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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목마른 자들

        마 5:1-6 / 사 4:1-4
  어떤 분의 "현대인의 굶주림"이라는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현대인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물질적인 풍요의 시대를 누리고 있으나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 소외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소외의 밑바닥에는 진정한 만남에 대한 굶주림이 있다."

  "첫째 현대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진정한 이웃이 없기 때문에 대화의 굶주림(talking hungry)을 느낀다.
  둘째 현대인은 다른 사람의 따스한 손길이 자기에게 와서 닿기를 원하는 접촉에 대한 굶주림(touching hungry)을 느낀다.
  셋째 현대인은 성적으로 가장 개방된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 사랑과 성에 대한 굶주림(sex hungry)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이상의 굶주림들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욕구들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이러한 욕구들은 성장 과정에서 가정에서 부모의 양육을 통해서 충족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이러한 욕구들이 성장 과정에서 잘 채워질 때 그 사람은 보다 성숙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이러한 욕구들이 성장 과정에서 제대로 충족되지 못할 때 그 사람은 늘 결핍된 욕구에 목말라하게 됩니다. 그러한 목마름이 정상적으로 충족되지 않을 때 매우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욕구들은 그 사람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가정, 사회에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도 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들이 다 충족되어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말씀 드린다면 부모 자신이 그러한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잘 양육된 사람들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부모 자신이 많은 결핍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결핍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충족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알게 모르게 자녀들을 그들의 결핍을 충족시켜가는 도구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굶주림은 인간의 역사에서 계속해서 대를 이어서 물려줄 수밖에 없는 하나의 비극입니다. 이러한 욕구들에 굶주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형태들이 질투·미움·분노·탐욕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굶주림은 먹는 것 재물과 같은 것으로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굶주림의 충족은 잘 양육된 한 인격의 실체와 만남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말씀드린다면 오랜기간 동안 어머니 품을 떠나 있는 어린아이에게 장난감을 주어도 만족해하지 않고 먹을 것을 주어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 어린아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어머님의 따뜻한 사랑의 품 안 뿐입니다.

산상수훈 네 번째 지복에서 '주리고 목마르다'라는 동사는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것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온전한 것을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갈증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진주상인의 비유는 이 지복의 동사의 뜻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진주상인이 많은 진주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는 온전한 진주 하나를 찾아 헤매다가 어느 날 어느 진주상에게 그것을 발견하고 그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들 전부를 팔아서 그것을 샀습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기쁨으로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는 전에 많은 진주를 소유하고 있었을 때 느끼지 못한 자족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 네 번째 지복에서 인간의 굶주림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그 온전한 것이 '의'로 나타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의'라고할 때 인간의 도덕적 인지와 관련된 정의·공의·덕과 같은 매우 딱딱하고 경직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복에서 의는 그러한 윤리적인 뜻보다는 어떤 온전한 존재와의 만남이며, 그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사귐이요, 그 사귐 가운데서 생기는 삶의 추구의 내용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은혜과 평강이라는 함축적인 두 단어로 묶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인간이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기대하고 소망할 삶의 내용으로 제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 교회에 보내는 서신 서두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빈다."는 기원을 거의 예외 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은 부분적인 것이 아닌 전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인간에게로 찾아오셔서 하나님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강은 그 관계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치유·회복·용서·사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는 인간이 돈으로 행위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인간이 도덕적인 선행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인간 외적 요인입니다.

부분적인 것이 아닌 전체적인 의미로서의 굶주림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때 구체적으로 그 은혜의 내용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극진히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는 굶주림에서 자족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자족은 세상의 재물을 소유한데서 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는 자족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머니를 오랜 기간 떠나있던 어린아이에게 어머니의 품과 같은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어머니의 품은 따뜻함·평안·자족·안식입니다.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시카고 대학교를 방문하자 학생들과 학자들이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바르트 박사님,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배운 가장 심오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기자 회견 때 누군가 묻자 바르트는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한 말일세."

영국에서 열린 비교 종교학 회의에서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을 찾아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답을 하나씩 지워 나갔습니다. 성육신?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이야기는 타종교에도 있다. 부활? 사자의 환생 기사는 역시 타종교에도 있다는 것이다. 토론이 길어지고 있는데 루이스가 방을 잘못 찾아 들어왔습니다. "토론의 주제가 뭡니까?" 그의 질문에 동료들이 전세계 종교 중 기독교만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찾는 중이라고 말하자 루이스가 답했습니다. "그거야 쉽죠. 은혜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값없이 조건 없이 우리를 찾아온다는 개념은 인간의 본성과는 상반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인간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용서가 얼마나 값진 것인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입증되었습니다. 인간의 굶주림 그 자체가 엄밀히 말해서 죄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내적 고갈·어두움·소외를 경험하게 합니다. 용서가 값지다는 것은 용서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하나님의 은혜를 방해하는 요인을 "비은혜의 사슬(Unbroken Chain)"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의 햇빛을 받아들일 수 없는 비 은혜의 사슬에 깊이 묶여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의심·미움·죄책감·적대감과 같은 것들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비 은혜의 사슬에 묶여 있으면서 그러한 것이 가장 정상적인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그것이 정의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이러한 비은혜의 사슬에 묶여있을 때 굶주림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 굶주림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으로 채우려고 하지 않고 육적인 것으로 채워가려고 합니다. 그 결과 비 은혜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나 똑같은 일의 반복만이 있게 됩니다. 결국은 나중에 치유 불가능한 중독증 환자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비 은혜의 사슬을 십자가에서 끊어 놓으셨습니다.

이 용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역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비 은혜의 사슬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깊은 적대감과 미움의 사슬에 묶여있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이제부터 '나'는 이 비 은혜의 사슬에서 풀려나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주기도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과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배고픔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을 때나 알지 못하였을 때 다같이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마름의 질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였을 때에는 우리의 목마름은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된 후부터는 내적 고갈 가운데서 목마름이 아닌 내적 충만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그가 기뻐하시는 일에 대해 배고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고픔이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행동은 그 전과는 다릅니다. 그 전에는 내가 주체가 되어서 그 일을 완성하여 사람들 앞에 내놓으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내적 초조와 불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고자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일을 시작하는 것이므로 거기에는 평안과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때 그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 하나님께서 마쳐주실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서 그 일을 해가게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새로운 소망의 지평으로 올려 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기다리며 살 수 있도록 그 나라를 약속으로 주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희망 가운데서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이 현실에 거짓·불의·전쟁이 있지만 결국 이 역사의 궁극 목적이 하나님 나라임을 믿고 있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선을 포기하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관용을 베풀며,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에게 목마름이 있다는 것은 매우 희망적입니다. 독일의 사회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는 인간의 역사를 '아직 없음(noch nicht)'으로 규정하고, 이 아직 없음의 역사 안에서 '전체(Alles)'에 대한 인간의 배고픔이 희망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고 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생존을 위한 땅과 빵에 대한 굶주림 때문에 전쟁이 수 없이 일어나기도 했고, 그것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 동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갈망이 권력의 억압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창조적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무엇에 대한 배고픔이냐 하는 것입니다. 성에 대한 목마름, 권력에 대한 목마름, 명예에 대한 목마름, 재물에 대한 목마름, 은사에 대한 목마름 등 여러 종류의 목마름이 있을 것입니다. 산상수훈 네 번째 지복에서 말하는 굶주림은 이러한 것들에 대한 굶주림을 넘어선 굶주림입니다. 이것은 전체에 대한 r굶주림, 궁극적인 것에 대한 굶주림을 말합니다. 이 굶주림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의'라고 말씀합니다. 그 의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해 줄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의 창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오늘의 구약 본문에 네 번째 지복 '의에 주리고 목마름'을 궁극적으로 채워주실 분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나의 종'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
  하나님께서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준 사람입니다.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라 했습니다.

그 분이 누구이십니까?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드릴 수 있도록 모든 비은혜의 사슬을 끊어버리신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눈을 뜨게 하신 분, 그것을 맛보고, 만져보게 하신 분, 그리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우리의 양식으로 삼고 살도록 우리의 양식을 바꾸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와 함께 고통의 자리에, 슬픔의 자리에,기쁨의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그 분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언제나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속삭이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에게 자족함이 있다."

우리가 갈구하고 기다리는 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는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실현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차 나타날 그 나라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히 자족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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