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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경건 약1:22-27 오늘은 우리 교회에서 세 가지 중요한 행사를 겸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 교회 주일학교 유초등부를 졸업한
최보배 어린이와 중고등부를 졸업하는 김진형 군의 졸업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교회 김정호(송미옥) 성도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며 약속의 자녀인 김경건이가 유아세례를 받습니다. 세 번째로는 우리 한샘교회의 태동기부터 약 10년 동안 저의 동역자요 저희 한샘교회를
함께 섬겼던 황도훈(박지윤) 집사님 가정이 하나님의 다른 계획에 따라 구미에 있는 금호공과대학 교수로 가게된 일을 생각하고 환송예배도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졸업하는 최보배 어린이나 김진형 군, 유아세례를 받는 경건이의 부모나, 또 다른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섬기며
교회를 봉사하게 될 황도훈 집사님 가정 모두에게 경건은 새로운 출발점을 앞두고 반드시 명심해야 할 신앙의 덕목입니다. 그래서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 삶을 훈련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됨의 표현이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방법임을 우리 모든 한샘교회 가족들과 다시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경건에 대한 용어가 몇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본문에서 헬라어로
트레이스코스(ՈՑՇՓՊՏՒ, religion)라는 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명한 신학사전인 TDNT 사전에 보면 이 용어가 하나님에게 적용되어
사용될 때는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적인 행동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이 말이 대개 "종교" 또는 "경건"이라는 말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경건"도 그렇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모습이 곧 경건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려고 하는 주제는 바로 여기에 대한
것인데, 이 본문의 주제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자, 곧 경건한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야고보서의 주제와 경건 우리 신자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한가지가 "경건"입니다. 왜냐하면 경건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신자들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대하여 가르쳐주는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강조하고 있는 책이 야고보서입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가장 천대를 받았던 성경 가운데 하나가 이 책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구원을 얻어
복되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데 이 책에서는 행함이 없이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든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이
성경을 가리켜 "지푸라기 편지"(epistle of straw)라고 불렀습니다. 많은 종교개혁자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후세의 신자들조차도 이
책에 별로 중요성을 부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교회인 로마 카토릭 교회가 믿음이 아니라 교회가 인정하는 선행을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루터 이후 성경 연구의 결과로 이 편지 역시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교회 역사 가운데 정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편지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한가지가 참된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행함으로 표현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네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그것은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약 2:26).
왜냐하면 믿음이라고 하는 속성(character) 자체가 밖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생각하려고 하는 본문은 신자가 예수님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교제하는 자가 되었다면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관계가 표현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교회당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삶의 전체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삶의 영역에서 믿음의 자태들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야고보서 1:22에서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는 헬라어 성경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고스(logos, the word)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는 이 말을 만물을 통제하는 이성적인 원리요 만물의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로고스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만물을 통제하는 원리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1:21에서
이 말씀의 성격에 대하여 말하기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마음에 심긴 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자유하게 하는 것이요 영혼을
구원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면 믿는 바의 내용과 나타나는 행동이 다르면 자신을 속이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위선자를 정의할 때 속으로는 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밖으로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선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위선자의 의미를 반대방향에서 생각해 보면 이 본문에서
자신을 속이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위선자는 속에 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선을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만
여기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면서도 그 나타난 행동으로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의 행위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없다는 것입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행동이 없으면 자신을 속이는 위선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열심히 듣기는
하지만 행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똑같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위선적인
행동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의 중요성 이어서 야고보는 이러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한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23-24에 보면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거울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거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비추어보는 기능입니다. 요즘은 이 거울이 과학의 발달로 인체의 내부를 비추어 본다든지 여러 자연현상들을 비추어 여러 생활에 응용하고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주로 자신의 용모를 비추어보는 일에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거울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약1:25).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곧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잊어버리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실행에 옮기지 아니하면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기억이 희미해지게 되고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풍성하고 좋은 은혜를 누리는 통로가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지금 야고보가 말하는 점은 바로 이 점입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우리 신자의 독특한 신분에 있는 사람은 말씀을 실행에 옮기게 되어있다고 하는 그 당위성을 야고보서
1:25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여기에서 신자의 신분을 가리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왜
"자유하게 하는 완전한 율법"이라고 하였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듯이 구원받지 아니한 사람들에게는 율법이 그들에게 자유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자에게는 율법이 무거운 짐이며 심판의 척도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 신자에게 있어서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함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율법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적용이
되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편이요 은혜를 누리는 통로입니다. 또한 신자에게 있어서 율법을 지키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방법입니다. 구원받은
신자에게 있어서 율법은 자유롭고 좋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본래 속성을 말하기를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며 신령한 것"(롬7:12,
14)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이러한 속성들은 우리 가운데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십계명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십계명은 그 계명의 서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간혹 그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 서문은 십계명을 주신 배경과
우리가 어떻게 그 법을 지켜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서문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하여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이 계명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섬김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신자들을 가리켜 "자유하게 하는 완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여기서
"들여다본다"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 파라쿱토우(ՐՁՑՁՊՕՐՔՙ, look into)라는 말인데 "어떤 것을 자세히 보기 위하여 자세를
구부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전체의 의미는 신자는 그들을 자유하게 하며 은혜 가운데 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에서 대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현장 속에서 실행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야고보가 거울이라고 하는 상징어를 사용한 것을 생각하였는데, 거울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 앞에 자신을 늘 비추어보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하는 사람이 구원받은
신자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독특성입니다. 신자는 항상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의 삶을 바꾸어 가는 사람입니다.
제가 아주 오래 전에 소설가 조세희가 지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유신시대와 5공시대에 금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에 보면 처음에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를 개작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굴뚝을 청소하고 나왔는데 한 사람의 얼굴은 새까맣고 한 사람은 얼굴이 깨끗하였습니다. 그런데 굴뚝 청소를 마친 다음에 "누가 먼저 세수하러
갔을까?"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세수하러 갔다고 생각합니까? 그 답은 얼굴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는 자기의 얼굴
모습을 보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똑같이 굴뚝 청소하러 들어간 상대방의 얼굴이 새까만 것을 보고 자기의 얼굴도 그렇게 새까만 줄을 알고
세수하러 달려갔지만, 까만 사람은 자기의 얼굴이 새까만 줄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굴뚝을 청소한 사람의 얼굴이 깨끗하니 자기도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그것에 따라 삶을 바꾸어간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당연히 고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신자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도 못합니다. 설사 본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믿음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참된 신자는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늘 가까이에 두고 그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생활을 바꾸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그의 생활 가운데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신자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3. 참된 경건의 의미 야고보는 우리 신자의 이러한 신분적인 특성을 이야기하고 난 뒤에 하나님을 섬기는 아주 실제적인 모습을 야고보서
1:26-27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우리가 이미 앞에서 "경건"의 의미를 정의한 바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 즉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모습을
말합니다. 아주 유명한 경건주의자인 윌리암 로오(William Law1686-1761)는 그의 유명한 책 「경건을 위하여」라고 하는 책에서
"경건은 정해진 때마다 어떤 종교적인 의무들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의 의무들을 이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전정으로
섬기는 사람은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증명해 줍니다.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경건하다고 입으로 떠벌리지 않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건은 말과 행실이 일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경건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의 경건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먼저 잘못된 개념의 경건을 야고보서 1:26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혀는
우리 인체에서 말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혀를 재갈먹인다"는 뜻은 말을 적절하게 제어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모든 말을
제어한다는 뜻이 아니고 해서는 안될 말들, 예를 들면 불평, 악담, 비난, 욕설, 거짓말, 맹세, 저주, 음담패설 등의 말을 제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속여서는 안됩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만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면서, 또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 행동이 이율배반적으로 나타나는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혀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관념적으로만 알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 모두 경건한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경건하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난다면 그는 경건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경건한 사람일까요? 야고보는 야고보서 1:27에서 경건을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이 정의를
볼 때 경건의 자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고아와 과부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라는 적극적인 의미의 경건이며, 또 하나는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소극적인 의미입니다. 보통 세속의 시류에 이끌려가지 않는 사람을 경건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 쉬우나 고아와 과부, 즉
소외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의미를 간과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경건의 참 모습은 세속의 관습에 물들지 아니한 깨끗한
삶의 자태를 유지하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자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실제적인 도움을 베푸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세속에 때가 끼여서
거짓말하고 무례하거나 자만하지 않으면서, 겸손하게 자기보다 못한 이웃들을 돌아보는 것이 참된 경건의 모습입니다. 야고보서에 관한 중요한 주석을
쓴 토마스 맨튼(Thomas Manton)은 "참된 경건은 곤궁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일과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생활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 어떤 사람은 눈은 고결하지만 긍휼을 베풀 줄 모르기 때문에 값싸고 열매 없는 고백으로 만족한다. 한편 또 어떤 사람은 생활은 악하고
문란하지만 남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 일에는 열심을 낸다. 전자는 신앙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탐욕이 도사리고 있고 후자는 악에 찌든 자신의 삶을
많은 구제로서 용서받고자 하는 소망이 숨어있다"고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참된 경건은 세상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거기에
따라 삶을 맞추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참된 경건을 실천하십시오. 야고보는 이러한 경건을 우리가 세상가운데 실행할 때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이다"(약1:25)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복은 세상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복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완전한 복과 위로를 다 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가게될 영원한 나라에서는 완전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자신의
현재모습을 비추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에 따라 삶을 바꾸어 가십시오.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주일학교 유초등부와 중고등부를 졸업하는 최보배 어린이와 김진형 군도 이 말씀을 꼭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유아세례를 받는 김경건의 부모님들은 아이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이름을 지었다고 믿습니다. 이 아이를 아이의 이름그대로
경건하게 키울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그 삶을 인도해 가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함께 섬기다가 또 다른 영역에서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게 될 황도훈(박지윤) 집사님 가정도 그리스도인으로 경건을 실천하고 산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가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참여한 모든 한샘교회 사랑하는 가족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생활 속에 실천함으로 경건한 삶의
자태를 보이며 사십시오. 이러한 삶이 자신을 속이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방법이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 살아 계셔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연구한 말씀을 통하여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거나, 스스로 경건하다고 하면서도 그 삶에 행함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거짓 믿음을 가진 것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혹시 우리는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아닙니까? 스스로 경건하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우리 삶에는 경건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은 없었습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이 세상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참된 경건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생애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주일학교 유초등부와 중고등부를 졸업하는 최보배 어린이와 김진형 군, 유아세례를 받은 김경건, 그리고 또 다른 영역에서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게 될 황도훈(박지윤) 집사님 가정 모두 경건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생애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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