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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3:1-9

오늘은 송년주일이며, 우리 교회가 지키는 시상 주일입니다. 1998년을 다 지나보내고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주일이라는 말을 할 때는 인생의 수를 다 살고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한다는 강한 교훈을 듣게 됩니다. 한해동안 바르게 살지 못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것을 느껴 보게됩니다. 한해를 마무리 지으면서 먼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 고 훈 목사님의 시 가운데 [주여 용서하옵소서]라는 시가 있습니다. "잘한 것을 용서하옵소서/ 마치 내가 한 것처럼/ 오직 당신께 돌아갈 영광을/ 내 몫으로 챙긴 허물입니다. // 잘되어 있는 것을 용서하옵소서/ 나로 나 됨이 당신의 은혜일진대/ 마치 내 스스로 된 것처럼 자고함 입니다. // 잘된 일과/ 잘못되어 있는 일을 용서하옵소서/ 좀 더 잘했다면 잘 될 수 있을 것을/ 더러는 미숙함으로/ 더러는 능숙함으로/ 당신의 일을 그르쳤습니다." 이 짧은 시에서 우리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했다고 하는 일들이 있는 후에 내가 잘 나서 잘해서 된 것으로 알고 자만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좀 더 잘 했으면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나라 역사상 6.25 한국동란 이후에 최대의 위기라고 하는 IMF 체제 아래서 1998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금년 한 해를 되돌아보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사람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고 보니 모두들 조급해졌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우선 신경질적으로 대하고, 매사에 기쁨보다는 짜증스러운 인상을 하고, 무슨 일을 하시든지 불평 섞인 언사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런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시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의 경제가 시행착오나 실패의 쓰라린 경험도 없이 2만- 3만불 소득으로 치달았다면 교회는 더욱 위축되고, 성장의 길은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소득을 후퇴시켜서라도 떠나지 못하게 막으시고, 돌아오게 하시고, 뜨겁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금년 일년 동안 살아오면서 금년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적극적인 신앙을 제창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대개 인생 길에서 실패하는 사람을 보면 유능하고 똑똑하고 희망이 있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론적으로는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데 실지로는 사업이나 어떠한 일을 맡기면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왜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지, 필 박사님은 이런 말을 합니다. 실패한 사람은 어떤 일을 달성하기까지의 고난이나 난관을 미리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실패병에 걸린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왜 가능한 적극적인 면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어려운 점만 생각하는 것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실패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만, 실패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불러들이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우리 인생 길에서 실패를 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생 길에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실패를 두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발명왕 에디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공이란 그 결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소비한 노력의 총계로 따져야 할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성공하려거든 견인불발을 친구로 삼으며, 경험을 현명한 조언자로 하며, 주의력을 형으로 삼고, 희망을 수호신으로 하라"고 합니다. 유명한 강철왕 카네기는 이런 말을 합니다. "성공에는 아무런 트릭이 없다. 나는 다만 여하한 때이고 나에게 주어진 그 일에 진력을 기울여 왔을 뿐이다. 그렇다, 보통 사람들 보다 약간 더 양심적으로 노력해왔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공에는 트릭, 속임수가 통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진력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마지막이라고 해서 이것으로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기에,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한가지라도 분명한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과연 한 해를 보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는가? 세상으로 치우치지 않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들을 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는가? 하나님 앞에서나 우리 가족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하는데,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 정말 부끄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반성할 것들이 너무나 많고, 누가 보는 사람이 없으면 엎드려 싫건 울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에 꼭 알맞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심은 지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정성을 기울였으며, 밑거름을 주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온 정성을 쏟았습니다. 이제는 그 나무에서 열매를 구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화과나무는 하나의 열매도 열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노하여 포도원 지기에 말하였습니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있는 포도원지기는 주인에게 사정을 하였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주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여기 포도원지기는 우리 구주 예수님이고,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는 바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땅만 버리고 있는 우리들을 상징합니다. 우리 주님은 그래도 내년에는 몇 개의 열매라도 열리겠지 하시면서 일년만 더 가꿔보겠다고 하십니다. 두루 파고 거름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땅을 두루 파헤쳐야 합니다. 그래야 산성의 토질을 바꾸어 알칼리성 토지로 만들 수 있습니다. 거름을 주지 않고 열매를 맺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루 파헤치는 심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자양분으로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8절 말씀에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한가지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일하지 않으면서도 상을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일을 하고서도 상을 타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벌은 국가의 대전(大典) 즉 큰 행사요 의식이라고 하면서 한 사람을 상 줌으로 해서 천만인이 힘을 얻게 되며, 한 사람을 벌줌으로 해서 천만인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이라는 것은 공명정대하지 않으면 인심을 설복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평가할 때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람이 받을 때 상으로서 효과가 있지, 전시행정으로 상을 남발한다는 것은 먼 장래에 더 큰 불씨나 남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1952년 노벨 평화상의수상자로 지목된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시상식에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고 많은 병원 치다꺼리를 두고 훈장 나부랭이를 받으려고 시간을 낼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흑인을 상대로 병을 치료하고 돌아보는 일을 더욱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이 알아주는 일을 좇아가기보다는 현재 주어진 일에 충실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당시에 세우신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후 50년 가을에 고린도에 도착하였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지시를 따라 1년 6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하나님 진리의 도, 십자가의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고린도는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대도시였으며 아가야 주라는 로마의 행정구역의 수도였습니다. 고대로부터 이 고린도는 헬라 최대의 도시인 아테네와 스파르타 테에베 같은 도시들과 함께 헬라의 중요한 도시국가의 하나였습니다. 이곳에는 유명한 고린도식 건축 양식이 발전하였고, 여행자들과 상인들이 모여 사는 교통 중심지였고, 아가야 지방을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전략적인 지역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도시가 주전 146년 로마에 의하여 점령되고 시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의 유명한 쥴리우스 게사르 즉 시이저에 의하여 식민지로 재건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 왔을 때는 자유인이 25만명, 노예들이 40만명이 사는 헬라 남부의 최대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적어도12개 이상의 신전이 있었는데 가장 유명한 신전은 고린도 앞산 꼭대기에 위치한 사랑의 여신 아데미 신전이었습니다. 이 신전에서 일하는 여사제만 1000명이 넘었다고 하니, 고린도는 상업의 중심 도시이며, 음란과 방탕이 만연된 도시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이곳에 내려와서 부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났습니다. 이분들은 사도 바울처럼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일 행은 아굴라의 집에 머물면서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고린도에 내려오면서 아덴에서처럼 철학적인 수사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 증거하기로 힘을 썼습니다. 오직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 최선을 다했더니, 이곳에 고린도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안식일마다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습니다.

마침 실라와 디모데가 북쪽 마케도냐에서 내려오므로 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였습니다. 회당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강론하였는데 이 집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아주 가까이 있었습니다. 이때 회당장 그리스보가 회당에서 나와 세례를 받았고, 수다한 헬라인들이 믿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은 주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지,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일년 육개월을 고린도에 유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지금도 고린도 교회는 그 동안 약 2,000년 가까이 내려오면서 교회를 섬긴 교역자들의 이름을 동판에 새겨 예배당 정문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 첫 번째가 성 바울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아폴로니우스 즉 아볼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떠나신 후에 에배소에서 활약하던 아볼로가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배소에 있을 때에 들리는 소식은 교회가 분파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4개 분파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사도 바울파, 두 번째는 아볼로 파, 세 번째는 게바 즉 베드로 파, 그리고 마지막 파는 그리스도파였습니다. 이러한 파벌이 생기게 된 배경은 우리가 잘 알기에 말씀드리는 것을 생략합니다. 그러면 이 분파의 문제를 가지고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습니까?

5절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상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입장에서 심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볼로는 2대 후임 교역자로 성경을 공부시키고, 교회를 성장시키고 확장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은 그 교회를 자라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심은 사람이라고 해서 더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물을 주는 사람이라고 해서 조금 몰라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싹이 트게 하고, 자라나게 하시는 사역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지론입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고 하면 더 말할 것 없이 끝나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급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알아주시고, 갚아주시고 '누르고 흔들고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신다고 했습니다.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할 수 있지만, 각자의 수고에 따라서 각각 상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좀 더 읽어 가면 13절 말씀에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때에는 어떤 성도의 신실한 헌신은 심판을 통과할 것이지만, 또 어떤 신자들의 위선적인 일들은 불에 타서 사라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보면 깜짝 놀랄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위선이 아니어야 합니다. 섬기려고 아니하면 주님 앞에 가서 설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다 섬김을 받았고, 알아주었고, 추어주었고,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은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구원받아 들어가는 나라이기에 상급에 따라 하늘나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일층 이층이 삼층이 있어 시시한 구원이 있고 빛나는 구원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분명히 상급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상이나 받으려고 헌신하는 것은 위선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정도의 봉사를 가지고 나에게도 상이 주어질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라도 버리시지 않고 불러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인도하셔서 구원해주시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되돌려드리려고 하는 심정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0-12)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초대 교회 사도들은 순교의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30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의 비유나 므나의 비유에서 보면 이 세상에서 많이 남긴 사람은 많은 축복으로 돌아오고 세상에서 하나도 남기지 못하고 일한 것이 없으면 가진 것까지도 빼앗기고 만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성경 도처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마지막 시간에 판단하시고, 정죄하시는 것을 봅니다. 세상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수 없는 말씀을 통해서 의의 면류관 , 생명의 면류관을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10하-11상)라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를 가보신 사도 요한이 증언하시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는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며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10-11)고 했습니다. 분명히 하늘나라에서 24장로들은 머리에 면류관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상급마저도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되돌려드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 장로님들도 하늘나라에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으시고 그 받으신 면류관이 너무나 황공하고 감사하여 하나님께 되돌려드리며 예배드리기를 바랍니다.

빌 맥체니는 미국인 선교사로서 28살의 나이로 1964년 아프리카 콩고 내란 때에 살해되었습니다. 그는 선교사로 콩고에 가기 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제목은 [나의 선택]이라는 시입니다.

[나의 선택 ]

아침 여덟 시 나는 햄과 계란으로 마련된/ 아침 식사를 하고 싶습니다. / 한 시가 되면 잘 구운 스테이크로 점심을,/ 그리고 일과를 마친 후 다시 저녁을 들겠습니다.// 방마다엔 전화가 있고/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 있는 마루와/ 예쁜 커튼으로 꾸며진 문/ 그런 초현대적인 집을 갖고 싶습니다.// 사랑스런 것들로 잘 정돈된 아늑한 방/ 스프링이 들어 있는 푹신한 안락의자/ 그리고는 조그마한 텔레비전 한 대를 갖고 싶습니다. //물론 주의 깊게 프로그램을 선택하렵니다/ 나는 또 최신의 유행의 조끼, 정장이 가득 찬/ 깔끔하고 멋진 최고급 옷장을 갖고 싶습니다./ 크리스천은 왜 최고급을 가질 수 없나요?// 그러나 그때, 나는 /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내 주인의 음성을 듣습니다/ "갈릴리의 비천한 자/ 나를 따르렴"/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고/ 여우도 쉴만한 굴이 있으나/ 나는 네게/ 잠자리도 줄 수 없구나/ 내 자신 머리 둘 곳도 없는 자란다"/ 수치심으로, 수치심으로, 나는 /고개를 떨구고 울부짖습니다. /'어떻게 내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멸시할 수 있는가?/ 그 분이 가셨던 길,/ 기도로 지새운 그 분의 수많은 밤들을 어찌 내가 잊을 수 있겠는가?/ 한 조각 음식도 없이, 주님은/ 40주야를 홀로 금식하셨습니다./ 멸시 당하고 거절당하신 채 그 분은 그 길을 가셨고/ 성전의 휘장이 찢겨져 나갈 때까지 그분은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 슬픔과 번민을 겪은/ 안식을 줄 아무런 육신의 친구도 없이/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자- 예언자가 말하길/ 그는 모욕을 당하시고, 매맞은 바 되었고, 멍들었으며,/ 그에게서 붉은 피가 흘렀다고// 그가 정녕 하나님이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일진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인 내가/ 어떤 희생을 드린들 그보다 더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위해 내가 바로 그 일을 하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가신 그 길을 나도 가렵니다./ 그 어떤 다른 길도 나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므로/ 이것이 나의 선택입니다./ 영원을 위한 나의 선택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로 아프리카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토인들에게 죽어 순교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시상 주일을 지킵니다. 사람의 칭찬에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주노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는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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