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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 속에서 전해진 성경

 


본    문 : 행27:21-26

 저는 때때로 TV를 통해서 '왕과 비' 연속극을 보곤합니다.  내용 중에는 피비린내 나는 장면이 많습니다.  할머니와 손자의 대립으로 무서운 광풍을 일으키는 전율할 장면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민족의 과거사로구나 여기면서 너무 기가 막혀 답답해 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현실이 어떠합니까.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에도 볼 수 없는 남과 북의 극한 대립으로 수치를 면치 못할 얼룩진 현실이기도 합니다.  지금 동서는 정신적으로 분단되다시피 됐고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는 무서운 광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무슨 말씀을 증거할까 생각 중에 본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276명을 태운 알렉산드리아호가 로마로 가다가 광풍을 만난 것이 본문의 주된 내용입니다.  지중해 남단 마다라 반도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항구 미항에 배가 정박하고 있을 때 바울은 이곳에서 겨울을 지난후 떠나자고 했고 선주와 선장은 바로 떠나자고 했습니다.  바울은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말을 했고, 선주와 선장은 육적 통찰력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가난한 전도자요,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기 위해서 호송되어가고 있는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때문에 선주와 선장의 말이 이겼고 바울의 말은 묵살되고 말았습니다.  여기 선주와 선장의 말은 인간의 말이고 바울의 말은 성경의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미항을 떠나 행선하다가 그레데항 부근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18절을 보면 배에 실었던 짐을 모조리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이는 배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9절을 보면 배의 기구들 가령 의자나 탁자 등 필요한 것 모두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20절을 보면 여러 날 먹지를 못했고, 해와 달이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광풍은 더 심해져서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중해 광풍 앞에서 백부장의 차고 있는 칼이 무슨 힘이 되며 선장이 가지고 있는 기술, 선주가 가지고 있는 돈 보따리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떠합니까?  경제, 정치, 도덕적으로 큰 광풍을 만난 셈입니다.  국민의 절규는 높아만 갑니다.  우리의 현실이 왜 이 모양입니까?  대통령, 국회, 대학, 경찰이 없어서입니까?  우리 모두는 바울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1절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바울의 말 곧 성경의 말을 듣고 미항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면 광풍을 만나지 아니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11절을 보십시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바로 여기에 알렉산드리아호의 비극이 있습니다.  오늘 믿음의 사람들이 믿고 따라야 할 말이 무엇인가요?  정치가들의 논쟁인가요?  재야나 운동권의 소리인가요?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 제 서재에는 작은 라디오가 있습니다.  기독교 방송을 듣기 위해서 다이얼을 돌려 가면 주파수가 맞을 때까지는 시끄러운 잡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일단 주파수가 맞으면 은혜스러운 찬송도 설교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만일 당시의 백부장, 선주나 선장이 자기들의 말, 경험, 판단을 유보하고 바울의 말에 주파수를 맞췄더라면 광풍을 만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나를 믿고 내 경험, 판단을 믿고 내가 옳다, 이만하면 됐다.  이런식으로 인생을 산다면 광풍을 만나 죽도록 고생만 할 것이고 "사람 살려"하는 잡음만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속의 예수님께 다이얼을 맞추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대로 순종하면 모든 일이 쉽고 우리 자신도 행복할 것이며 우리 덕분에 사랑하는 자녀들도 행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의 귀를 누구의 소리에 기울여야 합니까?  신천신지를 우리에게 준다고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됩니다.  병을 고치고 능력을 주고 기적을 보여준다는 사이비 이단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도 안됩니다.  예수님만이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기쁨, 나의 소망이십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광풍을 잔잔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보수교단 전체교회가 지키는 성경주일입니다.  보다 더 원문에 충실한 성경을 지니기 위해서 신학교의 저명한 교수들이 심혈을 기울여 다시 성경을 번역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수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침내는 이 땅에, 우리 교회에 최선의 성경이 출판되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합니까?  기독교는 성경 종교이기 때문이요, 우리의 믿음이 성경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은 성령으로 감동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일점 일획이라도 오류가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는 거듭났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거듭났는지요?  벧전1:23이 말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는 66권의 성경 모두에는 예수님이 흘리신 속죄의 붉은 피가 시냇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헨리 반 딕(Henry Van Dyke)의 유명한 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동방에서 태어나 동양의 옷을 입은 예수님은 다정한 걸음으로 온 세계를 지금 순방하고 계신다.  그는 수많은 인생들에게 친구야 안녕! 다시 만납시다 하고 계속 소망을 약속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링컨은 성경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으뜸가는 선물이다.  이유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선한 것이 성경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광풍 속에서 전해진 성경"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 메시지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여기 '광풍'은 우리의 삶 속에 있을 수 있는 환난, 역경, 고난입니다.  IMF일 수도 있고 5.18일 수도 있습니다.  부도, 파산, 고통,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산소마스크만 벗어버리면 그냥 떠나버릴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광풍에서 전해진 성경은 어떤 성경일까요?  

 첫째, 위로의 성경입니다.
지금 광풍을 만난 선원들은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저마다 '사람 살려'합니다.  이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22절입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무슨 뜻입니까?  이제는 마음을 놓아도 된다는 뜻이요, 주께서 주시는 평화를 체험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요14:1에서도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마12:20을 보면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불행스러운 존재입니다.  불행 없는 인생 없습니다.  낭패와 실망이 없는 인생 없습니다.  우리의 찬송이 무엇입니까?  ♬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 이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성경에 보면 안심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자주 나옵니다.  마9:2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수많은 인생들이 죄 때문에 얼마나 고민을 합니까?  가슴을 칩니다.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그리고 "안심하라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은 위로의 복음인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또 마9:22을 보면 예수님은 열 두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을 향해서 말씀합니다.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랬더니 여인이 질병에서 건강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지요.  또 질병의 종류도 많습니다.  에이즈, 위암, 뇌종양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병든 자도 오라"하셨습니다.  마14:27을 보면 광풍으로 고난 당한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광풍을 만나 고생을 합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만난 광풍 속에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만난 광풍이 어떤 것입니까?  실패, 부도, 환난의 광풍입니다.  그때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무슨 뜻입니까?  이제는 위기가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IMF가 끝났다는 말입니다.  또 어떤 성경입니까?  

 둘째, 구원의 성경입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선원들이 생명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유라굴로는  유라'동풍', 굴로 '북풍'을 그러니까 동북풍을 뜻합니다.  당시에 동북풍에 휘말리면 파선 당하지 않을 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마다 이 광풍을 만나 구원을 요청합니다.  이러한 광풍 속에서 전해진 성경이 말합니다.  22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생명이 위태로우면 냉장고가 무슨 소용이며, 카메라, 옷 가방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심지어 그들은 돈지갑과 통장까지를 바다에 팔랑개비처럼 다 던져버렸습니다.  이때에 전하여진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눅19:10에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오직 예수님만 외쳤습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게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바울은 또 외쳤습니다.  행16:37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누구신가요?  우는 자의 위로, 없는 자의 풍성, 천한 자의 높음,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물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가?  재물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성도는 일등 성도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등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어떤 성경입니까?

 셋째, 믿음의 성경입니다.
25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그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아니하는 것은 그의 봉사, 열심도 믿음이 아닙니다.  왜 성경을 소홀히 합니까?  성경대로 살지 못합니까?  성경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될 줄로 믿었습니다.  바울은 말씀의 사람입니다.  율법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복음서를 그대로 믿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항해하는 실존입니다.  따라서 언제나 광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번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큰 광풍을 만났습니다.  죽을 형편이 되었습니다.  물을 뿜어 봤자 소용없었습니다.  지치고 견딜  없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결국 "주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의 말씀이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했습니다.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습니다.  광풍이 잠잠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난 광풍을 누가 잔잔하게 해줍니까?  오직 예수뿐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어디에서 만납니까?  삼각산? 계룡산?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상한 예수 만날 수 있습니다.  다른 복음의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응답은 성경 속에서 받아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못 만난 사람 죽어서도 예수님을 못 만날 사람입니다.  그런데 30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공들이 도망하고자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생명이 위태롭다고 여긴 사공들이 자기들만 살기 위해서 몰래 거루를 바다에 내려 놓았다는 말입니다.  여기 '거루'라는 말은 돛을 달지 않은 작은 배 요즘의 구명보트를 뜻합니다.  그들은 거루를 타고 도망하면 살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거루를 믿었습니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거루가 있습니다.  어떤 거루입니까?  물질, 쾌락, 명예, 지위, 권세의 거루입니다.  믿는 성도들 중에도 더러는 이런 것들을 자랑합니다.  이것만 타면 행복할 줄 압니다.  또 구원받을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31절입니다.  "이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살 길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배 안에만 살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32절에 보면 군사들이 그 거룻줄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땠습니까?  거루는 바람 따라 멀리 떠내려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사공들이 도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사공들이 손해를 보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44절을 보십시오.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믿음생활이 무엇입니까?  거룻줄을 끊어버리는 생활입니다. 끊어버리는 것을 끊어버리는 것 이것이 믿음생활입니다.  히12:1이 권면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끊어야 될 거룻줄이 무엇입니까?  교만의 줄, 위선, 우상, 불신의 줄입니다.  이 줄을 죽으면 끊으면 죽을 줄로 압니다.  손해 볼 줄로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 사랑하는 성도여, 광풍 속에서 전해진 성경을 믿으십시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을 믿고 삽시다.  예수님만을 선장으로 모시고 우리의 남은 생애의 항해가 성공할 수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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