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massge internet:www.imr.co.kr |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13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을 영적인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영적인 사람에 대하여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 중세시대에는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수도원에서 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세상과의 접촉을 피하므로 죄와 단절해 보려는 노력의 하나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세의 수도원은 세상과 단절해 있던 일정기간 동안은 경건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곧 부도덕과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세상과의 접촉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이라는 상황이 죄를 짓게 하고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세상
속에서 살면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교회당에 잘 출석하거나, 신비적인 경험을 많이 하는 사람을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물론 교회 출석은 신자의 기본적인 태도이고, 신비한 경험 역시 믿음을 확증하고 강화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믿는 바의 진리가 삶에 표현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심지어 위선적일 수도
있습니다. 믿는 바의 진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점을 아주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화(sanctification)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할 본문의 주제는 성화에 관한 내용인데, 이 본문에 나타난
표현대로 옮기면 신자는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는 구원을
이룬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두 번째로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지, 즉 구원을 이루는 방법에 관하여 살펴보겠고, 세 번째로는 구원을
이루며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구원을 이룬다는 의미 이 본문에서 바울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헬.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우리 개혁주의 교회 성도들에게는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 인간의 구원이란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 여러 차례 우리의 행한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여기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교리와 어떻게 조화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하여 "구원"이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정의해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통하여 죄로 인하여 멀어졌던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구원이라는 용어를 생명, 영생, 천국, 하나님 나라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셨습니다(마19:16-26).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본문에서 바울이 구원을 이루라고 하시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의미는 하나님 나라, 또는 구원의
현재적인 성격과 미래적인 성격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가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면서 생활 속에서 구원을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죽음이
있고 시기, 다툼, 미움 등의 죄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완전히 해결되어 하나님처럼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본문에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주시는 권면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완전하게 이루어지게 될 구원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바울이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의미는 현재적인 의미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받은 구원을 계속 이루어가라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성경의 다른 본문과도 비교해 보겠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바울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바가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2에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이루어가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생활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완전히 복종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화라고 합니다. 구원에 대하여 이러한 의미로 이해하게 될 때에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너희가
주님의 말씀에 완전히 복종하여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에서 거룩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생활, 곧 성화를 이루어가라는 뜻입니다. 2. 구원을 이루는 방법 그러면 우리는 이 구원을 어떻게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바울은 이 문제를 말하기 위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유의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어떻게 구원을 이룰 수 있을까요? 여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두렵고 떨린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세를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영국의 켐브리지 대학에서 신약성경과 고전어를 가르쳤던 라이트풋(J. B.
Lightfoot) 교수는 "바르게 행하려고 신경을 쓰는 자세"라고 주석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주석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통찰력을 줍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경을 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 신경을 써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지나칠 정도를 많은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어떤
사람은 사과상자 몇 박스씩 상납하는 것을 신문을 통하여 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장래가 특정한 사람이나 권력을 잡은 자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신경을 쓴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방식인 성화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직장이나 학교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분보다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구원을 이루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화는 구원의 한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모든 일의 성패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되지 때문입니다. 이같은 사상이 히브리서 12:28-29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심이라." 이 본문에서 하나님이 소멸하시는 불이시라는 표현은 무례하고 방자하게 섬기는 행동에 대하여서는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신전의식(神前意識)을
가지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솔직하게 저는 오늘날 하나님을 조금도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 교회와 신자들에 대하여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들이 고안해 낸 여러 종류의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고 소멸하시는 불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구원을 이루는 바른 생활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바울은 이 본문에서 구원을 이루는 방법인 두렵고 떨림에 대하여 한 예를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이 말은 원문의 뜻과 번역이 약간 잘못 되었습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 복종한 것과
같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말은 바울이 그들 가운데 있을 때나 없을 때 항상 복종한 것처럼 복종함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복종하는 것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문제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점을 유의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복종을 말하면서 바울은 빌립보서 2:5-11에 있는 그리스도의 복종을 예를 들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지극히 그를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을 예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광 받으신 후에 높아지신 예도 함께 들었습니다. 이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종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었고, 그의 높아지심으로 인하여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리는 항상 기독교생활에 있어서 실제적인 생활로 나타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먼저
말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빌립보서 2:12에 보면 "그러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신 것과 이제 높아지셨다는 사실을 예를 든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셨다면 당연히 우리도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을 이루는 삶은 세상과의 접촉을 떠나서
이루어지는 문제가 아니고, 교회당에 열심히 다니는 것만으로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할 때 구원을 이루어가고,
성화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3. 구원을 이루며 살아야 할 이유 그러면 우리는 왜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말씀에 복종하면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까요?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빌립보서 2:13을 보십시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시기 때문이다." 사실 이 번역은 문장을 연결하는 방식에 있어서 잘못 번역하였습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12절 끝에 세미콜론이 있기
때문에 13절은 그것을 설명하는 이유절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NIV나 RSV 번역성경은 이 점을 잘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13절은 왜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결론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너희 안에 소원을 두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함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가 구원을 이루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말씀에는 다른 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가기를 원하시기도 하지만, 또한
하나님은 구원을 "행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은 헬라어 성경에 있는 말 그대로 옮기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우리 성경에 "행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서의 의미를 문자대로 직역하면 "에너지를 주시는 분"(ץ ִՍՅՑՃՙՍ)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표현을 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성화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이 성화를 이루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화를 이루어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위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는 일이 우리 인간의 책임부분과 하나님의 사역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받은 구원의 신비가 있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복종함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할 신성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는 성화는 우리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구원의 순서를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작정과 선택, 부르심, 중생, 믿음과 회개, 의롭다하심, 양자됨, 성화, 영화의 순서로 말합니다. 이 모두를 포함해서
우리는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활도 구원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3장 "성화에 관하여" 1항에 보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효력있는 부르심을 받고 중생한 자들, 곧
그들 안에 창조된 새로운 마음과 새 영을 가진 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효력으로 말미암아 그의 말씀과 그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해
실제적으로, 또는 인격적으로 거룩해진다. 모든 죄의 지배세력이 파괴되고 여러 정욕이 점점 더 약화되고 억제되므로 모든 구원은 은혜 가운데 점점
강건하여져서 참된 경건을 실천하게 된다. 이 경건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볼 수 없다." 이 문서는 우리 교회가 역사적으로 구원과 성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생활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바울이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는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변해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8에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천국백성이 되었으면 당연히 좋은 열매들, 곧 선하고 착한 행실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있으면 당연히 우리의 생활에서 그 차별성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신자의 생활은 구원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연구한 바와 같이 구원을 이룬다는 의미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라는 뜻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 사람들과 동화되어 살지 말고, 차별성을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시며 높아지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항상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말씀에
복종하십시오. 왜냐하면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이 세상에 살면서 구원을 이루어가며, 점점 우리의 생활이 거룩해져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 구원을 지금 이 세상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서 이루어가야 할 부분이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말씀에 복종함으로 적극적으로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야 할 책임적인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에너지를 주시는 분이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함으로 이 세상에서 거룩한 생활을 실천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
은혜목회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