가운데 보낸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세상은 음부의 권세가 다스리지만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18절 뒷 부분의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㰡’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㰡“. 다같이 㰡’이기지 못하리라㰡“. 교회는 처음부터 이기는 싸우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길지 질지 두고 봐야 아는 불안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이기게 되어 있는 싸움을 싸웁니다.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겼습니다. 골2:15, 㰡’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㰡“. 십자가는 승리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이긴 싸움이지만 교회는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휴스톤에 가면 유명한 NASA, 㰡’미우주항공국㰡“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미국에서 발사되는 모든 인공위성을 조종하는 책임부서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모든 인공위성은 플로리다에서 발사되는 데 그 조종은 휴스톤에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휴스톤 관제탑에서 인공위성을 조종하지 않으면 한 대의 인공위성도 발사되지 못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㰡’세상의 모든 싸움은 영적 싸움이다㰡“. 발사는 플로리다에서 합니다. 그러나 조종은 휴스톤에서 합니다. 싸움은 직장에서 합니다. 그러나 조종은 교회에서 합니다. 싸움은 가정에서 합니다. 그러나 조종은 기도실에서 합니다. 싸움은 학교에서 하고 일터에서 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합니다. 그러나 조종은 무릎꿇고 하고 기도의 골방에서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합니다. 모든 싸움이 기도하는 무릎에서 결정됩니다. 교회는 영적 싸움의 관제탑입니다.

한신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고 예수님이 통치합니다. 한신교회는 두 가지를 가진 교회입니다. 천국열쇠와 칼입니다. 천국 열쇠로 하늘 문을 열고 천국 열쇠로 세상 문을 엽니다. 천국 열쇠로 구원의 문을 열고 천국열쇠로 승리의 문을 엽니다. 누구나 한신교회 오면 열리고 풀리고 승리합니다. 한신교회는 또한 칼을 가진 교회입니다. 말씀의 칼로 죄와 싸우고 자신과 싸웁니다. 성령의 칼로 마귀와 싸우고 세상을 이깁니다. 한신의 성도들이여, 예수님과 함께 열쇠와 칼을 가지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승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