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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강

요7:37-39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 가운데 가장 신비롭고 놀라운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성령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모든 구원의 사역을 우리에게 적용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구체적으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지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의 삶에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주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도 합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 랜드 그룹의 박성수 사장은 전신무기력증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그 몸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또한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믿음의 가족들이 성령이 역사하시는 신비로운 세계에 눈을 뜨기를 바랍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성령은 생명의 물을 강같이 주시는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첫 번째로는 주님과 성령의 관계, 즉 구속사와 성령의 관계를 살펴보게 될 것이고, 두 번째로는 성령의 역사, 세 번째로는 누가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구속사와 성령

이 본문이 성령에 관련된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왜냐하면)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니라." 생수의 강을 마신다는 것은 성령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생수의 강"이 흘러난다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 답을 39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touto, this)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 성령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가 이 본문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구약시대에도 성령의 역사가 있었는데 그것과는 다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결론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구속사의 진전과정 속에서 좀 더 풍성하고 은혜로운 역사를 의미합니다.

먼저 이 말씀을 하신 때가 언제인지를 보겠습니다. 3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명절 큰 날은 초막절의 마지막 날을 의미합니다. 초막절은 8일 동안 지켰습니다. 이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역사 절기 가운데 하나로 의무적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헤어졌습니다. 이 마지막 날을 가리켜 큰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날에 주님은 예수님에게 오라고 하시면서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수님은 생수를 마시게 되는 것은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유를 말하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이유를 말하는 접속사가 빠져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는 전 역사와 성령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접속사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지금 이때는 성령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창세 때부터 성령은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오실 때에도 성령으로 잉태되셨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할 때도 예수님은 "네게 이것을 알게 한 이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이전에도 성령은 계셨지만 다른 차원에서의 성령을 말한다고 하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그 이유를 "예수님이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승천 사건으로 이어지는 구속사역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구속사역을 이루시고 하늘 우편에 앉으신 사건을 말합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구속적인 사건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오심은 구속사와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동일한 사상을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7을 보면 성령오심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낼 것이라."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구속역사적인 사건과 성령오심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주님의 예언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주님이 영광을 받으신 후에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33에 보면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신 후,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구약시대에도 계속하여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만 새로운 차원에서의 성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 우편에 앉으신 이후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2. 성령의 사역

그러면 이 성령은 어떤 일을 하실까요?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생수의 강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생수는 요즘 물 사정이 좋지 않아서 마시는 생수가 아닙니다. 문자적으로 "생명의 물"인데, 생명을 주는 물의 의미하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문맥에서 생명의 물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고, 여기 이 본문에서도 생명의 물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요한복음 4:14을 보면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 자신이 영생하는 샘물이 되신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전체의 사상과 연관지어 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의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생수가 그 배에서 강같이 흘러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요17:3). 특히 여기서 주님의 영광 받으심 이후에 생명이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강은 복수로 "강들"(potamoi, rivers)을 말합니다. 이것은 생명수 샘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강들처럼 풍성하게 흘러난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히 복수로 된 것은 다양한 성령의 역사가 모든 생활 영역으로 흘러간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풍성하신 성령의 역사가 생활의 전 영역에서 경험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4-16장을 보면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 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우시며,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역사가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서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역시 이 본문에서 주님이 영광받으신 후에 성령을 보내신 사건은 구원을 실제로 경험하게 하되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생수의 강이 "그 배에서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그 배에서"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 엑크 테이스 코이리아스(ek tēs koilias)라고 하는 말인데 "그의 속에서"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그의 가장 깊은 곳에서"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NIV성경에는 단순히 "그의 속으로부터"(from within him)라고 번역하였고, NASB성경에는 "그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from his innermost being)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또한 화란어 성경에서도 NASB와 거의 같은 의미로 번역하였는데 "그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uit zijn binnenste)라고 하였습니다. RSV성경은 아예 의역하여서 "그의 마음으로부터"(out of his heart)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상은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인 마음으로부터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고, 여기에서 모든 다양하고 좋은 은사들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의미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그 생명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는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성령의 오심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합니다.

3. 누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러한 기록을 볼 때 생명을 얻고 누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면 누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본문에서 "믿는 자의 받게 될 성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우리를 위한 구원사역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가지게 하시고 그 안에서 모든 신령한 은사를 누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지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증명해 주시기 위하여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십시오. 하늘 우편에 앉으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믿으면 생명수가 강같이 흐른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때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주시는 수많은 은혜들을 경험해 보십시오. 그런데 이 은혜는 체험해 보지 않으면 항상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of Hippo)은 이 부분에 대하여 그의 신앙고백적인 자서전인 「참회록」(Confession)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내게 빛을 비추사 볼 수 없었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아름다운 향내음을 들이키고 난 후 나는 더욱 주님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성령을 경험한 후에 나의 주의 말씀에 주렸고, 목이 말랐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만지셨고, 나는 주님의 평안으로 불타올랐습니다."(10. 27. 38.) 여러분! 어거스틴이 경험한 이 영적인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지 않습니까?

주님은 그 방법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내게로 와서 마시는 것과 믿는 것을 주님을 믿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 보십시오. 주님은 이러한 생명수에 대하여 목마르거든 주님께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은 여기에 목마른 것이 아니고 다른 것에 목말라 있습니다. 쾌락에 목말라 하고, 돈에 목말라 하고, 권력에 목말라 하고, 성적인 욕구에 목말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도 갈증을 해소시켜 주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생명과 기쁨은 하나님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6:11은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8:36)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중요한 지식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알고 교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스칼(Pascal)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함이 어떤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의 행복을 보여주기 위하여 한 명상록을 썼습니다. 그것이 그의 유명한 책「팡세」입니다. 이 책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간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에 잘 알려진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님도 여기에 대하여 말하기를 "인간에게 사회적인 또는 경제적인 자유를 줄 수는 있으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갈망하는 심령의 욕구를 충족시켜 않으면 언제나 짐승처럼 행동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표현이 지나친 느낌을 받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인간의 행동을 연구해보면 짐승보다 못한 행동을 하는 경우들이 허다하게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백성이 되어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결과로 채워주시는 신령한 은혜로 채워지지 않으면 진정한 만족함을 누릴 수가 없고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러한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3:11)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으면 만족한 삶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파스칼 이전에 어거스틴(Augustine)도 「참회록」(Confession)에서 "주께서는 우리를 주님을 위하여 지으셨나이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안에서 쉼을 얻을 때까지 안식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릇된 종교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기 주님이 초청하고 이는 바와 같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주님께 와서 마시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있다면 생수의 강이 우리의 삶 속에서 다양하고도 풍성하게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생수의 강들"이라는 표현을 주의해 보십시오. 이 말은 하나님과 교제할 때 나오는 그 풍성하고 좋은 은혜들을 의미합니다. 주님과의 교제에서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되는 은혜, 병고침의 은혜, 우리의 길을 열어 주시는 은혜 등 셀 수 없는 많은 은혜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흘러나오는 은혜들을 체험해 보기를 원하십니까? 믿고 순종하십시오.

성령님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주시고 여기에서 온갖 풍성하고도 놀라운 은혜들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속사역 이후에 성령님을 주신 것은 이러한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과 여기에서 흘러나오는 풍성한 구원의 은혜들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은혜들은 정말 신비하다고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 신비로운 세계,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 자유와 평화, 기쁨을 주시기도 하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전혀 소망이 없는 질병을 고쳐주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힘을 주시기도 하시고,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에 따라 순종할 수 있게도 하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시키기도 하시고, 여러 가지 환경, 심지어 우리가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환경조차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바꾸시기도 합니다. 이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우리는 이 성령님과 성령님의 사역에 대하여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종교문제 연구소인 바나 연구소에서 미국의 성인신자 10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이 "기독신문"(1997.5.4.)에 실렸습니다. 그 설문 가운데 "성령은 하나님의 존재나 힘의 상징이다. 그러나 실재하지 않는다."라는 설문에 "그렇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55%였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존재도 사역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의 존재와 사역을 믿습니까? 우리 한국교회에도 많이 알려진 영국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James Packer)는 성령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으로 구속함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으심으로 이 세상에 오신 성령과 그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우리는 이 말을 관심있게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영광받으신 이후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님은 항상 교회 가운데 거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항상 내주해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하여서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정말 신비스럽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실재의 세계의 있습니다. 주님이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시는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신비로운 세계에 눈을 뜨고 사모하십시오. 믿고 순종하는 자는 이 세계에 들어가서 모든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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